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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 벌레 먹은 사람들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5.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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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레 먹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벌레 ‘먹은’ 사람들이란 겁니다. ‘먹는’ 이 아니라요. 아시겠지만 '벌레 먹은 사람들'이라는 말과 '벌레 먹는 사람들'의 어감은 참 달라요.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은 벌레 ‘먹은’ 이니 꼭 상습적으로 밥 먹듯 먹는 사람들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어쩌다 한 번 먹었어도 벌레 먹은 사람이 되겠죠. 벌레. 그 벌레가 뭐냐면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입니다. 뭐, 국어 사전을 뒤져보면 그렇게 나와 있습디다. 

2. 어떤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초여름인지 초가을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오고 난 다음에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아 약간은 후덥지근한 날이었다죠. 열심히 페달을 밟아 마주 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는 나름 상쾌한 기분을 한껏 느끼고 있었는데, 아마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있었나 봅니다.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보면 종종 입을 벌리고 있을 수도 있고 (고의든 아니든) 그런 게 아니겠어요. 하여튼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오며 섬뜩한 느낌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알고보니 고약하게도 나방 한 마리가 입으로 쏘옥 들어와서 (나방의 고의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퍽이나 빠르게 달리고 있었으니까요.) 꿀떡. 엉겹결에 목으로 넘어갔더라는 것입니다. 아, 역겨운 이야기죠. 동시에 딱한 이야기기도 하고요. 

3. 프랭크 N. 스테인 (Frank N. Stein) 씨는 (나방을 삼킨 그의 이름입니다) 당연히 깜짝 놀랐습니다. 나방을 삼켰으니까요. 그게 어떤 기분인지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는 편이 나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필경 맨 정신으로 묘사하기 어려운 부분이니까요. 행여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식사 중이라면 잠시 이 이야기를 읽는 것을 멈추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것 참 곤란한 울렁임에 의해) 구토 증세가 있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요. 아무튼 프랭크는 이후 '나방 맛'이라는 것에 대해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꽤나 자세하고 정교하게 설명해 준 적이 있습니다. 아마 ‘나방 맛'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또 없지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행여 불가피한 비극으로 나방을 먹게 되더라도 그 맛에 대해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을테니까요. 말하자면 프랭크와 같은 독특한 정신 세계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답답하고 텁텁하고 마치 위 속에서 뭔가가 팔랑팔랑 꽃가루를 흩뿌리는 것 같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후일 여성지 기자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는 씨익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물을, 마셨어요." 그 인터뷰는 그 해 여성지 겨울호에 <나는 그리하여 나방을 삼킨 남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나방맨으로, 눈물의 인생역정>이란 타이틀로 실렸습니다. 

4. 다시 그 당시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프랭크는 나방을 삼킨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어떻게 떨쳐 내어야 할런지 몰랐습니다. 음, 소리를 내어 고민하였지요. 기왕 삼켜버린 나방, 이제와서 뭘 어떻게 하겠는가 싶지만서도 뭘 어떻게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답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하필 나방이라니. 나비라면 모를까. 열흘 밤 낮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그는 결국 직장에서 가까운 고층 빌딩의 옥상까지 올라갔습니다. 예, 맞아요. 고작 나방 때문이라니 좀 우습긴 하지만, 세상에 작별을 고하려고요. 고작 나방 때문이라니 너무 슬프긴 하지만, 떨쳐 내려고 아무리 애써도 떨쳐지지 않는 몹쓸 기억을 끝내는 방법이 정녕 그것 뿐이라 생각했던 겁니다. 물론 이제껏 평생 이루어왔던 것들이 좀 아깝긴 했습니다. 많이는 아니어도 프랭크도 어느 정도 이룬 것이 있을테니까요. 그래서 그는 올림픽에 출전한 육상선수처럼 힘차게 하늘로 (그러나 사실은 땅으로) 뛰어 내렸지요. 이제 안녕! 모두 안녕! 이 모든 게 다 나방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적잖이 서럽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여 눈물이 날 것도 같았지만 중력의 이름으로 붙여지는 가속이 워낙 강해 눈물은 나오기도 전에 도로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답니다. 프랭크는 그렇게, 그렇게 하염없이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습니다. 

