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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스파이 호핑

낙농콩단/Season 16-20 (2016-202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8.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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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에게 2011년은 누가 뭐라도 대단한 한 해였다. 봄에는 직장에서 해고 되었고 여름에는 8년을 사귄 남자친구와 결별하였으며 가을에는 계약이 남아 있는 월세집에서 쫓겨났다. 마지막으로 겨울이 되자 그녀의 오랜 친구인 음주 문제가 거짓말처럼 다시 찾아왔다. 한 마디로 엉망진창인 한 해였다. 비단 그녀의 주관적인 의견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그녀는 이 모든 일이 억울하게만 느껴졌다. 그 중에 그녀의 잘못으로 야기된 일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해고 사유는 (표면적으로는) 안전 문제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것이었다. 안전 문제? 책임 방기? 웃기고 있네. 키 라르고 씨월드와 같은 대형 공원에서의 안전 문제가 어디 직원 하나의 잘못과 부주의로 갑자기 터져 나올 수 있단 주장이라니! 그걸 누가 믿겠는가? 한 마디로 씨월드측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그녀를 제물로 바친 것이다. 특정 직원에게 문제가 있었고 그래서 해고 하였다면 책임을 피해간 것처럼 보이진 않으니까.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가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우연이다. 그 날 급히 고향에 가야할 일이 있었다는 동료 조련사 앤-마리와 차례를 바꾸어 준 것은 운이 없는 일이었다. 그 날 병가를 낸 설비 안전 담당 직원 맥도휴씨를 대신에 일일점검지에 서명을 한 것도 운이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하필 그 때 수조 어딘가의 배리어가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금이 간 것도 운이 없는 일이었다. 하필 그 배리어 앞에 그녀가 서서 돌고래 머피에게 신호를 보낸 것도 운이 없는 일이었고 하필 금이 간 부분을 (장난기 가득한) 돌고래 머피가 꼬리로 힘차게 때린 것도 운이 없는 일이었다 (물론 ‘테일 슬래핑(Tail Slapping)’이라고 부르는 그 행동은 돌고래 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벤트라서 매일 매시각 하고 있었으니 예정에 없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과학적인 지식이 충분치 않은 그녀로서는 돌고래 꼬리와 약해진 수조의 배리어가 어떤 순간에 어떤 각도에서 만날 때 박살로 귀결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어지간히 재수가 없는 일이라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첫 열과 둘째 열의 (옷이 젖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고 앞자리를 차지한) 일부 관람객의 머리 위로 대단한 압력의 물폭탄과 산산이 부서진 배리어 조각, 그리고 개구쟁이 돌고래 머피의 거대한 몸뚱이가 함께 날아온 것도 대단히 운이 없는 일이었다. 그 사이에 어린이들이 (당연히 어린이들이 많았겠지! 씨월드인데!) 있었던 것도 눈물 나게 안타깝고도 운이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돌고래가 귀엽다고만 생각하지만 머피와 같은 다 자란 커먼 바틀노즈 돌고래들의 무게는 약 1,400 파운드 정도 된다. 아아, 그 이야기는 이 정도로 접어두자.


  사고 이후 그녀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언론에서 쏟아내는 비난과 그것을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리는 키 라르고 씨월드 측에 진절머리가 난 부분도 있었지만 그 사고 자체의 충격이 주는 트라우마 또한 상당했다. 그녀야말로 눈 앞에서 배리어에 금이 가는 과정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물폭탄이 터지는 것을 온 몸으로 생생하게 느꼈다. 그녀가 (오른팔을 잘못 짚어 골절된 것을 제외하고는) 단순 타박상으로 끝난 것은 하느님이 도우신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순간 쏟아져 나오는 물의 거대한 수압에 쓸려내려가 원형 수조의 다른 방향으로 밀려갔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녀가 무사하다는 데 화가 잔뜩 난 모양새였다. 돌고래 머피에 깔려 (뼈가 바스러지며) 즉사한 사망자 명단에 그녀가 빠져서 유감이라는 소리마저 들렸다. 이성을 잃어버린 비난 올림픽의 개인 부문 2위에 랭크된 안전 설비 담당자 맥도휴씨가 키 라르고 인근의 허름한 모텔 방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되자 그녀에게 향하는 십자 포화는 더더욱 거세어졌다 (따지고 보면 맥도휴씨가 병가를 쓴 것 역시 죄는 아니다). 놀라운 것은 이 비난 올림픽의 단체 부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해야 할 키 라르고 씨월드로 향하는 비난보다 그녀 한 사람에게 향하는 비난의 양이 더 많아 보였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침울하게 만들었다. 그래, 맞다. 그 때 그녀가 개구쟁이 돌고래 머피에 깔리지 않은 것도 운이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아주 더럽게 운이 없는 일. 이 대목에서 부적절한 이야기이지만 모르겠지만 그녀는 가끔씩 (물론 혼자서 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한다. 돌고래 이름을 머피라고 짓지 말았어야 한다고.


  플로리다 베니스 소재의 한 회계법인에 일했던 남자 친구와의 불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생기와 의욕을 잃은 연인에 차츰 진절머리를 내었으며 그녀는 거대한 압력 속에서 금이 가고 있는 관계를 공포스러워 할 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여름의 무더위가 찾아오기도 전에 남자 친구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 과정에는 플로리다 주의 의회에서 의원으로 나름 영향력이 있고 앞으로 하원 진출을 계획 중이라는 남자 부모의 입김도 상당히 작용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예전부터 돌고래 조련사를 아들의 짝으로 들이고 싶지 않아했다. 하물며 ‘(살인) 돌고래의 (부주의한) 조련사’라는 꼬리표가 달린 그 시점에는 고민의 여지조차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2000년 대선 이후 플로리다 주의 투표 시스템 전반에 의문을 갖고 있다지만 한 달 동안 매일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한 슈퍼 스타를 페널티로 안고도 결과가 바뀔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녀는 외로운 실직자가 되었다. 그리고 외로운 실직자에게 렌트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가 없다. 특히 결혼을 염두에 두고 구한 (해변이 보이는 위치의) 방 두 개짜리 큰 집의 새로운 렌트에서 룸메이트이자 미래 남편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이 치명적이었다. 렌트비가 자그마치 한 달에 2,750 달러. 예금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었고 이직이 여의치 않은 이상 돈이 들어올 곳은 없었다 (이직이라니! 전국에 돌고래 조련사의 수요가 얼마나 된다고!). 이 무렵 키 라르고에 이사와서 몇 년간 사귀었던 많은 친구들이 등을 돌렸는데 그건 그녀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무슨 설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수조의 안전 문제는 사실 조련사와 무관하다고?). 하이웨이 출구 근처의 낡은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를 전전하며 나름 자금을 융통하려고 애를 썼지만 11월이 보증금을 까먹으면서 버틸 수 있는 한계였다. 짐을 한 상자 실어서 오하이오의 고향집을 보내고 거리로 나오면서 그녀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나마 겨울이 춥지 않은 동네라서 다행이군.’ 그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그녀는 거리에 있었고 (불행인데 다행인지) 그렇게 춥지는 않았으며 수중에는 일정 금액의 현금이 있었다. 렌트를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술을 사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마지막으로 알콜 문제가 있었던 대학 시절을 한두 번 떠올리며 참으려고는 해보았다. 문제는 현실에 도망칠 것이 너무도 많았고 (키 라르고 씨월드, 돌고래 쇼, 머피, 남자친구, 날아간 신혼집, 집요한 언론의 마녀 사냥 등) 마법의 웜홀을 열어줄 유일한 방법이 알콜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될지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


