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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 영이와 짝지를 하고 싶은 건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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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이와 짝지를 하고픈 건 모든 남자애들의 소망이다. 그러나,
  동시에 두 사람이 영이와 짝지를 할 수는 없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영이와 짝지를 하고픈 건 모든 남자애들의 소망이다. 영이와 짝지를 하고 싶단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보지 않은 애가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영이는 완벽한 애다. 사과 같은 얼굴에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반짝, 특히 그 딸기색 입술!

  영이는 올해 3월 2일 새학기가 시작되며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어른들이 동의하건 말건 우리는 이 사건이 역사에 길이 남을 아주 중요한 일이라 여기고 있다. 우리들의 대변인은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기쁜 일"이라는 취지의 논평을 내기도 했다. 영이가 교문을 한 발짝 들어서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이미 우리들 운명의 지침은 돌아버렸다. 그에 따라 우리도 훼까닥 돌아버렸다. 세반고리관이 약한 몇몇은 멀미를 하기도 했다. 영이의 눈은 영이스럽고 영이의 코는 영이스러웠으며 영이의 입은 더없이 영이스러웠다. 그 영이스러운 조막 얼굴하며 그 영이스러운 백옥의 피부 하며, 어쩜 그렇게 오밀조밀 영이스럽게도 배치되어 있을런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때마침 어디선가 불어온 살랑바람이 영이의 영이스러운 머릿결을 흩어놓으면서 전교는 일대 혼란의 도가니탕으로 빠져들었다. 개중 몇몇은 창틀에서 떨어져 정말로 도가니가 나가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부터 우리들의 세계에서 예쁘다, 어여쁘다, 아름답다, 귀엽다, 깨물어주고 싶다, 죽인다, 혹은 쥑인다, 최고다, 눈부시다, 반했다, 뻑가다, 프리티, 러블리, 뷰리풀, 고저스, 스위트, 샤이니, 나이스, 차밍 등 국어와 영어, 동사와 형용사를 막론하고 미를 나타내는 표현은 '영이스럽다'로 일거에 통일되었다. 몰라보게 진화한 언어적 효율성에 우리 모두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우리들의 대변인은 "우리말이 생긴 이래 가장 기쁜 일"이라는 취지의 논평을 냈다. 

