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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타워 (The Dark Tower, 2017)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7.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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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수와 중단이 반복되면서 프로덕션 히스토리가 장기간에 걸쳐 표류한 영화치고 최종 결과물이 잘 나온 경우가 드물다고들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왜 그렇지 않겠는가?) ’다크 타워’의 경우를 한정하여 생각하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제작이 지연된 까닭이 아니라 갑자기 재개된 까닭에 대한 것이다.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 한 편이 여러 사공들을 만나 이리저리 난도질 당한 끝에 배가 산으로 가는 장관으로 귀결되는 거야 사실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다. 그나마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엔 조금 상황이 나은 편이고, 그 원작이 애초에 크게 성공했거나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면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지기야 한다. 더불어 그 작품이 거대 팬덤을 거느린 방대한 분량의 시리즈물이고 하필 장르가 SF&F라면 착수에 이르는 문턱이 높아져서 쉽게 시작되기도 어려운 것이 보통이다. 수천 페이지에 해당하는 내용을 한정된 러닝 타임 내에 알차게 구겨넣고 원작 팬들을 만족시킬 재간이 없다는 창작적, 경제적, 기술적 부담 때문이다. 소위 세계 3대 판타지로 통하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1954-55),’ C.L.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1950-1956),’ 어슐러 르 권의 ‘어스시 사이클 (1968-2001)’은 물론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 (1982-2004)’와 조지 R.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1996-미정)’ 또한 오랜 시간 동안 대표적인 ‘임파서블 프로젝트’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다크 타워’의 영화화가 장기 보류 상태였던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J.J. 에이브람스와 론 하워드가 몇 년씩 끙끙거리다 포기했을 때도 충분히 이해를 했다. 왜냐하면 ‘임파서블 프로젝트’니까. 물론 (전술한 다른 작품들이 그러했듯) 언젠가 누군가 거짓말처럼 나타나 불가능함을 가능함으로 바꾸는 눈부신 마술을 보여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따라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갑자기 영화화가 재개된 이유다. 장기 표류가 끝나려면 뭔가 문턱을 넘어갈만한 정당한 동력이 나와야 한다. 영리하게 잘 다듬은 시나리오, 무한 리필 수준의 제작비, 맹목적인 사명감에 불타는 프로듀서와 감독 등 뭔가 답보 상태를 깰만한 복수의 계기가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크 타워’는 신기하게도 단 하나도 해당 사항이 없어 보이는데 영화화가 재개되었다. 최종 편집 과정에서 러닝 타임이 100분도 남지 않을 정도로 애초에 시나리오가 좋지 않았고 제작비는 겨우 6천만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각주:1]. 감독 니콜라이 아르셀은 이 작품으로 첫 영어권 영화 데뷔를 했으며 이런 장르의 영화를 연출해 본 경험조차 없었다. 감독 본인과 아키바 골드먼을 위시한 시나리오팀은 (본인들의 항변과는 달리) ‘다크 타워’의 세계관을 그다지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잊어버린 이들처럼 보인다. 이 작자들은 단순히 프랜차이즈의 첫 한 편을 망친 것이 아니라 한 질의 전집 전체에 타르를 펴발랐다. 나란히 거론되던 ‘얼음과 불의 노래’가 HBO의 과감한 제작를 통해서 천문학적인 경제 효과를 불러 일으킨 것을 보면서 도대체 느끼는 것이 있는지나 모르겠다. 어려운 요구를 한 것도 아니다. 누가 창의적인 내용을 만들어 넣으라고 한 적도 없다. 이렇게 다짜고짜 뒤죽박죽 내용을 섞어서 강아지 판을 만들어 놓은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다. 첫번째 권만 가지고 있는 그대로만 성실하게 만들어도 중간은 갔을거고 (러닝타임 95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 박스 오피스에서 월드 와이드 3-5억 달러 언저리에만 걸치면 최소 트릴로지 제작은 보장이라고 봤는데 지금 상태로는 수습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오매불망 십수년을 기다렸는데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영화가 나왔다면 팬들의 무너진 억장은 도대체 누가 보상해줄 수 있단 말인가.


(2017년 8월)

  1. 조지 R.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를 TV 시리즈로 제작한 HBO의 '왕좌의 게임(David Benioff & D. B. Weiss, 2011- )'은 60분 드라마 한 편 제작비가 1천만 달러다. 심지어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그레이의 오십가지 그림자: 심연 (샘 테일러 존슨, 2017)'의 제작비조차 5천 5백만 달러 수준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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