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25. 뮤턴트 애비

낙농콩단/Season 16-20 (2016-202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7. 10. 8.

본문

  내 이름은 브리아나 캐서린 앳우드. 줄여서 블랙 캣. 올해 10월이면 열일곱살이 되어요. 데이지 언니는 내가 이제는 소녀보다 숙녀에 가까울 나이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소녀쪽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숙녀라는 표현은 뭐랄까… 가끔 탐이 나지만 항상은 너무 부담스러운 느낌이에요.) 나는 데이지 언니와 함께 뉴잉글랜드 남부의 뮤턴트 애비라는 곳에 살고 있어요. 이곳은 찰스 자비에 교수라는 사람이 물려받은 빅토리아 시대 스타일의 고성이고요. 자비에 교수가 나처럼 어린 뮤턴트들을 모아 함께 생활하는 일종의 기숙학교에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자립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시켜주는 거죠. 물론 표면상으로나 교육기관이지 실제로는 교정기관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쉽게 말하자면 감옥 - 비유적으로도 감옥이고 실제적으로도 감옥이에요.

  여러분도 잘 아실거예요. 우리 뮤턴트들에게는 특별한 재능과 능력이 있죠.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시는 사실은 그 찬란한 장점을 부식시키는 치명적인 결점과 반-능력 또한 함께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아직 어린 뮤턴트라 그렇다네요. 어른이 되는 과정은 뮤턴트들나 일반인들이나 하나 다를 것이 없어요. 그저 제 주제를 알고 제 앞 가림을 할 수 있을 정도면 되죠. 우리가 뮤턴트 애비에 살면서 자비에 교수에게 배워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아마 그런 능력일 거예요. 제 앞가림을 하는 능력. 우리 어린 뮤턴트들은 자기 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요. 그러다보니 그 힘이 야기하는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못하죠. 이를테면 내 능력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인데요 (맞아요. 마인드 컨트롤). 아직까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잠재력만큼은 으뜸이라고 자비에 교수가 그랬어요 (그러고보니 그 늙다리 괴수놈이 내게 해준 드물게 따뜻한 말인 듯 하네요). 반면 내 능력의 치명적 결점은 내가 의도한 일이 마음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다른 이들의 마음을 조종하는 데 실패했을 때)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거예요.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느냐고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꼭지가 돌아요. 그리고 나는 꼭지가 돌면 혀를 마구 놀리는 버릇이 있어요. 지금이야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웃고 있지만 사실 털어놓기 쉽지 않은 이야기죠 (소녀든 숙녀든 나도 나름 여자답고 싶은 걸요). 고치고 싶은 생각이 없냐고요? 물론 고치고 싶죠. 단지 방법을 모를 뿐이죠. 데이지 언니는 (오, 착한 우리 데이지 언니는!) 내게 항상 이런 말을 해요.
- 사랑하는 우리 블랙 캣. 가끔 말 실수만 줄이면 흘륭한 숙녀가 될텐데.

  근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란 말이에요. 마음보다 머리보다 혀가 먼저 움직이는 걸 어떡해요. 때로는 나도 내가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지?’ 싶을 때도 있고요.) 어쩌면 어떤 악의적이고 고약한 것들이 내 혀를 장악하고 멋대로 조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겁이 나요. 무섭고 두려워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어 고민이에요. 물론 아이러니하죠. 이런 반-능력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뮤턴트 애비에 와서 지내는 건데 정작 쥐뿔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도움을 주라고 있는 사람이 교수고, 자기도 그런 도움을 주려고 뮤턴트 애비를 열었던 거잖아요. 그러니 이상한 일이죠. 뭐, 물론 어차피 그 양반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소용이 없단 말입니다. 나이를 뒷구멍으로만 잡순 그 양반의 치명적인 매력 중의 하나는 저 잘난 맛에 사는 거니까 말이에요. 성공한 어른들 대부분이 그렇긴 하지만 이 사람도 ‘내잘남못(내가 잘된 건 내가 잘나서, 남들이 잘못된 건 남들이 못나서)’라는 이름의 중증 질환 환자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름의 합병증도 겪고 있고요. 물론, 겨우 열여섯살 먹은 (곧 열일곱살이 될) 어린 계집애가 뭘 안다고 함부로 나불대냐고 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어요. 그렇지만 그 양반은 명색이 나름 교육자잖아요. 이 블랙캣 양이 오랜만에 입 바른 소리를 한 번 해보자면 (에헴!) 자신보다 학생이 더 빛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교육자가 할 일 아니던가요? 그런데 자비에 교수 같은 사람들은 자기가 빛나기 위해 학생을 이용하죠. 필요하다면 때로는 갈아 넣고 필요 없어지면 망설이지 않고 버리죠. 그 문어 대가리는 (네, 머리가 벗겨지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우리 어린 뮤턴트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조건으로 정부며 시민 단체며 각종 능력자 그룹으로부터 막대한 지원금도 받고 있지 않겠어요? (이름은 ‘자비에’인데 정작 자비는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있지 말입니다.) 그 지원 내용의 상세는 베일에 가려져 있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만 어디선가 줄줄 새어나가 문어 대가리 쌈짓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데 과감하게 제 손목을 걸지요. 이 말을 들으면 우리 사랑하는 데이지 언니는 이렇게 저를 타이르겠죠. 
- 오, 저런! 블랙캣! 숙녀가 되어 아무데나 과감하게 손목을 걸고 그러면 못써!
  그렇지만 불쌍한 어린 애들 인생 저당잡은 댓가로 제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면 나 같은 어리고 되바라진 계집애에게 욕을 얻어먹어도 할 말이 없는 겁니다. 두고 보라죠. 언제고 내가 속속들이 밝혀내어 만천하에 공개할테니!

  휴! 또 지나치게 흥분했네요. 매일 다짐하고 노력하는데도 이 욱하는 성질은 고치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물론 나도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나 스스로도 여러가지로 노력을 하고 있어요 (설령 교수가 직무 유기를 한다고 학생이 자기 인생을 방치해서야 되겠어요?) 일단 데이지 언니를 따라서 명상이나 요가를 배우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평정을 찾으려고 하고 있고요. 또 한 가지는 내 나름대로 매일 뮤턴트 애비를 중심으로 반경 5 마일 이내에 일종의 결계를 치고 있기도 해요. 악의적이고 고약한 것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에요.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렇게 될리가 없거든요. 데이지 언니가 늘 해주는 말처럼 나도 한때는 착하고 순수한 아이였단 말이에요. 지금처럼 주둥이에서 덤덤탄을 난사하게 된 것은 이 망할 곳에 오게 된 다음이고요.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뮤턴트 애비 혹은 이 주위에 뭔가 잘못된 것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죠. 그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이 마을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도 있지요. 마을 사람들이야 이 고성 안에서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죠. 오히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여기에 모아 놓은 괴물들이 자기들 마을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뿐이니까요. 마치 뮤턴트 애비를 소년원이나 화장터처럼 생각한다니까요. ‘젠장, 저게 하필 왜 우리 마을에 생겼지?’ 그런 시선들이 우리를 고립시키는 거예요. 우리는 이 안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죠. 그게 자비에 교수에게는 말 그대로 ‘땡큐 베리 감사’한 상황인 거고요. 그래서 나는 결계를 침으로써 나의 반-능력을 약화시키고 나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효과가 있느냐고요? 어느 정도는요. 확실히 아무래도 조금 나은 느낌이에요. 결계를 치고 난 다음부터는 꼭지 도는 일이 덜하거나 돌아도 완전히 돌지는 않는 것 같거든요.

