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스톱 (2014) B평

논스톱(Non-Stop, 2014)

감독: 자움 콜렛 세라

출연: 니암 리슨, 줄리안 무어, 미셀 도커리, 스쿳 맥네이리, 네이트 파커, 코리 스톨, 라이너스 로체



  논스톱은 특이한 작품이다. 설정만 놓고 보면 버스에서 비행기로 무대를 옮긴 버전의 '스피드(쟝 드봉, 1994)'를 기대하게 하지만 긴박감이나 몰입도에서 저 대단했던 폭주 버스의 전설에 견줄 결과물은 아니다. 멈출 수 없는 버스와 비행기 중에 어느 쪽이 더 위험하느냐를 단순 비교하자는 건 아니나, 비행기 쪽이 더 루즈하다는 사실에 당혹하지 않을 재간은 없다. 뭐랄까. 큰 맘 먹고 해외직배송 상품을 주문했더니 다음 날 배송추적에 '우체국택배'가 뜨는 느낌이랄까.


  논스톱의 실패는 캐릭터의 실패에서 출발한다. 리암 니슨이 연기한 주인공 (전직 경찰이자 현직 항공 보안 요원) 빌 막스는 '테이큰(피에르 모렐, 2008)'의 전직 요원 브라이언 밀스의 노골적으로 재탕처럼 보이지만 깊이나 입체적인 면모에 있어 훨씬 얄팍하고 부실하다. 주인공을 복잡한 사연의 소유자로 꾸며내려는 최근의 유행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나, 이렇듯 중심 사건의 전개와 큰 연관성이 없는 경우에는 오히려 역효과만 일으킬 뿐이다. 첫째, 빌이 과거에 뉴욕 경찰이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현재 덫에 걸린 상황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거니와 전직 경찰이었단 사실이 어떤 계기로 작용하거나 상황을 완화 혹은 악화시키지도 않는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현직 항공 보안 요원의 5할 이상은 전직 경찰일테니 특별한 배경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둘째, 과거 백혈병으로 어린 딸을 잃은 기억을 안고 살아간단 사실도 마찬가지다. 마침 승객 중에 (부모 없이 혼자 여행길에 오른) 어린 여자아이가 있어 억지로 빌의 상처에 대입시키려고 애쓰지만, 이 상황을 해결해야한다는 의무감과 아이를 살려야겠단 의무감의 방향성이 정교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 '폭탄 실은 비행기'라는 설정이 지나치게 '모 아니면 도'격이라 그런 부분을 살려내기도 어렵다. 물론 그의 나이로 볼 때 다소 어색해보이는 부분도 없지 않다 (리암 니슨이 올해 한국 나이로 63세니 빌 막스가 어림잡아 60세의 인물이라고 보더라도 5~7세 사이의 딸을 잃은 것은 가까운 과거의 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보조 캐릭터들의 난맥도 한 몫을 한다. 명색이 무대가 국제선 비행기임에도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 두 명을 포함한 승객 50명 남짓이 등장 인물의 전부인 이유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택과 집중으로 그 중 몇몇 인물을 눈에 띄게 만들고 역할을 부여할 것임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당혹스럽게도 정작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예정된 인물들에서도 개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무색무취 승무원 낸시(미셀 도커리)를 비롯하여 (그녀의 약간 귀찮은 듯한 표정은 한가로운 귀족집 따님을 연기할 때는 장점이었지만 이렇게 서비스직 종사자로 출연하는 경우 문제가 없다고 못하겠다) 우왕좌왕하다가 변죽만 울리고 마는 현직 뉴욕 경찰이자 오늘은 그냥 승객 오스틴(코리 스톨),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 이유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맹한 아줌마 승객 젠(줄리안 무어)까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총체적 문제다. 그 외 나머지 단역들이야 언급할 가치조차 없고 엑스트라들은 정말 구경 나온 사람들처럼 보인다. 상황이 이러하니 '탑승객 전원이 용의자'라는 강렬한 카피에 부합하지 않는 밀실 트릭의 부실함도 당연한 귀결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느낌의 작품은 80년대 액션 영화를 연상하게 한다. 아무리 화려한 영상으로 치장해도, 스마트폰과 유투브의 시대임을 거듭 천명해도, 그 본질의 여전한 묵은 내만큼은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201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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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의 아내 (2009) B평

