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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 자기소개서: 대부도 인정한 인재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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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첫인사

  it's all about business. 머지 않은 미래에 세상은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비즈니스에 의한, 비즈니스를 위한, 비즈니스의 세계.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롭고 참신한 준비된 인재 페라리 꼴리오네 인사드립니다.

1. 성장과정

  저는 1927년 시칠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쿨하신 아버지와 쿨하신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며 쿨함을 온 몸으로 발산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동네에서 쿨한 유전자를 쌍으로 받아 태어난 저를 이길 적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지나가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기로는 그 쿨함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게 거친 사나이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용기와 담력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또한 어머니께서는 시칠리아 출신으로 제게 자부를 갖고 지혜로이 생활하는 방법을 일러주셨습니다. 이런 부모님들 아래에서 자라며 저는 한 사람의 당당한 남자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었지만 부러울 것 하나 없는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홉살이 되던 해, 지역 마피아와의 사소한 마찰에 얽혀 가족이 몰살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모든 걸 다 잃고 홀몸으로 카고배를 타고 뉴욕의 리틀 이태리로 건너오며 저는 한 가지 다짐을 했습니다. 반드시 살아남겠다, 그래서 부모님의 복수를 하겠다, 라고 말입니다.

2. 학창시절

  학창시절에 저는 또래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건너 온 그 어느 누구도 저만큼 강렬무비한 모험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폭발, 빗발치는 총알, 벌집이 된 아버지, 다시 빗발치는 총알, 복수에 실패한 형, 다시 빗발치는 총알, 인질극, 어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어머니, 손에 땀을 쥐는 밀입국 등의 이미지로 점철된 제 유년기의 기억은 마치 한 편의 갱스터 영화나 다름 없었으니 말입니다. 여기에 리틀 이태리 밑바닥 뒷골목에서 맨 손으로 싸움을 배우기 시작해, 가중치 높은 사고를 치고 학교에 들어오기까지의 사연까지 더해지자, 그야말로 저는 아이들 사이에서 전설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다른 감방 동료들과 얼굴을 마주칠 수 있는 식사 시간이나 운동 시간이 되면 모두가 넋을 잃고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단 한 마디라도 좋으니 다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학창시절의 저는 한 마디로 슈퍼스타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인기를 겸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줄곧 솔선하여 학교 안의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였고 재소 동료 및 교도관들과 격이 없이 터놓고 지내며 좋은 관계를 쌓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건데 제게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가르쳐 준 곳은 역시 학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시 쌓았던 관계를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을 정도로 그 시절의 기억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3. 성격 및 장단점

  비록 아홉 살 이후로는 내내 뉴욕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제 안에는 지중해의 햇살과 활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활달하고 낙천적이라는 평을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받아왔습니다. 어디서 한 대를 얻어맞아도 절대 주저 앉아 울지 않습니다. 나중에 두 배로 되갚아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식입니다. 두 대를 맞으면 네 대로 갚아줍니다. 네 대를 맞으면 여덟  대로 갚아줍니다. 여덟 대를 맞으면 죽을 때까지 되갚아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꼴리오네 가문의 불문율입니다. 꼴리오네의 법칙입니다. 비즈니스 세계의 생리를 감안할 때 업계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에도 잘 부합하는 부분이라고 자부합니다.

