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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퓨처 이노베이터

낙농콩단/Season 16-20 (2016-202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7.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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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가 미친 사람처럼 보입니까?”


  포크 밸리에는 훌륭한 식당들이 정말 많다. 소곱창으로 유명한 그 중의 한 곳에서 식사를 하던 중 크리스 P. 베이컨(Chris P. Bacon)은 덜컥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은 사실이었다. 포크 밸리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포크 밸리.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돼지갈비 기술이 태어나는 곳. 자영업자들의 요람. 가장 급진적인 기술자들이 모여있음에도 베이컨에게는 항상 ‘급진적이다’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그 즈음 나는 그의 전기를 작업하는 일을 두고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아직 때가 이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베이컨은 한창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사업가이자 투자가였다. 그 시점에서 덜컥 책을 써버리면 그의 인생에 있어 다음 장에 들어갈 내용들을 놓치게 될까봐 두려웠다. 물론 그 다음 장이 별 볼일 없을 수도 있다. 너무 높이 날아오르다 추락해버린 이카루스들이 이 바닥에 어디 한 둘인가? 다만 어떤 쪽이든 나의 저널리스트 유전자를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크리스 P. 베이컨. 요식업계의 스티브 잡스. 갈비업계의 일론 머스크. 이 바닥에는 그의 전기를 작업할 기회를 탐내지 않을 글쟁이가 없다.


  한편으로는 더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 내 자신이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나는 독일을 대표하는 시사 주간지 <슈피겐>지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진보 일간지 <마몽드>지의 포크 밸리 지사 편집장을 몇 년째 맡고 있다. 또한 영국의 대표 일간지 <가디건>지의 객원 기자로 고정 칼럼을 쓰고 있다. 이렇듯 참 언론인의 표상으로 회자되는 존경받는 몸이기에 각계에서 요구하는 초청 강연도 마다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얼마 전 보쌈계의 대가 원할머니의 전기가 출판된 이후 가장 사랑받는 전기 작가의 반열에 올라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전기를 작업하자고 통사정하는 사람들 중에는 독자들이 이름을 들으면 놀라 자빠질만한 명사들이 적지 않다 (정말이다.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없음이 애석할 뿐이다). 아무리 베이컨이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라지만 만사 제쳐놓고 그 일에 매달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단 뜻이다. 


  결국 (최초 제의가 있고) 3년이 지난 다음에야 일이 진척되었다. 뜻하지 않은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베이컨이 다른 사람에게 전기 작업을 부탁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이 내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슈피겐>과 <마몽드>와 <가디건>의 트리플크라운에 빛나는 저명한 저널리스트로 나는 내 밥그릇에 누가 수저를 깔짝대는 것을 본질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로 베이컨과 점심 약속을 잡았고 슬슬 인터뷰부터 시작해보자는 말을 꺼냈다. 


  아니, 그런데 그 건방진 새끼가 살짝 발을 빼며 간을 보는 게 아닌가!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그때 나는 테이블 밑에서 한 손으로 스푼을 부러뜨리며 간신히 (그러나 프로답게) 화를 참아내었다. 내가 프로 저널리스트가 아니었다면 그 순간 스푼 대신 놈의 목을 부러뜨리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우리의 첫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러분들도 짐작했겠지만 베이컨은 그렇게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실은 불친절한 사람이다. 자기가 몸이 달아서 전기 작업을 해달라고 사정해 놓고도 막상 집필이 시작되니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많은 부분에서 비협조적이었다. 서른 다섯살짜리 풋내기 백만장자에게 ‘난 지금 바쁘니까 비서하고 이야기하쇼’란 말을 듣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비서가 갓 대학을 졸업한 스물 네살짜리 여자애라면 더 답답한 노릇이다. 그 애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집필 작업에 도움이 안되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아마 여러분 중의 몇몇은 나와 그 비서 여자애의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는지가 더 궁금할지 모르겠다. 사전에 오해를 차단하고자 미리 밝히자면 내 대답은 ‘아무 일이 있었다’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사람의 전기를 작업하는 일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지도를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 기준을 잡고 방위를 정하며 측량을 하여 거리를 기록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크리스 P. 베이컨’이라는 하나의 세계는 지도 제작의 난이도로 따지면 최상급이다. 알려진 내용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 워낙에 지랄맞게 생긴 지역이라 이만 저만 힘든 것이 아니다. 앞장서 길 안내를 해줄 세르파조차 전무하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먹었기에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았단 말인가!) 원할머니 때보다 열배는 힘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나처럼 노련한 저널리스트에게도 말이다. 그렇다. 이 책은 비단 베이컨에게만 도전이 아니었다. <슈피겐>과 <마몽드>와 <가디건>에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나에게도 예사롭지 않은 도전이었다는 사실을 부디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 

 

1장 돼지갈비에 미친 남자


  “제가 미친 사람처럼 보입니까?”


  다시 서장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보자. 베이컨은 답을 원해서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미친 사람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 모른다면 양심도 없는 인간일 겁니다.


  바브 E. 큐 (Barb E. Cue)의 말이다. 큐는 베이컨과 티본대학 2학년 재학 중에 만나 13년을 함께 일했다. 한때 둘은 교우들에게 ‘바비와 크리스’라고 불렸다.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가 으레 그러하듯이 그들의 관계도 한동안 순항하다가 어느 순간에 난파했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일 뿐이다. 13년을 함께 일하고 ‘바비와 크리스’는 13건의 법정 공방을 벌였다. 그 중에는 여섯 건의 화끈한 맞고소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전기 작가에게 ‘맞고소’만큼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이 일을 시작하고 처음 바비를 찾아갔던 날을 기억한다. 베이컨의 전기 작가라는 이유로 다짜고짜 따귀를 맞고 문전박대를 당했다. 내 뺨을 갈긴 사람은 바비의 부인 수지였다 (그렇다. 바비와 결혼하면서 그녀의 풀 네임은 자동으로 ‘수지 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인이 외간남자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는 동안 억울한 남편은 뭘 하고 있었을지 여러분은 짐작하시겠는가? 맞다. 2층 벽장에서 레밍턴 11-87이라는 모델의 산탄총을 들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바비의 사격실력은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3미터 이내의 근거리에서 벅샷이라면?
- 크리스와 일하는 것의 문제가 뭐냐고요?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남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반면에 자기 노력은 과대계상하여 반복해서 내세우고 생색을 내죠. 결국엔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고요? 그 일에 대한 크레딧을 통째로 빼앗기는 거죠.


