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
낙농콩단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

by 김영준 (James Kim)

  당신의 자취방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한때 당신은 학교 근처의 반지하방이나 옥탑방 생활을 경험했던 바 있다. 조금 형편이 나아진 다음에는, 너무 낮거나 너무 높지 않은, 그냥 빌라의 그냥 정상적인 1층, 2층, 혹은 3층에서 다달이 월세를 지불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학생이 아니고, 직장에서 받는 돈의 일부를 보태서라도 한 번쯤 그럴듯한 '어반 라이프'를 누려보길 원했다. 가끔씩 부모님이 들려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하실 수 있는 곳. 가끔씩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들을 불러다가 재워줄 수도 있는 곳. 가끔씩 데이트 상대에게 올라와서 차나 한 잔 하고 가라고 말할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아파트처럼 아주 거창하고 부담스럽지는 않은 곳. 결국은 원룸 오피스텔이다. 그런 이유로 당신은 지금 원룸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정확히 12.4평이며 복층이기에 실제 평수는 그보다 훨씬 작다. 한때 당신은 복층 오피스텔에 대한 환상을 가진 적이 있었다.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드라마를 보던 시절이었다. 물론 12.4평의 인생은 드라마와 많이 다르다. 소파 하나, 침대 하나 커피 테이블 하나면 거의 모든 공간이 점유된다. 복층도 생각만큼 낭만적이지는 않다. 약 1미터 높이의 이 잉여 공간에 오르내리며 머리를 부딪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핑크색 침대에서 핑크색 잠옷을 입은 여주인공이 핑크빛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우아하게 핑크색 나선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식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드라마 속의 일일 뿐이다. 매일 천정에 헤딩하며 뇌세포를 잃어가는 것이 바로 당신의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과거 반지하나 옥탑에 살아야 했던 가난한 학생 시절과 비교한다면 그나마도 감지덕지라 해야겠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Mark 12:31) *

 

  당신의 원룸 오피스텔의 한쪽 벽면은 통유리로 된 커다란 창이다. 사실 그게 마음에 들어 그 집을 계약했다. 하지만 딱 하루 살아보니 그게 다 무용지물임을 알게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딱 하루다. 이틀도 삼일도 아니고 딱 하루다. 바로 10미터 간격으로 옆동이 붙어있기 때문이었다. 네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창을 내고 원룸을 배치한 건물이다보니, 양쪽 동이 맞붙은 한쪽 라인의 방들은 서로 마주 보는 꼴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문제다. 바로 앞집이 속속들이 건너다 보이는 까닭에 하루 종일 블라인드를 치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렇지. 이런 구조의 집을 오백에 삼십으로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월세가 싼 이유는 그게 다 페널티가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마음 놓고 블라인드를 걷을 수도 없다는 페널티.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은 있다는데 볕 한번 받아보기 어렵다는 페널티. 도대체 어떤 머저리가 이런 식으로 건물을 설계한 것인지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지만, 대신 당신은 건너편 옆 동 한층 아래 사는 남자의 얼굴은 볼 수가 있다. 건물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블라인드를 치지 않고 살고 있는 이상한 남자. 어쩌면 진정한 용자의 얼굴 말이다. 이따금 당신이 창문을 열거나 청소하려고 밖을 내다보면, 그의 방이 속속들이 내려다보였다. 그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뚱뚱한 중년 남자다. 특별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었다. 그는 별로 블라인드를 쳐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의 얼굴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건물 구조의 부조리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우리의 용자께서는, 유감스럽게도 나체로 방안을 활보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었다. 음악이라도 틀어놓았는지 덩실덩실 몸을 흔드는 일도 있었다. 당신네 동과 옆 동이 얼마나 가까운지 글쎄, 에구머니나, 몸통 말고 그 부속 도서가 흔들리는 것까지 생생히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앞집이 비어있으니 자신이 블라인드를 걷고 살아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도 자기 생활을 들여다보지 못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혹은 그렇게까지 잘 보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바보 같은 생각이다. 우리 라인의 다른 모든 집이 블라인드를 치고 살기 때문에 그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또렷하고 깨끗하게 잘 들여다 보이는지, 특히 건너편 한 층 윗집에서 내려다보면 어떻게 보이는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한다. 저 방에 저 끔찍한 남자 대신 스칼렛 요한슨이 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Mark 12:31) *