  또한 포기할 줄을 모릅니다. 일례로 제가 처음 업소를 접수하러 갔을 때가 열여섯이었습니다. '조의 정육점'이었습니다. 그땐 정말 정장입은 아저씨들에게 떡이 되도록 맞았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앉았습니다. 다음 날 또 찾아가서 업소를 접수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떡이 되도록 맞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또 찾아갔습니다. 또 떡이 되도록 맞았습니다. 매일을 병원에서 일어나는 기분이 여간 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아갔습니다. 맞다보면 어떻게든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다시 떡이 되도록 맞았습니다. 다음 날도 찾아갔고 또 떡이 되도록 맞아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여덟 번째엔 좀 심각하게 맞았습니다. 그때까지는 맨 주먹으로만 맞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날은 각종 연장이 풀세트로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 날을 잘못 골랐구나’ 싶었던 그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깨어보니 이집트 미이라처럼 온 몸에 붕대를 감고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두 달만에 퇴원하여 다시 '조의 정육점’을 찾아갔습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면서 “앞으로 내가 이 업소를 관리해줄테니 다달이 상납을 하쇼”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만큼은 그들도 참지 못하고 총을 꺼냈습니다. “그 동안은 어린 애에서 좋게 좋게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보자 보자 하니 자기들이 보자기로 보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총알 한 발은 허벅지에 맞았고 나머지 한 발은 오른쪽 가슴에 맞았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심장이 오른쪽에 있는 줄 알았기 때문에 ‘이젠 죽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장기 손상이 없었기 때문에 40년대 뒷골목의 돌팔이 의사들도 무리없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부상이었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다섯 달이 걸렸습니다. 이후로 다시는 ‘조의 정육점’을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전의 집요하고 끈질긴 면을 드러내기에는 조금의 모자람도 없는 일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 저기서 많이 맞고 다녀봐서 그런지 몰라도 인내심도 강한 편입니다. 어떤 일이 맡겨지던 끝을 보는 순간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단점은, 심장이 오른쪽에 있었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저희 계통 인종이 그러하듯 솔직히 성격이 급하기는 합니다. 물불 안가리고 뛰어드는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고집도 셉니다. 하지만 그만큼 낭만적인 것이 저희 시칠리아 출신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흔히 이탈리아 사람들이 낭만적이라고들 하는데, 그 중에서도 저희 시칠리아 출신들은 슈퍼어섬-낭만적입니다. 한때 제 별명이 ‘아이스 시칠리아노’였습니다.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남자지만 시칠리아노다운 낭만을 지닌 남자라는 뜻의 칭찬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스 시칠리아노’는 그냥 ‘시칠리아노’보다 500원이 더 비쌉니다. 고작 각얼음 몇 조각 더 넣어줄 뿐인데 정말 너무하지 않습니까?

4. 봉사활동

  봉사활동 차원에서 뉴욕 유흥가의 버켓을 돌아다니며 불쌍한 무희들에게 팁을 건네준 경험이 있습니다. 리틀 이태리 최대 규모의 봉사 동아리 ‘쎄 마그니피끄’의 정회원 자격으로 저는 하루에 꼬박 한 시간씩 이 활동에 동참하였습니다.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한 자원 배분의 관점에서 저는 가난한 무희들의 속옷에 십달러짜리 지폐를 꽂아주었고, 그녀들은 답례의 차원에서 아주 가벼운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 쌓은 인연을 바탕으로 저는 그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이 경찰에게 쫓길 때는 제가 그녀들을 숨겨주었고, 반대로 제가 경찰에게 쫓길 때는 그녀들이 저를 숨겨주고는 했습니다. 또한 암흑가의 고급 정보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정보화 시대의 도래를 앞당기는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제가 뒤를 봐주고 있는 ‘토드의 이발소’가 있습니다. 토드씨는 제게 주간 수입이 30불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5불을 상납합니다. 하지만 무희들이 가진 정보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회 각계 인사들과도 친교 및 정서의 관계에 있는 그녀들은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의 비밀도 접근할 수 있는 그녀들은 마음만 먹으면 동네 이발소의 진짜 주간 수입쯤 우습게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뭐, 알고 보니 '토드의 이발소’ 주간 수입이 60불이었다. 그럼 골 때리는 일 아닙니까? 제가 목숨 걸고 업소를 관리해주는 대신에 수입을 반띵하자는 취지였는데 알고 보니 4분의 일이니 말입니다. 그럼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토드씨와 면담 일정을 잡아야죠. 전신을 면도해버리면 아마 그 양반도 정신을 차리게 될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그때는 30불이 아니라 40불에서 50불씩은 저에게 줘야 할 겁니다. 벌칙과도 같은 개념이랄까요? 일종의 괘씸 프리미엄이랄까요? 아무튼 저는 이렇게 아주 오랫동안 뉴욕 일대에서 헐벗고 가난한 무희들을 돕고자 봉사활동을 펼쳐왔고, 그 과정을 통해 많은 것들을 얻고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5. 지원동기 및 포부

  귀 패밀리는 업계에서의 명성 뿐만이 아니라 겐코 올리브유 등의 제유 및 유통으로 다방면에 걸쳐 명성이 자자한 그룹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발전과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자부심에도 크나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어려서부터 다른 어떤 패밀리도 아닌 귀 패밀리에 들어가기만을 꿈꿔왔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귀 패밀리의 채용 공고는 제게 희망의 울림처럼 다가왔습니다. 원래 사람들 앞에 나서길 좋아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하여 항상 이런 기회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귀 패밀리에 넣어주신다면 꼴리오네가 왜 꼴리오네인지를 분명하게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만약 제게 귀 패밀리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이제까지 겪은 다양한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강한 서비스 정신과 영업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귀 패밀리가 이제까지 쌓아온 원칙과 명성에 어긋나지 않는 인재가 되도록 노력할 자신이 있습니다. 또한 본연의 업무 외에도 저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패밀리와 제 자신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인재가 되겠습니다.