  파란만장한 2011년을 마무리하고 이듬해 봄이 찾아올 무렵 그녀는 플로리다 잭슨빌로 이사를 하였고 ‘데니스’에서 야간 웨이트리스를 하고 있었다. 돌고래 조련사는 이혼 변호사나 치과 의사처럼 어디에나 수요가 있는 직업이 아니다. 지역을 막론하고 ‘(살인) 돌고래의 (부주의한) 조련사’를 채용해 줄 동물원은 없었다 (그렇다고 프리랜서를 선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 버는 주급과 가끔씩 들어오는 팁은 죄다 동네 주점에 갖다 바쳤다. 그녀가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였던) 술은 파이어볼 시나몬 위스키인데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분석 기사에 따르면 그녀의 고향인 오하이오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술이다) 대개는 크게 가리지 않았다. 정작 식사는 하루에 한 끼 혹은 두 끼를 노숙자 쉼터에서 얻어먹은 날도 많았다 (예전 같으면 자존심 때문에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막상 그런 극단적 상황이 닥치고 보니 차츰 개의치 않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노숙자 쉼터의 식사는 형편없지만 대개 따뜻하기는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키 라르고 씨월드의 직원 식당보다 못하다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조련사에 대한 미련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돌고래가 그리웠다. 남자친구나 신혼집에 대한 미련은 어느 사이에 엷어지고 또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졌지만 그 놈의 돌고래가 문제였다. 그 놈의 돌고래.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돌고래에 대한 미련. 


  돌고래 머피는 그녀의 두번째 파트너였다. 첫번째 파트너였던 돌고래 바비가 선배 조련사가 훈련시켜 놓은 아이를 물려받은 경우였으므로 어려서부터 그녀가 돌보아가며 조련하고 호흡을 맞춘 것은 머피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일 것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머피의 길이는 5 피트 남짓하였는데 나중에는 12.5 피트까지 자랐다. 그녀는 머피를 먹이고 재우고 훈련시키고 놀게하였던 모든 순간을 기억했다. 머피! 그 사건 이후 머피는 어떻게 되었을까?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는 처리되었을 것임을 알았다. 그녀는 씨월드에서 8년을 일했고 안전 사고를 야기하거나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동물들의 운명이 뉴스에 자세히 보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정도는 알았다. 아! 머피! 결국 그녀의 불운은 친자매와도 같았던 머피에게까지 퍼져나간 것이다. 그런 생각에 깊게 빠져들 때면 어쩔 수 없이 출구를 찾기 위해 술을 마셨고 언제나 그렇듯 술에는 출구가 없었다. 그래도 웨이트리스으로 근무하는 시간조차 말끔한 정신이 아니었던 때가 있었던 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우드하우스라는 남자를 만난 것은 그 무렵의 일이었는데 하필 그 날 그녀는 이른 저녁부터 750 밀리리터 파이어볼 시나몬 위스키 한 병을 깨끗하게 비우고 ‘데니스’에 출근한 참이었다. 야간 시간에 매니저가 직원용 창고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던 것은 그녀로서는 진실로 다행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이 이야기에서 행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 싶다). 이 작은 행운을 상쇄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녀는 직원 창고 안에 누가 숨겨두었던 짐 빔 반 병을 다시 한 번 해치웠는데 그 날 따라 또 야간 손님이 거의 없어 컴플레인 대란을 피해간 것도 조금은 운이 따른 일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운이 찾아왔다. 새벽 4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찾아온 중년 남자였다. 낡고 꾀죄죄한 차림에 떡져 엉킨 머리칼과 기름때로 번들번들한 얼굴이 딱 24시간 패스투푸드점 새벽 손님의 전형이었다. 아침을 먹으러 왔다고 했고 가장 인기 있는 브렉퍼스트 메뉴 중 하나인 ‘컨트리-프라이드 스테이크 앤 에그’를 주문했다. 그녀는 (아직 술에서 깨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 대화가 시작되었는지는 나중에 기억하지 못하였다. 아마도 남자가 적당히 받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짐작은 하지만. 막판에는 아예 테이블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떠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대화가 흘러가는 중에 그녀가 전직 돌고래 조련사임을 언급했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의 눈이 호기심으로 살짝 빛났다는 부분이다.


- 그러면 돌고래를 직접 길들여 본 적이 있소?
- 장난해요? 그게 직업이었다니까요!
- 돌고래 쇼도 하고?
- 물론이죠. 관람객들 앞에서 머피랑 (머피는 제 파트너 돌고래 이름이요) ‘풋루즈’에 맞춰서 춤도 추었는데 걸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춤 동작을 흉내내어 보였다 (술 기운이 남아있었음이 확실했다).
- 그렇다면 보여줄 수 있소?
- 뭘요?
- 길들이기.
- 무슨 길들이기요? 누구를요? 어디서요?
- 내 집에서. 한 놈이 있으니까.
- 뭐가 어쨌다고요?


  그녀의 다소 무례하고 술주정을 겸한 질문에도 남자는 참을성있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집에 수조가 있고 수조에 한 놈이 산다. 다루기가 어려워서 손도 못 대고 있다. 아가씨가 전직 돌고래 조련사라면 한 번 같이 가서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제서야 그녀는 남자의 제안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 집에 돌고래가 있단 말이에요?


