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My Blueberry Nights, 2007) B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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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My Blueberry Nights, 2007) B평

by 김영준 (James Kim)

  누구에게나 인장은 있다. 오우삼의 인장이 트랜치코트와 하얀 비둘기, 곽재용의 인장이 소나기와 파헬벨의 캐논이라면, 왕가위의 인장은 스탭 프린팅과 초광각 렌즈다. 누구도 인장을 두고 뭐라 하지는 않는 법이다. 문제는 인장만이 유일한 징표가 되어 쓸쓸하게 남은 경우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왕가위 매니아들에겐 존재만으로도 반가운 작품이겠으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그가 숱하니 구현했던 과거 명작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다만 무대를 뉴욕으로 옮겼고, 다만 중국어 대신에 영어로 말하고 있으며, 다만 홍콩 배우 대신에 백인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확실히 '그래서' 포옴이 나는 면은 있지만 동시에 '그래서' 밑천이 훤히 드러나는 면도 있다. 왕가위 영화의 요체는 무심토록 황량한 도시가 환기하는 사무치는 상처와 고독이다, 그의 테마는.'아비정전(1990)'때나 '중경삼림(1994)'때나 '타락천사(1995)'때나 '화양연화(2000)'때나, 혹은 지금에 이르러서나 그 기본적인 골조에는 다를 바가 없다. 왕가위의 인물들은 왕가위적 소재를 가지고 왕가위적 사건들 속을 유영한다. 십 수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은 같은 자리를 맴맴돌며 궁리했고 궁리한다. 거짓말처럼 답도 같다. 결국은 인간과 인간의 온기만이 상처를 아물게할 수 있다. 가정은 두 가지다. 밑천이 없는 경우, 아니면 그에 대한 상흔이 솔찬히 깊고도 깊어 말하고 또 말해도 치유되기에 부족한 경우. 흔히 왕가위는 후자 쪽인 것으로 믿어져왔지만 반복되는 전언(傳言)의 한없는 가벼움은 이제 그 속내를 의심하게끔 만든다. 그의 가장 큰 무기였던 감각성이 이제는 도리어 발목을 잡는 꼴이 된 셈이다. 아름답고 황홀한 영상, 끈적하고 나른한 오티스 레딩의 노래, 형편없지만 풋풋한 노라 존스의 연기, 그는 다시금 고독한 성장통의 앞에 '블루베리 파이'만큼 부드럽고 폭신한 처방전을 내밀었지만 그 약효는 몰라보게 자라난 내성에 따라서 점점 더 저하되고만 있다. 안타깝고 서운하다.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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