5.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프랭크가 멈춘 것은 그로부터 몇 초가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응? 그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지요. 분명히 땅이 아니라 공중 한 가운데였습니다. 둥둥둥 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는 밑을 내려다 보았는데 놀랍게도 길 가던 사람들이며 경비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자길 올려다 보고 있었지요. 뭐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움츠렸는데 덕분에 살짝 떠올랐다가 제 자리에서 가라앉았습니다. 다시 살짝 떠올랐다가 조금 아래로 내려 앉았습니다. 말하자면 꼭 물 속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랄까요. 힘을 주면 가라앉고 힘을 빼면 떠오르고. 몇 분이 지나면서 (구경꾼들은 그새 경찰서며 소방서에 전화를 걸고 있었습니다) 중력에 거스를 수 있다는 분명한 확신이 생기자 그는 목을 노루처럼 길게 빼고 어깨를 위로 으쓱 치켜올린 다음에 온 몸을 쫙 펴서 일 자로 만들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하늘로 점점 솟아 올라갔습니다. 그리 빠르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5층에서 6층으로, 다시 6층에서 7층으로, 또 다시 7층에서 8층으로. 만약 마천루가 가라앉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그는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날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6. 다시 옥상에 닿기가 무섭게 프랭크는 온 몸에 힘을 풀었습니다. 경직되었던 근육이 일순간 풀리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방금 전 자살을 시도하던 사람치고는, 그러다 하늘을 날기까지 한 사람치고는 참 민망스러운 귀환이었지요. 하늘을 날았다는 사실에 신기함 보다 그의 머리 속에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재빠르게 그 곳을 빠져 나가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길 보고 그렇게 웅성대었으니 분명 문제가 되어도 되지 않겠어요? 아니나 다를까. 삐뽀 삐뽀, 경찰차 싸이렌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대로 아래로 내려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어디로 숨어야 할까요? 그는 동내 집값 떨어질까봐 자기 아파트가 아닌 시내에 와서 자살하려고 했던 걸 후회했습니다. 아래의 웅성거림이 절정에 달할 무렵, 그는 어렵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쩜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으니 하늘을 날아서 도망가자는 것이었지요. 겁이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한 번 목을 노루마냥 빼고 몸을 일자로 만들어 서서히 공중으로 부양해 보았습니다. 저 멀리 그의 아파트가 반갑게도 보였습니다. 조금은 무서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파트를 향해 몸을 내밀었습니다. 찬찬히 몸이 그리로 움직였습니다. 그의 모습이 하늘에 드러나기가 무섭게 아래에서는 놀라움이 섞인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창피했습니다. 더 빨리는 안될까요? 그는 어떻게 속도를 제어할지 몰랐습니다. 지금의 빠르기라면 고작 땅에서 뛰는 정도? 과연! 구경꾼들이 하나 둘 그를 따라 뛰기 시작했는데 비슷비슷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계속 따라왔습니다. 그가 1미터 날아가면 사람들도 1미터 뛰어 따라왔습니다. 이래서야 도망칠 수 없잖아, 그는 울상을 지었습니다. 

