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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갔어, 버나뎃 (Where'd You Go, Bernadette, 2019)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0.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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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셈플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근 높은 타율을 기록한 코드들의 조합이다. 이는 방송작가 출신인 샘플이 패러디와 파스티슈에 능숙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장 전반의 유행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지난 십여 년간 크게 유행한 리안 모리아티로 대표되는 교외 가정주부 스릴러의 팬이라면 빅 테크 시대의 여성 월터 미티가 벌이는 이 평온한 ‘곤 걸 (길리언 플린, 2012)’ 스타일 소동을 마음에 들어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실제로 원작이 출판된 해를 따져보면 2012년으로 단지 영화화만 늦게 이루어졌을 뿐 실상 전술한 작품들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등장한 셈인데, 이 뒤늦은 각색 과정에서 다른 성공작들의 세부 요소나 미투 무브먼트 이후의 시대적 분위기가 많이 첨가되었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사실 원작의 매력은 스토리 라인 자체라기보다는 재치있고 산뜻한 대사, 경량하고 리듬감 있는 전개, 그리고 이피스톨라리(Epistolary) - 이메일과 문자메세지, 기록과 보고서, 그리고 각종 메모 등을 활용한 형식적 해체 및 독창적 재구성에 있는데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이 사실 적잖이 사라진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또한 챕터마다 화자를 적절히 바꾸어 기술하는 방법 (이 역시 ‘유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지난 10년 동안의 미스테리 소설들에서 과잉 남발된 형식이다) 역시 영화라는 형식과 잘 맞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유감스럽게도 이번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영화화는 후자 쪽에 가까워 보인다. 전반적으로 느슨하고 산만하여 원작 특유의 편치 라인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긴장감을 흐뜨러뜨리는 요소들이 지나치게 많다. 

  다소 따분하고 예측 가능한 이 가족 코미디의 체급을 올려버린 의외의 요소는 예상을 벗어난 캐스팅의 조합이다. 스토리만 보면 일단은 마크 월버그와 로즈 번의 조합, (조금 더 개런티를 지출한다면) 마이클 쉰과 리즈 위더스푼 혹은 제이슨 베이트만과 제니퍼 에니스턴의 조합에 어울릴 것 같은데 엉뚱하게도 (기억이 맞다면) 스크류볼 패밀리 코미디에 출연한 적이 없는 빌리 크루덥과 케이트 블란쳇이 부부로 등장한다.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이 특히 케이트 블란쳇(필살기: 신경 쇠약)의 존재는 이 작품을 순식간에 헤비급으로 만들어 버리며, 빌리 크루덥(필살기: 목소리가 좋아 목선생)의 음성 지원은 순식간에 관객을 에코 체임버 (혹은 목욕탕) 안에 가두어 버린다. 이 두 사람이 나서면 이상한 이야기도 어쩐지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그런 연유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원작 소설의 신선하고 독특한 매력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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