  당신의 옆집에는 어린 커플이 산다. 둘 다 대학생이다. 잘해야 스물 하나 둘쯤 되었을까. 옆구리에 '맨큐의 경제학' 총총 끼우고 등교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다. 처음에 당신은 그 애들이 남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진실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오피스텔 뒤에서 둘이 키스하는 걸 본 다음부터 당신은 당신의 '남매 가설'을 철회했다. 새롭게 '동거 가설'이 떠올랐다. 대학생 커플이 동거를 하다니, 당신은 혀를 끌끌 찼다. 2012년에 정말로 지구가 망할런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쟤네 부모는 이 사실을 알기나 하나, 그런 생각도 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키스는 문제 축에도 끼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밤이 내리면 옆집의 소음이 살금살금 번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진작에 설계가 잘못된 건물인 줄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방음도 이리 소홀할 줄 당신은 몰랐다. 평시 그렇단 얘기는 아니다. 밤이 되면,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이 적막해지면, 거짓말처럼 옆집에서 벌어지는 거사를 (작지만 분명하게) 원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밤새워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샴 쌍둥이'임을 증명하더라고나 할까. 공포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괴성과 정신 나간듯한 웃음소리가 논스탑 믹스되어 들려오면 새벽이면 당신은 혼란에 빠졌다. 과연 저 소리의 정체가 사랑일까, 살인일까 가늠해 보려고 애를 쓰고는 했다. TV를 켜면 조금 나았다. 당신은 새벽에 TV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출근하다 보면 어김없이 샴 쌍둥이처럼 꼭 껴안고 학교로 향하는 그 어린 커플과 꼭 마주쳤다. 가급적 안 마주치려고 노력하는데 꼭 같은 시간에 나오게 되는 건 무슨 놈의 운명의 장난일까. 지들은 아무렇지 않게 떳떳한데 괜히 당신만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한다.


*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Mark 12:31) *


  당신과 같은 층에는 개를 키우는 사람이 살고 있다. 옆옆옆집이다. 일이층도 아니고 십이 층에서 말이다. 도대체 뭘 믿고? 당신은 그 기묘한 자신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문제의 개는, 종은 잘 모르겠으나, 길이는 한 세 뼘 정도 되는 털이 복슬복슬한 놈이다. 아주 큰 놈은 아니지만, 지금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개를 키운다는 게 문제다. 이따금 놈은 당신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와 하이 피치로 짖어댄다. 잔뜩 경계심을 가득 담아서 말이다. 놈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주인이기에 자기 개를 그렇게 관리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공동주택의 복도가 자기 집 마당도 아니고, 어린애들이 뛰어놀아도 용납 안 되는 마당에 개들이 뛰어놀다니 말이다. 밤이 내리면, 앞서 옆집의 '어린 커플' 사건과 같은 원리로, 개 짖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도대체 무슨 개이기에 새벽에도 왈왈왈 짖어대는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낮에도 열심히 짖었겠지만, 뭐 그건 알 바 아니다. 제정신이 박힌 주인이라면, 때려서 가르치든, 재갈을 물리든, 수면제를 먹이든, 그 밖의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밤에 만큼은 조용히 시켜야 한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때문에 당신은 경비아저씨가 이 사태를 왜 방치하는지, 다른 이웃들은 이 사태에 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아 글쎄, 금붕어나 거북이가 아니라 개를 키운다는 말이다.


