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민주주의는 이래서 안된다
낙농콩단

015. 민주주의는 이래서 안된다

by 김영준 (James Kim)

  실수였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아무 미용실에나 들어가는 게 아닌데. 남성 커트가 단 돈 오천원이라는 대단히 매력적인 사실에 혹해서 들어간 그곳에서 나는 가위보다는 입을 더 많이 놀리는 미용사 언니, 아니 아주머니를 만났다. 개인적으로 미용사라면 마땅히 화려한 입담보다는 화려한 가위질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전직 만담가였는지, 아니면 취미로 샵을 운영하는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용사의 상에 그리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딴은 그렇다. 나는 정해진 비용을 지불하고 (요즘 평균 이발비보다 이천원에서 삼천원 더 저렴하였다) 원하는 대로 머리만 다듬는 서비스를 제공받으면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미용사 말수의 많고 적음은 사실 크게 상관이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속 편하게 앉아있을 수가 없었던 이유가 있다. 무릇 사람이란 로봇과는 달라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기가 어려운 법. 아무리 숙련된 미용사라 할지라도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당연히 가위질에는 신경을 덜 쓰게 될텐데 하필 그 가위가 내 머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건 수다를 떨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빵을 굽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아주머니는 우선 현 시국에 대한 강도높은 비난으로 운을 떼었다. 아참, 앞서 그녀는 자신을 '건강한 중도 우파'라고 소개했다. 아아! 이 향기로운 정치의 계절이여! 어쩌자고 동네 미용실에서조차 좌파와 우파라는 엉뚱맞은 나눗셈을 보게 되는 것이냐는 말이다. 20세기가 저물고 어느새 새로운 천년이 밝았는데 말이다. 도대체 미용사 아주머니가 생각하는 '건강한 중도 우파'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럼 또 ‘건강한 중도 좌파’도 있으며 나아가 ‘건강하지 않은 중도 우파’와 ‘건강하지 않은 중도 좌파’도 있단 말인가? 아무튼 그렇다고 치자. 미용사가 ‘건강한 중도 우파’일 수는 있다. 그런데 ‘건강한 중도 우파 미용사’라는 건 또 무엇인가?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흥분할 때마가 가위는 내 머리 위에서 격렬히도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그 투박한 가위질에 금방이라도 귀가 베일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아시다시피 그것은 가위가 하나이고 내 귀가 두 개라고 해서 본전을 찾을 수 있는 종류의 장사가 절대로 아니다. 한참을 툴툴대고 나서야 그녀는 힘있게 덧붙였다. 이래서 민주주의는 안된다니까. 


  아주머니. 제발 부탁입니다. 나라를 걱정하기 전에 손님의 머리를 걱정해 주세요. 민주주의는 아주머니가 그리 심려치 않으셔도 어지간히 알아서 돌아가게 되어 있답니다 (뭐,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압니다만). 하지만 제 머리는 지금 온전히 당신의 손에 달려있답니다. 최근 나라에서 밀고 있는 ‘긍정의 힘을 믿으세요’라는 공익 광고는 혹시 보셨는지요. 긍정의 힘을 제발 좀 믿고 입을 한 일(一) 자로 꾹 굳게 다문채 제 머리카락을 잘라주세요. 원한다면 오천원에 천원까지는 더 얹어드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천원을 더 드리면 제가 이 미용실에 온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에 조금 곤란하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아주머니가 빛나는 가위를 목덜미에 들이댈 것만 같아 솔직히 무서웠기 때문이다. 칼자루가 아닌 가위자루는 내가 아니라 그녀가 쥐고 있었다.


*


  이래뵈도 사실 난 민주주의의 맹점을 열한 살 때 스스로 깨우친 사람이다. 신동은 물론 아니었고, 신동 비슷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남달리 조숙하여 여러가지 역사 서적을 탐독하고 하나하나 되짚어 보다가 "아아, 민주주의란 본래 잘 안 돌아가기가 태반이고, 그걸 또 고치려고 건드리면 피비린내가 나는 법이고 비극적이게도 역사는 항상 되풀이되는 법이니 답이 없겠다" 하고 탄식하며 알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가 알아버렸다. 


  열한 살때였다. 담임선생님은 민주주의를 가르치려고 하셨다. 이름하여 HR. 야구에서 말하는 홈런(Home Run)도 아니고, 회사에서 말하는 인사, 그러니까 인적자원(Human Resource)도 물론 아니고, 그 이름도 거룩한 학급회의였다. 당시 대개 학급회의는 의례적으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가는 것이 관례였는데, 우리 선생님만큼은 달랐다. 아직 의욕이 꺾이기 전의 젊은 교사였던 선생님께서는 아직 마키아벨리보다는 페라클레스의 말을 더 믿고 계시는 듯했다. 때문에 먼지 풀풀 날리는 조그만 교실에 열한 살짜리 국민학생, 그러니까 초등학생들을 모아놓고 민주주의의 싹을 틔우려고 부단히 애를 쓰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급회의 시간에 가동하신 입법, 행정, 사법부를 통합시킨 유례없는 초학급적 기관이 민주주의 시스템에 맞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어쨌든 선생님이 학급회의를 통해 가르치려고 하셨던 것은 합리적 구성원들의 의견들을 민주적으로 수렴하면 이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 - 학급 구성원의 민주적 동의를 바탕으로 학급의 룰을 만들었고, 학급 구성원의 민주적 동의를 바탕으로 학급의 일을 보았고, 학급 구성원의 민주적 동의를 바탕으로 학급의 룰을 수호하였다.