  오늘 아침에도 한 바퀴 산책을 하면서 단단히 단속을 하고 왔어요. 뮤턴트 애비의 얼마 안되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주변 경관이 끝내주게 아름답다는 거예요. 특히 일출 시간에는 더더욱 자연의 신비로움이 배가 되지요. 꼭 결계 문제가l 때문이 아니어도 그 시간을 통해 산책의 여유를 가지면서 신록을 만끽하는 것은 이 곳에서의 얼마 안 되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랍니다. 결계는 자비에 호수의 (부모가 저 아름다운 호수에 자기 못난 대머리 자식의 이름을 붙여주는 몹쓸 짓을 했다네요) 왼쪽 경계선부터 세레브로 숲 (대머리를 감추려고 줄창 쓰고 폼 잡는 그 파마기계 비슷한 거 있잖아요)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호수의 오른쪽 경계선까지 이어져요. 걸어서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이니 만만치 않은 작업이긴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최전방 경계선이기 때문에 조금만 빈틈을 보여도 고약하고 악의적인 것들이 파고 들어올 여지를 주는 거예요. 작은 산짐승들이 의도치 않게 건드려 놓는 경우도 있지만 저절로 흐뜨러지는 일도 많아요. 아무리 정성스럽게 기를 모아 단단하게 쌓아놓아도 조금씩 어둠에 갉아먹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만약 이 결계가 무너지면 나는 어떻게 될까요? 너무 무서워요. 언제 어떻게 살며시 다가와 내 안의 어둠을 불러 일으키면 나는 뮤턴트 아닌 또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걸까요? 반-능력이 너무 자라나 능력을 압도하게 된 뮤턴트들의 경우 빛이 아닌 어둠을 대변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나도 그렇게 되면 어쩌죠? 이 말을 들으면 우리 사랑하는 데이지 언니는 이렇게 저를 다독거리겠죠.
- 오! 우리 사랑하는 블랙캣! 염려마렴.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어찌 장담하겠어요 (반-능력은 날로 커져가는 반면에 능력은 제자리 걸음인걸요). 그래서 내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워놓고 있는 거죠. 뮤턴트 애비 인근의 일몰은 (또 다른 의미에서) 장관인데요. 사방이 진한 핏빛으로 물들어 끝내주게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기 때문이에요. 그 시각마다 나는 주문을 외우면서 결계를 위한 특제 묘약 (닭 피를 베이스로 마요네즈 적당량, 양파 한 개, 사과 한 개, 설탕 반 컵, 식초 2 큰술, 바질, 오레가노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다음에 꿀벌 10마리, 거미 다리 7개, 고양이 꼬리 5개, 토끼의 귀 3개, 사슴 다리 1개, 늑대 이빨 5개, 돼지 목살 4 온즈, 소 곱창 4 온즈, 염소의 턱과 수염, 박쥐 날개 반쪽, 노란싸리버섯 한 움큼, 오래된 빗자루 1개, 단풍나무 껍질, 민들레 뿌리 등을 넣고 3시간을 푹 고아낸 다음 천천히 상온에서 식혀 완성된답니다)을 정성스럽게 만들고는 해요. 결계를 따라서 성스러운 주문을 외우며 (수오이-코딜라입-제시트-실리가-필라크-레푸스; suoicodilaipxecitsiligarfilacrepus) 이 특제 묘약을 뿌리는 것이 내가 매일 반복하는 작업이고요. 이 레시피는 누구에게도 비밀이에요. 심지어 데이지 언니에게도 말이에요. 언니는 이 특제 묘약의 존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가끔 나랑 산책하다가 엉뚱한 말을 던지는 것 같아요.
- 어머, 불쌍해라. 어쩌다 저리 다쳤을까. 왜 이 근처에는 왜 성한 동물들이 없다니, 너무 안타깝다. 
  그러면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죠. 왜냐하면 이 레시피는 일급 비밀이니까요.

 

*


  내 정서적 상태가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게 다 내 잘못만은 아니죠. 결계 밖에서 도사리는 고약하고 악의적인 어떤 것들과는 또 별개로 뮤턴트 애비 안에도 내 노력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단 말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한 두개가 아니죠. 따지고 보면 난 가만 냅두면 양처럼 순한 초식동물이에요. 나를 사악한 굶주린 늑대로 만드는 것은 여기 모인 뮤턴트 말종들이고 말이에요. 난 말이에요. 먼저 자극하지 않으면 물지 않아요. 하지만 누가 건드리면 절대 참진 않아요. (커피처럼 싸움도 가장 맛있는 온도가 있다 이겁니다!) 지들이 먼저 꼭지를 돌게 하니 나도 대응을 하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는 거죠. 그런데 웃기는 게 뭔지 아세요? 정말 나를 화나게 하는 게 뭔지 아세요? 지들이 먼저 원인 제공을 해놓고서는 나중에 꼭 피해자인양 항변을 하고 지랄이잖아요. “블랙캣이 물었어요,” “블랙캣이 들이 박았어요,” “블랙캣 때문에 정말 못 살겠어요.” 징징징. 찔찔찔. 병신들. 꼴값 하고 있네. 숨 쉬는 공기가 아깝지. (아차, 지금도 아슬아슬했어요. 조금만 더 나갔으면 또 심한 말이 나올 뻔 했네요. 어쩌면 이 반-능력은 나의 숙명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이 나온 김에 뮤턴트 애비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 (에헴!) 이 블랙캣 양이 더 이야기를 풀어볼께요. 일단 대머리 교수에 대해서는 앞서 한 바탕 욕을 퍼부었으니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요 (그 양반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말 나올 구석이 많고 많아서 굳이 지금 기운 뺄 필요도 없어요). 일단은 그 다음 문제 덩어리 2호로 넘어갑시다. 

  자빈스키 부인. 뭐 이름만 보면 자비에 교수와 무슨 사이처럼 보이지만 그런 건 아니에요. 이 마을 토박이 출신으로 그냥 여기에 식모로 고용된 사람이니까요. 문제는 애들 밥해주라고 고용한 이 여자가 사실상의 실세로 하나부터 열까지 쥐고 흔들기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단 거예요. 그러니까 어린 뮤턴트들의 일과 생활부터 생활비 지원과 심지어 교육 과정까지요! 문제는 식모로 들어왔던 이 아줌마가 경리 자리를 꿰어차고 실질적 권력을 장악하면서 시작되었어요. 뮤턴트 애비를 흘러 들어오는 덩부 및 민간 지원금 중에는 교육 대상인 뮤턴트들의 생활을 보조하는 명목으로 책정된 금액도 있는데요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교육 기관이라니까요). 우리 어린 뮤턴트들은 그걸 일단 받았다가 다시 토해내고 있고요. 그걸 수금해서 세탁하는 사람이 바로 자빈스키 부인이에요. 통장관리(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과 도장 하나를 만들어 넘겨주는 겁니다)와 자진납세(일단 인출해서 현금으로 가져다가 상납한다는 겁니다)라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과거에는 간편하게 통장관리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정부에서 계좌를 조사할까봐 자진납세를 선호하더군요 (정말 가지가지하고 자빠졌습니다). 게다가 이 아줌마가 학생 뮤턴트 고과평가와 인건비 책정까지 지휘하지 않겠습니까? 이유는 모르겠는데 누가 좋은 학생이고 누가 나쁜 학생인지 이 아줌마가 결정을 해요. 우리 어린 뮤턴트들 입장에서는 얼마를 토해내고 얼마가 생활비가 남을지 이 아줌마에게 달려있는 판이니 감히 대항을 할 수가 없죠 (물론 이 되바라진 블랙캣 양을 제외하고는 말이에요). 말인 즉 이 아줌마야말로 뮤턴트 애비의 문제를 한 몸에 옹골차게 함축하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고 뮤턴트 애비를 갈아 엎으려면 그 아줌마를 제일 먼저 손봐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생각해보세요. 이게 더럽게 엿 같은 일인 것이, 어떤 뮤턴트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을지를 식모 겸 경리가 결정하고 있단 말이에요. (아니 그걸 왜?) 어떤 슈퍼 능력도 타고 나지 않았고 어떤 슈퍼 능력도 개발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동네 아줌마가 말이에요. (와! 빌어먹을! 뭐 이런 멍멍이 같은 일이!) 이 대목에서 두 가지 의문이 떠오르죠. 첫째, 그럼 정작 교수는 뭘 하고 있냐? (답은 아시죠? 그 대머리는 하루 종일 파마 기계만 쓰고 있어요.) 둘째, 그럼 밥은 누가 하냐? (이게 정말 화딱지가 나는 것이 우리 착한 데이지 언니가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있단 말이죠.) 

