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펜티엄 3
by 김영준 (James Kim)얼마 전부터 갑자기 컴퓨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뱃고동처럼 웅웅거리는 소리였는데, 진동이 얼마나 큰지 책상까지 벌벌벌 떨릴 정도였다. 처음엔 그냥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리는가 보다 싶어서 어지간하면 버티려고 그랬다. 아무리 조용한 컴퓨터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소음은 있기 마련이니까. 사실 그까짓 소리 좀 난다고 아예 컴퓨터를 못 쓴다면 할 수 있는 일 하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두고 보니까 점점 심해지더라는 말이다. 컴퓨터를 켜면 그 웅웅 소리를 집안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급기야 소리에 신경이 쓰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신경성 편두통까지 생겼다. 참다 못해 지난 월요일, 드디어 근처 컴퓨터 수리업체에 들고 갔다. 그 양반들 뚜껑 열기가 무섭게 하는 말이라니,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어떻게 쓰셨어요?" 그제서야 따져보니, 벌써 7년 차가 된 펜티엄 3 컴퓨터. 800 MHz, 256 KB 캐시, RAM은 4 GB, 하드 디스크 용량은 20 BG. 좀 심하기는 심했나 싶다. 하기야 근 몇 년동안 꽤 바빠 집에서 컴퓨터를 쓰는 일이라고는 새벽에 잠깐 워드프로세서를 쓰고 가끔 웹 서핑하는 정도가 전부였으니 사양이 이만큼 뒤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소음의 원인은 팬이 헐거워져 달랑 거리는 덕분에 발생한 것이라 했다. 과연 뚜껑을 열어놓고 전원을 올려보니 그 부분에서 웅웅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가 랜턴을 비추어 팬의 뒷 편을 보여주었는데 먼지가 가득 뭉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드의 문제는 더욱 심해서 놀랍게도 곳곳에서 탄 흔적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왜 그동안 숱하게 열어보면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기사는 간단히 잘라서 말했다. "이대로 쓰시면 큰일 나요." 장사꾼이 하는 말이 늘 그렇긴 하지만, 매일 사용하는 나조차도 미처 속이 이렇게 곪아 있는진 몰랐으므로 할 말이 없었다. 기사는 팬은 당연히 갈아야 하는 것은 물론 보드를 갈고 RAM까지 늘리길 권했다. 혹은 고치고 업그레이드를 한들 잘해야 2년일 테니, 차라리 하나 새로 구입하여 쓰시는 게 나을 거라고도 했다. 그들이 제시한 최소 수리 견적은 16만원. 정말 그럴 바에야 조금 더 들여서 새로 장만하는 게 나을런지도 모르겠다. 나야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워드와 파워포인트에 포토샵만 돌아가고 인터넷만 되면 만사 오케이니 특별히 좋은 컴퓨터가 필요할 일도 없지 않은가. 일단은 생각 좀 해보겠다고 이 놈을 다시 안고 돌아왔는데 어떻게든 수를 써야 할 시점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지난 7년간 들었던 정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는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이 놈과 함께 이룬 일이 얼마나 많았는데...... 이 놈으로 일도 했고, 이 놈으로 놀기도 했고, 이 놈으로 영화도 봤고, 또 이 놈으로 여태껏 홈페이지도 관리해 왔는데, 이제는 안녕을 고해야 한다니 적잖이 섭섭한 마음이 든다.
(201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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