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사회
by 김영준 (James Kim) 술을 못 마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술잔을 이용하여 술을 입에 부어 넣고, 그것이 식도를 타고 흘러 위로 들어가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 서투르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술과 관련된 모든 제반 행위에 영 소질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와는 달리 다년간의 사회생활 경험을 가지고 있는 K의 귀띔에 의하면,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다 요령과 기술이 있는지라, 진정한 고수는 '혹시나 나한테 술을 줄까' 조마조마 가슴 졸이는 대신에 먼저 남의 잔에 술을 채워주는 사람이며, 겉으로는 같은 시간 동안 똑같이 마신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훨씬 적게 마신 사람이라고 했다. 나 역시 그렇게 쉬운 길이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으나, 역시 고수의 영역은 고수의 영역인지라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가 없는 나로서는 영 서투르고 쑥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누구는 술 한잔에 꽃 한 가지를 꺾어놓는다고도 했고, 누구는 술잔에 눈물을 첨(添)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만큼 즐길만한 능력이 없기에 나름대로 전공을 살려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는 했다. 남몰래 물잔에 따라내어 보기도 하고(Seperation), 밑반찬으로 나온 양배추잎을 '흑배추' 삼아서 술잔에 담가 술을 빨아들이도록 했으며(Diffusion), 시간과 숯불의 도움으로 신에 섭리에 따라 술이 저절로 날아가 보기를 기대하기도 했다(Evaporation). 참고로 당연하게도 알코올은 그 정도 온도에서 날아가지 않더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으로 가상한 노력이었지만, 어느 쪽도 술의, 술에 의한, 술을 위한 이 정신 나간 세상의 풍파에서 나를 구원해 줄 탁월한 방법이 되어주지는 않았다. 그렇다. 술을 못 마신다는 것이 어떤 사람의 결점이 되고, 결격사유가 된다는 것은 순전히 세상이 술에 미쳐있기 때문이다.
미친 정도가 아니라 세상은 술에 의해서 돌아간다. 만남의 신, 이별의 신, 그리고 큐피트와 주류회사 사이의 은밀한 커넥션까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랑과 이별의 자리에는 거짓말처럼 술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술은 대학생활과 사회생활에 있어서 혈연-지연-학연을 조밀하게 연결한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조차도 야심한 공원에서 소주팩을 나눠마시고는 세상을 모두 가진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어디 그뿐인가. 모든 결속과 유착과 불법과 비리의 자리에는 어김없이 술이 존재하며, 때로는 그것이 접대와 향응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뻑뻑한 세상에 적당히 기름칠을 하기도 한다. 더러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 사회에 분개하는 통에 흉장이 막혀서 술을 먹기도 한다. 언젠가 나는 영어 선생님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제발 영어 좀 잘하게 해주세요. 플리즈.' 영어 선생님이 램프의 요정 지니도 아니고, 말만 한다고 소원을 들어줄 리가 만무하건만, 그래도 명색이 선생인 그와 영어의 사이에는 무지한 나와 영어 사이에 있는 저 멀고도 깊고도 난감한 망망대해(茫茫大海)가 없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의외로 흔쾌하게 대답했다. - 그래? 술 한잔 먹으면서 생각해 보자.
맙소사. 그날 선생님은 혼자서 맥주 2500cc를 마셨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그날 우리가 얼마나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르겠다. 콜라를 그의 10분의 일쯤만 마신 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그날 우리의 이야기에는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관계대명사, 접속사, 준동사, 빈도부사, 전치사등도 나오지 않았고, 가정법, 수동태, 비교급, 현재완료, 과거완료, 미래시제, 진행형, 동시상황등도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그럼 자그마치 세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가 오갔느냐. 그건 나도 모른다. 그냥 술만 마셨으니까. 그런데도 다음날 선생님은 술이 덜 깬듯 검지손가락으로 이마를 비벼가며 나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 이제 고민이 좀 풀렸니?
술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많은 경우에 이런 식이다.
그래서 말인데, 지난 밤 술자리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술을 못하는 사람에게 술자리란 진정 고역이다. 근 며칠 동안 치과에서 얼마나 아픈 신경치료를 받아 왔는지를 감안한다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노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주 반 잔과 맥주 반 잔은 애주가들에게는 가소로울 양인지 몰라도, 치통으로 온 얼굴이 욱신거리는 나에게는 거진 치사량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李선생은 자꾸만 원샷을 권했다. 우측 턱이 시큰해졌다. 어지간하면 그냥 눈치껏 마시는 척만 하며 분위기를 맞추려 했는데,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명색이 치과 다니는 중이라고 그 좋아하는 콜라도 양심상 마다하고 있는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더 이상 마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했다. 내가 술을 마다하는 것은 이 자리의 신성함을 모독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당신의 권위를 무시하고자 함도 아니며, 사회통합을 저해하기 위함도 아닌, 오로지 의사의 권유에 의해 내 몸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아울러 통증을 참아가며 진작에 빠지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은 이 자리의 상황적 특수성을 알았기 때문에 최대한 예의를 차린 결과라는 사실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래서 바람직한 결과를 얻었느냐. 천만에. 자고로 어디 취자(醉者)가 남의 말을 끝까지 듣는 법이 있던가. 李선생은 거두절미하고 이를 보여주시겠다고 했다. 구멍이 송송 뚤리고 망가진 자신의 이를 말이다. 이가 이 모양인 당신도 술을 마시는데, 젊은 놈이 뭐가 그리 대수냐는 것이었다. 대선배인 그분께는 정말 죄송한 이야기지만, 순간 나는 그동안 품고 있던 존경심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렸고, 더불어 구토를 일으킬 뻔했다. 그렇다면 내가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밤낮으로 박박 긁혀가면서, 그것도 온몸에 전기가 타고 흐르는듯한 통증을 참으면서, 신경치료한 부위가 부어오르건, 염증이 생기건 그냥 놔두라는 말인가. 그래서 설사 이가 엉망이 되는 한이 있어도 이 자리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자세이고, 선배에 대한 예의이며, 바람직한 사회생활이라는 말인가. 당연히 이를 보여주실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고집을 부려 끝까지 더 이상의 술은 마시지 않았다. 덕분에 톡톡히 대가를 치렀는데, 그 죄목은 크게 일곱 가지로 요약될 수 있었다. ① 우선 술자리의 분위기를 망쳤고 ② 자기 몸만 생각했으며 ③ 사내 놈이 음식을 가리기까지 하는 등 ④ 전혀 다른 사람들을 챙길 줄 모르고 챙김을 받으려고만 한다. ⑤ 아무튼 젊은 놈이 패기가 없는데 ⑥ 이는 아마 조직 생활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서 그럴 것이며 ⑦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고생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로 우리 조직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인지, 왜 네가 이 자리에 와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게졌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술을 못 마신다는 사실이 그렇게 큰 죄로 부풀려질 수 있는지 미처 몰랐던 탓이다.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신경치료 중인 오른쪽 이가 저릿저릿했다. 치과에 갔더니, 의사가 어떻게 알았는지, 속에 귀신이 들어앉았는지, 간밤에 혹시 술을 자셨는지 묻는다. 그렇노라고 대답했더니 당신 미쳤느냐며 치과보다는 정신과에 먼저 가보란다. 아아.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酒權)은 국민에게 있단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자꾸 술을 권하는고!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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