  도대체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다들 당황스러우시죠? 천천히 정리를 해봅시다. 식모가 교수 역할을 하고 있어요. 학생은 식모 역할을 하고 있고요. 교수는 (파마 기계에 갇혀사는) 히키코모리 역할을 하고 있지요. 그러니 이 개막장 롤플레잉 게임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천불이 날 수 밖에요. 나는 데이지 언니가 너무 답답해요. 왜 미련하게 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대개 비겁하고 그게 바로 사람의 본성이에요. 약자에게는 함부로 하면서 강자에게는 꼬리를 내리지요. 언니가 너무 고분고분하게 그 사람들 말을 들어주고 있으니 그 사람들이 막 대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어디 감히 장차 큰 일을 할지도 모를 뮤턴트에게 밥을 하게 하고 빨래를 시키나요? 그렇게 할꺼면 뮤턴트 애비의 막대한 운영 지원금은 다 어디로 새어 들어가는 건가요? (데이지 언니는 식모 일을 대신하고 있지만 단 돈 1달러도 더 받고 있지 않고 있거든요.) 세상에 뭐 이 따위 쓰레기 같은 경우가 있고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있단 말입니까. 나였으면 진작에 다 뒤집어 엎었을 거예요. 아! 또 이 얘기를 하니 꼭지가 돌아버리려고 하네요. 주위에 특제 묘약을 한 번 뿌리고 주문을 외운 다음에 나머지 이야기를 마저 할께요. 수오이-코딜라입-제시트-실리가-필라크-레푸스! 수오이-코딜라입-제시트-실리가-필라크-레푸스!

 

*


  언니는 오래 전에도 여기에 있었다고 들었어요. 사진첩을 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언니의 얼굴이 있더라고요.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어쩌면 15년 전에도. 마치 괴담에나 나올 법한 소름끼치는 얘기 아닌가요? 과장 좀 더 보태면 언니는 뮤턴트 애비에서 십대와 이십대의 대부분을 보낸 셈이에요. 맞아요. 참 불쌍한 사람이죠.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자비에 교수한테 코가 꿰어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언니의 치명적인 반-능력 때문이기도 해요. 언니는 광장 공포증이 심해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공간에 가지를 못하거든요. 정해진 자기 영역을 벗어나면 불편함을 느껴서 견디지를 못하니 섣불리 뮤턴트 애비도 떠나지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붙들려 있는 거예요. 우리 어린 뮤턴트들이야 (지금 현실은 멍멍이 같더라도) 언제고 이곳에서 도망 나가리란 희망을 품고 살고 있어요. 하지만 언니는 언제 빠져나갈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는 처지죠. 언니의 반-능력 때문에 사회 안으로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살 수도 없고요. 또 그걸 이용해 먹으려는 교수가 순순히 놓아줄 리가 없으니 말이에요. 왜냐고요? 글쎄요. 교수에게는 이 모든 게 일종의 비즈니스니까요. 뮤턴트 애비를 유지하는 것도 비즈니스이고, 어린 뮤턴트들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교육자의 타이틀을 유지하는 것도 비즈니스이고, 그럼으로써 지위와 명성이 높은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비즈니스이고 뭐 그런 식이죠. 그렇다보니 연료가 필요한 거고요 (예, 맞아요. 우리 어린 뮤턴트들은 사실상 연료죠.) 그 양반의 비즈니스를 위해 필요한 연료. 말인 즉 우리가 없으면 이 인간은 그냥 혼자 손 빨아야 할 처지에요. (진실로 아이러니한 상황 아닌가요?) 그런데 언니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도망갈 구석이 없으니 무한 동력 기관처럼 두고 두고 써먹을 수가 있는거죠. 정말 이런 현실이 역겹고 토나와요. 있잖아요. 이런 문제에 대해 이 블랙캣 양이 남긴 명언도 있다 이겁니다. 외울 자신이 없으며 공책에라도 받아 적으세요. ‘남의 인생을 갈아 넣어야 유지되는 사업이라면 진작에 그만 두는 것이 맞노라.’

  데이지 언니의 능력은 불을 다루는 거예요. 언니가 마음만 먹으면 인화성, 발화점, 연소점과 상관 없이 어떤 물체에나 불을 붙일 수 있고요. 그 불의 방향과 세기를 조절하는 것은 물론 불이 붙어 있는 물체까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요. 언니의 능력은 생명력과 정화를 상징해요 (적절하게 잘 다룰 때의 이야기지만요). 반대로 통제에서 벗어나면, 뭐 화끈하게 초대형 불놀이를 한 판 땡기게 되는 거죠. 긴 생머리에 다소곳한 몸가짐과 차분한 성격을 가진 스물 일곱의 꽃다운 아가씨에게 그런 무시무시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 언뜻 잘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기는 한데, 사실 뮤턴트의 외모/성격과 재능/능력이 서로 잘 어울리게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답니다. 뭐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나의 능력(마인드 컨트롤)이 침착하고 사려깊은 언니에게 더 어울리는 편이죠. 반대로 내 쪽이 언니의 능력에 더 어울리고요. 나는 뮤턴트 애비의 공식 파이어 스타터니까요. (으하하! 다 태워버릴테다!)

  생각해보면 데이지 언니가 여기 뮤턴트 대비에서 지내는 이유는 (다른 우리 어린 뮤턴트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고 반-능력은 없애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잖아요. 하지만 언니는 더 이상 어리지 않고요. 15년이 넘게 뮤턴트 애비에서 지내는 동안 제대로 된 훈련과 교육을 받았는지도 의문이에요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지도를 받았냐고 내가 캐물어보면 언니는 그냥 빙긋 웃기만 해요). 뭐, 아까도 언급했지만 대머리 아저씨는 하루 24시간 중 23시간 동안 파마 기계를 쓰고 사는 사람이고 나머지 1시간 안에 밥 먹고 용변보고 잠자고 그 나머지 시간에 뮤턴트 지도하는 일까지 하니까요. 운이 좋으면 한 달에 뮤턴트 한 명이 5분 정도 볼 수 있을 겁니다. (말로는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사람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만 나와요. 물론 파마 기계를 쓰고 하는 일이 이 세계의 명운과 관련된 무척 중요한 일일 수야 있겠지만 전혀 아닐 수도 있죠. 그걸 누가 알겠어요? (뭐, 막말로 증강현실 포르노에 빠져살고 있을 수도 있고요.) 게다가 특히 (도망가봐야 어딜 도망가겠냐는 식으로) ‘잡은 물고기’처럼 생각하는 언니에게는 무심함이 극에 달해서 더더욱 그냥 방치하고 부려먹는 느낌이고요. 그렇다고 그 사이에 언니의 광장공포증이 나아진 기색이라도 있느냐면 그 또한 천만의 말씀이고요. 제가 조용히 나름대로 조사한 내용이 맞다면 언니가 하는 일 중에는 뮤턴트 애비에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해서 어린 뮤턴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 말고도 자비에 교수의 개인 사택을 일주일에 매일 아침 청소하는 일도 있어요 (거기서도 밥을 짓고 빨래를 하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또 해볼 수가 있겠죠). 또 월요일과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에는 자비에 교수의 되바라진 애새끼들에게 개인 과외를 시켜주는 일도 하고 있지요 (열여섯살에 바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유전학과 생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대단하신 분의 자식들이 열여섯살까지 구구단도 못 떼고 있으니 진정 골 때리는 일 아닌가요?) 뿐만 아니라 숙제도 대신 해주고 리포트도 대신 써주고 있고요. 뮤턴트 애비가 받는 정부 및 민간 지원은 우리 어린 뮤턴트들의 능력에 대한 연구 보고서 및 연구 문헌 제출을 담보로 하는데요. 그걸 대부분 우리가 알아서 쓰고 교수는 한 줄 첨삭도 해준 적이 없지요. 아마 그동안 데이지 언니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보는 내가 다 속이 터지는 일입니다. 

