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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가둔! (Schumigadoon!, Apple TV+, 2021) B평

불규칙 바운드/TV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2.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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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기에 빠진 의사 커플이 (관계 회복을 위한) 커플 그룹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산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슈미가둔’이라는 이름의 마을에 갇히면서 생기는 사건을 다루는 이 여섯-파트 뮤지컬 코미디는 일단 신선도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뮤지컬 ‘브리가둔(알란 제이 러너와 프레데릭 로우, 1947)’을 패러디한 제목이 암시하듯 시공간적으로 분리된 세계로 현재의 인물들을 들여보내되 고전 뮤지컬이라는 (매우 특수한) 장르의 고유 법칙과 충돌하며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겠다는 발상이 상당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 패러디를 위해 ‘브리가둔’의 두 뉴욕 남자 토미와 제프는 뉴욕 출신 의사 커플 조쉬와 멜리사로 대체되었고,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신비한 마을 ‘브리가둔’은 20세기 초 미국 중남부 시골 마을로 추정되는 ‘슈미가둔'으로 무대를 옮기게 되었다.

 

  일루미네이션 스튜디오의 ‘존 머스커와 론 클레멘스’라고 할 수 있는 신코 폴과 켄 다우리오 콤비는 이 TV 뮤지컬 시리즈의 크리에이터이자 작가이자 심지어 작곡가로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해냈다.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NBC, 1975~ 현재)’의 론 마이클스와 ‘맨 인 블랙’ 시리즈의 배리 소넨필드가 총괄 제작자에 이름을 올렸으며 여섯 에피소드 모두 배리 소넨필드가 직접 감독을 맡았다. 안무도 ‘뉴지즈(잭 펠드먼과 앨런 맨킨, 2012)’의 크리스토퍼 가텔리가 담당하였는데 곳곳에서 TV 시리즈 수준을 넘어서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출연진 역시 매우 화려하여 뮤지컬 스타(앨런 커밍, 크리스틴 체노웨스, 제인 크라코우스키, 애런 트베이트, 아리아나 데보스 등)에서부터 SNL-알룸(프레드 아머슨, 마틴 숏 등)까지 슈미가둔 마을 주민으로 등장하며, 주인공인 뉴욕에서 온 의사 커플은 ‘매드 TV(FOX, 1995-2016)’와 ‘키 앤 필(코미디 센트럴, 2012-2015)’의 키건 마이클-키와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의 현재 캐스트 중 하나인 세실리 스트롱이 맡았다.


  흥미로운 컨셉트와 화려한 라인업에도 불구하고 ‘슈미가둔!’은 자잘한 패착을 거듭하면서 매력을 반감시킨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곳곳에서 드러나는 영락없는 텔레비젼 스케치 코미디의 호흡이다. 한 에피소드 당 약 30분 내외의 시리즈에서 마치 5분에서 10분 사이에 완결 지어야 하는 생방송 스케치처럼 빠른 템포를 유지하니 도리어 이야기 몰입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특히 이 상황을 주도해야 하는 두 주인공 조쉬(마이클-키)와 멜리사(스트롱)의 캐릭터부터 (재치 있지만) 꽤나 성급한 대사로 거듭 흐름을 깬다. 일례로 가짜 나무가 심어진 총천연색 마을 세트와 갑자기 노래를 시작하는 마을 주민들을 마주하기가 무섭게 내뱉는 “실생활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지 않아”와 같은 대사가 대표적이다. 이는 이 작품의 코미디 소재를 한 마디로 응축한 꼭 필요한 대사이지만 잘못된 타이밍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앞서 단정하기 때문에 김을 빠지게 만든다. 이처럼 펀치 라인 위주로 구성하다 보니 전체 시리즈가 짧은 스케치 콩트의 반복처럼 보이고 원래의 의도도 희미해져 결과적으로 흔하디 흔한 과거로의 시간 여행 코미디처럼 보이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들이 왜 다른 곳이 아닌 하필 슈미가둔, 즉 뮤지컬 황금기를 상징적으로 압축하여 보여주는 공간에 갇혔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연인 사이의 차이점이 상징하는 지점이 있었을 텐데 이 구도 역시 어느 순간에 묘하게 어그러진다. 조쉬는 뮤지컬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리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고 멜리사는 뮤지컬을 이해하지만 그리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급기야 어느 순간 현대 대도시에서 온 고학력 전문직 커플이 거의 백여 년 전의 중남부 시골 마을을 (각기 이유는 다르지만) 냉소적으로 조롱하는 시합을 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 대목에서 정말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은 조쉬나 멜리사가 아닌 노래 작곡을 담당한 쇼 러너 신코 폴이다. 그는 기존에 사랑받은 뮤지컬의 대표 넘버들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하는데 몇 초 안에 어느 명곡을 흉내낸 것인지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다분히 의도적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브리가둔’ 외에도 ‘오클라호마!(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1943),’ ‘뮤직 맨(메러디스 윌슨, 1957),’ ‘회전목마(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1945),’ ‘왕과 나(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1951),’ ‘하우 투 석시드 인 비즈니스 위드아웃 리얼리 트라잉(프랭크 레서, 1952),’ ‘사운드 오브 뮤직(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1959),’ 그리고 ‘키스 미 케이트(콜 포터, 1948)’ 등을 흉내낸 노래들이 등장하는데 더러 몇몇 곡들은 저렴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지만 기대 이상으로 괜찮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주제가인 ‘슈미가둔!’ (누가 봐도 이건 ‘오클라호마!’의 피날레에서 가져왔다)과 러브 테마인 ‘서든리,’ 마이클-키가 온 마을 아가씨들을 대상으로 떨림 테스트를 벌이는 ‘크로스 댓 브리지,’ 슈미가둔의 학교 선생님 역할을 맡은 아리아나 데보스와 어린이 캐스트가 만들어내는 ‘위드 올 유어 하트,’ 그리고 크리스틴 체노웨스가 잠시 봉인을 해제하고 날아다니는 ‘트리뷸레이션’ (물론 이는 당연히 '뮤직 맨'에서 가져왔다) 등은 정말 멋지다.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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