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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옆집의 존 딕

낙농콩단/Season 11-15 (2011-201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5.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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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가 짖는다. 당신은 그 개가 옆집 개라는 것을 안다. 정확히 말하면 옆집은 아니다. 한 층에 열여섯 세대인 10층짜리 공동주택에서 옆의, 옆의, 옆집일 뿐이다. 당신은 공동주택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기묘한 자신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 개는 몰티즈나 포메라니안처럼 작고 귀여운 애완용 품종과는 거리가 멀었다. 몇 번 보기로는 시베리안 허스키 아니면 알라스카 말라뮤트, 뭐 그런 추운 지방에서 온 녀석 같았다. 10평짜리 원룸에서 체중이 30 킬로그램이 넘는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용기를 당신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 개는 복도에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짖었다. 당신이 출근할 때, 당신이 퇴근할 때, 당신이 외출할 때, 당신이 귀가할 때,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어김없이 짖었다. 같은 층에 사는 모든 주민들이 오갈 때마다 짖는다고 생각한다면 놀랄만큼 빈번한 일일 것이다. 모든 개들이 그렇다지만 그 개는 유독 소리와 냄새에도 예민했다. 복도에서 누가 물건을 떨어뜨려 소리가 나면 바로 짖었다. 어느 집에서 애가 울기 시작하면 반사적으로 짖기 시작했다. 다른 집에서 요리를 시작하거나 배달 음식이 복도를 지나가면 냄새를 맡고 발악했다. 그리고 한 번 짖으면 숨이 넘어갈 때까지 짖어대고는 했다 (몸집과 근성은 어쩌면 비례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은 개들의 하이-피치드 톤이 묘하게 신경을 긁는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큰 개들의 울림있고 중후한 톤이라고 거슬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최근에서야 그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말해 당신은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개라고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제껏 개를 한 번도 키워보지 않았고 앞으로 키워볼 생각도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당신이 견주라면 저렇게 시도 때도 없이 짖는 개들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때려서 가르치든, 재갈을 물리든, 수면제를 먹이든, 그 밖의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최소한 밤에만큼은 조용히 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첫째, 그 개의 주인 놈은 뭘 하고 있단 말인가? 둘째, 경비 아저씨는 왜 이 사태를 방치하는가? 셋째, 다른 이웃들은 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아 글쎄, 난초나 금붕어나 거북이가 아니라 망할 놈의 개를 키운다는 말이다. 그것도 헤비급.


  당신은 물론 알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이대로 두고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밤이 되면 모든 소리가 크게 들린다. 윗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 어느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 소리, 실수로 변기 뚜껑을 놓치는 소리, 플라스틱 혹은 유리컵을 떨어뜨리는 소리 등등. 하물며 생수병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조차 낮에 비해 더 크게 울린다. 그러면 그것이 예민한 견공님의 심기를 어지럽히는데 밤이기 때문에 개 짖는 소리도 더 크게 들린다. 나아가 개 짖는 소리는 개 짖는 소리를 부르는 법. 동네 크고 작은 개들이 서로 자극하여 일시에 봉기하는 마당놀이 한 판이 벌어지면 결국 예민한 당신은 잠을 설치게 된다. 당신이 외과의사 같은 고도의 주간 집중력을 요하는 직업을 갖지 않았다고 하여 밤의 숙면이 보장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업무 고과 평가가 좋지 않게 나왔을 때 이런 변명이 통하겠는가? “실은 제 옆 집 개가 밤마다 병적으로 짖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늦던 빠르던 책임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서 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일테다.


  그런데, 문제의 견주. 당신은 그 남자를 본 일이 있다. 복도에서, 엘레베이터에서, 그리고 동네 거리에서. 그때마다 당신은 한 마디 따끔하게 해주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거, 보소! 개 관리 좀 똑바로 하시오!” 라고.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냥 참고만 있다. 그 남자가 특별히 위압적인 인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인상으로 말하자면 솔직히 별 볼 일 없는 남자다. 삐적 마른 몸에 옷은 헐렁하게 입고 다니는데 빨래 덜 마른 냄새와 섬유 유연제 첨가향이 묘하게 뒤섞여 퀴퀴한 냄새가 난다. 숱 적은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이고 수염도 그만큼 길었다. 누르스름한 치아들은 사이가 홍해만큼 벌어졌다. 젊었을 적에 (그러니까 지금은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데) 적당히 꾸몄을 때는 꽤 봐줄만한 외모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노숙자 일보 직전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인과는 이혼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한 일 년 전까지는 지금의 원룸에서 같이 살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개를 데려왔다. 우리 주택에 시베리안 허스키인지 알라스카 말라뮤트인지가 나타나 문제가 시작된 것이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 집 부부싸움은 이웃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목격한 사람이 꽤 많았다. 나도 복도에서 실제 보기도 했다.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넘어 들어온 소리를 듣기도 했다. 어느 경우든 남자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양새였단 점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었다. 사람으로 참기 힘든 수준의 폭언이 쏟아지는 경우도 많았고 복도에서 두들겨 맞는 일도 허다했다. 만만해 보이는 데는 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 상찌질이. 그 남자를 묘사하는데 있어 이 보다 더 정확한 표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옆집의 상찌질이가 하필 존 딕이라면 어쩔 것인가?