  나아가 저는 더 큰 자리에 오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노력할 의지가 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 마지막 꿈은 뉴욕의 돈(Don)이 되는 것입니다. 마흔까지는 열심히 몸빵을 하고 마흔부터는 관리자의 자리에서 조직을 다루어보고 싶은 희망이 있습니다. 아직은 허황된 꿈에 불과하지만 제게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낼 의지와 재능이 있습니다. 사실 주위 사람들이 저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아주는 부분 중의 하나가 조직관리 능력입니다. 적절하고 공정한 업무 및 성과 배분을 통한 효율 향상은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테마 중의 하나였고  현재 관련 논문 두 편이 관련 학회에서 심사중에 있어 조만간 출판될 예정입니다.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업계에서 직원들을 패밀리라고 부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행복한 패밀리.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할만큼 끈끈한 신뢰로 엮여진 패밀리. 저는 그런 패밀리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패밀리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6. 특이사항

  저는 뉴욕조직관리학회 정회원이며 NRA(전미총기협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식료품 배달과 관련하여 1급 자격증명서를 가지고 있으며 2급 제유사이기도 합니다. 차종을 막론하고 운전이 가능합니다. 특히 어려서부터 대리운전을 많이 뛰었기 때문에 뉴욕의 골목 골목을 속속들이 꿰고 있습니다. 약속장소에 보스들을 모셔드리고 무사히 모셔오는 일도 자신있습니다. 사격 실력도 이미 적지 않은 총격전을 겸험하며 갈고 닦아진 경지입니다. 권총, 소총, 엽총, 공기총, 가스총, 기관총, 고무줄총, 석궁에 BB총, 심지어 각저총에 민주노총, 한국교총까지 다룰 수 있습니다. 10발에 9발 비율로 타겟을 정확히 맞출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폭발물도 좀 만질 줄 압니다. 폭약, 화약, 지뢰, 실탄, 포탄, 최루탄, 맨하탄,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화성 동탄, 코스모폴리탄 제작 및 설치 전 과정 가능합니다. 낮에는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여 엑시큐션 스타일 연구 및 응용으로 독학사를 받았습니다. 포 핸드, 백 핸드, 베어 핸드. 블랙 핸드, 드롭, 밸리, 발목쏘기, 무릎쏘기, 대퇴부쏘기, 손목쏘기, 팔꿈치쏘기, 어깨쏘기, 헤드 샷, 킬 샷, 로드 킬, 페이스 오프, 도배, 교살, 피혁제품을 이용한 교살, 프리미엄 피혁제품을 이용한 교살, 위장 추락사, 위장 감전사, 안락사, 개념적 매장, 물리적 매장, 사회적 매장, 오븐 쿠킹, 화덕 쿠킹 등 108가지의 다채로운 엑시큐션 방법 개발 응용에 매진하였던 바 있습니다. 또한 전략 공부에도 소흘히 하지 않아 차이나타운의 친구에게 입수한 고대 중국의 서적을 바탕으로 공성계, 반간계, 고육계, 연환계, 미인계, 연환계이자 미인계, 성형계, 연환계이자 미인계이자 성형계, 신세계, 혈압계, 친목계, 귀족계, 펀드계, 여행계, 결혼계, 프로야구중계, 연예가중계 등을 공부하여 제 테마에 접목, 동서양의 조화를 이룬 새로운 개념의 어쌔신 토탈 솔루션 확립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이상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2월 뉴욕 헬스키친에서 열린 '전미마피아저탄소녹색성장학술대회'에서 우수발표상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대부님과 악수를 하고 다혈질 요리사이자 방송인인 고든 램지가 건네주는 꽃다발과 상패를 받았던 일은 제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영광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상기 내용은 사실과 다름 없음을 확인합니다.

페라리 꼴리오네 (서명)

 

(200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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