  결국 이렇게 또 그 대머리 노친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게 되는데 정말 잔인한 인간 아닌가요? 자기는 스물 일곱에 이미 교수 타이틀을 달고 ‘프로세서 엑스’가 나가신다, 따르르르릉’ 떵떵거리고 다녔잖아요. (아! 물론 휠체어를 타고 다니려면 주변 다른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해 경고음을 내주는 것이 예의이긴 합니다.) 옥스포드 대학교는 자기를 15년이나 잡아두지 않았는데 왜 자기는 어린 뮤턴트들을 15년이나 잡아두죠? (안 다녀봐서 모르겠지만) 옥스포드는 박사학위를 담보로 밥하고 빨래를 시키지 않을 게 아니에요. 거기 교수들이 자기 집 이사를 하는데 제자들을 불러다 짐을 나르게 할까요? 거기 교수들이 제자들을 시켜서 자기 자식 과외를 시키고 리포트를 대신 써주게 할까요? 거기 교수들이 단 한 줄도 첨석하지 않은 연구 문헌에 자기 자식 이름을 끼워넣으라고 종용할까요? (역시 안 다녀봐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으리라는 데 제 손목을 걸지요. 그렇다면 의문은 이겁니다. 옥스포드에서 노친네가 그런 식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면 왜 고향에 돌아와서는 이건 식의 교육을 하고 있는 거죠? (더 무서운 사실은) 그렇다면 이런 끔찍한 짓거리를 도대체 어디에서 배운 거죠? 와, 정말 소름끼치지 않아요?

  사실은 더 충격적인 일이 하나 남아있어요. 다들 쉬쉬하는 일급 비밀인데요. 자비에 교수에게 어린 여자애들을 건드리는 못된 습관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올라오는데 일단 당연히 더럽고 역겹다는 일차적인 반응이 먼저고요 (‘프로페서 엑스’ 밑에서 공부하러 왔는데 알고보니 ‘프로페서 섹스’라니 복장이 터질 노릇입니다). 다음으로는 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교수라는 권력에다가 ESP, 텔레파시, 마인드 컨트롤 능력을 가진 히어로에게 무슨 수로 어린 뮤턴트 학생들이 대응을 합니까? 한편으로는 의아함도 있어요. 그 문어 대가리의 다리 세 개 중에 적어도 하나는 움직인다는 뜻이니까요 (뭐, 제 기능을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겠습니다만요). 무엇보다 나를 참을 수 없게 하는 건 데이지 언니 또한 그 희생자라는 (그것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고통 받아온 희생자라는) 사실이에요. 나는 언니를 사랑하니까요. 나만큼 사랑하니까요. 언니가 말 한 마디 못하고 혼자 괴로움 속에서 방황했을 것을 생각하면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뮤턴트 애비가 얼마나 지옥 같겠어요. 하지만 반-능력 때문에 어디 도망칠 수도 없죠. 그런 상황에서도 늘 미소지으며 사람들을 대하는 언니의 모습에 마음이 찢어지듯이 아프기도 하고요. 빨리 힘을 길러서 언니 대신 그 문어 대가리 자식에게 뜨거운 복수를 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방법은 그것 밖에 없어요. 누가 대신 나서주겠어요. 사람들은 뮤턴트 애비 안에서 심각한 인권 문제가 생기든 말든 아무 관심 없어요. 이름 모를 뮤턴트가 프로페서 엑스와 반대되는 주장을 한다고 누가 믿어주겠어요?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 할 수도 없단 걸 아니까 자비에 교수와 자빈스키 부인은 이런 상황을 이용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 결국 우리 안에서 해결을 봐야 한단 겁니다. 예, 맞습니다. 이 대목에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죠. 그 노친네가 열심히 제자를 가르치지를 않으니 내가 빨리 성장할 수가 없고 내가 빨리 성장하지 못하니 노친네를 때려잡을 수가 없는 거죠. 반대로 노친네가 괴수 아닌 교수라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해서 나를 열심히 가르친다면 자기 명을 재촉하는 꼴이 되는 거죠. 

  다행히 나한테는 아직 그런 일이 없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 뮤턴트 애비의 공식 싸움꾼이자 대표 미친년이잖아요. 자기도 생각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나랑 얽혔다가는 절대 좋게 끝나기 어렵다는 걸 알겠죠. 물론 이제 나도 열여섯이고 (곧 열일곱이 되니) 조심을 해야긴 할 거예요. 언젠가부터 데이지 언니가,
- 사랑하는 우리 블랙캣, 나날이 예뻐지는구나. 
라는 말을 하면서 약간은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다 같은 집에 불구-성범죄자가 (성불구-범죄자가 아니라요) 하나 살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나도 조심을 해야겠지만 언니도 걱정이에요. 빨리 내 능력이 궤도에 오르게 만들어서 언니도 지켜주고 싶은데 생각처럼 잘 늘지 않아 큰일이에요. 하기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니 그렇기도 하지만 자비에 교수가 저를 가르치는데 더더욱 인색한 부분도 있어요. 이게 문제인 게 그 늙다리와 내가 같은 분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마인드 컨트롤!) 자기도 아마 의식적으로 경계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생각해보면 나처럼 성격이 보통이 아닌 애가 그만한 능력을 갖게되면 자기를 상대로 순순히 숙이고 들어가겠어요? 개판을 쳐도 보통 개판을 치지 않을 것이 뻔히 눈에 보이니까 자기도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거겠죠. 아! 또 이 얘기를 하니 또 열이 오르네요. 한 번 더 주위의 부정한 것들을 정화하고 나머지 이야기로 넘어갈께요 (잠시 주문 듣고 오시죠. 멀리 가지 마세요!). 수오이-코딜라입-제시트-실리가-필라크-레푸스! 수오이-코딜라입-제시트-실리가-필라크-레푸스!

 

*


  이제 뮤턴트 애비의 다른 어린 뮤턴트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해요. 얘네들도 자비에 교수와 뮤턴트 애비를 위해 소모되고 있으니 불쌍한 인생이기는 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말이 뮤턴트지 죄다 쭉정이만 남아서 대부분이 사실 쓸모없는 애들인 것도 문제에요. 옛날처럼 눈에서 레이저를 쏘거나 (사이클롭스?) 타겟의 온도를 자유자재로 내려 결빙시키거나 (아이스맨?) 무력과 지력을 한 몸에 겸비하거나 (비스트?) 빛보다 빨리 달리는 애들이 있어야 (퀵실버?) 그나마 그럴 듯하고 말이 되는데 지금 애들은 휴... 답이 나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에요. 물론 좋은 뮤턴트가 들어와도 교수가 책임을 방기하는데 별 수 있겠는가 싶지만 그래도 요즘 뮤턴트 애비의 인재풀은 대흉년급이라 어디 가서 이야기하기도 쪽팔리는 수준이죠. 지금 멤버들로 ‘학생 스쿼드’를 짰다간 정말 농아학교 애들하고 붙어도 개망신만 당하고 돌아올 것 같다니까요.
       
  예, 인정합니다. 물론 내가 이렇게 그 아이들의 능력을 혹평하는 이유에는 사적인 감정도 다분히 들어 있어요. 나랑 대부분 사이가 안좋기 때문에 더 꼴보기 싫은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결코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난 가만 냅두면 양처럼 순한 초식동물이란 말입니다. 왜 자꾸 나를 자극해서 꼭지가 돌게하고 결국 나의 반-능력을 깨어나게 만드냐는 거예요. 지들이 원인 제공을 했으면 피해자 코스프레나 하지 말던가. “블랙캣이 물었어요,” “블랙캣이 들이 박았어요,” “블랙캣 때문에 정말 못 살겠어요.” 징징징. 찔찔찔. 병신들. 꼴값 하고 있네. 숨 쉬는 공기가 아깝지. 처음엔 우리 문어 대가리가 마인드 컨트롤의 대가다보니 얘네도 세뇌당한 건가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아니에요. 알고보니 세뇌당할 뇌도 없는 것들이에요. 아따! 방금도 위험했어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진정시킨 다음에 저능아 어워드 최우수 저능아 부문에 지명된 저능아 후보들을 하나 하나 소개시켜 드릴께요. 수오이-코딜라입-제시트-실리가-필라크-레푸스! 수오이-코딜라입-제시트-실리가-필라크-레푸스!