  맨 정신에 들어도 의아한 이야기지만 술김에 들어도 의아한 이야기였다. 세상에 자기 개인 돌고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프리 윌리’도 아니고. 뭐, 물론 그만큼 돈이 많은 사람이 없으리란 법이 없다. 뭐, 빌 게이츠가 워렌 버핏 같은 사람이라면 자기 집에 돌고래 몇 마리 들여놓는 정도는 일도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자가 ‘데니스’에서 저녁을 먹을리가 있겠는가 (워렌 버핏이 ‘맥도날드’ 애호가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녀 자신만 하더라도 멀쩡한 직장과 멀쩡한 남자친구가 있던 시절에는 ‘데니스’나 ‘아이홉’ 같은 곳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 말도 안 돼. 거짓말.


  남자는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잡초처럼 더부룩하게 자란 수염 사이로 누렇게 변색된 치아가 보였다. 누가 봐도 백만장자일 가능성은 없었다. 장난이 확실했다. 남자가 100 달러 지폐 석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 놓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300 달러와 억만장자 사이에는 꽤 넓은 간격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목구멍을 촉촉하게 적셔 줄 파이어볼 위스키의 짜릿한 느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길이가 어느 정도 되는데요?
- 5 피트 정도요. 대충 눈 짐작으로는.
- 많이 작은 편이군요.
- 아직 다 자라지 않았으니까.
  이런 반응을 보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약을 파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돌고래 머피를 처음 맛났을 때도 5 피트였지. 마구잡이로 지어냈다기엔 좀 구체적 아닌가. 그녀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보이자 남자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 그건 선금이요. 만약에 그 놈을 길들일 수 있다면 700 달러를 더 드리지. 
- 이봐요, 아저씨. 길들인다는게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에요.
- 좋아. 몇 번 쓰다듬고 한 번 올라타는 정도는 어떻소? 할 수 있겠소?
- 그거야 뭐….
  남자의 눈이 다시 한 번 반짝 빛났다.
- 눈을 가리고도?
- 물론이죠. 일년 365일 돌고래와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였는데요.
- 그럼 내기를 합시다. 눈을 가리고 놈을 다룰 수 있으면 500 달러 추가요. 


  앞치마를 벗고 유니폼을 캐비닛에 던져 좋은 다음 남자를 따라 나가면서 그것이 성적 희롱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요컨대 선금 300 달러에 잔금 700 달러 추가 지급이라는 것도. 눈을 가리면 500 달러를 더 주겠다는 것도. ‘몇 번 쓰다듬고 한 번 올라타는 정도는 어떻소?’ 같은 말도 곱씹어 볼 수록 이상했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돌고래는 종종 성적 조크에 등장하지 않는가!) 신기한 일이지만 그녀는 그런 상황까지도 각오를 하고 따라 나섰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하룻밤에 무려 1,500 달러라면 눈 딱 감고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노숙자 쉼터’나 ‘데니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극한 상황 앞에서 사람의 기준점이란 늘 새로운 바닥을 찾아내는 법이다. 


  차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남자의 저택 앞 마당에서 마침내 직경 50 피트에 깊이 6 피트짜리 수조를 발견했을 때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음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남자가 변태일 가능성은 한결 줄어들었고 연쇄 살인마일 가능성만 남게 되었으니까. 화장실로 들어가 남자가 건네준 전신 수영복으로 갈아 입었다. 딱 맞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작지는 않았다. 남자는 밖으로 나가기 전에 그녀에게 안대를 씌웠다. 안대를 쓴 상태에서 확인 가능한 것은 엷은 불빛 정도였고 희미하게 사물이 분간이 가기는 했지만 정확하지는 않았다.
- 안전 난간이 있어서 물로 떨어질 염려는 없을 거요. 
- 어디에 있죠? 돌고래는?
- 물 속에.


  당연히 물 속에 있겠지. 그러면 물 밖에 있겠는가. 그녀는 정신을 집중하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수도 없이 해왔던 일이다. 언제라고 돌고래를 항상 눈으로 보고 불렀던 것은 아니다. 더듬어 수조의 가장 자리를 찾았다. 강화유리의 판판한 면에 대고 손바닥을 두드렸다. 탁탁탁! (이상하게도 잊고 있던 그 순간 키 라르고 씨월드 대참사가 기억났다) 항상 목에 매달고 다니는 목걸이의 존재가 불현듯 생각났다. 호루라기. 씨월드에서 쓰던 것. 다시 한 번 난간을 두드리며 호루라기를 짧고 빠르게 불었다. 효과가 있었다. 저 멀리, 아주 깊은 곳에서 물살을 헤치는 소리가 났다. 녀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묵직한 느낌이 아니라 가볍고 날쌔게 살랑거리는 느낌이었다. 부피가 크지는 않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어린 녀석이었다. 탁탁탁! 훈련된 돌고래라면 이 손바닥을 두드리는 신호와 호루라기 소리의 강도와 박자와 조합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유도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 지금은 그저 두드리는 수 밖에 없다. 마구 불러대는 수 밖에 없다. 소리를 듣고 다가오도록. 진동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손을 내밀기에 앞서서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문득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씨월드의 돌고래들이 아니지 않은가! 야생에서 어떤 상태로 살아오지 모르는데 무턱대고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도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장갑을 낀 손이 떨렸다. 다른 한 손으로는 난간을 단단히 잡았다. 이윽고 물살을 헤치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검은 형체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그녀는 그것을 만지지 못했다. 불과 일 년 전까지 매일 하던 일인데.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던 남자가 외쳤다.
- 어이, 아가씨. 쓰다듬지 않으면 무효요!


  그녀는 깊이 숨을 몰아쉬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속으로 되뇌었다. 돌고래가 그렇게 험한 동물은 아니지 않은가. 어려서 사랑에 빠졌던 다정하고 영리한 친구만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두 번째 시도에서 그녀는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었고 (어쩌면 아직 남아있는 술기운이 연료가 되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바다 친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차갑고 비릿한 느낌이 익숙하지만 낯설기도 했다. 물방울이 얼굴로 튀었다. 남자의 껄껄 웃음이 귀청을 때렸다.
- 브라보! 브라보! 웰 던!


  다시, 멀어졌다. 한 번 그에게 헤엄쳐왔던 녀석은 짧은 접촉 이후에 새침하게 멀리 도망을 갔다. 이제 그녀가 할 일은 다시 신호를 보내서 돌아오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난간을 넘어 들어가 녀석에 목덜미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만 번도 더 해보았다 일이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그녀는 호루라기를 불고 강화유리를 두들겼다. 물살을 헤치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진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왜 자신이 망설이다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돌고래가 내는 특유의 소리가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소리 중 대부분은 인간의 청력으로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녀가 받은 느낌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돌고래들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있으니 유무의 차이 정도를 어렴풋하게 느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그 부분이 그녀를 고민스러운 만들었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기를 접고 1,500 달러를 포기할 것인가. 