  영이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 동네를 떠나보지 못한 우리와는 다르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에서 자란 '여자'아이답게 영이는 손도 하얗고 다리도 하얗다. 눈 하나 깜짝 않고 개구리에게서 뒷다리를 앗아버리는 우리 동네의 무식하고 잔인한 여장부들과는 다르다. '영이'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그 얼마나 세련되고 고상하고 도회적인 이름인가. 말순이, 광자, 명례, 경추, 용순이 등 우리 동네에 가득한 촌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름 하나만으로도 영이는 충분히 영이스럽다. 아마 그네들에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잡히기라도 하면 한 줌 되지 않는 우리 가냘픈 영이는 하릴없이 유리 알갱이되어 반짝반짝 부서져버리고 말 테다. 영이가 전학 오던 바로 그날부터 우리들 중 다수는 밤마다 영이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이 현실보다 좋은 점이 있다면 남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꿈속의 영이는 대개 현실의 영이만큼이나 영이스러웠으며 때로는 현실의 영이보다 더욱 영이스러웠다. 때문에 영이가 나온 것만으로도 꿈은 충분히 꿈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도 남았다. 일단 영이만 등장한다면 설사 그 나머지 시간에 처녀귀신, 흡혈귀, 강시, 프랑켄슈타인이 2대 2 태그 팀 매치로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꿈은 더 이상 악몽이 아니었다. 자기 꿈엔 임자 없기에 너도 나도 영이의 꿈을 꾸었다. 영이스러운 영이의 영이스러움이 꿈속에서 현현히 발휘되었다. 호르몬이 왕성한 몇몇은 감히 몽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머리가 굵은 몇몇은 무의식 속에서 영이를 제멋대로 가공 및 윤색하여 꿈으로 만들어냈다. 개중 몇몇은 아홉 살짜리들의 무의식이라기엔 너무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읍내 역전 뒷골목 음침한 극장의 동시상영 영화관 입간판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는데, 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떠꺼머리들은 무슨 대단한 자랑이라도 되는 양 자신들의 불온한 꿈을 떠벌리고 다녔다. 이 은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이를 연모하는 우리들 사이에 처음으로 상도덕이 지켜져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게 되었다. 우리들의 대변인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제 모두가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영이의 영이스러움이 우리를 건전하게, 때로는 불경하게 자극하는데는 몇 가지 현대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영이는 이제 고작 아홉 살인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 여덟 살로도 보이고 열 살로도 보이는 천의 매력을 지녔다. 우리 중의 아홉 살인 우리에겐 아홉 살처럼, 우리 중의 여덟 살인 우리에겐 여덟 살처럼, 우리 중의 열 살인 우리에겐 열 살처럼 보였다. 만약 우리 중에 열한 살이나 열두 살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영이가 열한 살이나 열두 살로 보였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만큼 영이에게는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초월하는 뭔가 특별한, 그 뭐시다냐, 아우라가 있었다. 뿐만 아니다. 상안이 얼굴의 오분의 삼을 차지하고 눈이 왕구슬보다 까맣고 동그라며 턱이 조각보다 갸름한 전형적인 동안의 요건을 다 갖추었음에도 영이의 굴곡은 응당 볼록해야 할 곳이 볼록하고, 응당 잘록해야 할 곳이 잘록하며, 응당 씰룩해야 할 곳이 씰룩한 등 결코 아홉 살이라고는 믿기 힘든 발육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이 촌구석에서는 두 눈을 해양심층에서 퍼올렸단 밀봉 포장된 생수로 씻어도 찾기 어려운 드문 현상이었다. 말순이, 광자, 명례, 경추, 용순이가 우리들과 하나 다를 게 없는 저질 통짜 몸매를 가지고 있었음을 상기할 때, 놀라 자빠졌다 일어나서 람바다를 추고도 남을 일이다. "다름 아닌 문명의 수혜일까?" 우리 중의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성장 호르몬이 어려서부터 분비된다는 얘기를 텔레비전인가 어디선가 들었다는 얘기다. 우리는 그러한 미확인된 가설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양호 선생과 독대를 시도하고 싶었으나 이 저주받은 촌구석의 저주받은 학교에는 양호 선생이란 존재가 없었다. 애들이 아프다면 재 너머 장님 할배가 삼 대째 물려받아 운영한다는 한약방으로 업고 뛰는 것이 이 촌티 나는 학교의 촌티 나는 보건 의료 지침이었다. 제기랄. 우리는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어. 그래서 영이의 영이스러움은 더욱 돋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라. 좌를 보고 우를 봐도 말순이, 광자, 명례, 경추, 용순이다. 여기에 영이가 나타났다. 깨끗하고 맑은 피부에, 아기보다 순수한 눈망울에, 그런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미스코리아도 울고 갈 역동적인 굴곡을 가진 이 촌구석에 어울리지 않는 천사가 기적처럼 강림하셨다. 영이의 영이스러움은 마땅히 건전하고 순수함과 다름이 아니었으나 받아들이는 우리로서는 영이의 영이스러움에 실제보다 많은 그 무엇인가를 부여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러는 영이를 꿈꾸고 더러는 영이를 더 많이 꿈꾸었다. 


*


  우리들 중 대부분은 영이는 영이의 영이스러움을 지켜줄 수 있는 남자 중의 남자에게 보호받아야 한다는데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그러지않아서야 말순이, 광자, 명례, 경추, 용순이 등 선머슴아들의 우악스러운 손에 붙잡혀 처녀귀신, 흡혈귀, 강시, 프랑켄슈타인을 동시에 만난 무섭고 외로운 처지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는 안된다. 연약한 여자를 지켜주는 것은 남자 된 도리요 우리 마을을 찾아온 손님을 지켜주는 것은 토박이의 의무다. 마침 대통령 할아버지도 '한국 방문의 해'를 선포하며 싸가지 넘치는 손님 접대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음, 백번 옳은 말이군. 우리는 비록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하고 십오 분이 더 걸리는 거리에 떨어진 촌구석에 살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서울의 스탠다드를 따라가는 것이 코리안 스탠다드요, 코리안 스탠다드는 곧 글로벌 스탠다드임을 알았다. 우리들의 대변인도 "서울과의 간격을 좁히자"라는 야심찬 제목의 논평을 준비했다. 

