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후 (28 Days Later, 2002) B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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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후 (28 Days Later, 2002) B평

by 김영준 (James Kim)

  볼프강 피터젠의 ‘아웃 브레이크’(1995)'라면 자이르산 원숭이가 기생 숙주다. 원숭이에선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는 이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전염되면 내장을 홀랑 녹여 버리는 살인적 치사율의 바이러스가 된다. 허나 대니 보일은 바이러스를 말하면서도 이런 식의 장르영화 컨벤션에는 시큰둥하다. 따라서 기생 숙주와 변종, 그리고 인류를 구원할 백신의 개념이 무심한듯 쉬크하게 증발해 버린다. 대신 좀비가 튀어 나온다. 감염자는 감염자로 무력히 죽어가는게 아니라 으르렁 좀비가 되어 비감염자를 전염시켜 감염자로 만든다. 이 바이러스의 이름은 <분노>다. 침팬치에게 19금 잔혹 영상을 주구장창 보여주는 가히 앤서니 버지스적 작업으로 태어난 결과물이다. 분노 바이러스가 창궐한지 28일 후 깨어난 짐 (킬리언 머피)은 인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대도시 런던의 한복판에서 감염자들과 싸워나가며 숨어있는 극소수 비감염자들을 규합하여 생의 투쟁을 벌인다. 

  의문은 이거다. 빨갛게 물든 눈으로 달려드는 좀비 감염자들만이 짐 일행의 적인가? 그건 아니다. 비감염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프랭크 (브랜든 글리슨)는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알고 일행들에게 좀비가 되기 전에 자길 죽여달라고 말한다. 허나 비감염자인 군인들은 짐 일행을 지켜주는 대가로 일행의 여자들을 노리개로 넘겨줄 것을 요구한다. 바이러스인지 개뿔인지, 인류를 위협하는 것들의 실체가 식은땀 뻘뻘나도록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역사상 '바이오 세이프티 레베루 4' 이상의 바이러스가 등장하는 영화치고 이렇게까지 그 미생물들을 욕보인 사례가 없다. 대니 보일은 적당한 짖궂음과 적당한 진지함을 양 손에 들고 폭력은 바이러스에서 기인한 생화학적 작용의 산물이 아니라 이기적 인간의 본성일 가능성을 말한다. 여기에 맞서는 대안은 오직 믿음, 의지, 희망. 만약 이 좋은 단어들을 실현할 수 없다면 이제 남은 것은 '왓 이프(What If)' - 디렉터스 컷으로 남겨진 두 번째 결말의 암울함 뿐이다.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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