  평소의 그 답지 않게 바비는 목소리를 높였다. 음조가 불안하고 한 마디 마디 미묘하게 떨렸다.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명망있는 저널리스트인 내게 그러한 변화를 캐치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역시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소돼지’는 바비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소갈비와 돼지갈비를 이어붙여 한 자리에서 소도 먹고 돼지도 즐기는 혁신적인 요리. 회식계의 게임 체인져. 남들이 소갈비 중량을 덜어내고 돼지갈비에 물을 먹이고 있을 때 이 두 남자는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우듯 너무도 간단히 문제를 해결해버렸다. 훗날 포천 (타임워너의 <포춘>이 아니라 경기도 포천에서 발행하는 전격 비즈니스 매거진이다) 100대 기업으로 올라서게 될 기업의 시작이었다. 
- 보통은 소를 시킬까 돼지를 시킬까 고민을 많이 하죠. 예산이 항상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느 한 쪽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도 큰 것 같네요. 사람에 따라서는 돼지갈비에 대한 애호가 적지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 그렇다고 공금으로 먹는 소중한 자리에서 소갈비를 패스하고 넘어가기는 또 아까운 거죠.    
  제너럴 일렉트릭 포천 지사의 회식부장 워렌 티즈(Warren Teese)의 말이다. 

 

  놀라운 것은 ‘바비와 크리스’ 사태에 연루된 많은 사람들의 의견도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회식 때 돼지가 땡기지만 소를 패스하기 아깝다는 부분이 아니다.) ‘소돼지’의 탄생에 있어 바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부분 말이다.    
- 컨셉은 바비의 것이었습니다. 기술도 바비의 것이었습니다. 전자공학과 화학공학의 듀얼 학위를 가진 바비가 특수 아교를 합성하여 소갈비와 돼지갈비를 접붙이는 동안 크리스는 옆에서 지루함을 참지 못해 저글링을 하고 놀았죠. 크리스는 지루한 건 단 1초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면서 이따금 바비의 작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간섭질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네, 말겠네, 보기에 좋네, 안 좋네’라고 혀를 놀리면서 말이죠.
  <소돼지>의 초기 투자자였다가 훗날 CTO로 합류하게 되는 휠렛 미뇽(Filet Minyon)의 이야기다.
- 바비가 없었으면 아이디어도 없었습니다. 바비가 없었으면 특수 아교도 없었겠죠. 정교하게 돼지의 살과 소의 살을 연결할 재주도 없었을 겁니다. 초창기 ‘샌 잰호세 시대’에 우리가 내놓은 제품은 100% 바비의 수작업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훗날 크리스가 바비를 대접하는 방식은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샌 잰호세 시대란 산정호수 근처에서 그들이 최초의 작업장을 마련했던 때를 말한다. 포크밸리의 대부분 혁신 기업들이 그러하듯이 그들도 처음에는 차고를 개조해서 회사를 운영했다.
- 분명 달걀을 세운 건 바비입니다. 하지만 그 달걀에서 팔아먹을 기회를 본 건 크리스죠. 저는 그 협업 관계가 상당히 훌륭한 조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비는 자신이 개발한 소돼지를 친구들과 맛있게 먹을 생각만 했지 장사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거든요. 분명 그는 사업가는 아니었어요. 
  포크밸리 전문 블로거 아이. 시. 위너 (I. C. Wiener)의 설명이다. 그는 <소돼지>가 상장을 결심한 1999년에 태어났고 두 남자와는 아무 관계가 평범한 소년이다. 두 남자를 만나보거나 두 남자와 가까운 사람들을 아느냐는 질문에 위너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면식도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말에서 맞는 부분도 있었다. ‘바비와 크리스’가 서로 결여된 부분을 채워주는 훌륭한 콤비였다는 점, 그리고 결국 그래서 파국으로 치닫을 수 밖에 없었다는 점. ‘소돼지 2’의 런칭을 둘러싼 1995년의 갈등은 훗날 드러날 문제의 예고편 같은 것이었다. 크리스는 ‘소돼지 2’가 성공하기를 원했다. 설령 그들의 예상 수요보다 더 많은 주문이 밀려들어오더라도 소화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들의 자본과 인력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인 생각이었다. 직원이라고는 달랑 그들 둘에 아르바이트생 둘이 전부였다. 초기 투자금은 바닥을 드러내어 당장 손 빨고 거리로 나 앉을 처지였다. ‘소돼지 1’이 입소문을 타고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생각만큼 돈이 되지는 않았다.
- 소돼지 1으로 판을 크게 벌이지 못한 것이 실수였습니다. 말하자면 성공 아닌 성공이었던 거죠. 성공은 했는데 남는 것이 없다? 아쉬운 일이죠.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안타까워할 일만은 아닙니다.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이니까요. 원망할 사람이 있다면 오직 자기 자신인 겁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교훈은 무조건 판을 크게 벌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맞았죠.
  당시에 대한 크리스의 회상이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맞았죠’가 등장하는 결정적 대목 가운데 하나다. 장장 6,500시간에 이르렀던 인터뷰 기간 동안 그는 이 말을 7만번 정도 사용했다. 그는 항상 옳았다. 바비와 밤을 새워 격론을 벌였던 ‘소돼지 2’의 겉모습에 대한 부분에서도 결과적으로 그가 옳았다. 바비는 오직 맛이 중요할 뿐 모양은 아무래도 좋다고 주장했지만 크리스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일곱번 반 감긴 형태로 동그랗게 말아 나와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여러분 모두가 아시다시피 결국 ‘소돼지 2’는 소갈비와 돼지갈비가 엇갈려 일곱번 반 감긴 독특한 나선 형태로 런칭되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갈비업계의 판을 갈아 엎었다. 이제 포크 밸리의 모두가 더 나은 갈비 디자인을 개발하는데 천착한다. 나선 말이는 ‘소돼지’의 상징이 되었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나선 말이를 넘어설 새로운 무언가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가 짜놓은 매트릭스에서 모두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가 옳았다. 언제나 크리스 P. 베이컨이 옳았다. 
- 물론 크리스가 옳았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성공에 둔다면 말입니다. 저는 그 친구의 사업적 감각은 높이 삽니다. 그에게는 동물적인 본능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가젤처럼 우아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사자처럼 매서운 부분이 있지요. 예전에도 존중했고 지금도 물론 그렇습니다. 다만 그런 장점이 지금 이순간 저와 수준 이하의 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바비는 기진맥진한 표정이었다. 자포자기한 표정의 남자가 레밍턴 11-87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은 썩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 그 남자의 사격 실력이 아무리 형편 없기로 유명하더라도 말이다. 부인의 눈에서 나오는 레이져 빔을 뒷통수에 맞으며 (그녀는 ‘사이클롭스’가 아니라 ‘수지 큐’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과 함께 나는 바비의 집을 나섰다. 그 뒤로 몇 번인가 바비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아무리 훌륭한 전기 작가라도 단 한 번의 인터뷰로 모든 정보를 얻어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정중하게 내 요청을 거절했다. 크리스와 관련된 일에는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일종의 엄마 아빠 같은 겁니다. ‘소돼지’를 낳고 기른 엄마가 바비라면 먹여 살린 아빠는 크리스였죠.   엄마와 아빠의 결혼생활이 파경을 맞으며 아빠는 ‘소돼지’를 데려가며 엄마에게 위자료를 던져준 겁니다. 아주 고통스러운 법정 공방을 거치며 말입니다. 포크밸리 전문 파워 블로거로 저는 양쪽의 마음이 다 이해가 갑니다. 다만 팬의 마음으로 보면 ‘소돼지’가 아빠를 따라간 것이 다행한 일이었죠. 모든 혁신 기업은 예외없이 지독한 산고 끝에 태어납니다. 특히 포크밸리에서는 특별한 일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포크밸리 전문 블로거 I. C. 위너의 말이다. 아직 미성년자인 그는 다행히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고 부모님의 결혼생활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2장. 공룡에 맞서 살아남은 남자