  우리가 영이를 보듬어 살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런 촌구석에 내려올 일이 평생 없을 것처럼 생긴 영이가 이런 촌구석에 내려왔다는 것부터가 남다른 이유가 있었음을 짐작케 해주는 것이리라. 일백이십프로 총동원된 우리들의 물 샐 틈 없는 정보망 앞에서 과연 그 짐작은 사실로 드러났다. 영이는 그 영이스러운 생김새에 걸맞는 영이스러운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우리가 평생 돋도 보도 못했고 앞으로도 듣도 보도 못할 가능성이 다분한 병을 '선천적으로' 앓고 있다고 했다. 그간은 운이 좋았는지 도시생활을 충분히 견뎌낼만큼 큰 문제가 없었지만 어느 날 돌연 우리가 평생 돋도 보도 못했고 앞으로도 듣도 보도 못할 가능성이 다분한 기작에 의해 병이 악화되어 요양을 겸해 공기 좋고 물 좋은 촌구석으로 당분간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음, 마치 현실에서는 듣도 보도 못할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이야기로군. 하긴 그만큼 우리 마을이 공기 좋고 물 좋기는 하지. 널리고 널린 촌구석 중에서 하필 우리 마을이 영광스럽게도 간택된 연유는 이 놈의 촌구석이 영이 아버지의 고향이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우리들이 면사무소에 가서 난장을 치며 문의한 결과 영이 아버지에게 생후 이삽육개월까지 우리 마을에서 살았던 이력이 있었음이 새로이 밝혀졌다. 우리와 상당히 가까운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촌구석의 진저리나는 촌티와 저주스러운 운명으로부터 물들기 전에 탈출했다는 점이 우리를 더욱 매혹시켰고, 그런 매혹적인 아버지를 두고 있을 뿐 다른 죄는 없다는 점이 영이의 영이스러움을 더더욱 매혹적으로 보이게 했다. 

  영이는 하나다.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따라서 꿈과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그 애를 나누어 가질 길이 요원했다. 모두가 영이와 짝지를 하고 싶어하지만 모두가 영이와 짝지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두가 영이와 짝지를 할 수 있다면 영이는 하나가 아닐 것이다. 고로 경쟁의 조짐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곧 수요와 공급의 위대한 법칙과 다름이 아니었다. 


*


  우리 스스로 그렇게 평한다면 분명 우스운 일이지만 우리들의 관계는 찰떡보다 강하고 질긴 유대감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사이였다. 그간 많은 음모가 있어 우리들의 견고한 사이를 공략하고자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 우리다. 우리가 이처럼 갈등을 빚은 것도 사실상 우리들의 유대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고 이처럼 상호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격론을 벌인 일도 태양이 마음 놓고 동쪽에서 뜨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누군가 '한낱 여자 때문에' 우리가 그럴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한낱 여자'라고 부르기에 영이는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영이스러웠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달랑 '한낱 여자'라고 부르는 것이 어째 비하의 뜻이 다량 포함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기에 - 아마 여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겠지만, 우리는 문제의 발언을 감히 입에 담았던 그를 영구 제명시켰다. 그는 한때 우리였으나 이제 더 이상은 우리가 아니게 되었다. "이래서 여자는 요물이라니까", 어른들은 혀를 끌끌끌 찰런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누군가 우리의 영이를 요물이라고 부른다면 그는 결코 우리들에게서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영이의 영이스러움을 모독한 그 '누군가'가 우리 중의 하나라면 한때 우리였으나 더 이상은 우리가 아니게 된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그 '누군가'는 조지게 쓴 조직의 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영이는 소중하고 또 소중하고 또또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폭풍 전야의 혼란함을 정리하기 위해 우리들의 대변인은 5대 방송사의 마이크 앞에서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가 없으면 뿌빠라 뿌빠 뿌빠빠 뿌빠라 빠빠 빠빠빠"라고 명쾌히 선언했다. 

  과연 무슨 수로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경쟁의 기준을 만들 것인가. 아니, 유사 이래 구성원 모두의 동의 아래 만들어진 시스템이라는게 있기는 했나. 그건 당초에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고민을 하나마나 영이는 하나였다.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겠느냐. 밤새도록 노래를 불러도 영이가 하나라는 절대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기꺼이 먼저 나서서 경합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놈도 우리 중에는 없었다. 여덟 시간을 훌쩍 넘긴 마라톤 협상에 지친 우리들은 한자리에 모여 우리가 영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부터 차근차근히 따져보기로 했다. 

  먼저 영이는 영이스럽다. 말인 즉슨, 
  예쁘고, 어여쁘고, 아름답고, 귀엽고, 눈부시다는 얘기다. 
  말순이, 광자, 명례, 경추, 용순이랑은 다르다는 얘기다. 

  또한 영이는 서울에서 왔다. 
  이 촌구석에 핏줄로는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문명의 세례를 받았다는 얘기다. 
  말순이, 광자, 명례, 경추, 용순이랑은 다르다는 얘기다. 

