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010. 놀라운 레크레이션의 세계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1. 4. 8.

본문

  놀랍다면 놀랍고 놀랍지 않다면 놀랍지 않은 사실 한 가지. 도서관이라는 곳에는 의외로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이는 책들이 많이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책들은 굳이 도서관에 없다고 하더라도 하등의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도서관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권위나 일정한 수준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뜻이다. 가령  같은 책이 없다고 하여 크게 아쉬워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나 이미 'PC 통신'이라는 개념이 세월 속에 우주 멀리, 아주 멀리 흘러가고 있는 이 시점에 도서관씩이나 와서 이런 책을 애써 찾아보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미 유행이 지나가도 한참 지나간 시대의 유머들을 모아 놓은 것일 뿐더러 (뭐, 하기야 출판년도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리던 해로 되어 있으니) 그런 말장난들이 사회 문화적인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누가 갑자기 유머 트랜드의 시대적 변천과 그 사회성에 대한 심도깊은 고찰’라는 제목의 야심찬 논문을 쓰겠다며 찾지 않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주위의 도서관에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빽빽하게 꽃혀있다. 

  
  그 중에서 오늘 소개할 것은 <놀이보따리>라는 책이다. 놀이와 교육이 하나로 어우러진 새로운 차원의 놀이 모음집이라는 이 책은 '청소년 놀이문화원'이라는 그럴듯하면서도 정체불명인 기관에서 발간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도 엄연히 저자가 있고 자료를 연구한 기관도 있는 책인데, 도서관에 없어도 좋은 책들중의 하나라고 단정지어서 대단히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1994년에 처음 출판되고, 1999년에 2판이 발행되어, 2005년에 내가 읽어보게 된 책이라고 하기에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놀이문화는 실로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그 경이적 놀라움과 확실한 재미를 감안할때, 이 책에 나와있는 모든 놀이에 대해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긴 글은 항상 지루함을 동반하므로 몇 가지만 추려서 적기로 한다. 가장 당혹스러운 여섯 가지에 대해서만 말이다. 보다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지역 도서관에서 찾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렇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많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책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놀이 1. 구애 작전

짝끼리 마주 보고서 앉는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손수건 양 끝을 잡아서 느슨하게 묶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속에 손바닥을 쭉 펴고 팔목까지 집어 넣는다. 시작하면 손수건을 잡은 사람은 손수건을 잽싸게 당겨서 손을 묶고, 손을 넣은 사람은 손이 묶이지 않도록 잽싸게 빼야 한다. 이렇게 승부를 가리면서 교대로 진행한다. (본문 중에서) 


  구애라기 보다는 마치 원시적인 수렵 행위를 연상 시키는 이 놀이는 ‘몇 사람만 모여도 재미있게 놀 수가 있다’는 모토 아래 소개가 되어 있다. 일단 이 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난해한 묘사가 눈에 띈다. 결국 쌀보리 놀이를 손수건으로 한다는 이야기로 짐작이 되는데 설명만으로는 장면을 그려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대충 관건은 손이 묶이느냐, 묶이지 않느냐의 여부로 보인다. 고로 참여자의 제일 덕목은 누구보다 잽싼 동작이다. 저자는 이를 몹시도 강조하고 싶었던 나머지 '잽싸게'라는 표현을 무려 두 번이나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다 좋다고 치자. 여전히 과연 이것이 정말 재미있는 놀이인지 의구심은 남는다. (‘쌀보리’만 봐도 그게 그렇게 재미있는 놀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혹시 모르겠다. 손수건에 묶이느냐, 묶이지 않느냐의 여부에서 몸서리칠만큼 큰 재미와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세상은 넓고 별별 사람이 다 있으니. 다만 어떤 두 사람이 텅 빈 방안에 앉아서 이런 놀이를 하는 광경을 상상해보니, 흠. 그건 좀 무섭군요.


놀이 2. 코흘릴 적 친구 

패별로 남녀가 교대로 앉는다. 맨 끝에 있는 사람이 코에 붉은 립스틱을 충분히 바른다. 이 놀이는 옆 사람과 코를 맞대고 립스틱을 옮겨 묻히는데, 이렇게 계속 연결하여 마지막 사람에게 가장 진하게 옮기는 패가 이긴다. 코를 맞대는 것은 에스키모들의 인사법이기도 하다. (본문 중에서)


  무엇보다 립스틱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이 놀이는 그 제목에서부터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놀이의 이름은 '코흘릴 적 친구'인데, 정작 내용 기술에서는 코를 맞대는 것은 '에스키모들의 인사법’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키모의 코흘릴 적의 친구인지, 코흘릴 적의 친구가 에스키모였는지, 에스키모라 코를 흘리는 건지, 이 놀이의 유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책을 읽어야하는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어쨌든 이 놀이는 건전하디 건전한 이 책에서 십중 팔구 부적절한 접촉으로 끝날 '풍선 터뜨리기'와 조선시대 타락한 양반님네들의 기생질을 연상시키는 '장님 놀이'를 제외하고는 가장 위험하게 보이는 놀이중의 하나다. '남녀가 교대로 앉는다'라는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더니만, 끝내 서로 코를 문지르기까지 하란다. 예나 지금이나 교재에 나온 이론과 실제 현장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법.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이 과연 순순히 코에 립스틱만 묻히고 끝낼런지는 의문이다. 설사 하나님이 보우하사 정말 코에 립스틱만 묻히는 정도에서 끝낸다고 하더라도, 서로 코를 맞대고 비비는 그 모양새가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놀이 3. 발바닥 위의 세수대야