  먼저 빈센트 ‘프라이어’ 하츠필드라는 열아홉 먹은 남자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죠. 이름은 그럴듯 한데 이름 그대로 뭔가를 튀기는 게 능력이에요. 와우! 무서워라! 문제는 보통 한 시간 걸려서 예열을 하고 시작해서 감자 하나 부피를 튀겨버리는데 네 시간 반이 걸린다는 사실이에요 (또 사용 후에는 두 시간 반 정도 냉각시켜 열을 빼줘야 하고요). 아니, 정말 미안한 이야기인데, 그런 놈을 어디에다 씁니까. 유사시 어둠의 무리들과의 긴박한 싸움에 투입할 수 있겠어요? (잠깐만, 나 예열 좀 하고!) 게다가 소요 시간이 튀길 대상의 체적에 따라서 열 전달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니 감자 튀기는데도 느려서 못 쓸 놈을 악당 튀기는 데 쓸 수야 있겠어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뮤턴트니 슈퍼 히어로니 하는 애들은 자연법칙을 깡그리 무시해야 존재 가치가 있는 건데 오히려 충실히 따른다는 복장이 터질 노릇이죠). 그런 놈은 패스트 푸드 알바로도 아깝고요. 혹시라도 뮤턴트 애비에서 잘 교육 받아 그 능력을 다듬어 나간다고 하면 아마 맥도날드 알바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다음으로 앤-마리 ‘진저 브래드 걸’ 톰슨이라는 열여덟살 먹은 여자애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죠.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다는 이유로 대놓고 언니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이 같잖은 계집애의 능력은 상한 음식을 가려내는 거예요. (네? 뭐라고요? 잠시만 한 번 웃고 갈께요!) 맞습니다. 음식이, 상했는지, 상하지 않았는지, 가려내는 능력을 가졌답니다. 그런 능력을 어디에 쓰나요? 혀를 직접 대보고 “상했습니다”라고 말하나요? 앞의 프라이어의 경쟁자가 ‘에어 프라이어’라면 이 여자애의 경쟁자는 ‘식품 신선도 테스트기’죠. 애초에 이 정도 잠재력으로 뮤턴트 애비에 들어온 자체가 놀라워요. 고아가 아니라면 무슨 대단한 낙하산은 아닌지 의심했을 거라니까요 (이 대목에서 데이지 언니는 ‘그런 말 하면 못써’라고 하겠죠). 물론 다른 종류의 낙하산일지도 모르죠. 혹시 아나요. 저 방아깨비처럼 삐적 마른 계집애가 늙다리 녹이는 재주가 있는지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자비에 교수가 너무 편애하니 하는 말이에요. 재능이 만개해도 시청 위생과 공무원이랑 경쟁해야 하는 수준의 애를 그렇게 싸고 돈다는 게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내 촉이 맞다면 뭔가 있어요. 고 발칙한 것이 매일 밤 교수의 문어 대가리를 햝으며 “오, 교수님, 아직 싱싱하시군요” 따위의 드립을 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요 (생각해보니 꽤 흥미로운 소재 같아서 살을 붙여 조금씩 소설로 써보고 있어요. 데이지 언니가 알면 분명 그러지 말라고 할 것 같기는 하지만요).

  다음. 케빈 ‘업사이드 다운’  데이비스의 차례인데요. 이건 또 다른 의미에서 말을 꺼내기 어려운데요. 이 열여섯살 먹은 남자애는 입이 달린 자리에 항문이 달렸고 항문이 있을 자리에 입이 달렸어요. 그리고 그게 끝이에요. 그게 ‘업사이드 다운’의 능력이에요. 이 대목에서 여러 의문이 생기지요. 얘를 뮤턴트라고 볼 수가 있느냐? (아니 물론 엄밀히 따져서 뮤턴트는 맞지만 여기 모여있는 우리 뮤턴트들 같은 뮤턴트냐는 말이에요.) 주둥이가 달릴 자리에 항문이 달리고 항문이 달릴 자리에 주둥이가 달린 것은 걔네 엄마가 임신중에 바깥 양반 대신 우라늄을 안고 잤거나 하루에 담배를 두 갑씩 피웠다는 뜻이지 뮤턴트 애비에서 수련을 받아 갈고 닦아야 할 슈퍼능력을 타고 났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벌써 데이지 언니가 타이르는 말이 들리는 듯 하네요. 블랙캣! 그런 말을 하면 못 써!)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런 지적과 의문이 핵심을 짚었다고 생각해요. 도대체 케빈이 왜 여기 뮤턴트 애비에 들어와 있는 겁니까? 세상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윗 구멍이랑 아랫 구멍을 바꾸는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썩 많지는 읺아 보이거든요 (그림이 안 좋다는 건 차치하더라도 말이죠.)

  다음. 나사로 ‘얼레디-데드’ 콜맨이라는 열여덟살 짜리 남자애인데 닉네임에서 짐작하실 수 있는 것처럼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능력이 있는 놈입니다. 오! 이건 그럴듯 한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잘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  ‘언데드’가 아닌 ‘얼레디-데드’라는 부분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으로도 제압하기 어려운 불사의 과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움직이는 송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단 거예요. 휴! 딱한 녀석이기는 한데 냉정하게 보면 대단한 잠재력을 가짐 뮤턴트라 보기 어렵고 어떻게 뮤턴트 애비에 들어와 사는지도 모르겠어요. 더 짜증나는 건 그렇다고 뭐라고 욕을 해줄 수도 없단 말이죠. 아무리 내가 입에서 덤덤탄을 무차별 난사하는 문제적 캐릭터라고 할지라도 죽은 애를 조롱하는 건 (기형을 갖고 태어난 애들을 조롱할 때와는 달리) 마음이 편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요 (다들 내가 무슨 근본도 없는 막가파인 줄 아는데 그 정도는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녀석이 끔찍하게 기분 나쁘고, 끔찍하게 재능이 없고, 심지어 끔찍하게 냄새까지 나지만 막 뭐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답답하고 짜증이 나요. 그건 이유로 마음에 걸리는 것만 아니라면 진작에 뒷뜰에 구덩이를 파고 이 녀석을 염하고 관짝에 넣어 내려 놓은 다음에 흙으로 단단히 덮고 비석까지 세워놓았을 거라고요.      

  다음 똥 쭈안 ‘누들걸’ 꽌 리라는 열여섯 먹은 중국계 혼혈 여자애인데요. 이 계집애 능력도 참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것이 머리카락이 국수 면처럼 늘어나는 능력이 있단 말이에요. 역시 말만 그럴 듯해 보이지 실속은 없어요. 이게 슈퍼 능력이 되려면 머리카락 한 타래가 속도와 방향성을 갖고 (비달 사순 뺨치는 탄력으로) 움직여 물리력을 행사할 수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얘 머리카락은 굵기도 긁거니와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다가 결정적으로 기름에 볶은 국수처럼 뚝뚝 끊어져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얘를 ‘차오 메인’이라고 부릅니다). 머리카락이 길어지기도 전에 죄다 조각나서 떨어지는 거고 (더 웃기는 부분은) 항상 머리카락이 짧으니 결국 그 능력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 된다는 점이에요. 그런 애가 어떻게 뮤턴트 애비에 들어와 있는 걸까요? 딩동댕. 예, 정답이다. 모두 짐작하셨던 것처럼 일종의 인종 쿼터 같은 이유 아니겠어요? 동양인인 얘를 받음으로써 괴수는 뮤턴트 애비가 ‘화이트 워싱’되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있고 다양성 지원금까지 챙길 수 있으니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이죠. 하지만 제가 보기엔 글쎄요. 잠재력이 너무 없어요. 하루 빨리 기술을 배우거나 아니면 자빈스키 아줌마 일을 도우면서 경리직으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게 좋을 듯 해요. (원래 이름도 우리식으로 읽으면 ‘통장관리’니 딱 맞지 않습니까?) 