  포천하면 이동갈비다. 이동갈비하면 사람들은 ‘이동닷컴’을 떠올린다. ‘이동닷컴’은 원조갈비, 정원갈비와 함께 소갈비 업계를 이끄는 강력한 브랜드다. 2008년 당시 그들은 전국에 168개 체인을 가지고 1,887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거대 왕국으로 공격적인 확장을 거듭하고 있었고 포천/철원 일대를 중심으로 한 공급망을 구성함으로써 판의 크기를 키우는데 앞장섰다. 연 매출 100억원의 갈비 제국을 이끄는 인물은 마이크 로치(Mike Rotch)와 그의 아들 마이크 로치 주니어 (Mike Rotch Jr.)였다. 이들은 이동닷컴을 얌 (Yum! Brand, Inc.)나 CKE 레스토랑 홀딩스 (CKE Restaurants Holdings, Inc.)와 같은 거대 푸드 체인으로 키울 꿈을 안고 포크 밸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었다. 회원제 운영을 통해 업계 최초로 디스카운트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들 로치 부자의 작품이었다. 자동차에서 갈비 주문 계산이 가능한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매장이나 갈비 한 대를 시키면 갈비 한 대를 덤으로 주는 BOGO (Buy one, Get one) 쿠폰도 이들 부자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을 전략이었다. 돼지갈비 프랜차이즈와 냉면 프랜차이즈를 편입시키는 것은 이들이 꿈꾸는 갈비 왕국의 최종 완성과도 같았다.


  그에 비교하자면 ‘소돼지’는 단 2개 지점만을 보유한 올챙이였다. 그나마도 하나의 매장을 감당할 수 없어 반으로 쪼개고 나머지 반을 임대료가 싼 시 외곽지역으로 옮긴 것이었다. 직원 수는 바비와 크리스를 합쳐서도 일곱 명에 불과했다. 때문에 그들은 연구 개발부터 홀 서비스, 응대, 요리, 결제, 청소 등을 정신 없이 돌아가면서 도맡을 수 밖에 없었다.
- 그 당시 우리는 외팔이 도배장이보다 바빴습니다.
  ‘소돼지’의 첫번째 아르바이트 직원이 되었던 해먼드 에그(Hammond Eggs)의 말이다. 당시 대학 2학년이었던 그는 훗날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정식 직원으로 합류하여 마케팅 총괄까지 승진을 거듭하지만 역시 크리스와의 불화로 이직을 결심하게 된다.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지만 이미 그 당시부터 크리스의 기행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대표적인 것이 그 유명한 ‘수박씨 뱉기’다. 
- 회의 시간에 우리는 늘 수박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크리스가 수박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수박은 면역력을 높여주고 배뇨작용을 촉진하는 효능이 있습니다만 크리스에게는 한 가지 유용한 점이 더 있었죠. 크고 딱딱한 씨 말입니다. 회의 때 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를 하면 크리스는 입 안의 씨를 발언자에게 힘껏 뱉었습니다. ‘뭔 개소리야?’라는 비난과 함께 말입니다. 초창기에는 그런 돌발 행동에 충격을 받는 사람도 많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때려치우고 나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조사 결과 ‘수박씨 뱉기’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과장을 조금 더 보태면 한동안은 ‘소돼지’에서 수박씨 맞고 퇴사한 인력들로 포크 밸리가 돌아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이들의 의기 투합으로 탄생한 회사도 있었다. 크리스에 대한 강렬한 적의가 그들 회사를 추동하는 힘이었다. 

