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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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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SF)을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것은 나머지 그룹 사람들의 반응이다. SF 매니아들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면 매혹되는 사람들이, 오웰리즘에 맞서길 꿈꾸는 혁명가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이 작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 이게 좀 이상하고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 작품은 분명 그들이 좋아할만한 '소재'를 그들이 좋아할만한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를 유보하게 만드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원작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애초에 매혹적인 설정이고 영화로 만들기에 나쁘지 않았다. 다양한 가능성이 있었는데, 봉준호의 영화는 딱 한 가지 - 그것도 가장 빙퉁그러진 방향으로 가능성을 한정지어 버린다. 원작의 기본 설정만을 가져와서 쳐내고 손질하여 연출자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취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이 작품과 비교하기에 적절한 예는 '브이 포 벤데타(제임스 맥티그, 2006)''이퀄리브리엄(커트 위머, 2002)'이 아니라 오히려 '레지던트 이블(폴 W.S. 앤더슨, 2002)' 시리즈나 '월드 워 Z(마크 포스터, 2013)'에 가깝다고 봐야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그 과정에서 각색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일 정도로 드러난다는 것이 두 번째 원인이 되겠다. 물론 그와 같은 노골성은 어떤 면에서 봉준호의 매력이었다. 이제까지의 봉준호 영화들은 상당히 현실적이었다. 시공과 상관없이 항상 시제가 현재나 현재 완료, 혹은 현재 완료 진행이였고 시위는 어김없이 한국 사회의 정신적 상처를 겨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근미래의 다인종 사회로 무대를 옮겼고, 이미 현실의 거울임을 전제하는 SF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에 기존 방식의 노골성이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화자가 달라졌고 시제가 달라졌으며 장르의 속성도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이런 부분들을 감안하여 과녁을 재조정하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원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냥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외국 배우들이 등장할 뿐, '외화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방화'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소중한 순간들이 있다.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각을 바싹 잡아놓고 이야기를 끼워 맞추느라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숨겨진 의도를 다시 설명하느라 큐레이터 모드로 들어가야 했다는 사실이다. 대단히 낭비적이고 촌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기에 과연 이 작품이 취하고 있는 전략이 효율적인 것이었는지 의문이다. 끝으로 완전 다른 페이지 위에서 노는 듯한 [성은 냄궁이요 이름은 MS 부녀]의 존재는, 그냥 치명적이다. 마치 은밀한 지령을 받아 영화를 전복시킬 의도로 잠입한 존재들처럼 느껴질 정도다. 고로 의문은 다음과 같다. 만약 영화 속 어떤 것이 (혹은 어떤 것들이) 등장 순간부터 그 상징적 의미가 온전히 드러나 퇴장 시점까지 비현실적일 정도로 명확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혹은 그것들을) 인물로 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소품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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