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적인 부탁에 대처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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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적인 부탁에 대처하는 방법

by 김영준 (James Kim)

  
지금으로부터 10개월 전. 한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나보다 세 학번쯤 위인, 그러나 아직까지도 졸업을 하지 않은 선배로, 영어학원에서 우연찮은 기회에 몇 번 마주한 적이 있었을 뿐, 이렇다 할 친분은 없었다. 한 마디로 서로 잘 모른다는 말이다. 그런 사이에서 전화를 주고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일반적인 일이 아닌데, 우리는 이른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숱한 사연만은 사연(四緣), 그러니까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 군연(軍緣), 가운데 해당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선배면 학연에 해당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다른 대학 재학생이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원에서 우연히 같은 반이었을 뿐이다. 하물며 돈독한 친분관계가 있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와 나는 단 한 번도 사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고,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지만.

 

  그는 돈을 조금만 빌려달라고 말했다. 금전적인 문제, 이른바 급전(急錢)의 문제였다. 돈을 빌려달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그가 이 상황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전(全) 지구인의 평균적인 상식선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개념으로는 도무지 억지로 이어볼래야 이을만한 끈이 없을 정도로 밋밋한 그와 나의 사이에서,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마치 방금 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돈을 빌려달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제시한 (과연 그 말투가 속성상 제안, 청구, 그리고 부탁 사이의 어느 쪽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는 도통 분간이 가지 않지만) 20만원이라는 금액도 놀라웠다. 그래, 넉넉잡아 까짓 거 그와 내가 인연이 있다고 쳐주자. 그래도 대뜸 20만원을 빌려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인데 내 관점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너무 부담스러울까봐 이 사람과 저 사람에게 쪼개서 부탁하고 있노라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사이드로 뱅뱅 돌아나가는 교묘한 함정을 피하고자 나는 육하원칙(5W1H)에 입각한 명확하고 직선적인 대답을 요구했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Who? 자기가


When? 얼마 전에


Where? 이 근처에서


What? 돈이 필요하다


How? 그건 말해주기 어렵고


Why? 조금 사고를 쳤기 때문에

 

  나는 어물쩡 넘어가 버린 그의 1H, 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는지가 궁금했다. 더불어 굉장히 불명확한 표현인 '조금'이 도대체 얼마만큼인지도 궁금하여 좀이 쑤셨다. 나에게는 그 정보를 요구할 마땅한 권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빌려줄지 결정을 내릴 것이 아닌가. 오토바이로 벤츠의 문짝을 긁었는지, 벤츠로 오토바이를 긁었는지, 한 무더기의 깡패와 시비가 붙었는지, 한 무더기로 몰려가 깡패마냥 어떤 사람에게 시비를 걸었는지, 등등에 따라서 상황은 천차만별이 될테고, 그에 따라서 나도 도와줄지 말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채무자의 경제적 사정이나 상환 능력을 가늠하여 보는 것은 채권자로서 당연히 해보아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 그 은밀한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다. 그가 저질렀다는 사고의 수준이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은 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조금'의 범위는 말해줄 수가 없으나, 20만원이 현재 급하게 필요한 총 액수의 약 십분의 일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만 했다. 그렇게 필요한 액수의 쪼개어 부탁하는 까닭인즉슨, 예비 채권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하기 위해서라니, 참으로 사려 깊은 예비 채무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디보자. 20만원이라니. 생각해 보니 나는 그만한 금액을 굴릴만한 그릇이 못된다. 한 달 용돈이 5만원이다. 20만원이면 넉 달 용돈이다. 점심과 저녁을 합쳐 5천원 안쪽에서 버티고 있다. 20만원이면 40일치 생활비다. 이미 과외가 없이는 한 달을 버티기도 어렵다. 혹시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1년이 365일이다. 그러므로 40일은 약 9분의 1에 해당한다. 별로 대단치 않은 그와의 관계 때문에 9분의 1년 동안이나 정상적이지 못한 생활을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대개의 경우 돈을 빌리는 사람은 돈을 빌려줄 사람에게 확신을 심어주고자 한다. 그 역시 비슷했다. 자기가 빌릴 때는 20만원이지만 다시 돌려줄 때는 그 이상이 될 것이라 자신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강조했다. 다만 다시 돌려주게 되는 그 날을 구체적으로 기약하지는 않았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거절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그의 집요함, 나의 소심함, 우리가 인류 공통으로 골고루 나누어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 휴대전화라는 문명의 이기, 30여분에 걸친 그의 설득을 나는 매정히 뿌리치지 못했다. 특히 병들어 거동이 불편한 팔순 노모와 (그러니까 형님 어머님은 형님을 50대 중반에 낳으셨군요) 매일 아침 십리길을 걸어 학교에 등교하는 어린 동생의 눈물 겨운 이야기는 (그러니까 형님 어머님은 70대 에도 음...)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 전화를 끊어버리면 굉장히 나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 급기야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울먹거림과 분당 20회 이상 떨리는 간절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급기야 나는 그가 아마도 영화 '초록물고기'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로 나에게 20만원이나 되는 여유자금이 없었다는 것인데, 때문에 나는 그에게 거듭 통사정하여 빌려줘야 하는 금액의 액수를 깎아야만 했다. 뭔가 주와 객이 뒤집어졌다는 묘한 느낌을 강하게 받으며, 끝내 ATM에 가서 최종적으로 5만원을 그의 통장에 계좌이체 시켰다. 비록 그가 친 사건 및 사고 규모의 겨우 40분의 1만큼 밖에 복원할 수 밖에 없는 금액이었지만 그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정말이지 나 같은 후배를 두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늦어도 달포 내로 10만원을 넣어주겠다고, 두 번 세 번 강조하여 말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지금 10개월이 지났는데 아직 그에게는 소식이 없다. 학원에서도 보이지가 않는다. 어선을 타고 오징어를 잡으러 갔다는 말도 있고, 오징어를 타고 어선을 잡으러 갔다는 말도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매일 밤 5만원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일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잠이 든다. 다들 요즘 은행 이율이 별로라고들 하지만 그냥 두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여전히 속은 쓰리다. 처음 판단처럼 거절했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정말이지 마음이 약해서 큰 일이다.

 

(200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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