6명 단위로 패를 구성한다. 패별로 전원이 드러누워서 원중앙에 발을 들어 올린 채로 발바닥을 모은다. 모인 발바닥 위에 물이 가득 담긴 그릇을 올려놓는다. 이 놀이의 목적은 물이 흘러 내리지 않게 하면서 전원이 신발을 벗는데 있으며, 3분안에 몇개의 신발을 벗었는가를 가지고 승부를 가린다. (본문 중에서)


  놀이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패의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난감한 기분이 들것만 같은 이 게임은 '물벼락 놀이'라는 챕터에 첫번째로 등장하는 놀이이다. 도대체 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놀이가 얼마나 많길래 따로 한 챕터까지 만들어지는가 싶기도 하지만, 이 책은 '물 컵 이고 달리기,’ '물 풍선 던지기,’ '이마 위의 물 컵,’ '한밤중의 결투,’ '스폰지 전쟁,’ '장님 사냥꾼’ 등 열 세개에 이르는 물벼락 놀이를 설명하고 있다. (저 심상치 않은 제목들을 한번 되짚어보라. 도대체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물장난이 존재하는 것인가?)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 역설한 탈레스 이후 이렇게 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었는지 의문이다. 각설하고, 발바닥 위의 세수대야. 음… 아니다. 굳이 설명조차 필요 없을 듯 하다. 이 정도로만 해두고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자.


놀이 4. 빨래 널기

두 사람이 양 무릎이 닿도록 밀착하여 마주보고 의자에 앉는다. 눈 가리개를 하고, 의자 오른쪽에 놓여있는 빨래집게를 가지고 정해진 시간 내에 상대방의 옷에 누가 많이 집는가를 가지고 경쟁하는 놀이이다. (본문 중에서)


  이 놀이에 대한 설명은 참으로 장황하고도 복잡하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아주 간단한 놀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냥 상대방의 옷에 빨래집게를 많이 꽃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인 것이다. 도대체 어째서 비문이 될 위험을 감수하고 저런 질펀한 설명을 구사했는지 모르겟다. 문장을 길게 쓴다고하여 조상의 슬기로운 얼을 오늘날에 되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이 놀이 또한 맨 처음에 소개한 '구애 작전'과 마찬가지의 문제를 갖고 있다. 빨래집게에 몸서리칠 흥분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여기에 재미있을 여지가 과연 있을까 싶다. 나아가 텅 빈 방안에 휑하니 앉아있는 두 사람이 서로의 옷깃에 빨래집게를 집는 장면을 상상하자면 어쩐지 쑥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음도 물론이다. 


놀이 5. 하나, 둘, 셋, 넷 

참가자들은 서로 2인 1패씩을 이루어 서로 마주보고 앉는다. 두 명씩 마주보고 앉은 참가자들은 서로 한번씩 주먹을 내어 층층히 올려 쌓는다. (마치 4층 주먹탑처럼 된다) 준비가 되어 진행자가 하나, 둘, 셋, 넷 가운데서 어느 한가지 숫자를 부르면 참가자들은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손을 바쁘게 움직여야만 한다. 즉, '하나'하면 맨 밑에 있던 주먹을 맨 위로 올려 놓는다. '둘'하면 밑에서 두번째 있던 주먹을 '셋'하면 밑에서 세번째 주먹을 빼서 맨 위로 올려놓는다. 이 놀이에서는 '넷'이 가장 중요하다. 진행자가 '넷'하면 맨 밑에 있던 주먹을 재빨리 빼서 맨 위에 있는 주먹을 처야 한다. 미련하게도 자기 손을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문중에서) 


  참으로 간소하고 소박한 이 '하나, 둘, 셋, 넷'이라는 놀이의 설명은 저자의 주옥같은 표현력이 정점에 이른 부분이라 하겠다. 4층 주먹탑이라는 상큼한 표현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 ‘미련하게도 자기 손을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울린다. 놀이의 재미를 떠나, 세상의 그 어떤 뛰어난 문장가라 할지라도 주먹 네 개를 모아 번갈아 서로 때리는 이 단순한 놀이를 이렇게 한 페이지씩이나 할애하여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놀이 6. 캥거루 

두 사람이 몸을 반대방향으로 꼬고, 양손과 발을 땅에 대고 있는 사람의 방향으로 결승선까지 기어간다. (본문중에서)


 
  드디어 이 책이 소개하는 놀이가 아크로바틱의 영역에까지 들어갔다. 그럼에도 달랑 한 문장의 설명이 전부다. 쉽게 와 닿지 않는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소위 엎드려 뻗쳐 자세를 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이 그 아래로 들어가서 다리를 윗 사람의 몸에 감는 것이다. (살짝 민망스럽게 보일 여지가 있다.) 그리고 엎드려 뻗쳐 자세를 하고 있는 사람이 기어 이동하기 시작한다. 다른 한 사람이 매달려 있는 상태로 말이다. 막강한 내공의 저자도 활자로만은 설명에 한계가 있었는지 삽화를 곁들여 놓았다. 두 사람이 앞 뒤로 붙어있는 충격적인 그림인데 즐겁게 노는 두 친구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머리를 두 개 가진 반인반수처럼 보여서 조금 섬뜩하기까지 하다. 아니, 다른 걸 떠나서 저렇게까지 하고 놀아야 한다는 것이 비참한 느낌이다. 그런데 놀이의 이름은 어째서 캥거루일까. 


*


  나는 레크레이션과 상극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평생 어디 모여서 노는 자리에 가본 일이 없다. 따라서 단체 놀이 문화의 중요성을 아무래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래서 이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놀이를 권장하는 낡아빠진 레크레이션 지침서가 굳이 대학 도서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 필요를 잘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종류의 레크레이션들이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여전히 주말 저녁시간대의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들은 거진 연예인들이 모여 이런 수준의 게임을 벌이며 깔깔거리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2001년 04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