7. 프랭크는 결국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로스엔젤레스 경찰은 이례적으로 헬리콥터를 동원하여 (유감스럽게도 헬리콥터가 그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그의 머리 위에 오징어 그물을 던졌습니다. 원양어선에서 빌려온 거라죠. 그는 그물을 뒤집어 쓴 상태에서도 열심히 앞으로 날았지만 그들이 힘을 주어 그물을 잡아 당기는 바람에 자세가 망가졌습니다. 노루새끼 맨치로 목을 빼지 않으면 날 수 없다는 걸 그제야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프랭크는 오징어처럼 가련한 상태로 가장 가깝지도 않은 노스헐리우드 경찰서로 끌려갈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렇게 큰 사건을 지역 경찰서 차원에서 해결할 수야 없었겠죠. 사실 헬리콥터를 빌려오고 오징어 그물을 빌려오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사람의 윤허가 있어야 했거든요. 그는 손목과 발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로 로스엔젤레스 경찰국으로 옮겨졌습니다. 하지만 경찰국이라고 별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이야기가 돌아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취조실에 갇혀있는 사이에 연방 요원들이 도착했습니다. 헌데 그들 또한 하늘을 나는 사람을 다루어 본 경험이 없기는 매한가지였거든요. 게다가 프랭크가 딱히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니 어거지로 잡아둘 수도 없고 말입니다. 결국 그들은 억지로 머리를 짜내어 프랭크의 죄를 만들어 내었답니다. 항공교통관제기관의 승인 없이 인구가 밀집된 지역 및 기타 사람이 운집한 장소의 상공에서 인명 또는 재산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방법으로 비행하였다는 겁니다. 그 비행이 비행(飛行)인지 아니면 비행(非行)인지 몰라 프랭크는 두 눈 멀쩡하게 뜨고 당할 수 밖에 없었지요. 

8. 프랭크는 개처럼 끌려가서 정승처럼, 아니 개처럼 끌려가서 개처럼 조사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거든요. 먼저 피를 한 드럼이나 뽑았는데 오백여 종류에 이르는 각종 검사를 위해서였죠. 또한 엑스레이, CT, PET, 그리고 MRI를 1교시, 2교시, 3교시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찍고 위 내시경과 항문 내시경을 하루에 받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가 훨훨 날아 도망가기라도 할까봐 그들은 프랭크의 손목과 발목에 쇠사슬을 채워 놓았는데요. 사실 그럴 필요까지도 없었죠. 피를 한 드럼이나 뽑힌 채로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하루에 받은 사람이라면 하늘을 나는 것보다 더한 재주가 있어도 자력으로는 도망치기 어려울테니까요. 이제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날지 못하게 할 속셈이었다면 그의 목에 압박 보호대를 채워놓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을 겁니다. '노루목'을 만들 수 없게 말이에요. 삼일에 걸친 강도 높은 검사가 끝난 다음에야 그는 심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왜 이제서야 자초지종을 설명할 기회를 주는 거죠?" 그의 물음에 그들은 답하지 않았어요. 질문은 내가 하니 당신은 묻는 말에나 꼬박꼬박 답하라고 괜한 엄포만 놓았지요. “어떻게 하늘을 나는 거지?” 프랭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누구보다도 그걸 가장 알고 싶은 사람은 그였으니까요. “어떻게 하늘을 나는 거지?” 그들은 앵무새처럼 같은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한 번 질문에 몰라서 대답하지 못했던 것을 두 번 묻는다고 덜컥 알게될 리가 있나요. 모릅니다. 나도 어떻게 날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은 프랭크의 뺨을 때렸습니다. 또 때렸습니다. 아프라고 일부러 때린 곳을 또 때렸습니다. 