 

  수박씨가 아닌 다른 것을 뱉는 경우도 있었다. 친한 친구였음에도 바비는 수시로 날아오는 복숭아씨나 포도씨를 견뎌야 했다. 초기 투자자였던 휠렛 미뇽은 얼음을 맞기도 했다. 위스키를 마시면서 얼음을 입에 물었다가 뱉은 것이다. ‘뭔 개소리야?’라는 말과 함께. 심지어 자본을 대는 입장이었음에도 예외는 없었다. 
- 그 무렵 우리의 성장세는 놀랍고, 또 경이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교과서적이지 않았죠. 크리스는 비즈니스 스쿨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인연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건 우리의 최대 강점인 동시에 최대 약점이기도 했죠. 그는 전적으로 직관에 의존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일단 일을 벌여놓은 다음에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부조화나 난맥을 더 큰 일을 벌임으로써 해결해나가는 유형이었습니다. 

 

  마이크 로치 부자의 레이더 망에 ‘소돼지’가 걸려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태릉갈비’와 같은 강력한 돼지갈비 특화 브랜드였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들이 ‘소돼지’에 입맛을 다셨던 이유는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 소와 돼지를 한번에. 일석이조. 일거양득. 일타쌍피. 

 

  지금 로치 부자는 포천을 떠나 고향인 캐나다로 돌아갔다. 그들은 나의 인터뷰 요청에 단 한 줄의 답장도 보내오지 않았다. 이해는 간다. 암 브랜드나 CKE 레스토랑 홀딩스에 대적할 갈비 왕국이 크리스 P. 베이컨이라는 남자와 엮이며 거짓말처럼 무너졌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일 것이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하지만 나는 <슈피겐>과 <마몽드>와 <가디건>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저널리스트로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다. 백방을 수소문하여 아버지 로치에 관한 책을 쓰던 전기 작가를 찾아냈다. 아흐메드 아두디(Ahmed Adoodie)라는 이름의 인도계 작가였다. 처음에 그는 직업 윤리를 운운하며 한사코 거절했다. 샤또 슈발 블랑이 몇 방울 들어가자 이내 태도를 바꾸었다. 
- 세간에 알려진 것과 같이 로치 부자가 ‘소돼지’에 눈독을 들알만한 여지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당시 ‘이동닷컴’은 탄탄한 체인망을 구축하고 있었지만 연구개발부가 따로 있지는 않았습니다. 반면에 학내 창업 기업과 같은 풋내를 풍기는 ‘소돼지’는 멤버 전원이 연구개발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요. 아마 그들은 샌 젠호세의 차고를 통째로 사들여서 회사의 브레인으로 삼을 생각이었어 겁니다.


  레몬과 허브를 넣고 조리한 감자 너겟을 집어 먹으면서 그는 말을 이어갔다.
- 두번째는 기업으로의 ‘소돼지’ 가 아닌 메뉴로는 ‘소돼지’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뼈대를 중심으로 일곱 번 반 말린 동그란 형태의 고기는 핫도그처럼 쉽게 입에 쏙 넣을 수 있어 드라이브-스루 매장을 넓혀가던 그들에게 상당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팬시한 아이콘으로의 의미는 말할 것도 없고요.

 

  로치 부자는 샌 젠호세로 여섯 번을 찾아왔다. 말하자면 육고초려인 셈이다. ‘소돼지’의 직원들 대부분은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업계 공룡이 우리 회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니! 하지만 정작 크리스는 태연자약했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했다. 포크 밸리의 매리어트 페어필드 호텔에서 이루어진 회동은 양측 모두에 말 그대로 ‘온도 차의 실감’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크리스가 로키 부자와의 만남에 큰 흥미가 없었다는 대목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시사합니다. 그의 관심사가 단순히 갈비 업계의 정복에 있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랬다면 ‘이동닷컴’과 손을 잡을 기회가 매력적으로 느껴져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그때부터 크리스는 훨씬 더 큰 그림을 보고 있었던 겁니다. 


  당시 일곱살이었던 포크밸리 전문 블로거 I. C. 위너의 말이다. 물론 판이 엎어진 것은 크리스의 무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섯 번째 회동에서 등장한 수박씨 뱉기 신공이 결정타가 되었다. ‘뭔 개소리야?’ 분명 크리스는 자기가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안하무인.’ 그 회동에 참석했던 양측 인물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튀어나온 표현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는 그날에도 역시 비즈니스 상대를 자기 아랫사람 다루듯이 하지 않았는가 싶다. 자기보다 자산이 최소 200배 많고 아무리 낮게 잡아도 100배 큰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나이로 말하자면 아들 로치조차 크리스보다 두 배는 많았다. 누가봐도 좋게 보일만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 제가 보기에 ‘이동닷컴’은 결정적인 착각을 하는 것 같더군요. 그들은 공룡이었습니다. 몸집은 컸지만 뇌는 작았죠. 아니 뇌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몸집을 제공하는 대신에 우리가 뇌를 제공한다? 그건 정당한 교환관계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168개의 체인이요? 그래서 뭘 어쩌라고요? (검지로 관자놀이를 톡톡 건드리며) 머리만 있으면 그쯤이야 금방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10년 안에 우리는 1600개 체인도 만들 겁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맞았죠.