  녀석이 바로 난간 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체중을 실었다. 남자가 변태도 아니고 연쇄 살인마도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기왕에 여기까지 온 바에야 1,500 달러는 받아가야 하겠단 생각 때문이었다. 곧이어 녀석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 그녀는 숨을 한 번 짧게 들이마시고 난간을 훌쩍 넘어 야간의 조명 속에서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형체를 안았다. 미끄러웠다. 비린내가 생각보다 많이 나지는 않았다. 고맙게도 녀석은 몸을 흔들어 그녀를 떼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배우고 터득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녀석을 기분좋게 쓰다듬으려고 애썼다.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짧은 라이딩은 성공적이었다. 녀석은 뜻밖의 손님을 싣고 수면 근처에서 우아하게 미끄러지면서 수조 반대편까지 갔다. 아주 짧게 나마 물 아래를 유영했을 때는 그녀도 숨을 참고 순순히 따라갔다. 수조의 가장자리에 이르러 그녀는 녀석의 기분을 상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몸을 한 쪽으로 기울있고 녀석을 안은 팔에 힘을 주어 커브를 틀도록 유도했다. 제발! 제발! 제발! 천신만고 끝에 녀석이 몸을 틀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갔던 길을 그대로 밟아 미끄러져 돌아와 난간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그녀는 날렵하게 난간을 넘어 들어와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어느새 아래로 내려와 기다리고 있는 남자 앞에 섰다. 심장이 폭주하듯이 달리는 것 같았다. 안대를 벗고 외쳤다.
- 보셨나요? 이 정도면 성공이죠?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단 하룻밤에 1,000 달러를 벌다니. 믿을 수가 없어. 그녀는 얼굴의 물을 닦아내고 수조 안을 다시 넘겨다보다가 몸이 뻗뻗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 맙소사! 수조 안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것은 돌고래가 아니라 작은 상어 아닌가.  


*


- 나는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사람이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마중물로 쓸 약간의 자금과 똘똘한 자산관리사가 있었을 뿐이지. 그 친구의 조언에 따라 기술주 투자로 성공했지만 사실 나는 스마트폰도 제대로 쓸 줄 모른다오.
  우드하우스 씨의 설명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무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도 뒷골이 서늘했다. 상어! 상어란! 크든 작든 상어는 상어 아닌가!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 같았다.


- 원래는 헐리우드의 작은 영화사 한 곳에서 임원으로 일했지. 정작 그걸로는 돈을 못 벌었으니 그쪽으로는 재능이 없었던 것 같소. 퇴직금을 받아 자산관리사에게 맡기고 플로리다로 건너와 검소하게 노후나 즐기려고 했는데 갑자기 돈이 쏟아져 들어온 거요. 어디에 쓸 줄을 몰라서 유일한 취미가 낚시였으니 배를 하나 샀지. 그 다음 이야기가 구구절절한데 긴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면 낚시를 하러 나갔다가 상어를 만났다고 보면 되오. ‘백경’의 하드 코어 (아니, 뭐. 그렇다고 ‘백경’이 하드 코어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고) 상어 버전과 같은 일을 겪었다면 이해가 가오?
  그는 바지 밑단을 살짝 끌어 올려 왼쪽 다리의 의족을 보여주었다. 


- 1 라운드에서 다리를 먹혀서 울화통이 터진 나는 2 라운드를 열기 위해서 녀석을 찾아 다녔지 (진짜로! 물론 혼자서는 아니고 전문 선원들과 전문 사냥꾼들이 동승시키기 했소).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다섯 시간이 넘는 혈투를 벌여 녀석의 배때기에 작살을 꽂는데 성공했다오. 복수에 성공해서 들뜬 마음으로 상어를 끌어 올렸는데 저 작은 놈이 뱃속에 들어있지 않겠소. 작살이 교묘하게 피해갔더군. 어미 뱃속에서 나와서 살 수 있을만큼 충분히 자라 있었던 것도 운이라면 운이고. 그것도 대단한 일 아니오. 비록 내가 어미를 사냥하기는 했지만 (사냥이 아니라 복수지) 새끼까지 해치기는 내키지 않더군. 어미 뱃속에서 내 잃어버린 다리를 찾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찌하겠소. 저 놈은 돌보아 줄 사람이 필요하고 나는 남는 게 돈이니. 그래서 팔자에도 없던 아쿠아리움을 집에 만들게 된 거지. 
- 전문가들에게 맡기거나 동물원에 보내볼 생각은 해보셨어요?
  그녀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맡기다’를 ‘막기다’라고 발음할 정도였다.
- 내가 미쳤소? 그러면 그 사람들이 캐묻겠지. 어디서 났냐고. 새끼 상어가 무슨 카지노에서 운 좋아 딸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소?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법적으로 허용된 사냥을 한 건 아니라서 (요즘 언론이나 환경 단체는 상어보다 더 무섭다오). 무엇보다 쟤는 돌고래가 아니에요, 아가씨. 상어랑 말이오. (내가 거짓말을 했던 건 미안하지만) 돌고래와 달리 상어를 반겨줄 곳이 몇 군데나 있겠소. 그렇지 않소?
- 그러면 그동안 먹이는 어떻게 주셨고요?
- 우리집 집사을 시켰지. ‘칙필레’에서 치킨 너겟을 사다 던져주라고 했소.
  그녀가 노려보자 그제서야 남자는 ‘농담이오’라고 소리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 그러면 이제 어쩌시려고요?
  남자의 눈이 반짝 빛났다.
- 모르겠소. 하지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기왕에 재미있는 내기를 한 판 했으니 한 판을 더 돌립시다. 내가 배팅을 올리지. 아가씨도 그만큼 감수해야겠지만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닐거요. 내 장담하지. 
- 그게 뭔데요?
- 내 집에서 머물면서 저 놈을 돌봐줘요. 길들이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지? 잠깐 사이에 그렇게 친해질 수 있으면 전담해서 같이 지내다보면 뜻대로 가르칠 수 있을 게 아니오.


  그녀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이제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어요. 너무 화가 났던 나머지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는데 분명 돌고래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돌고래 조련사고요. 저건 상어니까 상황이 다르죠. 얼마나 위험한 장난을 하신 건지 생각해보셔야 할 거예요. 혹시라도 제가 다쳤으며 어짜려고 하셨어요?
- 험한 일은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면 이상하게 들리겠지? 솔직히 말하리다. 그쪽이 나보다 더 전문가겠지만 기껏 5 피트짜리 어린 상어 아니요. 입을 크게 벌려 물어 봐야 손목 정도겠지. 그만큼 보상해 줄 돈은 있다오. 