9. 16세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새를 연구하여 하늘을 나는 방법을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또한 물고기를 연구하여 선체를 개발하려고도 했었답니다. 말하자면 하늘을 날 수 있는 새의 능력을 모방하여 하늘을 날 수 없는 인간의 도구를 만들고자 했었던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몸이 새를 닮아가도록 변화하여 그 어느 도구 없이도 제 스스로 날 수 있게 되는 날을 꿈꾸었을 겁니다. 우리는 프랭크가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이유를 나방을 삼켰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나방을 삼킨다고 하늘을 날 수 있느냐고요? 그럼 나방을 안 삼키고는 하늘을 날 수 있답니까? 나중에서야 그의 인터뷰를 보고 그가 나방을 삼킨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진작 알았다면 그가 삼킨 나방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을텐데 당시만해도 다들 그런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못했죠. 물론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만 나방의 무언가가 그에게 옮겨갔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증거도 있습니다. 감옥에 격리되어 있던 프랭크가 빠져나갈 수 있었던 까닭은 누구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을 거대한 나방의 무리가 그를 잡아두고 있던 그들을 공격했기 때문이거든요. 어떻게 그 은밀한 지하 깊은 곳까지 들어왔는지 알 길 없는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나방의 무리는 지역 경찰과 연방 요원 모두를 처참히 무력화시키고 삽시간에 프랭크를 싣고 달아났습니다. 더러 용감한 몇몇이 뿌리는 살충제를 들고 저항해 보았지만 워낙 그 수가 많아 대적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10. 프랭크가 나방에 둘러싸여 탈출한 덕분에 인생이 꼬여버린 사람이 바로 벤 크로버리 (Ben Crobbery) 요원입니다. 크로버리 요원은 로스엔젤레스 경찰국으로부터 프랭크를 넘겨받았다가 놓쳐버린 책임을 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랭크가 일종의 잠재적 위험인물로 간주되고 있었기 때문에 크로버리 요원은 졸지에 청문회까지 끌려나갔습니다. 물론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마른 하늘에 덜컥 수십만 마리 나방이 나타나 공격을 하는 걸 어떻게 미리 예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늘 그렇듯이 청문회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매서운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인간 병기가 아닙니까?” “그렇진 않더라도 주요 군사 시설이라도 간파당하면요?” 크로버리 요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습니다. “저희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사실 그렇게 빠르진 않습디다. 보통 사람들 뛰는 정도이니 로스엔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가려면 한 달은 꼬박 걸릴 겁니다.” 나름 재치있는 답변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해고를 당합니다. 크로버리 요원 입장에서는 좀 짜증나는 것이 몇 년 후면 영예롭게 퇴직할 수 있는데 별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평생을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실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게 너무 분하고 원통했던 나머지 사재를 탈탈 털어 헬리콥터 한 대와 오징어 그물 스무닥을 마련했죠. 그걸로 하늘을 나는 사람 - 프랭크를 생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로버리 전 요원은 아침마다 그물을 손질했고 하루도 빠짐 없이 프랭크를 잡으러 다녔습니다.

11. 한편 그 사이 나방에 휩쓸려 사라졌던 프랭크는 네바다 사막 모처에서 깨어났습니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그는 주변을 돌아보고 몸에 묻은 흙이며 꽃가루를 황급히 털어내며 나방들이 아직도 그의 주위에 있지 않을까 경계하였는데요. 어찌된 영문인지 거짓말처럼 주위엔 단 한 마리의 나방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를 구해낸 것이 다름아닌  나방이라는 사실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고로 그는 자신의 경이로운 능력이 일전에 나방을 삼켰던 사건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명을 할 수는 없었지만 굳이 설명이 없이도 확신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일단은 이동해봐야 겠다고 생각한 그는 인간의 움직임에 관여하는 모든 관절들이 소리 높여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것을 뒤로 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정말 조심스러웠습니다) 일어서 높은 모래 언덕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바싹 마른 기분 나쁠 정도로 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모래 언덕 위에 올라선 그는 끝도 없는 모래의 행렬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세상에! 그는 (흔히 영화에서 그러하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절히 절규하였습니다. 아아아, 여기는 어디일까요? 이젠 어디로 가야할까요? 프랭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답니다. 