*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Mark 12:31) *


  당신은 앞집 사람들의 얼굴을 실제로 본 일이 없다. 신기한 일이다. 옆집, 옆옆집, 옆옆옆집, 심지어 건너편 동 한 층 아래 용자님의 얼굴까지 알고 있음에도 정작 문이 마주보고 있는 앞집 사람들의 얼굴만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앞집 사람들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은 알고 있다. 가족이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40대 초반 가량의 아주머니 셋이서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서로 무슨 관계로 함께 모여사는 지는 알지 못한다. 당신은 앞집 사람들이 하루 종일 TV를 켜놓고 산다는 사실은 안다. 당신이 아침 일찍 출근할 때부터, 밤늦게 퇴근할 때까지 변함없이 TV소리가 복도로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앞집의 어떤 사람이 매일 자정쯤 나갔다 오는 것도 안다. 유난하게 들리는 문 여닫는 소리, 갑자기 커졌다가 사그라드는 TV소리, 그리고 지축을 울리고도 남을 구두소리 등등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뭐, 문제도 아니다. 당신이 딱히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도 아니다. 까짓 거 앞집에 누가 살든, 옆집에 누가 살든 관심도 없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스칼렛 요한슨이 사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문제는 앞집 사람들의 위생 관념이다. 긴 얘기를 짧게 압축하자면, 쓰레기를 복도에 내놓는다는 사실이다. 여느 가정이 그렇듯 집 안에 두기에 버거운 커다란 박스나, 낡고 부서진 가구, 뭐 그런 따위를 분리수거 날까지 복도에 잠시 내놓는 애교 수준의 사건이 아니다. 그 이름도 찬란한, 젖은 음식물 쓰레기를 봉지째 복도에 내놓기에 문제라는 것이다. 더구나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현관 앞에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는다는 것은 당신의 현관 바로 앞에 그걸 방치하겠다는 뜻과 다름이 아니다. 실제로 당신은 집을 나서는 순간마다 그 망할 쓰레기 봉지와 먼저 인사를 나누게 된다. 시큼하게 코를 찌르는 냄새는 덤이다. 부패한 음식물 냄새에 지독하게 찌든 담배 냄새, 그리고 화장실 냄새가 섞였지 싶다. 덕분에 당신네 층의 공기에는 종일 그런 냄새가 배어 있게 되었다. 당신의 앞집 때문에 말이다. 그래도 직접 그 집 앞을 다녀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상황이 좀 나을런지 모르겠다. 바로 앞에 사는 당신은 눈으로 그 냄새의 연원을 확인하게끔 된다. 아! 오늘의 이 썩는 냄새는 생선 비린내와 청국장으로 추정되는 덩어리의 발효, 그리고 국물에 푹신하게 젖어 불어버린 담배꽁초의 조합으로 완성된 것이로구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린다. 나중엔 그 냄새를 떠올리기만 해도 구토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물론 아무런 제재가 없었을 리 없다. 당신의 앞집은 몇 번인가 경고도 받고 벌금을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크게 달라지는 점이 없었다. 경고장이 붙으면 한 일주일 정도 잠잠했다가 금방 다시 나쁜 버릇이 되돌아오고는 했으니 말이다.


*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Mark 12:31) *


  당신의 윗집에는, 도대체 뭐가 사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하루 종일 쿵쿵쿵쿵 천장이 울린다. 애들이 뛰어서 오는 진동이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크고 무거운 울림이다. 공사 따위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침대에 책상 하나 놓으면 끝나는 작은 원룸에서 무슨 몇 달씩 공사를 한단 말인가. 공기까지 벌벌 떨린다. 또한 그 울림에서 규칙성이 느껴졌다. 역시 낮에는 당신이 집에 없기 때문에 상관이 없지만 밤에도 그러는 건 심하고 잔인한 일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자정이 넘어서도 쿵쿵쿵쿵 소리가 멈추지 않는 것일까. 침대에 가만히 누워 쿵쿵쿵쿵 소리를 들으며 당신은 나름의 추리력을 발휘해 보았다.
① 100일 밤 연속으로 파티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 가령 <블랙 아이드 피스>의 '붐 붐 파우' 같은 노래를 틀어놓았을지 모른다.
② 24시간 에어로빅 센터가 위장 영업을 하는 중이다.
: 하나, 둘, 셋, 넷, 앞으로, 뒤로, 빠르게, 빠르게, 박자가 얼추 맞는다.
③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린 것이다.
: 그렇다면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Mark 12:31) *


  당신은 오늘 밤에도 잠을 설쳤다. 쿵쿵쿵쿵, 윗집의 발 구르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옆옆옆집의 개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지겹게도 짖어대었다. 옆집의 어린 커플은 오늘도 살인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연극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다. 앞집 음식물 쓰레기의 고약한냄새는 창문을 타고 넘어 들어와 당신의 짜증을 돋운다. 잠들기가 어려워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마셨다. 힐끔 창 밖을 보니, 건너편 동 한 층 아래의 용자께서도 아직 잠이 오지 않는 건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방 안을 활보하고 계시는 중이다. 그렇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이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얼마나 지키기 쉽지 않은 말인지, 당신은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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