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리에이터 (The Creator, 2023) B평
by 김영준 (James Kim)내 새끼를 키우는 데는 온 인류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남의 새끼는 과연 인류의 적과 다름이 아니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8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영화까지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요즘 마케팅이 다 그렇지만) 아무데나 AI를 가져다 붙이면서 일단 우기고 보는 행태도 신물이 난다. 퍼스널 컴퓨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점에 아무데나 컴퓨터를 가져다 붙였던 것처럼 (컴퓨터 세탁?) 요즘에는 아무데나 일단 다 AI를 가져다 붙이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오랫동안 사용해오던 절전 타이머나 항온/항습 제어도 갑자기 AI라고 주장하는데 가끔은 정말 혼란스럽다. 이는 원래의 'Artificial Intelligence' 혹은 '인공지능'과는 다른 'AI'라는 새롭고 팬시한 마케팅 용어가 만들어졌고 그냥 남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에도 우리는 가끔씩 진한 노란색 소변을 보았다. 그런데 오쏘뮨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진한 노란색 소변만 보면 오쏘뮨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가레스 에드워즈의 진한 노란색 소변, 아니 신작 ‘크리에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반 세기도 전에 씌여진 위대한 사이언스 픽션들에서 이미 다 제시되었던 비전으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괜히 AI가 어쩌고 하면서 시의적절한 새로운 이야기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감정을 지닌 휴머노이드가 등장하는 영화가 이제까지 없었던 것도 아니고 기계 문명과 신에 대한 알레고리에 대해서도 정말 수없이 많은 레퍼런스를 열거할 수 있다. 주제를 해석하는 새로운 인식이나 통찰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깊이마저도 한없이 얄팍하다. 한편 그 와중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헐리우드의 철 지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거의 옥시덴탈리즘에 육박하는 황당한 관점. 과연 미국 자본으로 영국인 감독이 만든 작품이 맞나 싶어 당혹스럽다. 어쨌든 이런 식의 인종적 편견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 그리고 자칫 지난 역사까지 묘하게 왜곡할 여지까지 남기는 점은 불편하다.
그러므로 영화에 대해서는 더 할 이야기가 없고 오늘도 우리는 종의 최후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다. 아무나 자기들이 ‘크리에이터’라고 우기고 심지어 언론들조차 ‘먹방 크리에이터’니 ‘뷰티 크리에이터’니 하는 표현을 마구 사용하고 있다. 하기야 이제는 아이돌 댄스 가수들을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시대이니 뭐 거의 바닥 중의 바닥까지 온 셈이기는 하지만. 이쯤 되면 블로거들이 본인을 스스로 작가라고 부르며 '자추자코는 모든 작가의 로망이랍니다' 어쩌고 저쩌고 하던 20여년 전 상황은 그저 애교처럼 느껴질 뿐이다. 이후 너도 나도 ‘안녕하세요? 돼지엄마입니다. 다들 삼겹살 좋아하시지요? (이모티콘) 저도 참 좋아한답니다. (이모티콘) 오늘은 삼겹살과 목살의 차이를 알아보고자 해요! (이모티콘).’ 따위의 중앙 정렬 무한 줄 바꿈 텍스트에 두 자리 수가 넘는 음식 사진을 포함한 포스트가 마치 하나의 어엿한 ‘저술 활동’ 결과물인양 너무도 당당하던 10여 년 전 상황도 이제는 그려려니 하게 된다. 그러니 앞으로 10여 년쯤 후에는 도대체 어떤 더 멍멍이 판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러니까, 우린 다 망했다. 공공장소와 대중교통에서 모두가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 허우적거리느라 바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존중과 배려에는 관심이 없어보이는 웃지 못할 현실을 체감하노라면, 그놈의 AI가 제 마음대로 핵버튼을 누르기 전에 우리 스스로 망할 가능성이 어쩌면 더 커 보이기도 하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답을 찾을텐데, 뭐 오답을 찾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겠다.
(202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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