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는 아 글쎄
by 김영준 (James Kim)누가 그러는데, 2012년에는 아 글쎄, 지구가 아작이 난단다. 2012년 12월 21일이다. 그러니까 이 년하고도 조금 더 남았다. 아니, 2012년이면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이제 겨우 서른이고 아직 결혼도 못해봤는데. 물론 지금 스물한 살, 스물두 살쯤 된 애들도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까워도 너무 아깝다. 교육 공장에 갇혀 12년을 썩어오다가 겨우 숨 좀 돌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하늘도 무심하시다. 종말이란 무엇인가. 상상만으로 끔찍한 말이다. 종말이란 하늘이 갈라지고 땅에서 불길이 솟아나는 것이다. 종말이란 바다가 땅이 되고 땅이 다시 바다가 되는 것이다. 종말이란 먼지 구름에 세상이 뒤덮이고 석 달 열흘 어둠만이 계속되는 것이다. 종말이란 인간이 기계처럼 변해가고 기계가 대신 인간 노릇을 하는 것이다. 종말이란 '같음'을 강요하고 '다름'을 억압하는 것이다. 종말이란 광기에 휩싸인 군비 경쟁이 정상인들의 세계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종말이란 관료주의가 판을 치는 경찰국가에서의 삶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종말이란 정신분열을 텔레비젼으로 시청하고 착취와 맹신을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것이다. 종말이란 기술을 종교처럼 숭상하고 종교를 기술처럼 갱신하는 것이다. 종말이란 숫자와 통계만으로 인간의 삶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현실의 일부는 종말에 가까운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왜 다시 종말은 운운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미항공우주국 나사의 데이비드 모리슨은 2012년을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정말로 12월 21일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그전에 미리 자살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상당수였단다. 하지만 따지고 본다면 종말이 두려워 만약 누군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그 순간이 바로 그의 세계에겐 종말이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2012년은 단기 4345년이다. 불기 2556년이다. 런던 올림픽과 여수 세계 박람회가 예정된 해이며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는 해이다. 2012년에는 태양의 활동이 최고도에 이른다. 흑점 대폭발로 자기 폭풍이 지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예견되고 있다. 2012년 11월 13일에 일식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왜 하필 2012년인지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12월 21일이라는 정확한 날짜는 마야인들의 달력으로부터 산출된 것이다. 마야 문명의 시작일로부터 13번째 주기(Baktun)이 끝나는 날이 바로 12월 21일이라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의 논란과 반박, 그리고 '새로운 탄생'의 성격과 방법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날짜는 1992년 10월 28일과 1999년 7월 (7일 혹은 28일), 그리고 1999년 12월 31일 Y2K 이후 가장 유력한 둠스데이(Doomsday)처럼 여겨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예언 혹은 가설들에 있어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지사가 정말로 맞아 떨어지는 적은 별로 없다. 터무니없는 거짓이어서, 혹은 인류의 복이 아직은 다 하지 않아 그날을 용케 넘긴다면? 그다음에는 2036년 소행성 충돌설이 기다리고 있다. 그 해도 용케 넘긴다면? 또 다른 숫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날'이 올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될 일이다. 그 과정에서 대중을 기만하고 부추겨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언제고 한 번은 이 지구에도 마지막 날이 있으리라는 깨달음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바로 이 날짜가 문제다. 20121221. 2012년 12월 21일. 이 년하고도 몇 개월 후면 닥칠 날이다.
아마도 그날이 되면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2012년 12월 20일 뉴스에서는 짤막한 꼭지를 통해 근 몇년간 화젯거리가 되었던 2012년 지구종말설의 바로 그날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보도할 것이다. 휴대용 식수 정화 장치, 가스 마스크, 태양열 발전기, 자외선 차단 담요, 라면, 육포, 통조림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일부의 소요를 보여주겠지만, 한편으로는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냉철한 분석을 통해 언제나 그랬듯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해 보일 것이다. 또한 한심하게도 종말론에 빠져 스스로 인생을 망쳐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런 현상을 악용하여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관련 산업계, 사이비 종교계, 출판업계, 영화업계의 윤리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구로 다가오는 소행성 X는 커녕 소행성 Y도 소행성 Z도 찾지 못할 것이다. 세계 어느 곳의 지진 해일 관측소에도 유의미한 징후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거대 화산군도 잠잠할 것이다. 지구에는 끔찍한 무기도 넘쳐났고 미친 놈들도 넘쳐났지만 '버튼'을 먼저 누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모를 정도로 미친 놈들은 아직 없을 것이다. 감작스럽게 비지터(Visitor)가 방문하거나 그동안 사일론(Cylon)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숨어있을 확률도 (아직은!) 없을 것이다 (註1-2). 그리고 다음날 2012년 12월 21일의 아침은 (겨울이니 조금 추울 수는 있겠지만) 거짓말처럼 화창할 것이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일 것이다. 사람들은 1992년과 1999년에 이어 또다시 한 편의 '삼류 쇼'가 실체를 드러내었음을 비웃으며 각자의 일터로 향할 것이다. 그렇게 종말 이야기가 사그라들면서 자연스럽게 나흘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살아날 것이다.
(2010년 03월)
(註1) 비지터(Visitor): TV 시리즈 'V(NBC, 1983~1984; ABC, 2009~ )'에 등장하는 외계인을 이르는 말. 인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나타나 평화의 첨병을 자처하며 위장하지만 점차 지구 정복의 속셈을 드러낸다.
(註2) 사일론(Cylon): TV 시리즈 'Battlestar Galactica(ABC, 1978~1980; Sci Fi, 2004~2009)'에 등장하는 기계종족을 이르는 말. 인간이 만든 로봇에서 진화를 거듭하여 위협적인 존재로 변모했고 끝내 인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인류 문명의 존속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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