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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3)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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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의 재해석이야 늘상 있어왔던 일이고 그 자체로 뭐라 할 바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고전을 건드리는 모든 작업이 그런 과정을 거친 셈인데 뭐 어떤가! 심지어 김영하가 번역했다고 '젊은 개츠비'가 되기도 한다 마당에. 


  다만 바즈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는 조금 과하다. 전체적으로 고르게 과하면, '그냥 그런 컨셉이었는가보다' 라고 생각할텐데 특정한 부분만 도드라지게 과하다. 파티 장면 말이다. 이 작품의 파티는 1920년대 방탕과 환락의 묘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절을 흉내내는 21세기의 퓨전 복고 축제에 가까운 느낌이다. 젋은 시절의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로, 젊은 시절의 샘 워터스톤이 닉 캐러웨이로 분했던 70년대작 '위대한 개츠비(잭 클레이튼, 1974)'에서 파티 장면의 최고 막장씬이래봐야 분수대 막춤 정도였다. 그런데 이 개츠비는 HBO의 TV 시리즈 '앙투라지(더그 엘린, 2004~2011)' 레벨의 진탕 파티를 매주 벌인다. 그래서 놀랍고 혼란스럽다.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파티를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당대의 정서를 제어하며 어떤 장면에서도 과잉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이런 수준의 무리한 접붙이기가 용서되려면 방법은 하나 뿐이다. 가령 뮤지컬 포맷의 애니메이션이라면 이런 식의 구성이 충분히 매혹적인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3D 버젼에 공을 들인 것 역시 장점이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결국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왜 '물랑 루즈(2001)'의 바즈 루어만인가? 바즈 루어만이어서 안 될 이유는 없지만 하필 바즈 루어만일 필요도 없다. 거꾸로 바즈 루어만 정도의 능력자가 꼭 피츠제럴드에 집착할 필요도 없기도 하다. 물론 이해는 간다. 그는 이 고전을 오늘 현실의 은유로 되살리고 싶어했던 것 같다. 20세기 초의 거품과 환락을 오늘날 고도소비사회의 길 잃은 현실에 빗대고자 하는 의도도 십분 이해하겠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고 과한 건 과한 거다. 이 작품의 좋은 점은 모두 피츠제럴드의 원작에서 나온 반면에 이 작품의 나쁜 점은 모두 피츠제럴드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데서 나왔다. 확실히 과욕은 금물이고,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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