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라나는 물수건을 이해하는 방법
낙농콩단

스스로 자라나는 물수건을 이해하는 방법

by 김영준 (James Kim)

  얼마 전 한 식당에 갔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음식의 맛과 향 때문이 아니라 (물론 그랬어야 바람직하겠지만) 다름아닌 물수건 때문이다. 물수건이 무엇인고 하니 수건을 물에 적신 것으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일반적인 머리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대로, 온종일 오만잡가지 물건을 (정확히는 세균을) 만졌던 손을 식사하기전에 가볍게라도 닦으라고 - 간혹 정성스레 얼굴이나 팔 다리를 닦는 사람도 보았지만 그건 일종의 기능적 확장을 시도한 것이고 - 나오는 것이다. 불에 적셨으면 불수건이었을 것이나, 물에 적셨기에 바로 물수건이라는 돈육대사의 놀라운 통찰은 사뭇 그 진실된 존재적 가치를 우리에게 깨우쳐 준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우리가 익히 보고 듣고 만진 물수건, 그 때문에 놀랄 일이 설마 무에 있을까 반문하겠지만, 그 물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놀랄만한 일이 있었다.

  전통적인 개념의 물수건이라 하면 가로 한 뼘에 세로 한 뼘 크기의 순백색 행주로 양은 냄비에 바글보글 끓여 막 물기를 짜낸 상태에서 쟁반에 담겨 나오거나, 살균소독이 공식적으로 완료되었음을 명시한 얇고 부들부들한 비닐에 곱게 포장되어 나오던가, 그도 아니면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에서처럼 버튼만 누르면 지잉하고 흘러나오는 물휴지타입의 물 묻은 휴지를 말한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그걸 아니 주더라는 것이다. 물수건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고깃집임을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반대로 고깃집에서 물수건이 나와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혹시 물수건이 필요하지 않은 고깃집인걸까. 아니면 고급 레스토랑, 혹은 태국 전통 요릿집처럼 손 씻을 물을 따로 내보내는 것일까. (전자라면 턱시도를 입은 웨이터가 상의 윗 주머니에 하이얀 손수건을 꽃은 채 서빙할 것이고, 후자라면 조개껍질로 도배한 까무잡잡한 미녀가 브레이크 댄스와 람바다를 혼합한 국적불명의 춤을 추며 서빙할 것이고) 그도 아니라면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일일이 고깃점을 구워서 손님의 입에 넣어주는 것일까. 설마 조개껍질로 도배한 까무잡잡한 미녀들이 국적불명의 춤을 추며 일일이 고깃점을 구워서 손님의 입에 넣어주는 것일까 (뭐랄까, 너무 퇴폐적인 느낌이 드는걸) 차마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나는 사장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장사를 오래하면 그런 방면으로 내공이 쌓이는겐지 사장님께서는 고기를 썰다 말고,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오리온 초코파이적'인 표정을 짓더니만 눈짓으로 테이블 위의 뭔가를 가리켰다. 다시 초점을 조절하여 자세히 내려다보니 그 자리에는 알약처럼 생긴 웬 덩어리가 있더라.

  그 알약 아닌 알약으로 말할것 같으면 직경 1cm에 두께 0.8cm, 넓고 평평한 윗 면에는 영어로 COIN이라 쓰여있었다. 모양은 병원과 약국을, 코인이라는 글자는 라스베거스를 각각 연상시키는 이 작은 덩어리는 가볍지만 제법 단단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물수건이랑 무슨 상관이람. 본격적으로 투덜거려 보려는 순간, 나의 혼란스러움을 알아챈 선배가 빙긋 웃으며 알약을, 아니 코인을, 아니 무슨 덩어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작은 종지 - 그때까지 도대체 그게 왜 나와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던 - 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물을 부었는데, 신기하게도 그것이 점점 커지더라는 것이다. 2 cm, 3 cm, 4 cm, 그리고 마침내 5 cm가 되었다. 그 광경은 무척이나 신묘하고 기이하여, 데이비드 카퍼필드라 해도 여지없이 입을 떡 벌리고 말았을 것이다. 역시 입을 떡 벌린 나에게 선배는, 너도 따라 해보라고, 두드리면 길이 열릴 것이며 너도 똑같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눈짓을 하였다. 나는 유리겔라를 따라 숟가락을 구부리려는 철없는 아이들처럼 덩달아 유사-알약형 덩어리를 종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물병을 들어 천천히 물을 부었다. 종지 바닥에 물이 고이기가 무섭게 그것은 자라기 시작했다. 언젠가 유행했던 '박수치면 춤추는 콜라병 인형'보다 훨씬 더 신기했다. 더이상 자라지 않을만큼 커졌을때, 그러니까 약 5 cm가량의 높이에 도달했을 때, 가만히 그것을 들어 자세히 살피니 얇은 몇 겹의 종이로 되어 있더라. 조심스레 풀어보니 영락없는 물수건이 되었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감복한 표정으로 사장님을 쳐다보니,

'뭐, 이 정도를 가지고. 놀랄 일은 지금부터라네. 내가 지금 썰고 있는 이 고기는 나랏님 수랏상에도 올라갔던 것이라네'

 

하는 표정으로 찬찬히 고기를 썰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발성장형-고밀도-고압축-부피절약형 물수건에 들떠버린 내 마음은 쉬이 가라 앉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얼마전 채식주의를 선언했다는 사실도 잊고 고깃점을 집어 먹었을 정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랏님 수랏상에도 올라갔다는 그 고기는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다면 나랏님 수랏상에 올라갔을지 몰랐을만큼 지극히 평범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정말로 나랏님 수랏상에 올라갔을까? 어쩌면 도루묵 효과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전란의 도중에 드셨다면 입맛 까다로운 나랏님도 몇 점 집어먹기 무섭게 '브라보, 브라보, 웰던'을 외쳤을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다. 

  사실 물수건은 모든 식당의 골칫거리다. 준비하기도 성가시고, 준비해도 그 본연의 기능을 만족시킬 위생상태를 유지하는게 어렵다. 공중 위생법이니, 위생용품의 규격 및 기준이니, 뭐니해서 정해진 허용 기준치는 물티슈의 경우 1 g당 2500 마리 이하까지, 물수건의 경우 장당 10만 마리 이하까지라는데 그만큼 청결한 물티슈와 물수건이 있으리라 믿긴 어렵다. 하기야 인간의 법이지 세균의 법은 아니니 세균보고 번식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지 말란다고 세균이 알아들을리도 없고, 말 안듣고 번식한다고 세균을 잡아 들일 수도 없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여기에 식객들의 위생관념을 기능적으로 만족시켜주고자 계면활성제가 들어가고, 식객들의 위생관념을 시각적으로 만족시켜주고자 형광증백제가 들어가니, 그 세심한 배려 덕택에 그야말로 물수건에 물티슈가 아니라 화학수건에 화학티슈가 되어버렸다. 차라리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이 더 위생적일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약모양의 자발성장형-고밀도-고압축-부피절약형 물수건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그걸 가지고 요리조리 조물락거리며 재미나게 놀았다. 그리고 은밀히 아직 물과 접선하지 않아 본래적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을 몰래 하나 빼돌려, 집에 가지고 가서 놀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와이셔츠 윗 주머니에 넣었다. 이렇듯 나의 정신연령은 좀처럼 성장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에필로그: 며칠 뒤 빨랫감을 정리하시던 어머니는 물에 넣은 아들의 와이셔츠에서 뭔가 자라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시게 된다.

 

(200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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