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 소년과 수다쟁이 아줌마
by 김영준 (James Kim)
퇴근길에 있었던 일이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오른편으로 태권도 도복을 입은 늠름한 꼬마가 하나가 다가와 섰다. 등판에는 '천하 태권도'라는 금박 글씨가 역시 트림하는 용을 연상케할만큼 힘 있는 필치로 박혀있었다. 꼬마는 하드를 하나 입에 물고 연신 짭짭대었다. 이때 웬 아주머니 한 분이 꼬마의 옆에 와서 알은 체를 했다.
- 어머, 403호 칠득이 아니니?
꼬마는 하드를 한 바퀴 휘리릭 돌리고선 입에서 빼냈다. 한두 번 빼본 솜씨가 아니었다.
- 그렇구만유…
서울 복판에서 도복 입은 꼬마의 충청도 사투리. 나름 신선했다. 아주머니는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는지 좌우로 터질 것 같은 비닐봉지를 두 개 들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꼬마에게.
- 칠득아. 이 아줌마가 과자 하나 줄까?
꼬마는 이번에도 오물거리는 하드를 후루룩 빨아들이고 입에서 떼었다.
- 일 없구먼유…
하지만 아주머니는 자꾸 말을 시키고 싶었는지, 이것 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하기도 하는 등 열심히 북을 치고 장구를 쳤다. 꼬마는 그때마다 들은 척 만 척 무시하기도 하고, 종종 정 대꾸를 해야겠다 싶은 상황이라면 하드를 입에서 빼고 시큰둥하게 '그렇구만유…' 하고 만다던가 하고. 그러다가 마침내.
- 어머, 칠득아. 맞다. 너도 태권도 하는구나. 우리 철이도 태권도 좀 시켰으면 하는데. 몸이 워낙 약해서 말이야. 호호호. 이러다가 나중에 중학교가서 애들한테 맞고라도 들어오면 어쩌니. 미리미리 몸을 만들어 놔야지. 체력은 국력. 모르니? 호호호. 그건 그렇고, 칠득아. 도복만 봐선 잘 모르겠는데……. 너는 무슨 띠니?
꼬마는 입에서 하드를 빼고 대답했다.
- 지는 개띠구먼유…
(200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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