시간여행자의 아내 (The Time Traveler's Wife, 2009)

감독: 로베르토 슈벤트케

출연: 에릭 바나, 레이첼 맥아담스, 알렉스 페리스, 론 리빙스턴, 미셀 놀든



  이 작품의 원작자를 비롯해 영화화에 관여한 사람 중 누구도 공포물을 만들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그렇다 - 공포물이다. 상식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 중의 일부는 소름돋는다는 말로 밖엔 표현이 되지 않는다. 뭐 이런 로맨스 영화가 다 있나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덕분에 무더운 여름밤을 서늘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이를 기념하고자 '<시간여행자의 아내> 끔찍한 순간 10선'이라는 리스트를 정리하여 남기고자 한다. [스포일러 얼랏: 이 작품을 굳이 감상할 계획이 있는 분들은 '뒤로' 버튼을 누르시길 권한다]


10위. 배드타임 스토리

  도서관에서의 첫 만남 장면은 괴팍한 타임라인 장난질의 결과다. '성인이 되고 난 다음의 클레어(레이첼 맥아담스)가 헨리(에릭 바나)를 처음으로 다시 만나는 시점에서 헨리는 아직 어린 시절의 클레어를 만나기 전의 헨리'라는 천인공노할 설정은 좌우 동시 편두통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어렸을 적의 클레어에게 탬퍼링(사전 접촉)을 해두었던 덕에 밥 얻어 먹고 차 얻어 마시고 집까지 따라가 첫날 밤을 보낸다는 하이-패스적 진행은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다. 


9위. 데드 스페이스

  저토록 사랑스러운 레이첼 맥아담스에게 저리도 무시무시한 몸매라니. 하나 하나 뚜렷하게 보이는 갈비뼈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마디 마디 도드라지게 드러나 '데드 스페이스'의 수트를 연상케하는 척추뼈는 정말……. 


8위. 웨딩 크레셔

  이유야 어쨌든, 결혼식 날 신부가 겪어야 할 일이라기엔 농이 과하다. 전설의 그 영화 '랩탑(The Notebook, 닉 카사베츠, 2004)' 이후로 이렇게 보는 이를 진을 완전히 뽑아가는 작품 오랜만이다.


7위. 앨바 천국

  헨리와 클레어의 딸 앨바, 바로 그 10살 버전의 딸이 5살 버전의 딸에게 결말을 스포일링한다는 놀라운 설정이 7위다. 딸 앨바는 헨리와 달리 자유자재로 시간여행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장.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9살 버전의 앨바와 8살 버전의 앨바와 7살 버전의 앨바와 6살 버전의 앨바, 그리고 11살 이후의 수많은 앨바들이 시공을 넘어 간섭해 들어올 수도 있지 않은가? 왜 하필 10살의 앨바와 5살의 앨바만 같이 만나 논다는 말인가!


6위. 터미-네이키드

  시간여행 이후 나체로 나타난다? 옷은 두고 몸만 가기 때문에? 뭐,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문제는 이 남자가 수시로 어린 클레어 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공원에서 나체로 아이들 앞에 나다니는 사람들이 '시간 여행자'를 자처한다고 생각해보라. 끔찍한 일이다. 이런 영화가 PG-13(한국에선 12세 관람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5위. 어바웃 타임

  이유야 어쨌든, 유산을 다루는 방식이 좀 지나치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야 충분히 알겠으나, 초자연적 유산에 고집스럽게 자연적 임신으로 맞서는 대책없음이 좀 딱하다. 마음이 아프다가도 계속해서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 시도하니 끝내는 오싹한 느낌 마저 든다. 구글 검색을 해보면 임신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포험, 블로그에서 이 관람을 삼가해야 할 목록마다 이 작품이 빠지지 않고 올라가더라. 함께 등재된 영화로는  '칠드런 오브 맨(알폰소 쿠아론, 2006)''포가튼(조셉 루벤, 2004)', '엑소시스트(윌리엄 프레드킨, 1973)'등이 있다.