  그 말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음은 물론이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대꾸할 가치조차 없었다. 그녀는 받아든 수건으로 머리칼의 물기를 닦아내고 자기 옷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 잘 생각해 보시오. 나쁘지 않은 제안 같은데. 어차피 조련사로 씨월드에 돌아가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 아니오. 평생 ‘데니스’에서 웨이트리스로 살 게 아니라면 이번 기회에 새 직장을 고려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한데.  
- 제가 씨월드에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이죠? 그런 건 어떻게 아시는 거죠?
- 본인이 이야기 하지 않았소. 
  그런 이야기까지 했다고?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순간 머쓱해졌다. 
- 아무튼 알겠습니다. 저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 볼께요. 내일 다시 출근을 해야 하니까요.
- 생각해보시오. 정말 나쁜 기회가 아니라니까. 우리집 정원사가 연봉 5만불을 받아요. 하물며 가정교사를 고용하면서 푼 돈을 드리겠소? 돈이 남아 돌아서 어디 기부라도 해야할 판인데.
  가정교사?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방금 전 상어 주둥이 앞에 손을 내밀었던 사람에게 그게 할 말인가? 손목 하나 정도는 자기가 보상해줄 수 있다고? 그녀가 아무 대꾸없이 옷을 챙겨 입고 나오자 그녀는 남자는 전화기를 들고 전속 운전기사를 깨워 아래층으로 내려오라고 지시했다. 숙녀 분을 잭슨빌까지 다시 데려다 주라고.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 그러니까 ‘사운드 오브 뮤직’하고 ‘샤크 탱크’를 합쳤다고 생각해보시오.


  그녀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제서야 남자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 그냥 아가씨 부담감을 풀어주려고 농담을 했는데… 미안하오.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거랄까. 나처럼 헐리우드에서 오래 일한 고물들은 머리가 굳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일만큼 잘 돌아가지 못한다오. 상상력이라는 게 없지. 그냥 ‘이미 알고 있는 A’와 ‘이미 알고 있는 B’를 섞었다고 누가 설명을 해주면 그제야 그게 영화로 만들만한 아이디어인지 아닌지, 또 그래서 최종적으로 딜을 할지 말지 판단을 할 수가 있다오.  
  기가 막혀. 그녀는 대꾸하지 않고 남자가 내민 명함만 받아 들고 차에 올랐다.  


*


  우드하우스 씨의 제안을 다시 고려하기까지는 3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데니스’의 야간 손님들과 서너차례 실갱이를 하고 난 다음에 그녀는 (그게 잭슨빌이든 어디든) 평생 웨이트리스로 살 수는 없단 사실을 깨달았다. 3일이나 고민했던 것도 ‘돌고래가 아닌 상어’라는 대단히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빨리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연락을 받은 우드하우스 씨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오만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어차피 그럴 걸 왜 튕겼소?) 그녀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드하우스 씨의 저택에서 그녀가 받는 대우는 아주 훌륭한 수준이었다. 숙식이 해결된 상태에서 연봉 7만 5천불에 위험 수당까지 따로 받았다. 위험 수당을 받았지만 실제 하는 일이 그렇게 위험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주 어려서 잡혀온 상어라 야생의 본능이. (아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는 듯 했다. 처음에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하루 하루 함께 생활했다는 과정에서 차츰 그런 마음이 엷어져갔고 이내 돌고래를 다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편안함으로 상어를 다루게 되었다.


  참, 이름. 아기 상어의 이름은 오닐이었다. 그녀가 아기 상어의 이름을 물었을 때 남자는 짧게 대꾸했다. 
- 이름? 오닐이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고는 껄껄 웃었다.
-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상어 이름 아니오?


  그녀는 오닐을 훈련시켰고 오닐을 그녀를 따랐다. 석 달이 지나자 차츰 신호가 통하기 시작했고 일 년이 지나자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다시 일 년이 지나자 과거 씨월드에서 돌고래들이 했던 모든 놀이들을 재현할 수 있을 수준이 되었다 (‘풋루즈’에 맞춰 춤을 추는 것만 빼고 말이다). 꼬리를 내밀어 수면을 때리는 ‘테일 슬래핑(Tail Slapping).’ 순간 몸을 날려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가 몸을 틀어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며 거대한 스플래쉬를 일으키는 ‘브리칭(Breaching).’ 그리고 몸을 수직으로 세워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주변을 관찰하는 ‘스파이-호핑(Spy-hopping).’ 그녀가 다시 찾아온 동물과의 교감에 즐거움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고래 혹은 돌고래들의 행동 습성으로 알려진 것들을 상어가 똑같이 해낸다고?) 어떻게 생각하면 전술한 습성들 또한 그 이유가 명확히 밝혀져 있지는 않다. 그저 여러 가설이 존재할 뿐이다. 고래와 상어 사이에 어떤 유전자가 공유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인류가 아직까지 모르는. 또 생각해보면 오닐은 어려서 잡혀와 상어식의 사회화를 (그러니까 그런 게 있다면) 겪지 않았고 내내 돌고래 조련사와 함께 생활했다. 어쩌면 그런 영향도 있지 않을까?  


  이미 돌고래 머피와 상어 오닐 사이에는 차이가 없었다. 단지 관객만 없을 뿐이었다. 아니, 단 한 명의 관객이 있기는 했다. 우드하우스 씨. 말이 씨가 된다고, ‘사운드 오브 뮤직’ 레퍼런스로 그녀를 가정교사에 빗대었던 그의 농담은 다른 방식으로도 실현되었다. 그와 그녀 사이에도 차츰 신호가 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남자의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 남자는 (마치 집 안에 서커스단을 들여 놓고 만족해하는 사람처럼) 자기 방 2층 발코니에 앉아 땅콩을 까먹거나 잭 링크스를 씹으며 조련 과정을 지켜보고는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차츰 장난기가 사라졌고 진지한 표정으로 마당에 내려와 지켜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아예 열성적인 팬처럼 수조에 매달려 환호하고 소리를 질렀다. 뭐,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유일한 공연. 유일한 관객. 그러다보니 볼품없는 외모나 정 떨어지는 말투 안에 숨어 있는 부드러운 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질만능적이고 염세적인 세계관 안에 (샤크 탱크?) 정말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세계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을 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예를 들어 알고 보니 미스터 우드하우스는 유니세프, 국경없는 의사회, 월드비전에 정기 기부를 하는 사람이었고 그건 자기 말처럼 어디에 쓸 줄 물라서 썩어 나는 돈을 처분하기 위해 벌이는 일은 아니었다.) 한 번 불이 붙자 19년이라는 나이 차이는 이내 아무 의미 없는 숫자가 되었다. 그들은 수조 옆에 다이닝 공간을 만들고 하루 세 끼를 그 곳에서 식사했다. 남자도 상어 오닐을 쓰다듬고 (상으로) 작은 물고기를 던져주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들이 밤의 일렁거리는 조명 아래서 간혹 로맨틱한 무드로 빠져들때면 상어 오닐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방해를 했다. 스파이 호핑으로 호기심 어리게 지켜보거나 테일 슬래핑으로 관심을 끌었다. 그것은 마치 엄마 아빠 사이에 끼어들어가고 싶어 안달하는 어린 아이의 심통 같아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었다. 


