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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 422일간의 세계일주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7.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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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 이름은주세페 파스타 마치니. 줄여서주세피 P. 마치니라고도 쓴다. 친구들은 그냥 친근하게라고 부른다. 너희들도 그냥 나를라고 불러도 되느냐고? 글쎄다. 아직 모르겠다. 너희가 친군지 적인지 아직 판단이 선다. 친구 맞으면 이리 오고 아니면, 당장 꺼져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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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를 하는 중이다. 직접 만든 태양광 자동차를 타고 세상을 바퀴 도는 중이다. 물론 세계일주를 하기에 훨씬 편하고 실용적인 교통 수단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확실히 태양광 자동차는 세계일주가 목적이라면 좋은 생각은 아니다. 그렇다, 여러분. 지금은 베른의 시대가 아니다. 제트기 같은 빌리면 물리적 의미에서 지구를 바퀴 도는 것은 하루 안에도 끝장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그렇다. 모든 일종의 퍼포먼스라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자전거로 대륙을 횡단한다고 해보자. 그의 목적이 횡단 자체일까? 마찬가지다. 여러분도 이게 어떤 의미를 지닌 일인지 충분히 짐작할 있을 것이다. 그렇다. 태양광 자동차의 가능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에너지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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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얘기를 해보자. 2010 기준으로 세계 석유 소비량이 48 TOE(석유환산톤, Tonnage of Oil Equivlent) 이른다고 한다. TOE 서로 다른 에너지원의 발열량을 비교할 있도록 만든 일종의 가상단위다. 10 7 칼로리에 해당하는데, 사실 감이 잡히지 않는 개념이기는 하다참고로 미국의 연간 석유 소비량이 8.8 TOE이고 너희 한국이 1.0 TOE 정도 된다고 하니 대강 짐작은 있을 것이다. 수치가 십년 2020년이 되면 57 TOE까지 늘어날 거라는 보고가 있다. 2020년의 에너지 소비량이 2000 대비 최소 1.5배가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지구에는 화석 에너지 자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석탄은 160년쯤, 석유는 40년쯤 정도면 고갈되고 것이다. 그런 심각성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신문과 텔레비젼에서는 항상 뻔한 소리만을 한다. 면역된 사실, 면역된 공포. 언제부턴가 환경, 에너지, 이런 문제들이 일종의 오락거리가 되어버렸다. 어쩌다 신에너지 사업 따위가 화제에 오르기라도 해야 최소한의 엄살이라도 되는 상황이다.



 
여러분도 알아두어야 한다문제가 정말 피부에 와닿아 느껴질 때쯤이면 그땐 돌이킬 없을 것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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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양광 자동차를 타고 세계를 돌겠노라 선언한 이유는 대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흔히 아직까지는 애로사항이 적지 않을 거라고 여겨지는 태양광 자동차, 그걸로도 세계를 바퀴 있다면 어디든 쓰지 못하겠는가? 세계일주도 했는데 설마 출퇴근에 쓰겠는가? 세계일주도 했는데 설마 마트에 장보러 쓰겠는가? 그렇다. 바로 그런 인식이 중요한 것이다. 결코 변환 효율이나 충전량의 한계가 문제가 아니다. 기술적 요구가 충족되어도 결국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말짱 꽝이라는 말이다. 눈으로 보여주기 전까지 사람들의 생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충분히 가능하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단지 누가 먼저 보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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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자동차의 원리는 간단하다태양의 빛이 전지판에 도달하여 전자의 흐름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대로 100퍼센트 자연 본연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자연의 선물을 남김없이 활용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현재 가장 나은 방법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대안 자동차도 에너지 낭비를 피할 수는 없다. 어떤 대안 자동차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대답해보라. 정말 환경을 생각한다면 과연 하이브리드카를 꿈의 자동차라고 말할 있겠는가. 하이브리드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제 현실을 직시할 때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욕심이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미봉책을 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사람들은 종이컵의 대안으로 재생 종이컵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일일이 머그컵을 들고다니는  귀찮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 샴푸 대신 천연 친환경 샴푸를 사용하는 것은 기특한 선택이지만 그때문에 지구 어디에선가는 우림이 파괴되고 있을 수도 있다. 바로 그런 것이다. 100킬로의 폭주나 90킬로의 폭주나, 폭주는 폭주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감속이 아니라 근원적인 제동을 거는 방법이다.