12. 프랭크와 유사한 능력을 가진 또 다른 사람이 발견된 것은 그 즈음이었습니다. 모두들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요. 바로 실수로 나방을 삼켰다는 겁니다. 인간이 그렇게 자주 실수로 나방을 삼키는 아둔한 피조물인가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꽤 많더라는 말입니다. 놀래 자빠질만한 이야기지요. 그들 대부분은 프랭크와 마찬가지로 시속 2~3킬로미터 가량의 속도로 날 수 있었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산출된 최고 기록은 시속 4.3킬로미터라고 합니다만, 그래봐야 어딜 날아서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살았죠. 예, 맞습니다. 영화 속의 영웅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입니다. 영화를 보면 대개 이런 경우에 능력을 숨겨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적으로부터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둘째, 능력의 근원을 알아내고자 하는 정부 혹은 정부의 녹을 먹는 과학자 혹은 사기업 혹은 사기업의 돈을 받는 과학자들의 생체 실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방 먹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일전에 프랭크를 붙들어 두려고 하던 정부 기관에서조차 시속 2~3킬로미터에 불과한 그들의 비행속도에 크게 실망해 그 프로젝트를 접기로 했거든요. 비밀리에 진행된 각료회의에서 국방안보장관이 과학기술장관에게 건넨 이야기가 가관입니다. "차라리 뛰어도 그것보단 빠르겠다. 젠장." 고로 통제할 가치도, 연구할 가치도, 그 밖의 가치도, 모두 없어진 '나방 먹은 사람들'이 숨어 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입니다. 하늘을 날 수 있노라고 찬란히 능력을 드러내 보이기가 쪽팔려서요. 

13. 하지만 크로버리 전 요원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캘리포니아에서 유타, 그리고 네바다 인근의     평지나 산지를 돌며 하늘을 나는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힘차게 오징어 그물을 던졌습니다. 항상 프랭크인줄 알고 잡았으나 아니어서 실망했지요. 그리고 새삼 하늘을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도시 안쪽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많이 잡힐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왜 도시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냐고요?  고층빌딩이 많은 대도시에서는 헬리콥터로 저공비행을 할 수가 없는데다가 군경이 가만히 둘리도 없잖습니까. 게다가 도시에는 워낙 교통수단이 발달해서 기껏 시속 2~3킬로미터로 날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도시 사람들 중 상당수가 퇴근 후 헬스클럽에 들리는데요. 거기서 유산소 운동을 위해 세팅하는 러닝머신의 속도조차 시속 5킬로미터 이상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러닝 머신에서 시속 5킬로미터는 실컷 뛰고난 다음에 숨을 고를때나 세팅하는 속도가 아니겠습니까.

14. 한편 그 시각 프랭크는 여전히 사막을 해메고 있었습니다. 울기도 해보고 웃기도 해보고, 걸어도 보고 달려도 보았지만 대체 이 끝도 없는 모래 속에서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허기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지독하게 배고픔을 느낀 건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하는 수 없지) 날아보기라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능력 때문에 그런 봉변을 당하고도 살기 위해 다시 그 능력에 기대야 한다니 어쩐지 쓴 웃음이 났습니다. 그는 목을 다시금 노루처럼 길게 뽑아 올리고 몸을 일자로 곧게 폈습니다.  목을 그 어느 때보다도 길게 뽑았고 몸을 가로대나 전봇대보다도 더 꼿꼿하게 일자로 만들었습니다. 어깨도 위로 으쓱, 치켜 올렸습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프랭크는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금새 키 작은 나무들을 넘어설 수 있었고요. (물론 사막에 나무가 있다면 말입니다.) 60초쯤 지나자 자기 키만큼의 높이까지 올라갔습니다. 다시 60초쯤 지나자 모든 것이 그의 발 아래 있었습니다. 만세! 프랭크는 양쪽 어깨에 부과하는 힘의 크기를 조심스럽게 조절하며 한 바퀴를 천천히 뱅그르르 돌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이 악몽같은 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주위의 대략적인 지형지물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죠. 그런데, 아뿔싸. 어느 방향으로도 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고개를 길게 뽑아서 보고 또 봐도 끝은 없었습니다. 아따, 이거 정말 사막 중의 사막이로구만!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걸까요? 그를 여기다 실어다 놓은 망할 놈의 나방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프랭크는 하늘을 원망스레 올려다보며 꺼이꺼이, 서럽게 울었습니다. 