4위. 메디칼 미라클

  어찌되었던 이 부부의 생식력은 말 그대로 의학적 기적에 가깝다. 시간 여행이 각종 우주 입자 및 방사선에 노출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지나치게 건강한 이 남자까진 그렇다고 치자. 사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때마다 매번 임신하는 클레어다. 헨리의 담당의 켄드릭 박사가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쪽도 남편 헨리가 아니라 부인 클레어가 아니었나 싶다. 그것이 '시간 여행 유전자'를 연구하는 것보다 진짜 의사가 해야 마땅한 일이기도 하고.


3위. 그레이스 바섹토미 (부제: 에릭 바나나)

  거듭된 유산에 힘들어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그 배려심이 뭉클하기는 커녕 소름이 쫙 돋는다.


2위. 그레이스 바섹토미 II (부제: 핫 칙? 망 칙!)

  이 작품이 유난히 집착하는 '그 수술' 직후 헨리가 시간 여행으로 도착하는 곳이 이제 막 18살이 된 클레어 앞이라고? 어기적거리며 다가가 기어이 반 강제로 키스한다고? 그 타이밍에? 로맨틱하기는 커녕 소름이 쫙 돋는다. 


1위. 그레이스 바섹토미 III (부제: F*** 투 더 퓨쳐)

  그래놓고 다시금 정관수술 무효화를 시전하는 트위스트는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다. 불안한 예감에 설마 설마 하다가 정말 설마가 사람 잡아 정말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일라이(앨버트 휴즈&알렌 휴즈, 2010)', '하이 텐션(알렉상드르 아자, 2003)',' 핸콕(피터 버그, 2008)', '퍼펙트 스트레인져(제임스 폴리, 2007)', '아이덴티티(제임스 맨골드, 2003)', 그리고 '넘버 23(조엘 슈마허, 2007)'의 반전을 다 합쳐도 이 반전은 못 이긴다. (201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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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의 신 (2011) B평

대학살의 신(Carnage, 2011)

감독: 로만 폴린스키

출연: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퍼 왈츠, 존 C.라일리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어른들 스스로 더 복잡하고 정교하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의 싸움은 불과 몇 분만에 끝났다. 허나 어른들의 싸움은 오후 한나절을 모두 잡아먹는다. '싸움'을 묘사하는 수천가지 표현과 '폭력'을 정의하는 수만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어떤 잣대로도 이 어른들의 싸움이 보다 성숙하고 원만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부모들이니까. 세상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 문제 앞에 이성적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들 부부들은 심지어 자기 새끼를 끔찍히 사랑하기에 이 난장을 이어가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네 사람 중의 세 사람은 제 자식 역시 망나니라는데 동의한다. 나중에는 부부끼리 같은 편이 되어 주장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결국 싸움의 원인이 되었던 사건과 이후 싸움을 지속케한 동력은 별개의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합의는 품위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각각 경멸, 냉소, 위선, 위악으로 받아들였다. 상대를 주시한 채 빙글빙글 돌며 호시탐탐 상대를 파고들 기회를 노리는 이 어른들의 모습은, 감정에 휘둘렸던 아이들보다 어떤 면에서 더 동물적이기도 했다. 상황이 일단락 될 법한 대목의 꼬투리를 다시 물고 늘어짐으로써 액트와 액트를 연결하는 이 작품의 다소 작위적인 전개(물론 원작이 연극이라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겠으나) 역시 이런 성격과 맥을 함께 하는 부분이 있다.


  따지고 보면 전형적인 로만 폴란스키 소재이기도 하다. 데뷔작 '물 속의 칼(1962)'를 비롯하여 초창기 그의 장기는 한정된 공간 안의 한정된 인물들 간의 힘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연극은 노장에게 더 없이 잘 어울리는 컨텐츠였고, 반대로 그 역시 이 작품을 은막 위로 가장 잘 옮길 수 있는 현역 감독이기도 했다. (20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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