 
나는 태양광 자동차가 장차 교통 운송의 측면에서 충분한 대안이 있는 기술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14개월 동안 세계137개국을 돌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2009 2 27일에 시작한  여행은 2010 4 22일에 마무리될 것이다. 422일간의 여정이고 4 22일은 지구의 . 모든게 명확한 의미 아래 계획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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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씨가 많이 흐리다. 밤처럼 깜깜한 낮이다. 바로 이런 태양광 자동차가 애물단지가 되는 일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나의 애마 솔라 파르네(Solar Farne)에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스사우던 대학의 연구진과 밤낮으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거듭해왔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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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프라이데이 내려서 밀어봐!



 
프라이데이와는 방글라데시 남부 해안을 돌다가 만났다. 그는 영어를 몰랐고 벵골어로 추정되는 해괴한 말을 쉬지 않고 지껄였다프라이데이의 이름은 원래 프라이데이가 아니었다. 아마 나름 이름이 있기는 했을 것이다. 허나 그의 진짜 이름을 발음하기 위해 노력까지 기울일 생각은 없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고용인, 그는 피고용인인 것이다. 마땅히 나의 언어와 나의 문화를 존중하여야 필요가 그에겐 있었다그래서 프라이데이라고 불렀다. '따리 따리' '아쓰떼 아쓰떼' 아니라 프라이데이라고 불렀다. 금요일에 만났기에 지어준 이름이 프라이데이다. 우리가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만났다면 그의 이름은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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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프라이데이라고 불렀을때 비로소 그는 내게로 와서 잡역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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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렛 일을 사람이 필요했기에 나는 그를 조수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에게 75 센트의 주급을 주기로 했고, 영어를 배우려는 가상한 노력까지 보여준다면 주당 1 달러까지 인상을 고려해 보겠다고 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은 2010년이 맞고, 달러화 가치는 여러분이 아시는 그대로다). 그는 내게 감사를 표했다. 노스사우던의 따지기 좋아하는 책벌레들에겐 절대 기대할 없는 싸가지가 프라이데이에게는 있었다만족할 아는 마음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그걸 모르는 멍청이들이 종종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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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엄연히 착취아니야? 조금 심하단 생각이 드는데?
  
당연히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공짜 세계일주에 먹여주고 재워주고 심지어 공부까지 시켜주는데 내가 쟤한테 돈까지 줘야되지? 게다가 태양광 자동차를 기회까지 줬는데. 감지덕지아닌가?



 
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세상에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서 그러는거다. 자기 나라 문자도 읽지 못하는 스무살짜리 방글라데시 청년을 위해 내가 얼마나 베풀어주길 원하는가. 쉽게 생각하자. 장대한 여행을 마친 다음을 생각해보라. 프라이데이는 그의 고국에서 유일하게 세계일주를 해본 사람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태양광 자동차를 타고 달려본 사람이 것이다. 살인적인 출생률을 자랑하는, 인간 많기로 유명한 방글라데시에서 프라이데이는 아주 특출나고 유명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미래 이익을 감안할 어찌 내가 그를 위해 해준 것이 없다고 말할 있겠는가. 감히 누가 내게 그런 소리를   있단 말인가. 에이, 구름이 밀려온다. 악셀을 밟아대도 속도가 현격하게 느려지는게 몸으로 느껴진다. 이럴 때는 다른 도리가 없다.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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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프라이데이 내려서 밀어봐.



 
프라이데이 없었으면 어쨌을까 몰라. 혼자 밀고 뛰고 하려면 십년 감수 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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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데이는 여러모로 쓸모 있는 하인이다. 힘이 좋아 차도 밀고 세차도 기가 막히게 잘한다. 적도 부근의 기후 아래서도 멀쩡하게 일만 잘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미치고 팔짝 날씨인데도 말이다. 남유럽 정도의 '정상적인날씨만 이어져도 그를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혼자서도 수도 있는 일이다하지만 이런 동네에서는 답이 없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볕이 강한데다가 습하기까지 하다. 땀이 줄줄 흐른다. 밖에 나가서 작업할 사람이 따로 필요하다. 자외선을 반사하고도 남을 억센 피부를 가진 인종의 도움이 필요하다.



  We are the world. We are the children.
​  We are the ones who make a brighter day.