  어느새 그들은 (그러니까 상어 오닐을 포함한 그들은) 묘하게 잘 어울리는 한 가족처럼 보였다. (알콜 중독자) 전직 돌고래 조련사와 (외다리) 전직 영화사 중역, 그리고 아기 상어. 그녀는 이렇게 2012년과 2013년을 보내는 동안 다시금 예전의 모습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오랜 친구인 파이어볼 시나몬 위스키에도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미세스 우드하우스가 되었다. 이제 신혼방이 된 우드하우스 씨의 발코니에서 정원과 수조를 내려다보며 그녀는 지난 몇 년간 자신에게 벌어졌던 믿을 수 없는 불운과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는 행운에 대해 되새겨 보았다. 그러다 문득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미스터 우드하우스가 사랑하는 그 영화에서) 나온 대사 한 구절을 기억해냈다. 마리아 수녀와 수녀원장이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에서 나온 대사다. ‘신은 한 쪽 문을 닫을 때 어딘가에 창문을 열어 두신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마치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두고 하는 이야기 않은가? 이제는 남편이 된 우드하우스 씨에게도 그 이야기를 했다. 동의하지 않느냐고. 우드하우스씨는 껄껄 웃으면서 이제는 아내가 된 그녀에게 대답했다.
- 반은 맞고 반은 틀리오. 그 몹쓸 작자는 심술덩어리여서 어딘가에 열어둔 창문에 몰래 똥을 발라두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지. 자, 여기서 질문이오. 그러면 애초에 왜 한 쪽 문을 닫아버렸을까? 무슨 의도로?   


*


  2014년이 되자 그들의 생활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결혼 생활은 행복했고 그 행복은 단지 경제적으로 윤택하였기 때문에 빚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생겼고 열 달 후에 건강하게 태어났다. 딸이었다. 그들은 로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드하우스씨는 마흔 여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아버지가 된 셈이지만 그가 몸 담고 있었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전통과 풍속을 고려하면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균형을 잡아갔다. 단지,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을 뿐이다. 상어 오닐이 자라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7피트를 넘어 9피트까지 다다랐고 2014년 무렵에는 12피트를 넘어섰다. 이제 개인 저택의 수조에서 키우기에는 아무래도 쉽지 않아 보였다. 비단 길이만큼 문제는 아니었다. 덩치가 커지고 식사량이 늘어난 것도 문제였고 (세 가족과 저택에서 일하는 집사, 주방장, 운전기사, 청소부들의 식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상어 오닐에게 들어갔다) 더 이상은 아기 상어가 아닌만큼 안전상의 문제 또한 더 이상은 간과하기 어려웠다. 상어 오닐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숙한 대상으로 여겼던 그녀나 우드하우스 씨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나머지 그 저택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수조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 해 여름 청소부 한 사람이 수조에 빠졌다가 혼비백산하여 실신한 상태로 구조된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우드하우스 씨의 가문 변호사는 (이제 참을만큼 참았다며) 상어 오닐을 동물원이나 씨월드에 기증하라고 부추겼다. 그녀는 오닐과 헤어지는 것이 싫기는 했지만 씨월드라면 오닐에게 훨씬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리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그리고 로즈. 어린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같은 집에 상어를 (이제는 아기 상어도 아니다) 키운다는 것은 분명 생각해봐야 할 만한 일이었다.


  결국 오닐의 새 집은 미대륙을 가로질러 반대편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퍼시픽 씨랜드’로 결정되었다. ‘퍼시픽 씨랜드’는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에서 50 마일 떨어진 곳에 조성한 인공 섬에 새로 개장한 명소로 인근의 ‘샌디에고 씨월드’와의 경쟁을 위한 차별점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씨월드’와 ‘씨랜드’라는 이름의 차이 이상의 무엇. 그리고 운영위원회는 태평양 한 가운데 위치한 인공섬이라는 공간적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심해 생물이나 거대 생물을 수집하는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양육된 (아마도 덜 위험한) 상어는 그들의 입맛에 딱 맞았다. 또한 플로리다 혹은 키 라르고를 배제한 것은 우드하우스 씨가 그녀의 안 좋은 기억을 배려해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만약 상어 오닐이 그쪽으로 보내졌다면 그녀로서는 면회를 가는데도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 분명했다. 오닐을 떠나 보내는 날 우드하우스 씨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 이제부터 뭘 할 생각이오? 오닐이 떠났으니 이제 여기서 할 일이 없잖소.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 저는 가정교사가 필요한 동안까지만 있다가 떠날 겁니다.
  그 대답은 우드하우스 씨를 아주 흡족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퍼시픽 씨랜드’의 운영위원회는 상어 오닐이 돌고래 쇼에서 볼 수 있었던 모든 동작을 다 할 수 있다는데 크게 고무되었다. 그들은 우드하우스 저택에 찾아와 그녀가 상어 오닐을 다루는 과정을 직접 보기도 했고 녹화한 비디오를 가져가 검토하기도 했다. 그들의 목표는 상어 쇼였다. 물개 쇼도, 돌고래 쇼도, 고래 쇼도 아닌 상어 쇼. 그건 이제까지와 차원이 다른 상품이었다. 상어 오닐의 ‘스파이-호핑’ 동작을 촬영한 영상을 보며 한 고위 간부는 (마시던 펩시 콜라가 턱으로 다 흘러내리는지도 모르고) “이런 공연이 가능하다면 ‘살아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상어 수조의 상단에 달려있는 카메라로 촬영한 상어 오닐의 스파이-호핑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실제 전시되어 있는 영화 ‘조스’의 상어 모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뒤이어 영화 ‘조스’의 그 장면을 기억하며 몸서리치게 했다). 몸을 수직으로 세워서 수면 위로 치솟아 오르는데 돌고래가 아니라 상어. 게다가 눈도 앞에 달렸고 입도 벌리는데 날카로운 치아가 보이고.