  다음은 토마스 ‘뚜렛주르’ 하츠필드라는 열두살 먹은 막내 남자애가 있어요. 맞아요. 이 애를 보면 사람들이 내게 내리는 평가가 너무 가혹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지요. 내가 말을 너무 함부로 한다고 다들 난리인데 사실 이 녀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이 녀석의 능력은 반복해서 부적절한 단어를 내뱉는 것 밖에 없어요. 참 숙녀가 입에 올리기는 민망스러우니 이렇게 하기로 해요. 지금부터 F-워드는 ‘포크’라고 할께요. S-워드는 ‘시트’라고 하고요. 또 다른 S-워드는 ‘슬롯’이라고 할께요. 또 A-워드는 짧은 것은 ‘예수’ 조금 긴 것은 ‘예수홀'이라고 하고요. C-워드는 ‘칸트’라고 할께요 (그 철학자인지 뭐시깽인지 아저씨 있잖아요). B-워드는 ‘비취’라고 하고 (보석이요) P-워드는 ‘피스’라고 하며 (평화입니다) M-워드는 ‘와비파커’라고 할께요 (안경 유통업체고요). 그리고 또 다른 C-워드는…. 에휴, 이렇게 하나씩 정하다가 한 세월 다 가겠네요. 모르겠어요. 그냥 그건 있는 그대로 콕써커라고 할께요. 그러니까 뚜렛주르는 (아무 이유없이) 종일 이렇게 소리지르고 돌아다녀요. 포크! 시트! 예수! 예수홀! 슬롯! 칸트! 피스! 와비파커! 콕써커! 콕써커! (이유는 모르겠는데 콕서커는 꼭 두 번씩 하더라고요.) 병이죠. 그런데 정말 웃겨 죽겠다니까요. 냉정히 말해서 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해야할 애지 뮤턴트 애비에 데리고 있을 애가 아니죠. 그래도 이 녀석만큼은 그렇게 밉지 않은게 자비에 교수 앞에서 할 말은 다 하기 때문이에요. 예, 맞아요. 할 말은 다 하는 아주 강직한 친구죠. 교수 면상에 대고 얘가 몇 마디 하면 (포크! 시트! 예수! 예수홀! 콕써커! 콕써커!) 그렇게 웃길 수가 없어요. 배를 잡고 뒹굴뒹굴 구르게 된다니까요. 교수도 얼굴이 벌개져 아무 말을 못해요. 기분은 나쁜데 정신적으로 아픈 애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거죠. 어쩌다 얘가 잠시 진정되서 부끄러워하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따위의 말을 양념처럼 끼워넣으면 교수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그 진하게 우러나는 페이소스란 정말. 캬! 솔직히 가끔은 그 능력이 부럽기까지 하다니까요. 문어 대가리 얼굴에 대고서 그런 말을 하면 얼마나 재미지겠어요. 물론 그럼 우리 착한 데이지 언니는 이런 말을 하며 나를 타이르겠죠.
- 어머, 우리 착한 블랙캣. 숙녀가 되어 ‘콕써커’란 말을 쓰면 못써. 

  와! 내가 이 집단에 속해 있으니 할 말은 없지만 얘네들은 진짜 돈 주고도 못 볼 좋은 구경이에요. 이 골 때리는 능력들도 다 일종의 탤런트는 탤런트잖아요. 혼자 보기는 아까우니 텔레비젼에 내보내 전국민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그걸 지켜본 사이먼 코웰이 뭐라고 하겠어요. (“이번 특집쇼는 저능아들의 올림픽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그야말로 올림픽 레벨의 저능아들입니다.”) 아이고, 나 진짜 웃겨 죽겠네. 너무 웃다보니 진짜 배가 땡길 정도라니까요.

  아무튼 이런 쭉정이들만 모아놓았으니 미래가 밝을 리가 있나요. 그러니 나랑 데이지 언니 정도면 여기서는 최고 클래스의 잠재력을 지닌 인재고 당연히 그만큼 대접받으며 합당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봐요. 토네이도를 가랑이 사이에서 쏘아내는 애라도 갑자기 입학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우리가 이 구역 에이스라고요.

 

*


  오늘은 데이지 언니 대신에 내가 요리를 하겠다고 나섰어요. 우리 착한 데이지 언니는 내 의도는 짐작도 못하고,
- 오! 사랑하는 블랙캣! 얼굴도 예쁜데 어쩜 마음 씀씀이까지 예쁘다니! 
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오늘은 그냥 이 블랙캣 양이 심심해서 주방을 기웃거린 날이 아니라 진실로 역사적인 날이란 말입니다. 언니와 내가 괴수의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의 깃발을 높이 올리는 역사적인 날. 이름하여 뮤턴트 애비 최후의 만찬! 오늘은 내가 요리사이고 나는 만찬을 준비할 거란 말입니다. 뮤턴트 애비의 모두를 위한 만찬을. 일단 나는 데이지 언니를 다른 곳으로 외출하도록 유도했어요. 왜냐하면 내 계획이 맞아 떨어지려면 나와 데이지 언니만이 이 맛있는 요리들을 먹지 않아야 하니 말이에요. 언니는 심부름 때문에 하루 정도 읍내에 다녀오게끔 해야했어요. 사실 그 부분이 혼자 10인분이 넘는 요리를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언니를 보내봐야 어딜 보내겠어요? (광장공포증 연례 워크샵? 내가 미쳐!) 어찌나 힘든 일이던지요. 나중에 제 요리 솜씨를 따로 보여주겠다고 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해서 간신히 보냈지 뭐예요. (물론 나중에 언니를 위해서는 내 능력을 모두 발휘해서라도 정말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줄 거예요!)

  하지만 그 전에 일단 먼저 할 일을 먼저 해야겠죠.

  식전 음식으로는 저의 시그니처 레시피를 배합한 크리미 머쉬룸 수프를 준비했어요. 커다란 소스 팬에다가 버터를 두르고 약한 불로 가열하다가 붉은 양파와 알광대버섯을 넣고 볶은 다음에 밀가루, 닭육수, 소금, 후추를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끓이면서 저어주면 완성이에요. (정말 맛있을 것 같지 않나요?) 다음으로 식후 디저트는 다크 초콜렛 버섯 케이크를 준비했어요. 버터와 설탕, 베이징 파우더, 달걀, 그리고 다크 초콜렛 파우더를 골고루 섞은 다음에 잘게 다진 알광대버섯을 넣고 다시 한 번 버무려서 팬닝을 하고 200도씨 오븐에서 30분 동안 베이킹을 해서 만들었어요 (나름 저의 야심작이랍니다). 한편 메인 디쉬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여섯 가지 정도로 준비를 해보았어요. 입맛에 안 맞아서 먹지 못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말이에요. 그렇게 준비된 여섯 가지 메인 디쉬를 이 자리에서 소개합니다. (짜잔! 드럼 롤 주세요!) 갈릭 파마산 버섯 볶음, 이탈리안 아스파라거스 앤 버섯 프리타타, 칠리 라임 버섯 타코, 크리미 허브 앤 갈릭 머쉬룸 파스타, 버섯 앤 치킨 프라이드 라이스, 구운 버섯을 곁들인 지중해식 염소갈비. 이름만 들어도 침이 꼴딱 넘어가지 않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굉장한 게 뭔지 아세요? 이 모든 메인 디쉬 라인업에 알광대버섯이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내 고유 레서피에 자부심을 가진 엄격한 요리사로 절대 타협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에요. 내가 직접 정성들여 재배한 최고 품질의 (국내산) 알광대버섯만을 사용할 거라고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요리를 했다는 낯선 사실 때문에 다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지만 일단 주둥이로 뭐가 좀 들어가니까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변하더라고요. 나는 신이 나서 큰 주전자 가득 만든 케일-버섯주스를 한 잔씩 따라주었어요. 다들 말하더군요. “브리아나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어.”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떻게 했겠어요? 물론 평소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배를 두드리며 자지러지게 웃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꾹 참고 요조숙녀처럼 다소곳하게 미소를 지어보였지요. 그리고 존경하는 우리 자비에 교수님에게는 버섯 토핑을 한 움큼 듬뿍! 친애하는 우리 진저 브래드걸에게도 버섯 토핑을 한 움큼 듬뿍!