  또 다시 등장한, 그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맞았죠.’ 결과론이지만 그들과 손을 잡지 않은 것은 ‘소돼지’에게는 행운이 되었다. 반면 ‘이동닷컴’에게는 끔찍한 재앙이 되었다. 크리스가 뱉은 수박씨 탓에 분노에 휩싸여 냉철함을 잃은 그들이 치명적인 무리수를 두었기 때문이다. 매리어트 페어필드를 빠져나가던 그 순간에 이미 로치 부자는 연구 개발부를 만들기를 결심했다. 최고의 투자로 포크 밸리 내 거대한 연구 센터를 개설하고 인력 공고를 내어 관련 업계의 인재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거기까지야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소돼지’의 특허를 피해가기 위해 ‘소돼지’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붙이는 어떤 방법도 특허에 걸렸기 때문에 그들은 소왜 돼지를 교접해서 비슷한 맛과 효과를 내고자 했다. 같은 이유로 시험관에서 배양육(Cultured Meat)을 만들기도 했다. 두 방법 모두 기둥뿌리를 휘청이게 만들만큼 돈은 많이 들어가되 단 시간에 성과가 나올 가능성은 낮은 방법이었다. 
- 긴 기술적 안목에서 보면 교접육이나 배양육의 방향은 맞았습니다. 다만 그 순간에 ‘소돼지’ 그 자체를 따라 만들려고 했던 게 문제였습니다. 사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거든요. 크리스가 만든 판 위에서 크리스를 제압하려는 발상이 ‘이동닷컴’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승리할 방법은 판을 깨고 자기 길을 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컨대 오히려 원래 계획대로 돼지갈비 전문 브랜드를 흡수해서 소와 돼지 모두의 강자로 군림했더라면 여러모로 훨씬 안정적이었을 겁니다. 더구나 그런 가운데 천천히 준비하여 교접육이나 배양육으로 승부수를 띄웠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겁니다.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이동닷컴’ 매장의 3분의 1이 문을 닫았다. 다시 2년이 지났을 때는 남은 매장의 90 퍼센트가 문을 닫았다. ‘블록버스터’나 ‘시어스’의 몰락을 넘어서는 경이적인 속도였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매몰비용의 부담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이듬 해인 2013년. ‘이동닷컴’은 쓸쓸하게 갈비업계에서 사라졌다. 마지막 남은 전국 30여개의 매장과 포크 밸리 연구 센터를 인수한 것은 크리스 P. 베이컨과 연매출 100억원 규모의 신흥 왕국을 이룩한 ’소돼지’였다. 

 

3장. 온 몸에 문신을 새긴 남자


  2013년 3월. ‘소돼지 5’의 화려한 런칭은 다시 한 번 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양념이 잘 배어들고 짧은 시간 내 골고루 익도록 배열된 소용돌이 모양의 칼집을 비롯하여 다시 한 번 진화한 특수 아교와 (더이상 바브 E. 큐가 함께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부드럽게 감기는 뼈대의 등장으로 갈비 애호가들의 문전성시가 대단했다. 하지만 진짜 파란은 아직 일어나기도 전이었다. 크리스 P. 베이컨은 엉뚱한 생각들로 새로운 일을 차근차근 벌여나갔다. 일부는 즉흥적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주장에 따르자면) 일부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일이었다고 한다. 또한 일부는 갓 첫발을 내딛는 젊은 스타트업에 투자자 역할로 참여하는 것이었지만 일부는 스스로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소돼지’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었다.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고기판에 남은 그을음으로 전자 잉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탄들’이나 숯불로 우주 로켓을 쏘아올리겠다는 스타트업 ‘숯페이스 엑스’라고 한다면,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찜질방 사업이었다. 이 사업에 분리된 브랜드명이 없는 까닭은 전국 37개 ‘소돼지 리저브’ 매장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었다.
- 한 마디로 혁신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갈비집에서는 (소와 돼지를 막론하고) 숯불과 열기가 남아 돕니다. 대부분은 그대로 버려지고 방치되기 마련이죠. 하지만 ‘소돼지 리저브’에서는 그 남은 에너지로 찜질방을 돌립니다. 운영 비용도 많이 들어가지 않고 환경 친화적입니다.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소돼지 리저브’는 특히 단체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1박 2일 회식으로 룸을 잡는 직장인들이나 MT를 오는 대학생들에게 특히 그렇습니다. ‘배터지게 먹고 배깔고서 잔다’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3대 마케팅 총괄로 ‘소돼지 리저브’ 사업의 진두지휘를 맡은 올라프 마이프렌자게이(Olav Myfriendsaregay)의 말이다. 그 역시 좋지 않게 퇴사했다. 크리스가 뱉은 수박씨가 하품하는 그의 입 속으로 골인하는 불상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일로 회의실에서는 주먹다짐이 벌어졌고 (사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크리스와 올리브 모두 한 쪽 팔에 한 달 동안 깁스를 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드는 의문이 있다. 과연 ‘소돼지’에서 좋게 퇴사한 사람이 있는가? 사실 어떤 회사라도 퇴사자들의 말만 들어서는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 어렵다. 문제는 무난하게 나간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는 민낯의 진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김없이 크리스 P. 베이컨이 있다.
- 크리스는 자기 이익에 예민하고 철저한 사람입니다. 그가 기억 왜곡 모드를 가동하는 이유는 그런 본성이 추구하는 바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고요. 자신의 역할은 끊임없이 부풀리면서 다른 사람의 역할에 대해서는 (일단 필요한 것을 얻고 나면) 쉬지 않고 깎아내립니다. 그런 자신의 태도가 다른 사람을 자극하고 도발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 합니다. 그는 말하죠. 개소리를 했기 때문에 수박씨를 뱉었다고요. 하지만 진실은 이겁니다. 첫째, 단물을 다 빼 먹었기에 수박씨를 뱉은 겁니다. 둘째, 설령 그것이 정말 천하의 개소리였어도 사람한테 수박씨를 뱉으면 안됩니다.