  존 딕. 견주들의 전설. 자기 개를 죽였다는 이유로 77명의 갱단을 쓸어버린 희대의 애견인.


  문제는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날 우리는 이웃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가 없다. 과거처럼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인간적인 교류에 바탕한 사람들을 이웃이라 하지 않는다. 오늘날 이웃이란 그저 모르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 모르는 사람들이 범죄자나 정신병자, 혹은 둘 다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존 딕이 아니라는 법도 없다. 77명의 갱들을 골로 보내 버리고 존 딕은 사라졌다. 허나 틀림없이 세상 어딘가에는 살고 있을 것이니 나의 옆의, 옆의, 옆집이 아니라고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

 

   큰 개만큼이나 당신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이웃은, 사실 또 있다. 바로 윗집 주민이다 (사실 바로 위인지, 위의 위인지, 위의 위의 위인지는 정확하게 알 방법이 없다). 이른 아침부터 아주 늦은 새벽까지 하루 종일 쿵쾅거리는 소음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처음 며칠은 인테리어 공사 같은 걸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좋게 참았다. 그런데 한 주가 계속되고 한 달이 지나도 소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어코 6개월이 넘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침대에 책상 하나 놓으면 끝나는 작은 원룸에서 몇 달씩 공사를 한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백 번 양보해도 공동주택에서 공사를 벌이는 사람들은 이웃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아마 규칙도 있을 것이다. 일몰 시간 전까지만 허락할 수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러니 자정을 넘기는 그 소음에는 다른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커보였다.


  당신에게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첫번째 가설은 당신의 윗층에 사람이 아닌 것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다. 예컨대, 사스콰치나 예티. 그렇다면 이 정도 수준까지는 생활 소음으로 용인해야 할 의무가 당신에게도 있을지 모른다. 두번째 가설은 당신의 윗층을 특수 직종에서 특수 용도로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예컨대 세계적인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의 연습실이라면 24시간 에어로빅 센터를 연상케 하는 경이적 울림 - ‘붐 붐 파우’를 기꺼이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세번째 가설은 양자 역학적 해석이 필요한 부분인데, 말하자면 당신의 방과 윗층 사이의 어딘가에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버린 경우라 하겠다. 상이한 두 차원의 접점에서 빚어지는 시공의 왜곡이라면 이 거슬리는 소리의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물론 그렇다고 하면 층간 소음의 고통 따위야 가장 나중에 고민해도 좋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 되리라. 다만 이러한 가설들은 지극히 희박한 확률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훨씬 상식적이고 높은 확률로 있을 법한 일은 당신의 윗층에 사람이기는 사람이되 범상치 않은 사람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다. 가령, 이를테면......,


  윗집의 사람이 하필 존 딕이라면 어쩔 것인가?
  존 딕. 냉철한 수학자. 반려견 목숨 하나와 77개의 사람 목숨을 등가 교환한 거래의 달인. 그런 사람에게 컴플레인을 해서 평화와 안식을 얻고자 한다면 그는 무엇을 대가로 요구할까? 차라리 예키나 사스콰치라면 다른 곳으로 보낼 방법이 있을 것이다. ‘블랙 아이드 피스’라면 법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차원의 문이 문제라면 당신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하루 빨리 체념하여 마음의 안식을 얻는 방향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존 딕이라면, 빌어먹을 존 딕이라면, 당신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


  당신은 앞집 사람의 얼굴을 모른다. 마치 존 딕의 얼굴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앞집 주민의 얼굴을 실제로 본 일이 없는데 사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대단히 신기한 일이다.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원룸이 다닥다닥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공동주택에 살면서 몇 년 동안 단 한 번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다. 마치 그 사람이 일부러 당신을 피하거나 당신이 일부러 그 사람을 피하는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간혹 당신이 집에 있을 때 그 사람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소리가 날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서둘러 밖을 내다 보아도 타이밍을 맞추기는 쉽지 않아 당신은 그 사람의 그림자조차 확인하지 못하고는 했다. 


