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는 정말 졸음을 유발하는가?
by 김영준 (James Kim)세미나는 졸리다, 세미나는 종종 졸리다, 세미나는 때때로 졸리다, 세미나는 대개 졸리다, 세미나는 항상 졸리다, 졸리지 않으면 세미나가 아니다, 모두 의심할 여지가 없이 참이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만큼이나 확실하다.
어쩌면 세미나의 기원은 원시시대로 거슬로 올라갈지도 모른다. 이제 막 원숭이류와 결별한 태초의 인간들은 어두침침한 동굴 한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생존을 위한 원활한 정보 교류를 위해 '세미나'를 열었을 것이다 - 물론 당시에는 '세미나'라는 용어가 없었을 것이며 용어고 자시고 간에 언어 자체가 미처 생겨나기 이전이었겠다. 그들에게는 프레젠테이션 장비가 없었을 것이니 날카로운 돌을 쪼개 동굴 벽에 낙서를 했을 것이고, 유감스럽게도 동굴 벽은 쉽게 지웠다가 쓸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관계로 슬라이드가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청중들은 바삐 방향을 바꿔 다른 벽을 향해 돌아 앉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낙서들 중의 일부가 <어디 어디의 동굴벽화>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다 할 증거는 없지만 아마 틀림없이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중앙에서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 아니 영장목의 동물도 있었을 것이고, 분명히 지금처럼 꾸벅꾸벅 조는 사람, 아니 영장목의 동물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세미나의 발견은 불의 발견처럼 인류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라기보다는 대단히 졸린 일이다)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치명적으로 간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본디 세미나의 주제가 될 수 없는 것들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법이기에, 세미나의 주제로 별 매력이 없어보이는 '인류 최초의 세미나'의 존재가 고의적으로 무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목요일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인류와 세미나, 그리고 졸음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다시 한 번 고찰하는 거국적인 행사가 코엑스 태평양홀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세미나는 정말 졸음을 유발하는가? (부제: 세미나는 잠을 불러오는 주문이다)'. 역사상 존재했던 연수회, 강습회, 발표회, 연구회, 토론회 등을 면밀하게 연수, 강습, 발표, 연구, 토론하는 자리로 분야를 막론하고 '세미나'하면 떠오르는 연수, 강습, 발표, 연구, 토론의 고수들이 총출동을 했다. 연말특집 쇼오락 프로그램처럼. 이들은 크게 <세미나의 다른 이름은 수면제다> 학파와 <무슨 소리냐? 니들 정신력이 부족한 거다> 학파로 나뉘어 동네 코찔찔이들 주먹 쥐고 싸우듯 열띤 논쟁을 벌였는데 그 와중에서 혈압을 이기지 못한 노학자 몇몇이 구급차에 실려나가는 해프닝을 빚기도 하였다. 아무튼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 된 것은 세미나에서의 졸음이 과연 정신력의 문제냐 하는 것. 그러는 사이에도 참가자 열 중 여덟 아홉은 병든 닭 맨치로 꾸벅꾸벅 졸고들 있었단다. 이게 대체 무슨 코미디란 말인가.
세미나와 졸음 사이의 비밀을 밝혀내자고 모인 양반들이 또다시 꾸벅꾸벅 졸고 있다니!
(2008년 02월)
'낙서와 농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리안 스탠다드 (0) | 2008.04.15 |
---|---|
빅맥 세트 주세요 (0) | 2008.02.21 |
입 안에 고인 침을 못 견뎌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0) | 2008.02.13 |
자아도취: 하지만 난 착하고 겸손한데 (0) | 2008.01.20 |
실용시대의 신유형 영어 학습, 공구리 회화 (0) | 2008.01.13 |
블로그의 정보
낙농콩단
김영준 (James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