  문제는 두 가지. 상어 오닐이 도무지 말을 들어 먹지 않는다는 것. ‘퍼시픽 씨랜드’의 조련사들이 상어 오닐을 두려워 한다는 것. 그래서야 계획대로 상어 쇼를 런칭할 수 없었던 씨랜드에서는 그녀에게 긴급 도움을 요청했다. 상어 오닐을 진정시키고 다른 조련사들이 적응이 될 때까지 몇 주 만이라도 도와달라는 것. 그래서 계획 중인 추가 투자를 씨랜드가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 그 소식을 들은 우드하우스 씨는 차갑게 웃어보였다.  
- 항상 그런 법이지. 모든 일의 문제는 투자지.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과거와 결별하고 이제 새로운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어린 딸을 두고 캘리포니아에 다녀올 것인가? 나중에 생각해보아도 그 선택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만이었는데 뭐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는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어린 딸을 보모에게 맡기고. 우드하우스 씨도 그녀와 동행했다. 상어 오닐을 대중 앞에 선보이는 8월 1일의 런칭 행사에서 우드하우스 부부를 함께 소개하고 싶다는 요청 때문이었다. 상어 오닐의 부모. ‘퍼시픽 씨랜드’의 상징을 빚어낸 고마운 사람들. 씨랜드 지분의 2.8%를 가진 사람들. 게다가 그녀는 상어 오닐을 돌고래처럼 다룰 수 있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퍼시픽 씨랜드’에 새로 런칭하는 어트랙션의 이름은 ‘샤크 탱크.’ 안내판 앞에서 우드하우스 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 거보오. 머리가 굳어서 안 돌아가는 건 영화계 높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샤크 탱크’는 직경 300 피트에 깊이 10 피트짜리 수조를 중앙에 배치하고 원형으로 500석 규모의 좌석을 둘러놓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북쪽면으로 섬 모양의 세트와 무대, 그리고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스크린은 24대의 카메라로 잡은 360도 현장의 모습을 프로젝터를 통해 확대해서 띄워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무대 한 가운데 서서 그녀는 물 속을 유영하는 상어 오닐을 보았다. 조금 더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지만 우드하우스 저택의 수조보다 삽십 배는 커다란 공간 때문에 느끼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오닐도 그녀를 발견했는지 무대쪽으로 다가왔고 테일 슬래핑으로 물을 튀겼다. 조련의 ‘조’자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씨랜드 관계자가 물에 흠뻑 젖은 꼴로 어줍잖은 해석을 내놓았다. 
- 녀석도 반가워서 저럴 겁니다.
  뒤이어 그들은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 ‘샤크 탱크’의 공식 런칭 행사는 이미 알고 계신 것처럼 8월 1일입니다. 대중에게 오픈하는 것은 9월 1일로 잡고 있고요. 앞으로 2주 정도 우드하우스 부인께서 저희 조련사들을 잘 가르쳐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희가 드리는 첫번째 부탁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8월 1일의 런칭 행사에서 직접 오닐을 다루는 것을 보여주시는 거고요. 어렵지는 않습니다. 평소에 하시던대로만 하셔도 다들 놀라 나자빠질 겁니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말을 받았다.
- 그 자리에서 우드하우스 씨도 함께 소개드릴 거고요.        
  다시 첫번째 사람이 끼어들었다.
- 그 자리에는 주요 언론과 정재계 인사들이 모일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래서 저희 씨랜드의 향후 투자 가치가 달려있는 중요한 행사라고 설명드렸던 겁니다. 물론 사전 신청을 바탕으로 추첨 배정한 일반 대중들도 있을 거고요. 경쟁률이 300대 1 정도 되었습니다. 홍보 효과가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별로 관심없는 이야기였다. 중요한 것은 7월 31일의 사전 리허설, 그리고 8월 1일의 런칭 행사에서 그녀가 상어 오닐과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조련사 인생의 마지막 무대.  


*


  7월 31일의 리허설은 성공적이었다. 거짓말처럼 상어 오닐은 그녀의 말을 잘 따랐다. 씨랜드 관계자들은 흥분했다. 조련사들은 그녀를 우상처럼 떠받들었다. (어머! 저 상어 녀석 우리 말은 더럽게 안 듣더니!) 역시 돌고래 쇼에서 등장하는 테일 플래핑과 블래칭, 그리고 스파이-호핑에 지켜본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스파이-호핑은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였다. 상어가 몸을 수직으로 세워 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자신들을 지켜보자 모두가 충격의 신음소리를 내었다. 오닐이 다시 물 속으로 얌전히 들어가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살아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다”라는 찬사를 하루 동안에 백 번도 더 들은 것 같았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손을 흔들었다. 


  우드하우스씨는 무대 뒤에서 장미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에게 건네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은퇴 1일전 기념 선물이오. 
- 내일은 마지막에 당신도 함께 무대에 올라야 하잖아요. 
- 나도 같이 은퇴를 해야지. 이제 상어가 아니라 우리 딸을 키울 때요.


  8월 1일의 런칭 행사를 앞두고 그녀는 그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맞는 말이었다. 이제 돌고래도 상어도 아닌 딸아이를 키울 때였다. 키 라르고에서 그런 사건이 없었다고 치자. 평생 돌고래 조련사로 살았겠는가. 물론 씨월드를 쫓겨나듯 떠나지는 않았겠지만 어차피 나이가 들면 무대를 물려주고 다른 역할로 옮겨 갔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또한 모두 신의 뜻이라고 여겨졌다. 신이 어딘가에 열어 놓은 창문. 과연 그렇지 않은가?


  그녀는 무대에 오르기 전 (남편인 우드하우스 씨와 함께)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인사를 하고 환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잠수복과 오리발을 갖춰입고 장갑을 끼웠다.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달라붙거나 시야를 가리는 일이 없도록 포니테일로 묶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 상어 오닐을 가까이 불렀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그맣게 말했다.
- 오늘이 너와 나의 마지막 공연이구나. 정말 잘 해보자.