  크리스에게 갈비 양념 레서피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는 쉐프 시모어 버츠 (Seymour Buttz)의 주장이다. 그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소돼지’에서 일했고 특히 단맛과 짠맛이 공존하는 ‘소돼지 3’의 놀라운 양념 개발을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일부 레서피는 ‘소돼지’에 합류하기도 전에 시모어가 개발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크리스는 전체적인 일을 자신이 주도했으며 양념은 그저 곁들이는 것에 불과하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 우리 회사의 가치는 ‘소돼지’에서 나오는 것이지 양념에서 나오지 않아요. 그 양념이 그렇게 대단하다고요? 그러면 그것만 따로 팔아보라고 해요. 얼마나 잘 팔리는지 봅시다.


  엉덩이를 벅벅 긁으며, 크리스는 이렇게 대꾸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처음 시모어 버츠와 충돌이 생겼을 때 끊임없이 그의 속을 긁으며 상대의 역할을 깎아내리며 자극했던 태도를 지적한다. 심사를 뒤틀어 놓은 상태에서 날아오는 수박씨는 과연 사람이 어디까지 자존심을 굽힐 수 있느냐 차원의 문제가 된다. 또 사람들은 처음 시모어를 데려오던 때와 180도 달라진 크리스의 태도도 지적한다. 한 마디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것이다.


  ‘소돼지 리저브’의 성공 또한 아이디어의 출처에 관한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크리스는 자기 머리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역시,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으레 따라 붙는 시기와 질투일까? 아니면 정말 뭔가 있는 걸까? 

 

  여기 또 하나의 의심스러운 사례가 있다. 바로 몰락한 ‘이동닷컴’이 남긴 유산에서 촉발된 논란이다. 합병 과정에서 넘어온 포크밸리 연구센터에는 소-돼지 교접과 배양육에 대한 연구 노하우가 가득했다. 2014년 크리스는 교접육 스타트-업 ‘노아의 방주’와 배양육 스타트-업 ‘인-비(스)트로 포천’을 세우고 대표 직함을 달았다. 그리고 세스 마이어스의 레이트 나잇 쇼에 나가서 교접육과 배양육 모두 자신이 긴 시간 공들여 준비해오던 프로젝트이며 ‘소돼지’의 미래 10년이 달려있다는 발언을 했다.
- 전형적인 크리스 P. 베이컨식 기억 왜곡입니다. 그로서는 단지 갖고 싶어 손에 넣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니 열 받는 거죠. 그러니 그것이 원래부터 내 것이었다고 스스로를 반복해서 세뇌시키는 거고요. 반복되다 보니 정말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 누가 의문을 푼거나 의혹을 제기하면 황당하게도 그는 이렇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왜 저 사람들은 남의 것을 탐내지?’라고요. 놀랍도록 소름끼치죠. 뭐가 문제인지 죽었다 깨어나도 그는 모를 겁니다.


  역시 그에게 호되게 당해본 기억이 있는 매킨지 추(Makenzie Zhou)의 증언이다. 그녀는 ‘이동닷컴’ 때부터 포크밸리 연구센터의 초기 멤버로 일해왔으나 크리스의 일련의 토크쇼 발언 이후 안 좋게 퇴사했다. 현재 그녀는 맥코믹사로 옮겨 ‘맥 앤 치즈’ 제품 개발팀에서 일하고 있다.
사실 이 무렵 크리스는 눈 코 뜰 새가 없을만큼 바빴다. 스물네살짜리 갓 대학을 졸업한 비서의 노트에 기록된 그의 일주일 행적을 살펴보노라면 지구상에서 그보다 더 바쁜 사람은 그리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매주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수준의 강행군이었다. 월요일은 ‘탄들’에, 화요일은 ‘노아의 방주’에, 수요일은 ‘숯페이스 엑스’에, 목요일은 ‘인-비(스)트로 포천’에, 그리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소돼지’에 올인했다. 큰 미팅이 일주일에 대여섯 건씩 있었고 작은 미팅은 이동 과정에서 수시로 이루어졌다. 그런 중에도 아이디어가 쉴 틈없이 용천수처럼 쏟아져 나왔다면 실로 대단한 일이다.


  크리스가 온 몸에 문신을 새기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의 온 몸에는 상징적인 아이디어들과 그 영감이 영광스럽게도 태동한 날짜가 영광스럽게 함께 기록되어 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기념비적인 단편집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을 떠올리게 한다. 가령 ‘소돼지’를 상징하는 큼직하고 푸짐한 로고는 오른쪽 손목에 있다. ‘소돼지 리저브’와 ‘탄들’과 ‘숯페이스 엑스’의 로고도 날짜를 달고 복직근과 외복사근 위에 각각 자리 잡고 있다. ‘노아의 방주’와 ‘인-비(스)트로 포천’을 상징하는 문신은 양쪽 견갑골 위에 있다. 혹여라도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대하면 그는 문신을 보여주는 식으로 응대했다. 처음부터 온전한 자신의 아이디어였음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 남들이 특허를 낼 때 크리스는 문신을 새깁니다. 믿어지나요?


  이제 문신 보여주기는 크리스 P. 베이컨이라는 남자를 상징하는 하나의 행위가 되었다. ‘새러데이 나잇 라이브’에서는 ‘내 농담 베끼지 마’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인기를 끌었다. 지미 키멜도 온 몸에 농담을 새기고 나타나 “앞으로 제 허락 없이는 누구도 knock knock 조크를 할 수 없을 겁니다”라는 말을 했다. 루이스 C.K.는 죽은 아기 문신을 하고 등장하여 “앞으로 이런 끔찍한 조크를 아무도 할 수 없게 만들겠습니다”라고 일갈하여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 문신은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해요. 간을 보다가 뭔가 되겠다 싶을 때 얼른 그려넣고 날짜를 거슬러 올라가 기록하면 그만 아닌가요? 또 남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얼른 그려넣고 원래 내 아이디어였다고 주장하면 그만 아닌가요? 반대로 딱히 아쉬울 게 없는 아이디어는 문신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요? 그런 마당에 아이디어의 소유권이나 사실 관계를 무슨 수로 검증하나요?