  오! 그건 정말이지 대단한 장관이었습니다. (혼자 보기는 아까웠지만 혼자만 봐야 하는 아쉬움이!) 물론 내가 반응을 촉진하기 위해 약간 장난을 치기는 했지만 (할라피뇨와 스리라차 소스로요) 밥상머리에 둘러 앉아 숟가락을 들고부터 내려 놓기도 전에 반응이 올 줄은 몰랐어요. 와! 진짜! 장난 없더군요!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건 차오 메인이었어요. 그 넓죽한 콧구멍으로 피를 질질 흘리더군요. 뒤이어 귓구멍과 눈구멍데서도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고 볶음 국수 같은 머리칼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식사시간은 이내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진저브래드 걸이 소리를 지르자 (얄미운 계집애! 약한 척 하기는!) 저도 따라 소리를 질렀어요. 뚜렛주르는 항상 버릇처럼 하는 말을 했고요. (포크! 시트! 예수! 콕써커! 콕써커!) 흥분한 프라이어가 예열에 들어가자 기름 태우는 냄새가 났어요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냥 남자 냄새일 수도 있겠네요). 뒤이어 업사이드 다운에게 반응이 오기 시작했어요. 오! 일이 다 끝난 지금에 와서 가만히 복기해보면 이 씬의 시퀀스가 정말 기가 막혔어요. 다른 사람들의 입이 달린 자리에 있는 그 구멍에서 피와 배설물이 섞인 것이 (티카 마살라?) ‘푸우지직지직’ 소리와 함께 스프레이처럼 흩뿌려졌거든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항문이 달린 자리에 있는 그 구멍에서는 위액과 구토물이 섞인 것이 (팔락 파니르?) ‘으우으어웨엑’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왔고요. 덕분에 상황은 한결 더 다이내믹해졌어요. 공포와 혼란의 냄새가 가득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뚜렛주르가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포크! 시트! 예수! 콕써커! 콕써커!) 이어서 진저 브래드 걸의 차례가 왔어요. 고 얄미운 계집애는 새침하게 헛구역질을 몇 번 하더니만 평생 발휘할 수 있는 인내심의 총량을 다 끌어내서 뭔가를 참아내는 기괴한 표정을 짓더군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윽고 냅킨을 입으로 가져가서 틀어 막았는데 하얀 린넨이 진한 선홍색으로 물들어가더라고요. (이 대목에서 가장 크게 소리를 지른 사람은 나였는데 놀라서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였어요!) 베이지색 주름 치마 아래 그 방아깨비 같은 다리를 타고도 줄줄 피가 흘러내리는 걸 봐서 (자매님 오늘 따라 양이 좀 많으신가봐요?) 업사이드 다운과 같은 증상이 왔음을 단박에 알 수가 있었죠. 생각해보면 그 계집애 능력도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쓸모없는 것이 그 잘난 혓바닥으로는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분간해내지 못했다는 거 아닙니까 (오늘의 주방장 특선 요리에는 독이 들었지 절대 상한 건 아니니까요). 이어서 뚜렛주르의 고통이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오, 시트! 오! 와비파커! 오! 포크! 포크!) 내가 보기에 그건 마음의 병으로 인해 튀어나오는 말이 아니라 정말 더럽게 아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욕 같았습니다. 뒤이어 프라이어에게도 그 순간이 왔습니다. 아니요. 차오 메인에게 2차 웨이브가 온 게 먼저였네요. 얼굴이 초록색으로 변하면서 아래로 내장을 털썩 쏟아내더니만 혀가 길게 빠진 상태로 나자빠지더군요 (여러분! 이로써 뮤턴트 애비는 다시 공식적으로 ‘화이트 워싱’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살짝 후회감이 들었는데 같은 증상이 업사이드 다운의 윗 구멍에서 나타나는 경우 아무리 천하의 블랙캣 님이라고 할지라도 약간은 역겨움을 느낄 것 같거든요. 바로 그 순간에 프라이어가 발동이 걸린 겁니다. 이 어리고 제 능력을 온전히 계발하지 못한 덜 떨어진 뮤턴트는 그냥 눈에 보이는 걸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튀겨버리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업사이드 다운의 구토물도 있었고 업사이드 다운의 배설물도 있었으며 차오 메인의 밑으로 빠져나온 순대 몇 근도 있었죠. 그러더니만 급기야 지가 핏덩어리를 토하면서 바로 즉석에서 그걸 튀겨버리는 돈 주고도 못 볼 구경거리를 연출하는 겁니다. 그리고 타-다! 그 동안 잘난듯이 슬로우 쿠커를 표방하던 그 녀석에게 과정만이 흘러서 자신과 뚜렛주르를 홀랑 다 태워버리고 말았지요. (악! 포오오오크! 포오오오크! ) 물론 들리는 것처럼 하드 코어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피와 살이 데워지면서 나오는 악취란, 오! 그런 경이적인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흥분감에 몸이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다음이 바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자비에 교수 차례였습니다. 특별히 버섯 토핑을 듬뿍 올려서 서빙했는데 그렇게 오래 견뎌낸 것은 박수쳐 줄만한 일이에요. 하지만 명색이 ESP, 텔레파시, 마인드 컨트롤 능력을 가진 양반이 이걸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망신살 뻗치는 일이죠. 처음에는 밥상머리에서조차 파마 기계를 쓰고 뭔가 중얼중얼 하느라고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건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번쩍 눈을 떴는데 나는 한 눈에 맛탱이가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입술을 깨문 틈 사이로 진하고 끈쩍거리는 피가 빠져나오면서 그 문어 대가리가 고통스러워 하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기분이 더없이 상쾌하더군요. 남의 인생 갈아 넣어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아왔는데 자기가 한 번 갈려볼 차례가 되니 이 게임이 그리 재미있지만은 않은가보죠 (그래도 마지막까지 위엄있게 휠체어에서 앉은 자세 하나 흐뜨러지지 않고 배설물을 얌전히 밑으로 내보낸 부분만큼은 높이 평가합니다). 그 장면에서 유일한 옥의 티는 피오나 공주의 얼굴이 된 진저 브래드 걸이 반쯤 죽어가는 상태로 기어와서 괴수 놈의 무릎을 끌어 안고 “교수님! 오! 교수님! 어쩌면 좋아요!” 라면서 꼴값을 떤 거였죠. 그걸 보니 확 기분이 나빠졌어요. 다시 한 번 저 두 연놈이 붙어 먹는 사이였을 거란 가설에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지요. 그래도 참았지요. 어차피 십 분 안에 쟤네들은 거대한 의료 폐기물로 변할텐데요. 사람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묘사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요? 나중에 사람들이 걔네들을 발견하였을 때 진짜 못 볼 꼴을 봤을거라고요. 거기에 비하면 걸레조각 상태로 발견된 ‘보니와 클라우드’도 감히 명함을 못 내밀 걸요?

