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와상을 사러 돌아섰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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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와상을 사러 돌아섰을 때

by 김영준 (James Kim)

  학교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걸어서는 이십 분이 걸리는 곳에는 커다란 빵집이 하나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빵을 팔기만 하는 고전적인 빵집으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빵집과 카페가 반반쯤 뒤섞인 것으로 차츰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빌딩 하나의 1층을 거의 모두 사용하는 이 매장은 이제까지 내가 가 본 어느 빵집보다도 컸는데, 대충 눈짐작으로 미루어 보기에 실내만 적어도 칠팔십 평은 넘는 듯 보였다. 하긴 나는 천성적으로 길이, 무게, 크기, 시간,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비율에 있어서 둔감하기 짝이 없는지라, 스스로도 자신의 판단을 크게 신뢰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빵집으로는 테라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범상한 빵집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 위용에 (이름은 익숙한 옛 것이로되, 모습은 옛 것이 아니로다.) 잠시 망설이다가 빵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순간,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만치 향긋한 빵내음이 천지를 진동했다. 진작에 프랑스로 제빵유학이나 떠나는 건데, 하는 후회가 다시금 밀려들었다. 쟁반과 집게를 집어 들고 천천히 진열대를 돌았다. 처음에는 빠르게, 두 번째는 조금 느리게. 이는 빵집에 갈 때마다 반복하는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첫 번에는 전체적인 동태파악을, 두 번째는 보다 정확한 목표 대상을 설정한다. 이는 매우 신중한 작업으로, 반드시 이 시점까지는 아직 접시도, 마음도 비어 있어야만 냉정한 선택을 할 수가 있다. 접시를 채우는 것은 그다음 단계이다. 그러니까 마음속으로 무엇을 골라야겠다는 확신이 생긴 다음, 가격, 영양, 칼로리, 모양새, 먹음직 지수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다음 마지막 한 바퀴를 도는 것이다. 이때는 마음에 품었던 사랑스러운 빵들을 접시에 올려 담는다. 이 과정은 매가 병아리를 낚아채듯이, 게가 눈을 감추듯이, 신속하고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신속하게, 바로 이것이 빵집에서의 만족스러운 선택을 위한 최고의 지침이라 나는 믿는다.

 

  숙련된 솜씨로 베이글 하나와 크로와상 하나를 접시에 올려놓았다. 거의 그와 동시에 (그보다 약간 빨리, 혹은 그보다 약간 늦게라고 해도 상관없는데) 나는 진열장 너머에서 아주 익숙한 얼굴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게트도 아니었고, 슈크림도 아니었으며, 머핀이나 슈폰케익, 혹은 페스트리도 아니었다. 그럼 무엇인고 하니, 바로 지금으로부터 2년여 전에 소개팅을 했던 여학생이었다. 그간에 기구한 사연으로 학교를 그만두었거나, 유별난 재능으로 조기에 졸업하지 않은 이상, 그녀는 아직까지 학생일 테니, 내가 기억하는 대로, 그냥 하던 대로 여학생이라고 해두자. 호칭이야 어쨌건, 지금 중요한 것은 나에게 있어 그녀가 가지는 의미란 상당히 특별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경험한 첫 번째 소개팅이었고 그녀가 내 첫 소개팅 상대였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첫 번째 미팅을 같이했던 여학생들의 얼굴은 이제 와서 떠오르지가 않는다. 당시 내 정신이 또이또이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고, 그네들이 네 명이고 우리 남학생들 쪽이 네 명, 무려 합이 여덟 명이나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고, 네 명이나 되는 상대 여학생들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모두 고만고만하게 닮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신촌의 이름 모를 지하 주점의 조명이 어두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도 첫 번째 소개팅 상대이자, 건너편의 테이블에서 혼자 이천삼백 원짜리 카페라테를 마시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부끄러워진 나는 재빨리 빵을 다시 내려놓고 접시를 원래 자리에 가져다놓은 다음에 도망치듯 빵집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아직까지 다시 그 빵집에 가보지 못했고 그 집 크로와상을 맛보지도 못했다.

 

(200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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