  대신 당신은 앞집 혹은 앞집 사람에 대해 짐작할 수 있는 몇 가지 단편적 증거들을 갖고 있다. 먼저 그 집에는 남자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음으로는 하루 종일 텔레비젼을 틀어놓고 지낸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리고 젖은 음식물 쓰레기를 복도에 내놓고 생활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세번째인데 이유인즉 그 망할 것이 자리 잡은 위치가 바로 당신의 원룸 문 앞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신은 집을 나서는 순간마다 그 망할 쓰레기 봉지와 정답게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 처량한 운명이다. 부패한 음식물 냄새에 지독하게 찌든 담배 냄새, 그리고 화장실 냄새가 알맞게 섞여 시큼하게 코를 찌르는 냄새는 다가올 하루의 밝고 희망적인 부분조차 퇴색시켜 당신에게 한 없는 우울함을 선물한다. 물론 그 냄새는 당신의 층 복도 전체에 깊고 진하게 배어있다. 그래도 몇 집 건너 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그 집 바로 앞에 사는 당신처럼 매일 눈으로 그 냄새의 근원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아! 오늘의 이 썩는 냄새는 먹다 남긴 생선과 청국장으로 추정되는 덩어리가 함께 발효한 결과로구나! 아! 오늘의 이 끔찍한 냄새는 사람 혹은 동물의 배설물에 푹신하게 젖어 불어버린 담배꽁초의 조합으로 완성된 것이로구나! 과연 그렇다. 앞집 남자는 한 사람 몫의 생활 쓰레기라기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다양하고도 많은 내용물을 음식물 쓰레기로 배출한다. 당신은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린다. 나중엔 그 냄새를 떠올리기만 해도 반사적으로 구토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물론 아무런 제재가 없었을리 없다. 당신의 층에서 누군가는 악취를 참다 못해 경비실에 민원을 넣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기억하기로도 앞집은 몇 번인가 경고도 받고 벌금을 내기도 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크게 달라지는 점이 없었단 사실이다. 경고장이 붙으면 한 일주일 정도 잠잠햐졌다가 금방 다시 나쁜 버릇이 되돌아오고는 했으니 말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당신은 앞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문을 열고 나오는 앞집 남자의 면상을 그 남자가 내놓은 젖은 음식물 쓰레기에 푹 적셔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리라. 당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가능성 때문이다. 가령......,


  앞집의 남자가 하필 존 딕이라면 어쩔 것인가?
  존 딕. 욱하는 성질이 있는 남자.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 그가 애견의 복수를 위해 살해한 갱들 열 중 여섯이 헤드샷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꼭 머리에 총상이 있어야만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킬러라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좀비나 언데드가 등장하는 B급 호러영화가 아니면 꼭 머리를 쏴야하는 경우 따위란 없다. 이쯤 되면 ‘개를 너무 사랑해서’라는 말로 모든 인과관계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는 일처럼 보인다. 마치 ‘땅을 너무 사랑해서’라는 말로 부동산 투기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고위 공무원의 변명에 견줄만한 레벨이다. 당신은 이런 결론에 살짝 가까워진다. 이쯤되면 백번 양보해도 분노조절장애의 영역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는 그런 남자가 탐탁치 않아할만한 뭔가를 요구해야 하는 당신의 처지다. 악취 나는 젖은 음식물 쓰레기를 당신의 집 문 앞에서 치워달라는 요구는 더없이 정당하게 들리지만 사실 어떤 댓가가 따라올지 내심 두려운 마음이 든다. 상상도 가지 않는다. 이 문제로 인하여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당신은 악몽을 꾸기도 하는데 그 안에서 앞 집 남자의 반응은 이렇다: 먼저 당신을 늘씬하게 두들겨 패고, 열쇠를 빼앗아 당신네 현관문을 활짝 연 다음에, 자신의 젖은 쓰레기 봉투를 활짝 개봉한 상태로 당신네 집 안으로 던져 넣고,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에게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복기하자) 당신네 화장실 양변기를 무단으로 이용하고 문명인에게 요구되는 정당한 뒷처리를 하지 않고 떠난다. 개꿈이라 웃어 넘길만한 내용이지만, 사실 정말로 그런들 어쩌겠는가.