  또 한 명의 크리스-헤이터 애니타 베스(Anita Bath)의 주장이다. 2년 6개월간 지적 재산 업무를 전담했던 그녀 역시 크리스와의 관계를 나쁘게 (그리고 아프게) 끝낼 수 밖에 없었다. 나쁜 건 둘째 치더라도 아프기까지 했던 연유는 그녀가 크리스의 연인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크리스의 몸에 문신이 만들어진 날짜와 문신이 지칭하는 날짜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놓은 것도 아니고. 그 즈음 크리스의 벗은 몸을 본 사람이 또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아직까지 알려진 바로 크리스는 최소한 한 번에 여러 다리를 걸치지는 않는 남자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하지만 나는 <슈피겐>과 <마몽드>와 <가디건>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저널리스트로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다. 문신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문신을 새겨주었다는 뜻. 고로 타투이스트를 찾아나섰지만 유감스럽게도 찾을 방법이 없었다. 또 다시 막다른 골목. 내가 2관왕 저널리스트 정도라면 이쯤해서 보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3관왕 저널리스트다. 쉽게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원할머니 쌍꺼풀의 비밀조차 (옆트임과 앞트임의 미스테리) 풀어내었던 나다. 


  크리스는 사업가다. ‘소돼지’가 연매출 200억을 향해 행군하는 큰 회사가 되어버린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그렇다. 샌 젠호세의 차고 시대와는 다르게 이제는 그도 셔츠에 정장을 입는다. 드러나는 것은 얼굴과 목, 아니면 손 정도다. 그나마 가끔 문신을 보여주려고 소매를 걷어봐야 팔꿈치 정도까지다. 애니타의 증언대로라면 나머지 몸에도 문신이 가득할 것이다. 크리스와 만났던 다른 여자들의 증언도 일치한다. 분명 뭔가 있었다. 관건은 그의 벗은 몸을 무슨 수로 확인하느냐는 부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크리스를 유혹하기로 했다. 그가 스트레잇이라는 사실을 분명했지만 누구나 처음에는 자신이 스트레잇이라고 알기 마련이다. 일단 한 번 인식의 지평을 넓혀보기 전에는 자신의 정확한 성향을 단정하기 어렵다. 어쩌면 독자들은 진실을 위해 몸을 던지는 나의 자세에 눈물을 글썽이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익숙한 일이다.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나는 성별과 인종과 사랑에 구애받지 않고 인터뷰이와의 교감해왔다. 정신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으로도.


  나는 그를 ‘소돼지 리저브’에서 만났다. 포크 밸리에 위치한 본점이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시작하여 배를 채웠고 술을 몇 잔 곁들였다. 확실히 소와 돼지, 그리고 경험과 노하우의 콜라보로 완성된 ‘소돼지’의 맛은 훌륭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뒷켠의 찜질방으로 옮겨갔다. 조금전까지 우리 배를 든든하게 채워줄 고기를 굽던 그 열이 방을 달구고 있었다. 섭씨 60도를 넘나드는 자수정방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비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정장을 결코 벗지 않았다. 지독한 놈. 오가는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다만 정장을 벗기려는 시도만 제지했을 뿐이다. 나는 더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애니타를 비롯한 그의 전 애인들에게 얻은 정보가 꽤나 유용했음은 물론이다. 결국 그는 항복했다. 나는 그의 몸을 보았다. 구석 구석 가득한 500개 가량의 문신을 보았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모아나>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마우이’를 떠올렸다. 살아온 이력이 몸에 새겨지는 반신반인. 나는 그의 문신을 하나 하나 기억 속에 각인했다. 그리고 그가 환희와 열락에 들떠있는 사이에 몰래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했다. 문신의 일부는 과거와 현재에 그가 벌이고 있는 일을 상징하는 것이 맞았다. 반면 일부는 알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모호한 예언처럼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 결국 시간이 답을 주리라 생각한다. 만약 어느날 크리스가 텔레비젼에 나와 벨트를 풀고 바지를 내려 사타구니 안쪽의 문신을 보여주었는데 그 문신이 내가 어렵사리 확보한 이미지 자료에 없는 것이라면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이 아주 근거없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니 일단 이 책이 출판되는 이 시점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였으면 한다. 적절한 때가 되어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 진실을 밝힐 것을 맹세한다.

 

에필로그


  다시 이 말을 해야겠다. 한 사람의 전기를 작업하는 일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지도를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 크리스 P. 베이컨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도 적고 세르파조차 전무하다. 그 세계를 겪어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이런 말을 한다. “크리스는 위험한 남자다.” 조금 더 노골적인 발언에는 이런 것이 있다. “그와 결국 좋게 끝나기는 정말 어렵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처음에 나는 그를 향한 그런 평가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가 불친절한 인터뷰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불친절했다. 자기가 원해서 전기 작업을 부탁했으면서 마치 우리가 갑과 을의 관계인 것처럼 행동했다. 잠시 좋아졌던 것은 찜질방 안에서의 뜨거운 밀회를 전후한 몇 달 뿐이었다. 이후 갑자기 그는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전기 작업과 관련된 모든 의견 전달은 스물네살짜리 비서 여자애를 통해서 진행했다.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격화된 것은 초고를 완성할 무렵이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내용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그와 좋게 끝나지 않은 동료들의 인터뷰 내용을 삭제하기를 요구했다. 나는 거절했다. <슈피겐>과 <마몽드>와 <가디건>의 트리플 크라운을 이뤄낸 저널리스트에게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모욕이었다. 그러자 특유의 보복 작업이 시작되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사소한 일들에 시비를 털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뷰 과정에서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기본적으로 크리스는 다른 모든 이들을 체스 말처럼 생각합니다. 반면에 자기는 체스 플레이어인 셈인데 스스로가 더 위에 있고 우월하다고 인식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자기 말을 잘 듣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상을 주고요. 반대로 남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제지하면 벌을 주지요. 