15.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방을 삼킨 사람들 중 일부는 남몰래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속 2~3킬로미터라면 비웃음을 면하기 힘들지만 만약 그걸 열 배 이상의 빠르기로 올린다면 어떨까요? 나아가 스무 배 이상의 빠르기로 올린다면? 그 능력은 웃음거리가 아니라 되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지 않을까요?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겁니다. 지금은 너무 느리기 때문에 그 사실이 흔히 무시되기 일쑤지만 (사람들은 당장 쓸모없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자전거만큼만 빨라진다면요? 당연히 너도 나도 하늘을 날고 싶어지겠죠. 한술 더 떠서 자동차만큼 빠른 속도로 다닐 수 있다면요?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타바바라까지 쓩, 다시 샌타바바라에서 어바인까지 쓩,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숙원이 드디어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인간 진화의 일대 혁명이랄까요.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이 얻은 이 능력을 키워나가야할 의무가 있다고 봤습니다. 때문에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뒷동산에서, 하여간 남의 눈에 띄이지 않는 곳에서 갖가지 자세로 어떻게하면 조금 더 빠르게 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슈퍼맨처럼 팔을 앞으로 더 뻗어보기도 하고 양팔을 크게 펴고 새처럼 파닥파다닥 날갯짓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든 시속 4.3킬로미터’라는 이제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벽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죠. 

16. 역시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세계의 모든 순리는 항상 쌍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나방 삼킨 사람들을 견제하려는 무리도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나방 삼킨 사람들의 정체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언젠간 그들이 더 빨리 날 수 있는 방법을 계발할 것이고, 그 결과 날 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 도태되거나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 억지로 나방을 삼켜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나방 삼킨 사람들에게 엄중한 경고의 뜻을 보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나방을 삼킨 것 까지는 니들 잘못이 아니니 죄가 아니다. 그 점에 대해선 우리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우연히 얻어진 하늘을 나는 능력을 부러 계발하는 것은 니들 죄가 맞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그럴 수야 없다. 아무리 하늘을 나는게 좋아도 나방은 안된다. (나비라면 또 모를까.) 만약 니들이 더 빨리 나는 기술을 연마하려다가 눈에 띈다면 우리 박쥐파는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한 행위로 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구 끝까지 쫓아가 니들을 처단할 것이다.’ 

17. 박쥐파, 그들은 스스로를 '박쥐파'라는 이름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사실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박쥐파의 리더인 딕시 노머스 (Dixie Normous) 씨가 박쥐를 삼킨 적이 있어서 (어쩌다가 그런 흉칙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으렵니다. 그건 글로 설명하기에도 정말 끔찍하고 몹시도 비위가 상하는 일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아무튼 노머스 씨는 박쥐를 삼키고부터 박쥐와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날 수 있느냐요. 물론입니다. 나방을 삼킨 사람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나방을 삼킨 사람들이 목을 노루 새끼처럼 길게 빼고 몸을 일자로 곧게 세운 다음에 어깨를 으쓱으쓱거리는 것과는 달리 박쥐를 삼킨 노머스씨는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양 손을 사마귀처럼 치켜 든 다음에 위로 아래로 팔락팔락 흔들어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이 양 다리는 최대한 구부려서 몸에 바싹 붙여야지요. 모양새가 별로라고요? 예, 맞습니다. 모양새는 별로입니다. 얼마나 빠르게 날 수 있느냐고요? 그게…… 실은 나방을 삼킨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인데 약간 더 빠릅니다. 날 수만 있느냐고요? 그럼 박쥐파가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없었겠지요. 결정적으로 초음파도 쏠 수 있습니다. 초음파, 이게 진짜로 굉장한거죠.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박쥐가 바로 나방의 천적입니다. 박쥐는 눈이 퇴화되었어도 초음파로 먹이의 위치를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에 깜깜한 밤에도 나방을 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박쥐 삼킨 노머스씨에겐 바로 그런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18.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다니던 크로버리 전 요원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날아다니는 사람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맞습니다. 오징어 잡이 그물로 말이죠. (불명예) 은퇴 후 몰라보게 잠이 없어진 그가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히 손질한 덕분에 스무닥이나 되는 오래된 그물임에도 새 것 마냥 쌩쌩했답니다. 그렇게 잡아들인 사람들은 모두 부두에 남몰래 마련한 40피트 컨테이너 박스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압박 보호대를 목에 채워두었기 때문에 그들은 목을 노루처럼 빼올리고 날 수가 없었고 난다한들 박스 안이라 갈 곳도 없었지요. 헌데 이번에 붙잡은 사람은 좀 특이했습니다. 뭐랄까요. 나방스럽지 않았달까요? 하긴 날아다니는 모양도 좀 이상했어요. 대개 나방 삼킨 사람들은 몸을 곧게 펴느라고 턱을 삐쭉 내밀고 멀대처럼 둥둥 떠있기 마련인데, 이번에 잡은 사람은 팔을 파닥파닥거리고 있었단 말이죠. (눈도 매서웠고요,) 다른 종류의 녀석인가? 원래 표정이 저런 건가? 아님 딴 놈들 보다 좀 더 신선한 녀석인가? 크로버리 전 요원은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뭐 별 일이야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똑같이 컨테이너 박스에 집어 넣었습니다.