  존 딕이라면, 빌어먹을 존 딕이라면, 당신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


  물론 사라진 존 딕이 꼭 당신과 같은 층이나 같은 동에 살고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이를테면 이 주택의 맞은 편 C동의 주민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당신네 공동주택을 설계한 저능아는 방의 한쪽 벽면을 가로 3.5미터 세로 4.5미터의 통유리로 만들고 10층짜리 네 개의 동을 불과 10미터 간격으로 붙여 배치하는 놀라운 창의적 설계를 수행하였던 것 같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양쪽 동이 맞붙은 라인의 방들은 서로 마주 보는 꼴이 되고 (간단한 산수인데 결국 전체 방의 50%가 이런 몹쓸 전망을 갖게 된다) 그 결과 마주 보이는 집들이 속속들이 들여 보이는 까닭에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는 하루 종일 블라인드를 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월세가 싼 이유는 그게 다 이런 페널티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마음 놓고 블라인드를 걷을 수도 없는 페널티. 쥐 구멍에도 볕 들 날은 있다는데 정작 지상 주택에서 볕 한번 받아보기 어렵단 페널티. 그래서 답답하고 짜증나고 가끔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 된다는 페널티. 


  당신이 블라인드를 열면 당신과 똑같이 블라인드를 닫아놓은 옆동 맞은 편 방이 보였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세상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겨우 10미터 남짓이다. 심해도 너무 심하다 싶은 생각이다. 당신이 아는 원룸 거주자들 중에는 이런 불평을 늘어놓은 사람들이 많다. “사방이 막혀 있어서 너무 답답해요. 큰 창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당신의 방은 그 빌어먹을 큰 창문이 문제다. 만약 서로 마주보고 있는 다른 동의 같은 층 양쪽 방이 나란히 블라인드를 걷어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생활 속속들이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관음증 환자들이 아니고선 이런 상황이 유쾌할 수는 없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무슨 의도와 무슨 생각으로 이따위 구조를 고안하였단 말인가? 당신은 그 양반의 상판대기나 한 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건축가가 존 딕이라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신은 문제의 건축가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건너편 옆 동 두 층 아래 사는 남자의 얼굴은 얼마든지 볼 수가 있다. 이 공동주택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혼자 블라인드를 치지 않고 살고 있는 이상한 남자. 어쩌면 진정한 용자의 얼굴 말이다. 이따금 당신이 방을 환기시키려고 창문을 열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격정에 휩싸여 밖을 내다볼 때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 남자의 방이 구석구석 속속들이 들여다 보였다. 그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나이는 40대 초반. 키는 중간정도 (아니 중간보다는 조금 크다고 해야할까?) 풀어헤친 장발에 덮수룩한 수염. 전체적으로 비쩍 마른 편인데 배는 조금 볼록하게 튀어 나온 듯 했다. 사실 특별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었다. 흥미가 동할 구석도 없었고 남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죄의식을 느낄 여지조차 없었다. 다만 문제는 그가 많은 시간을 나체로 생활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그 남자가 연연해하지 않는 것은 비단 기형적 건물 구조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술에 뇌를 맡긴 건지, 아니면 음악에 몸을 맡긴 건지 덩실덩실 흔들기도 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심지어, 에그머니나, 그리하여 본토 말고 그 부속 도서가 흔들리는 것까지 생생히 보였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당신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단어는 ‘덜렁이 춤’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추측해보면 그는 앞집이 비어있으니 (그 남자에게 앞집이란 당신의 방 아래 아래일 것이다) 편하게 블라인드를 걷고 살아도 상관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도 자기 생활을 들여다보지 못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혹은 그렇게까지 잘 보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집들이 블라인드를 치고 살기 때문에 그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잘 들여다 보이는지, 특히 건너편 동의 두 층쯤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떻게 보이는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돌키여보면 꽤 오래 전부터 당신은 그 남자를 찾아가 한 마디 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려왔다. 그 남자를 위해서라기는 어렵고 아마도 당신 자신을 위해서인 것 같다 (다시 한 번 굳이 강조하자면 그 방에서 의복에 구속받지 않는 삶을 영위하는 이는 스칼렛 요한슨도 제니퍼 로렌스도 아니고 그저 이유없이 몸쓸 인체미를 자랑하는 어떤 중년 아저씨다. 고로 이 사태의 피해자가 당신이라는 결론에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이번만큼은 그 남자가 존 딕 일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 남자의 외모는 전설에서 묘사하는 존 딕의 특징과 다소 거리가 있다. 숨어지내는 과정에서 살이 조금 붙었을 수도 있겠지만 저런 배불뚝이가 존 딕이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또한 가만히 보면 죄다 물렁살이어서 온 몸이 근육이라는 존 딕이라고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또한 희대의 애견인이라는 존 딕이라면 다시금 개를 키울텐데 그 남자는 개를 키운다기 보다는 그냥 개에 가까워보인다. 이상의 증거를 종합해보면 그 남자가 존 딕일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고 필요하다면 당신도 컴플레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저 다시 조용히 블라인드를 내릴 뿐이다. ‘어차피 전망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는데, 뭘’이라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