  그는 애초의 까다로운 계약조건을 빌미로 출판사를 통해 내게 압력을 넣었다 (5 포인트 크기로 인쇄된 독소 조항의 향연은 나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했다). 또한 내가 동성애자이며 노골적으로 자신을 유혹했다는 말을 언론에 흘리겠다고 협박했다. 흥미롭게도 그 시점에 나는 그의 사고뭉치 비서 여자애와 뜨거운 사랑에 빠져 있었기에 협박에 굴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어느 날 그는 나를 ‘소돼지’ 본사의 회의실로 불렀다. 그리고 별 시답잖은 부분에서 트집을 잡더니만 기어코 수박씨의 굴욕을 안겨주었다. 침에 젖어 끈적끈적한 수박씨가 뺨을 타고 흐를 때는 눈물도 함께 흘렀다.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내게 말하며 회의실 문을 발로 밀어 열어주었다.
- 이 원고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그렇게 아시고. 그간 더러웠고 다시 보지 맙시다.


  크리스 P. 베이컨이라는 남자의 자서전 <퓨처 이노베이터>는 그렇게 출판된 것이다. 자서전이라고?  자서전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 초고를 썼던 사람이 여기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다. 그가 관심조차 없어 제대로 인터뷰조차 주지 않을 때 몸으로 뛰어 완성한 책이다. 밤을 새워 자료를 정리하고 교정을 보았던 치열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른 다섯살짜리 풋내기 백만장자 주제에 남의 글을 훔친 것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만 살짝 걷어내고 자신을 ‘아이언 맨’ 토니 스타크처럼 보이게 하는 노골적인 미화로 윤색하여 출판한 것이다. 그나마도 돈으로 유령 작가를 몇 명 사서 쓰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역겨운 일이다. 그가 스티븐 콜베어의 토크쇼에 나와서 글쓰기에 대해 설명할 때는 살의마저 느꼈다.
- 주위 사람들은 다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을 사서 쓰게 하는 게 편하지 않겠어?’ 저는 고개를 가로저었죠. 크리스 P. 베이컨이라는 남자의 인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저 자신일테니까요. 그래서 직접 썼습니다. 자서전을요.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맞았죠. (쏟아지는 박수가 잦아들 때쯤 그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은 핀-포인트 조명을 받으며 이렇게 쐐기를 박았다.) “아직도 제가 미친 사람처럼 보입니까? 
저널리스트로의 찬란한 명예가 구겨져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슈피겐>과 <마몽드>와 <가디건>을 거쳐간 어떤 이도 이런 굴욕은 겪지 않았으리라.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원고를 날 것 그대로 여러분 앞에 공개하게 된 사연이다. 출판사와 계약 조건에 명시된 독소 조항을 모두 회피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돈의 노예가 된 출판업계의 도적들은 자비 출판은 물론 개인 블로그 상의 온라인 게재조차 교묘하게 방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이 싸움이 얼마나 길어지든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 추가 메모

#1. 크리스 P. 베이컨은 어제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 나와 바지를 내리고 사타구니 안쪽을 보여주었다. 책과 펜을 형상화 한 문신이었다. 그것은 분명 문제의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2015년 봄의 어느 날 내 기억 속에 각인되지 않은 그림이었다. 당시 촬영 영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문신이다. 그럼에도 문신 속의 날짜는 2011년 6월 29일. 그는 말했다. “그 날이 제가 자서전을 쓰기로 결심한 날입니다”라고. 
#2. 그 화면을 녹화하여 정지-되감기-다시 보기를 반복해가며 허벅지와 종아리 부근의 모든 문신을 비교 대조한 결과 몇 가지 의혹을 더 발견했다: 1) 몸을 배배꼬고 있는 야릇한 여체를 새긴 듯한 2012년 10월 13일자 문신; 2) 큐피드의 화살을 새긴 듯한 2013년 5월 11일자 문신; 3) 반으로 갈라진 자동차를 새긴 듯한 2013년 11월 7일자 문신. 모두 2015년 봄까지 없던 것이다. 아마도 최근 그가 투자 자문으로 나선 새로운 스타트-업 ‘애플릭스(성인용 비디오 대여사업)’, ‘돌아온 사랑의 스튜디오(이혼남녀 맞선 애플리케이션)’, ‘조카(중고차량 공유 서비스)’를 각각 지칭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그가 이 문신들을 대중 앞에 자랑하는 광경을 목격하시게 되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3. 오지랖인지는 모르겠지만 상기 열거된 (혹은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크리스 P. 베이컨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스타트-업을 운영하시는 분들께 경고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크리스는 정말로 위험한 남자다. 당신의 스타트-업이 성공할 낌새를 보이면 어느 샌가 다가와 사근 사근하게 굴며 살살 침을 바를 것이다. 결국엔, 아브라카타브라! 당신이 젊음과 열정을 바쳐 이뤄 낸 모든 것은 천재적인 그의 안목으로 발굴된 기적적 성공으로 포장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초부터 그의 것이었던 양 왜곡될 것이다.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바비와 시모어, 마이크 로치 부자, 그리고 나에 이르기까지. 크리스는 그런 사람이고 사람의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드리는 말씀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도 언젠가 뼈저리게 깨닫는 날이 올 수도 있음을 부디 유념하시길 바란다.


(201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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