  또한 영이는 건강하지가 못하다. 
  우리 안 깊숙히에서 잠자고 있던 보호 본능을 냅다 후려 자극한다는 얘기다. 
  말순이, 광자, 명례, 경추, 용순이랑은 다르다는 얘기다. 

  또한 영이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이따금 영이는 순수의 원형과 다름이 아니었으며, 
  이따금 영이는 소년됨의 순수를 깨고 나가자하는 우리들의 간악한 마음을 자극했다. 
  말순이, 광자, 명례, 경추, 용순이랑은 많이 다르다는 얘기다. 

  고로 영이는 누구도 함부로 포기할 수가 없는 존재다. 
  고로 우리들은 이제까지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어려움에 봉착했다. 
  고로 말순이, 광자, 명례, 경추, 용순이랑은 역시 다르다는 얘기다. 


*


  영이를 둘러싼 우리들의 내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자고로 수요와 공급을 둘러싼 갈등을 정상화시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요를 공급에 맞추는 것이다. 이때 영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하나일 수 밖에 없으니 영이를 둘러싸고 들불처럼 들끓는 우리들 스스로가 죽이든지 살리든지 좌우간에 교통정리를 하여 영이와 짝지를 할 영예의 단 한 사람만을 남겨두는 것이 되겠다. 반대로 둘째는 공급을 수요에 맞추는 것이다. 허나 영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하나일 수 밖에 없기에 이 방법은 영이를 완전 무결한 하나의 개체로의 영이로만 한정하는 한 불가능하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두가 영이와 짝지를 하려는데 그만한 숫자의 영이가 공급되기 위해선 영이가 분신술을 쓰거나 영이의 우리의 숫자대로 나누어 영이의 일부로 영이의 전체를 대신하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영이의 귀도 영이고 그래서 영이스럽다. 영이의 코 또한 영이고 충분히 영이스럽다. 영이의 손가락 하나도 영이고 더없이 영이스럽다. 만약 영이가 완전한 영이와 등가의 영이스러움을 지닌 수많은 객체로 분리된다면 우리는 새로이 구분된 나름의 대상들로부터 새로운 선호의 정도와 차등적 관계를 입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 모두가 영이와 짝지하기를 원한다는 거대한 진실에는 변함이 없으나 우리 중 더러가 영이의 영이스러움을 상징하는 부분을 초콜렛과도 같은 탐스러운 눈에 부여한다면, 반면에 우리 중 다른 더러의 우리는 영이의 영이스러움이 백지처럼 하얀 피부에 결집해 있노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의 혼란스러움을 뒤로한 채 모두가 만족할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여 우리는 갈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판이 날때까지 기준을 정하고 고단히 싸우고 치열히 헐뜯어, 설사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 하더라도 누가 영광스러운 영이의 짝지가 될지를 정할 것인가. 아니면 다소 아쉬움이 있더라도 영이를 모두가 공유하는 차선책을 따를 것인가. 누구도 물러날 수가 없다는 우리 모두의 강경한 선언은 과연 단 한 사람을 제외한 우리 모두를 희생하느냐, 아니면 (영이에게는 참으로 안 된 일이겠지만) 그녀의 작은 헌신으로 우리 모두의 불완전하나마 평화적 상태를 달성하느냐의 고민으로 이어졌다. 언뜻 산술적으로 생각할 때 희생은 적을수록 좋은 것이 맞다. 수업시간에 줄창 배운대로 다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짧고 얕은 지식 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그런 상황을 가장 적합하게 기술할 수 있는 말은 '불가피'였다. 맞다. 그게 바로 '불가피'다. 피해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우리 모두가 영이의 짝지가 되는 완전하지는 않아도 완전에 가까운 상황을 택하기로 최종 의결했다. 눈이 너구리 한 마리처럼 퉁퉁 부은 채로 우리들의 대변인은 "오늘은 우리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슬픈 날이지만 울지 않겠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작지만 소중한 한걸음이었다. 헛된 희생이 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 라며 마지막 논평을 아슬아슬하게 마쳤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영이와 짝지를 하고픈 건 모든 남자애들의 소망이다. 그러나, 
  동시에 두 사람이 영이와 짝지를 할 수는 없다. 바로, 
  그게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를 나름 합리적으로 해결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 모두의 행복을 달성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지, 아무튼, 
  참 이상한 일이다. 영이와 짝지를 하고픈 건 모든 남자애들의 소망인데 말이다. 

 

(200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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