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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스 월드 투어 (Trolls World Tour, 2020)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0.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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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산업에서 속편을 만들어 내는 기술에는 많은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납득하기 쉽지 않은 것은 터무니 없는 세계의 확장이다. 생각해보면 이미 그 자리에 있었던 공간과 존재를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우연히 알게 되었다는 주장은 농담치고는 고약하다. 아렌델의 어여쁜 자매님들이야 부모의 과잉 보호, 언니의 독보적인 히키코모리 기질, 선대의 의지가 개입한 초자연적인 힘 등의 복합적 사연으로 인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공동체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고 치자. 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작은 싱잉-댄싱-허깅 머신들이 자신들의 생활 터전에 인접하여 다른 트롤 종족들의 영역이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껏 몰랐다는 사실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것도 무려 다섯 개나 되는 집단이 더 있어 대륙을 여섯 영역으로 나누어 (그 사실을 알면서도 숨겼다는 킹 패피는 꽤나 구체적인 지도까지 가지고 있다) 지내고 있었다니 더 황당하다. 이 주장이 특히 게으를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괘씸하게 느껴지는 것은 트롤의 종족적 명운을 다루었던 전작의 내용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분명 전작에서는 트롤데이(Trollstice)를 정해놓고 트롤 잡아먹는 괴물 버겐들의 마을로부터 킹 패피가 모세처럼 트롤들을 이끌고 도망쳐나와 마을을 세운 것이 약 20년 전이라고 설명하였던 바 있다.) 

 

  '트롤즈(마이크 미첼, 2016)' 이후 4년만에 등장한 이 속편은 팝, 록, 컨트리, 펑크, 테크노, 클래시컬 등 장르를 대표하는 여섯 트롤 종족 중 ‘하드록’ 계열의 트롤들이 ‘매드맥스’ 스타일로, 자칭 ‘월드 투어’라는 이름 아래, ‘닐프가드’처럼 정복욕을 드러내는 사건을 다룬다. 그리 병렬적이지도 않거니와 너무 굵직한 공백마저 있는 이 단순한 장르의 분법이 역사적 발생과 진화 과정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어쩌면 차라리 팀 켈리, 팀 아담, 팀 블레이크, 팀 레전드가 더 정확한 분법일지 모른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은 혼란스러운 관점이다. 사실 전작의 미덕은 클래식 코믹스 ‘더 스머프’에 자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시그니쳐인 ‘슈렉(앤드류 아담슨 & 비키 젠슨, 2001)’을 혼합한 이야기로 ‘트롤’과 ‘버겐’을 (동시에 프린세스 파피와 브랜치를, 또 동시에 그리스틀 주니어와 브리짓을) 대비시키며 뮤직필들이 즐거운 음악의 힘으로 냉담자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잃어버린 행복을 발견한다는 부분에 있었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명쾌했고 주제는 아름다운 색감만큼이나 선명했다. 하지만 트롤의 종족을 나누고 장르르 나누어 마치 분파간의 노선 경쟁처럼 몰아가는 이 새로운 스토리 라인은 본연의 주제 의식을 크게 약화시키는 위험한 도박처럼 느껴진다. 이미 4년 전에 트롤들은 사실상 모든 장르를 시대적 제약없이 넘나들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우리 음악’과 ‘남의 음악’을 나누고 ‘오늘의 음악’과 ‘오래된 음악’을 애써 나누는 것 또한 이상하다. 그 결과 선곡 또한 플롯을 따라가지 않고 종족과 그 종족이 대표하는 장르를 무의미하게 전시하는 식으로 산발적으로 기능하니 (아이러니하게도 악역을 맡은 록 진영만이 오직 하트, 오지 오스본, 스콜피온즈로 이어지는 그나마 대표성이 있는 명곡을 제시한다) 주크박스 뮤지컬로의 정체성 또한 살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 어수선한 난장판은 비단 플롯과 주제와 선곡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전작에서 가장 두드러진 기술적 성취는 ‘굿 럭 트롤 인형’의 특장점 - 즉, 트롤의 부드럽고 퍼리한 울 머리칼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형태(파스텔 톤 색감, 풍성한 부피, 세밀한 질감)와 기능(마치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처럼 자유자재로 활용하거나 따로 또 같이 조합하여 새로운 모양으로 구현하는 등)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을 제시하는 것은 시리즈의 정체성에 직결되는 문제였는데, 이상하게도 이 속편은 그런 부분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는다. 거의 1억 달러에 육박하는 제작비를 들이는 프로젝트에 노출된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부정합은 결국 크리에이티브 프로세스 상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사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이미 모든 작품의 프랜차이즈화에 지나친 에너지를 쏟고 있기는 하다. 지금까지 발표한 장편 애니메이션 열 편 중 여섯 편 꼴로 속편이 만들어졌거나 앞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그 중에 이미 세 편 이상 만들어진 사례가 네 작품이나 된다. 뿐만 아니라 2000년 이후 등장한 모든 장편 애니메이션이 별도의 TV시리즈를 갖고 있는데 각기 평균 다섯 시즌 이상 방영되고 있다. 어쩌면 한계가 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다. 속편 제작 자체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고유의 독창성을 잃어버린 속편이 남발되고 있는 상황은 분명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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