19. 일주일 후 대부분의 나방파와 대부분의 박쥐파가 크로버리 전 요원의 컨테이너 박스에 갇혔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아니지만 코로버리 전 요원의 술회에 따르자면 그때까지 잡아들인 나방 삼킨 사람들이 137 마리였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명’이라는 단위가 맞겠지만 그는 ‘마리'라는 단위를 사용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중 8 마리가 알고보니 박쥐 삼킨 사람들였다고 합니다. 나방파는 목을 노루처럼 빼고 날아보려고 애썼고 박쥐파는 팔을 파닥거리며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겨우 40피트 컨테이너 박스 하나 안에서 말이죠. 직접 본 사람이 없으니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단한 아수라장이었을 겁니다. 불행하게도 큰 싸움 끝에 그들 중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하니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입니다. 며칠 후 자물쇠를 열고 컨테니어 박스를 들여다 본 크로버리 요원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몇 년 동안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의 트라우마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 일로 갑자기 허무감을 느껴 프랭크를 추격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현재 그는 동부의 작은 해안 마을로 이사하여 어부가 되었습니다. 매일 동 트는 시각에 오징어 그물을 손질하는 건 쉰 다섯살 먹은 중년남자의 일상으로 꽤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고위직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물을 손질하는 모습도 여느 촌부와는 달리 우아하고 기품있었죠.

20. 그리하여 다시 이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까지도 네바다 사막 모처를 헤메고 있던 이 이야기의 주인공 프랭크 N. 스테인은 마지막 나방 삼킨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사막을 빠져나왔는지는 정확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빠져나왔고 시속 4.3킬로미터라는 딱한 비행 속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사회적 명사 비슷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여성지 겨울호에 <나는 그리하여 나방을 삼킨 남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나방맨으로, 눈물의 인생역정>이란 인터뷰도 하게된 것이고요. 그러면 아마 여러분들은 그 이후에는 나방 삼킨 사람들이 없었을까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는데 어쨌든 공식적으로 보고된 바는 없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누가 그 역겹고 메슥거리는 사실을 고백하겠습니까? (물론 마찬가지의 이유로 박쥐 삼킨 사람들에 대한 보고도 없습니다.) 나방을 삼키고 하늘을 나는 능력을 얻었다는 사람에 대한 보고도 없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기껏해야 시속 4.3킬로미터 정도로 날 수 있는 마당에 그 사실을 애써 자랑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200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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