  개 짖는 소리, 층간 소음, 쓰레기 악취, 덜렁이 춤...... 당신의 오감을 학대하는 이웃들의 사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신의 바로 옆집에는 어린 커플이 살고 있다. 둘 다 대학생이다. 잘해야 스물 하나에서 스물 둘쯤 되었을까. 옆구리에 '맨큐의 경제학'을 끼우고 등교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다. 처음에 당신은 그 애들이 남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무리 남매지간에 사이가 좋아도 프랑스 영화가 아니고서는 서로 입과 입을 맞출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엘레베이터 안에서 부둥켜 안고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다음부터 당신은 '남매 가설'을 철회했다. 새롭게 '동거 가설'이 떠올랐다. 대학생 커플이 동거를 하다니! 당신은 혀를 끌끌 찼다. 당신이 대학생이던 세대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2012년에 지구가 망할런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참, 2012년은 이미 지났다. 빌어먹을 마야인). 쟤네 부모들은 이 사실을 알기나 할까 괜한 걱정도 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당신은 키스 정도는 문제 축에도 끼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밤이 내리면 옆집의 소음이 살금 살금 번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이 적막해지면, 당신은 거짓말처럼 옆집에서 벌어지는 작지만 분명한 상황을 원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밤새워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샴 쌍둥이'임을 증명하더라고나 할까. 공포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괴성과 정신 나간듯한 웃음소리가 논스탑 믹스되어 들려오는 새벽이면 당신은 충격과 혼란에 빠지고는 했다. 그래서 과연 저 소리의 정체가 사랑일까, 살인일까 가늠해보려고 애를 쓰고는 했다. 당신은 이웃의 도리이자 어른의 도리로 옆집의 비상사태에 대응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꼈다. 종종 액션을 취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녀가 살해당하는가 싶어 전화기를 들면, 금새 또 간지럽다느니 그만하라느니 간드러지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또한 소년의 숨이 넘어가는가 싶어 전화기를 들면, 또 금방 최고 기록이 어쩌고 세계 신기록이 저쩌고 하는 잡소리가 들려왔다. 옆집 아이들이 벌이는 귀엽다고 볼 수만은 없는 소동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예의 그 집의 시베리안 허스키 아니면 알라스카 말라뮤트의 예민한 청각에 영향을 주어 한바탕 짖어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크고 작은 개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텔레비젼을 켜면 조금 나았다. 당신은 새벽에 TV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밤새 한숨도 못자고 출근하다보면 어김없이 샴 쌍둥이처럼 꼭 껴안고 학교로 향하는 그 어린 커플과 꼭 마주쳤다. 가급적 안 마주치려고 노력하는데 꼭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나오게 되는 건 무슨 놈의 운명의 장난일까. 지들은 아무렇지 않게 떳떳한데 괜히 당신만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한다.


  그 아이들이 77명의 갱들을 골로 보내 버리고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존 딕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도 당신은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못한다. 당신은 분명 이웃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처음에는 옆집의 존 딕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되었지만 (정작 당신은 존 딕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젠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문제는 존 딕이 아니라 당신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오늘 밤에도 잠을 설쳤다. 쿵쿵쿵쿵, 윗집의 발구르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컹컹컹컹, 옆옆옆집의 개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지겹게도 짖어대었다. 헉헉헉헉, 옆집의 어린 커플은 오늘도 살인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연극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다. 앞집 음식물 쓰레기의 퀘퀘한 냄새는 현관과 창문을 동시 다발적으로 넘어들어와 당신의 짜증을 돋군다. 잠들기가 어려워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마셨다. 힐끔 블라인드 사이를 벌이고 창 밖을 보니, 건너편 동 한 층 아래의 자연인께서도 아직 잠이 오지 않는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방 안에서 스쿼트를 하고 계시는 중이다. 그렇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이웃이다. 저들 중 누가 존 딕이고 누가 존 딕이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이 바로 빌어먹을 당신의 이웃들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얼마나 지키기 쉽지 않은 말인지, 당신은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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