​  서로 서로 부족분을 채우며 돕고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프라이데이는 사막의 뜨거운 날씨도, 중동의 까칠한 모래바람도, 동남아의 찐득찐득 춥춥한 날씨도 견뎌낼 줄을 알았다. 사막 가운데서도 묵묵히 '솔라 파르네' 밀기도 했다. 갠지스 강에서 빨아온 손걸레로 달아오른 집열판을 닦기도 했다. 갯펄 한가운데서도 몽키 스패너를 입에 물고 밑에 기어들어갈만큼 의욕적이기도 했다. 아주 성실한 친구다. 감명받았다. 이대로라면 주급을 1불씩 쳐줄 의향도 있다. 사실 스폰서에겐 프라이데이를 어시스턴트라고 보고했다. 스폰서는 프라이데이의 통장에 주당 120달러씩 꼬박꼬박 입금해주었다. 프라이데이의 통장을 관리하고 있는 나는 거기서 먹여주고( 1224), 입혀주고( 13), 재워주고( 408), 태워주고( 63,478km), 영어 회화 공부까지 라이브로 시켜준 값을 제하고 월요일 아침마다 1불씩을 쥐어주었다. 그때마다 그는 항상 방긋 웃는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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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라고 말했다뿌듯한 순간이다. 이런 3세계 친구를 데리고 다니는 일은 솔직히 전시 효과랄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나쁘지 않다. 태양광 자동차 퍼포먼스는 각국 정부의 지대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솔라 파르네' 그리고 프라이데이가 도착하는 곳마다 취재진과 환영인파가 몰렸고 정치인과 정치인이 되고 싶어 안달난 학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프라이데이를 친구처럼 대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적당히 까무잡잡한 입술을 좌우로 넓게 벌리며 미소짓는 프라이데이의 얼굴은 훌륭한 외교적 효과를 발휘했다.



  We are the world. We are the children.
​  We are the ones who make a brighter day

  환경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개도국과 후진국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는데 모두가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선진국에게는 선진국의 방식이, 개도국에게는 개도국의 방식이, 후진국에게는 후진국의 방식이 필요한 법이다대신 그러한 과정에서 후진국 사람들을 돕는 것은 선진국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프라이데이에 대한 나의 배려처럼 말이다. 프라이데이는 모든 면에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포크와 나이프를 쓰게 것은 물론 이젠 수세식 변기도 자유자재로 이용한다말을 배우는 속도 또한 점차 빨라지고 있다. 여러분, 며칠 나의 테스트 드라이빙을 지켜보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면 믿을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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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라 파르네!
 
그렇다. 짜식이 어느새 애마의 이름을 읽을 있을 정도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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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정의 마지막으로 동북아시아의 일본에 도착했다. 여기서의 행사가 끝나면 배를 타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갈 예정이다. 일본인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우리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마치 관광객처럼. 일본 수상과 악수를 하고 여당 야당 대표와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민간 차원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상징적으로 합의하는 총리의 친서를 그들에게 전달했다. 서구 컴플렉스를 가진 대표적인 나라답게, 그들은 한낱 일개 사회단체의 고문에 불과한 내게조차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를 표했다. 대단히 만족스러웠고 조금은 우쭐하는 마음도 있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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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새 몰려온 먹구름에 한두 방울씩 비가 섞여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악셀을 밟아봐도 소용이 없었다. 어쩌지? 식은땀이 흘렀다. 말똥말똥 우리만 쳐다보고 서있는 구경꾼들을 어쩐다 말인가. 경외의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저들을 말이다. 이제와서 비온다고 못달린다면 너무 쪽팔린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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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프라이데이 내려서 밀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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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갠?
 
프라이데이도 이젠 '어갠(Again)' 정도의 영어는 알만큼 문명화가 되었다. 다만 기분이 상했던 것은 귀찮아하는 표정이다. . 이쁘다, 이쁘다, 해주면 슬슬 기어 오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줄이야 진작에 알았지만 아주 괘씸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나는 프라이데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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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려서 밀어라. 동안 밀지 않으면 머리를 밀어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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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기찬네!
 
어떻게 알았을까. 솔라 기찬네(Solar Guichanne) 나와 노스사우던 대학 연구진이 개발 중인 태양광 자동차의 다음 버전이다. 맑은 날의 충전과 별도의 에너지 공급을 통해 흐리고 비오는 날에도 태양광 자동차의 동작이 가능하도록 개량한 것이다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슬슬 프라이데이 녀석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많이 키워준 것이 아닌가 몰라. 공짜 세계일주에 먹여주고 재워주고 심지어 공부까지 시켜줬던 것이 슬슬 후회가 된다. 예의 순진무구한 미소도 더는 곱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언젠간 놈이  뒷통수를 치진 않을까?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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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주세페 파스타 마치니. 줄여서주세피 P. 마치니라고도 쓴다. 친구들은 그냥 친근하게라고 부른다. 너희들도 그냥 나를라고 불러도 되느냐고? 글쎄다. 아직 모르겠다. 너희가 친군지 적인지 아직 판단이 선다. 친구 맞으면 이리 오고 아니면, 당장 꺼져주었으면 좋겠다.

(200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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