  상어 오닐이 그 말을 알아듣고 이해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 날 굉장한 연기력을 보여주었음은 사실이었다. ‘테일 슬래핑’은 경쾌하면서도 장난스러웠다. ‘블리칭’은 거의 육상 선수가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듯 온 몸을 던져 유연하면서도 우아했다. ‘스파이-호핑’은 언제나 그랬듯이 관중 모두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그녀 또한 신이 나서 작은 물고기를 마구 던져 가며 열심히 손뼉을 치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모든 공연이 끝났을 때 ‘샤크 탱크’의 모든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냈고 그녀는 그 답례로 앵콜 공연을 이어갔다. 마지막 ‘스파이-호핑’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높이! 그 어느 때보다 섬뜩하게! 수조 상공의 카메라가 오닐이 솟아오르는 곳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하여 무대 뒷편 스크린으로 쏘아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는 상어 오닐에게 신호를 보냈다. 오닐! 물 위로 상체를 밀고 올라와! 누구 말마따나 ‘살아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한 번 보여주자고! 


  상어 오닐은 물 아래 깊이로 내려갔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용솟음 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정확한 디렉션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상어 오닐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관중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탄성? 그래, 맞아. 누구도 어디서도 이런 장관은 본 적이 없겠지. 남들이 돌고래 쇼에서 하는 일을 우리는 상어 쇼에서 하고 있는데. 안 그래? 귀가 멍멍했다. 오닐이 솟아오르는 장면이 영화속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방향이 이상했다. 수직으로 올라가지 않는 것 같았다. 착각인가? 사람들이 하도 소리를 질러대서 뭐가 뭔지 분간이 가지 않는 걸까? 그렇지 않았다. 오닐은 똑바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지 않고 있었다. 오닐의 동선을 놓친 상공의 카메라가 황급히 각도를 재조정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오닐과 눈이 마주쳤다. 돌고래의 눈은 옆으로 달렸지만 상어의 눈은 앞으로 달렸다. 도무지 의도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녀를 보는 것도 같았고 카메라를 보는 것도 같았으며 그 자리의 모두를 보는 것도 같았다. 오닐의 몸은 허리를 튕기는 것처럼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블리칭’이었다. 그것도 그녀가 있는 무대를 향한 방향으로. 그녀가 지시한 적이 없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곧이어 거대한 물보라가 그녀를 향해 쏟아질 것이다. 왜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제 리허설에서도 똑같이 앵콜 공연을 연습했지만 이런 돌발행동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처음에 그녀가 속삭였던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말 때문일까? 스포츠 선수들이 은퇴하는 감독에게 물통을 쏟아붓는 그런 식의 짖궂은 장난일까?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상어 오닐이 무대 바로 앞에서 다이빙을 끝냈다. 몰려오는 물살에 그녀는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고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키 라르고 씨월드에서의 사건을 떠올렸다. (아! 돌고래 머피!) 관중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상어 오닐의 그 행동이 시나리오에 없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순간 ‘샤크 탱크’를 가득채운 감정은 놀라움이었을까? 아니면 두려움이었을까? 시나리오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어제 리허설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 ‘퍼시픽 씨랜드’의 높은 사람들이나 투자자나 조련사들, 그녀, 그리고 우드하우스씨. 남편? 그녀의 생각은 그 지점에서 멈추었다. 남편? 우드하우스 씨? 그가 무대 위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럴 수 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시나리오를 벗어났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다. 앵콜 공연이 끝나고 무대로 올라오도록 예정되어 있던 그가 조금 이르게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아! 어쩌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전에 두 번째 물살이 그녀를 덮쳐왔다. 무대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두 번째 ‘첨벙’을 했단 뜻이다. 상어 오닐이. 그렇지. 그랬겠지. 공포에 물든 관중들의 히스테릭한 함성. 서로 앞다투어 공연장을 빠져나가려는 소요. 귀가 멍멍했다. 리허설 장소에 없었던 사람들조차 뭔가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챌만한 일이 벌어졌단 뜻이다. 눈을 뜨면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이미 알 것도 같았다.            


  무대 위에 쓰러진 상태에서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방금 전 남편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그랬다. 보이지 않았다. 흥건하게 차올랐던 물이 빠져나가며 두 개의 다리가 남아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꼿꼿하게 서 있는 왼쪽 의족 다리. 하나는 잘려나간 채로 균형을 잃고 모로 넘어져 있는 오른쪽 다리. (상어 오닐이 그랬어! 우리 오닐이 말이야!) 몸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에 굳어갔고 생각은 멈출 줄을 모르고 마구잡이로 질주했다. 키 라르고 씨월드. 돌고래 머피. (살인) 돌고래의 (부주의한) 조련사. 고속도로변 ‘데니스’의 야간 웨이트리스. 파이어볼 시나몬 위스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그녀의 고향인 오하이오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술). 만약에 그 놈을 길들일 수 있다면 300 달러를 더 드리지. (관람객들 앞에서 머피랑 ‘풋루즈’에 맞춰서 춤도 추었는데 걸요.) 상어 오닐? (어이, 아가씨. 쓰다듬지 않으면 무효요!) 하드 코어 버전의 ‘백경’이라고? (아니, 원래 ‘백경'이 하드 코어고!) ‘사운드 오브 뮤직’과 ‘샤크 탱크’를 합쳤다고 생각해 보시오. (아니, 이건 오히려 ‘딥 블루씨’와 ‘샤크네이도’를 합친 쪽에 가깝지 않은가! - 이렇게 쉽게 설명하면 머리가 굳어버란 헐리우드의 고물들도 단박에 알아듣고 바지에 오줌을 지릴 것이다.) 퍼시픽 씨랜드. (씨월드와 씨랜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테일 플래핑과 블래칭, 그리고 스파이-호핑 (살아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상어 오닐은 언제부터 우드하우스 씨를 노렸던 걸까? 1년 전? 2년 전? 아니면 그동안 내내? (왜? 어머니의 원수를 갚으려고?) 처음 만났을 때 돌고래 머피의 길이는 5 피트 남짓했는데 나중에는 12.5 피트까지 자랐다. 처음 만났을 때 상어 오닐의 길이도 그 정도였는데 지금은 훨씬 크다. (입을 크게 벌려 물어 봐야 손목 정도겠지? 지금은 성인 남성을 크게 한 입 베어 물고도 남을 정도라니까!)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오? (가정교사가 필요한 동안만 있다가 떠날 겁니다.) 그리고, 


‘신은 한 쪽 문을 닫을 때 어딘가에 창문을 열어 두신다.’ 그녀가 그 말을 인용했을 때 우드하우스 씨가 특유의 냉소로 대꾸한 말이 있었지. ‘그 몹쓸 작자가 어딘가에 창문을 열어 두면서 몰래 똥을 발라두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다.’ 뭐, 그런 비슷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래, 아마 그런 이야기였을 것이다.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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