  그럼 이제 누가 남았나요? 아! 얼레디-데드. 그 녀석은 그냥 잊어버리기로 하지요.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도 안 가고 굳이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어쩌면 밥상머리에 앉기도 전에 이미 죽어있었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러면 남은 것이,

  자민스크 부인. 식모. 식모 겸 경리? 응? 뭐라고요? ESP, 텔레파시, 마인드 컨트롤 능력을 가진 최고수도 나자빠지고 쭉정이 같은 능력이기 하지만 나름 슈퍼-능력을 가진 애들도 하나도 견디지 못했는데 식모 겸 경리가 살아 남았다고요? 칠리 라임 버섯 타코를 두 개나 먹고 케일 버섯 주스도 마셨는데요? 적잖이 당황스럽더군요. 게다가 그 표독스러운 눈깔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데 다시 한 번 놀랐어요. “니가 꾸민 일이지?” 라는 질문에는 그냥 웃음을 터뜨렸어요. 어이가 없었으니까요. ESP, 텔레파시, 마인드 컨트롤 능력을 가진 사람도 못 알아챈 일의 전말을 식모가 정확하게 짚어내다니 너무 웃기잖아요. 그러고보면 교수 대신 교수 행세를 할만도 하네! 그 점은 높이 인정해주기로 했어요. 하지만 시작한 일의 마무리는 맺어야 하니 내게는 남은 일이 있었지요. 나는 나의 불완전한 능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내고자 이를 악 물었어요. 자빈스키 부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려고요. (‘어이, 아줌마! 오른손으로 테이블 위의 버터 나이프를 잡고 당신 목에 찔러 넣어!’) 보이지 않는 단단한 배리어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두 번, 세 번, 모두 튕겨져 나왔지요. (생각해보면 이건 여기에 와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으니 이건 순전히 자비에 교수의 탓입니다) 네 번, 다섯 번, 어림도 없었어요. “왜 그랬지?” 라고 묻더군요. 나는 대꾸하지 않았어요. (‘어이, 아줌마! 오른손으로 테이블 위의 버터 나이프를 잡고 당신 목에다가 찔러 넣으라니까!’) 자빈스키 부인은 천천히 일어나서 오물의 늪을 밟고 악취의 안개를 통과하여 주방 벽면에 달려있는 전화기를 향해 다가갔어요. 아! 이런! 마음이 급해졌어요. 여섯번! 일곱번! 짧고 두툼한 못생긴 손으로 그 여자가 다이얼을 돌리는 것을 보았지요. 숫자를 못봐도 경찰서로 걸고 있단 정도는 짐작이 가능했어요. 여덟은! 아홉은! 여전히 파고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멈춰! 멈춰! 걸지마!’) 

  마음이 급해진 나는 내 손으로 버터 나이프를 잡고 한 걸음에 테이블을 뛰어 넘어가 자빈스키 부인을 넘어뜨렸습니다. 그리고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고 한 번에 빠르고 강하고 정확하게 버터 나이프를 찔러 넣었습니다. 물론 금방 깨달았죠. 버터 나이프가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스테이크 나이프를 잡아 다시 해야할 일을 했어요. 발버둥은 쳤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하더군요. 당연한 일이에요. 식모로 고용된 평범한 동네 아줌마에게 무슨 슈퍼-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너무 쉬웠어요. 그리고도 그 여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날까봐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가요) 동맥을 몇 번 더 찔렀어요. 쏟아지는 피로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를 한 바탕하고 나서야 그 여자가 물오징어처럼 늘어지더군요.  저도 안심을 하게 되었고요. 물론 잠시나마 긴장을 했던 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는 했어요. 누가 봤다고 한다면 진짜 엄청 쪽팔렸음 겁니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나는 정들었다 뮤턴트 애비의 주방을 천천히 둘러 보았어요. 빨간색, 초록색, 보라색, 피, 위액, 배설물, 공포, 두려움, 고통. 와! ‘판다 익스프레스’에 폭탄이 떨어진들 이 정도로 엉망일까요? 그래도 한 번은 벌어질 일이었습니다. 암, 그렇고 말고요. 한 번은 벌어질 일이었습니다. 문득 일몰의 냄새가 전해지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내일이면 데이지 언니가 오겠죠. 그 전에 참경쟁이 이웃들이 문을 두드릴 수 있어요. 아, 물론 그 전에 경찰들이 올 수도 있고요 (신호가 가다 말았는데 혹시 모르잖아요). 경찰들이 오면 어쩌죠? 주방장 특선요리를 한 번 더 내보내야 할까요? 물론 그러면 데이지 언니는 이렇게 말하겠죠.     
- 블랙캣, 말을 안 듣는다고 아무에게나 알광대버섯을 먹이고 그러면 안돼!

  현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어요. 그렇지만 귀찮잖아요. 나는 청소는 질색이란 말이에요. 내게 언니처럼 불을 다루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언니의 능력이 생명력과 정화를 상징한다고 했죠? 그러니까 참 좋은 방법이기는 해요. 이 쓰레기 같은 낡은 성채를 싹 다 태워버리면 우리가 겪었던 악몽도 더는 이어지지 않겠죠 (경찰이 찾아와도 ‘판다 익스프레스’에 불이 난 줄로만 알겠죠). 어떻게 할까요? 내 마인드 컨트롤 능력으로 언니의 마음을 움직여 불을 붙여보도록 유도해 볼까요? 아서라, 평범한 식모 하나 마음대로 못 다루는 주제에 선배 뮤턴트인 언니를 다루는 건 별로 가능해 보이는 일이 아니었어요. 그럼 뭐 어쩌겠어요. 성냥으로 붙여야죠. 말도 못하는 자괴감이 몰려와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 이 염병할 곳에는 진짜 배운게 한 개도 없네.
  일단 방에 올라가 미리 싸두었던 내 가방과 언니 가방을 들고 내려와 현관 포치에 내다놓았고요. 벌어진 널판지 틈새에 숨겨두었던 특제 묘약을 꺼내 허리 뒷춤에 찔러 넣었어요. 그리고는 주방에 가서 성냥을 들고 왔고 창고에 가서 휘발유를 들고 왔어요. 휘발유를 골고루 뿌리고 (로민-대가리와 진절-렛을 중심으로요) 꼴도 보기 싫은 자빈스키 부인의 머리통을 한 번 걷어 차 준 다음에 성냥에 불을 당겨서 그림처럼 던졌죠. 

  정말 잘 타들어 가더라고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세상이 한결 깨끗하지는 것 같아서 행복해졌어요. 이제는 뮤턴트 애비 주변의 악의적이고 고약한 것들도 물러갈 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당에 나와 정성들여 특제 묘약을 뿌리며 주문을 외웠어요. 수오이-코딜라입-제시트-실리가-필라크-레푸스! 수오이-코딜라입-제시트-실리가-필라크-레푸스!

  문득 이제 언니에게도 저의 특제 묘약 레시피를 알려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금 긴 편이라 숨 한번 들이마시고) 자, 시작합니다. 이 블랙캣 양의 특제 묘약은요. 닭 피를 베이스로 마요네즈 적당량, 양파 한 개, 사과 한 개, 설탕 반 컵, 식초 2 큰술, 바질, 오레가노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다음에 꿀벌 10마리, 거미 다리 7개, 고양이 꼬리 5개, 토끼의 귀 3개, 사슴 다리 1개, 늑대 이빨 5개, 돼지 목살 4 온즈, 소 곱창 4 온즈, 염소의 턱과 수염, 박쥐 날개 반쪽, 노란싸리버섯 한 움큼, 오래된 빗자루 1개, 단풍나무 껍질, 민들레 뿌리 등을 넣고 3시간을 푹 고아낸 다음 천천히 상온에서 식혀 완성된답니다. 그리고 이 특제 묘약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할 때는 특제 소스로 활용할 수도 있는데요. 그때는 여기에 국내산 알광대버섯을 큼직 큼직하게 썰어 넣어주면 한결 풍미가 진해지고 식감 또한 좋아진답니다. 이상 뮤턴트 애비에서 보내드린 오늘의 요리사 (꽃다운) 열여섯 (곧 열일곱이 될) 브리아나 캐서린 앳우드 양의 요리 교실이었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 만나요!

  어느새 데이지 언니가 내 옆에 와 있었어요. 내 손을 잡으며 ‘사랑하는 우리 블랙캣’이라고 속삭였죠. 나도 ‘사랑하는 우리 데이지 언니’라고 속삭였어요. 언니는 내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어요. 나는 언니에게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았고요 (우리 사이에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뮤턴트 애비가 까만 연기를 피워오르며 주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지켜보았어요. 나는 언니의 손을 꼬옥 잡으며 다시 한 번 속삭였어요.

- 언니, 우리 진짜 진짜 행복하다!

 

(2017년 10월)

#Inspired By Shirley Jackson

반응형

'낙농콩단 > Season 16-20 (2016-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2. 과카몰리 블라바드  (0) 2019.01.20
234. 스파이 호핑  (0) 2018.06.03
220. 잭 미쳐  (0) 2017.05.14
216. 퓨처 이노베이터  (0) 2017.01.22
213. 더 헌티드 하우스 헌터스  (0) 2016.10.30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