  어느날 문제가 생겼다. 2분단 다섯째 줄에 앉아있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사이에 책상 경계와 지우개의 소유권을 둘러싼 국지적 분쟁이 발생했다. 사건인즉슨 남자아이가 책상에 매직으로 그어놓은 38선을 하필 여자아이의 철 모르는 새 지우개가 굴러 넘어갔던 것이다. 기억들 하시겠지만 책상 중앙에 선을 그어놓고 네 물건이 내 책상으로 넘어오지 않게 하라고 서로 윽박들 지르고는 했었다. 그러니 남자아이는 당장 새 지우개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천명했다. 여자아이는 새 지우개를 눈 뜨고 빼앗길 수 없었고 남자아이는 거세게 반발하는 여자아이에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당시의 그 충격적 발언은 그 반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생생하게 들었을 정도로 크고 또렷했다. 다만 도저히 이 자리에서 공개할 수 없는 수준이므로 모조리 필터링처리하도록 한다. 

"그래? 야 이 가문이 없고 종자도 없는 계집아이야. 간질병에 걸린 사람처럼 분별없이 행동하지 말고 그 장티푸스에 걸릴 강아지도 먹지 않을 열일곱과 열아홉사이에 있는 그 빌어먹을 지우개나 내놔. 그렇지 않으면 죽은 사람을 관에서 꺼내어 머리를 베는 형벌을 내릴테니까. 알았어? 이 명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것 같은 계집아이야!" 


  그렇게 심한 말을 듣게된 여자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많은 반 아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바로 뒷자리에 있던 나도 충격을 받았다. 저렇게 심한 말을 하다니! 고작 지우개 하나로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어려서부터 정의감이 투철했고 특히 예쁜 여자아이들에게 유난히 약했던 나는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정의를 바로 세우고 복수를 해주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녀석을 몇 대 때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내 나이 열한 살. 주먹으로만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질풍노도의 나이는 이미 지났다. 이제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구성원들의 뜻을 모으고 사회를 바꾸어 나갈 줄 알아야 한다고 여겼다. 당장 녀석을 때려눕히면 앞자리 여자아이의 복수를 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일이 누군가에게 또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도려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책상마다 그어놓은 38선도 문제지만 상호간의 협의가 안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였다. 특히 그 과정에서 급우 사이에 폭언을 퍼붓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였다. 초등학생들의 욕설 사용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었다. 일부 머리 크고 허파에 바람 들어간 녀석들은 이미 한국영화 속 조폭들처럼 욕설을 섞지 않고는 단 한 마디도 완결짓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구성원의 민주적 동의를 바탕으로 이 부조리를 갈아 엎겠노라 다짐했던 것이다. 고로 복수의 칼날을 감추고 다음 학급회의 시간을 기다렸다. 아아. 그리하여 그 주의 학급회의 시간에 정녕 손을 번쩍 들고서 말했던 것이다. “저는 우리 교실 내에서 모든 종류의 욕설을 금지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를 어기는 경우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순간 그 숙연한 분위기란. 나는 처음에 이 대단히 독창적인 발의에 모든 반 친구들이 마음속으로 깊이 감탄한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그들의 침묵은 경의의 표현인 줄로만 알았다. 잠시 뒤면 '동의합니다', '제청합니다' 따위의 열광적인 반응이 뒤따르고,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된 후 최고통수권자(담임 선생님이다)의 인가를 받아서 그 이름도 위대한 ‘욕설금지법’이 탄생할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이 법은 급우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문서 중의 하나가 될 예정이었다. 나는 이 작은 아고라 광장에 흐르는 민주주의의 기운을 만끽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침묵은 있는 그대로의 침묵이었다. 뒤이은 찬반투표에서 우리 민주적 집단의 민주적 구성원들은 나를 크게 실망시켰다. 육십 명중에 단 다섯 명만이 찬성. 압도적으로 처참하게 부결되었음은 물론이고 모두가 입을 모아 어이없는 의견이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학급회의 시간에 어처구니 없는 안건을 내는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누군가 (발언권을 얻지도 않고) 소리를 질렀다. 담임 선생님은 흥분한 아이들을 제지하느라 바빴고 여기저기서 비난도 쏟아졌다. 뿐만 아니라 그 다음 주에는 ‘정의는 멀고 주먹은 가까워서 행복한 학생들의 건강하고도 조직적인 모임,’ 속칭 ‘정주행'에서 나를 긴급소환해서 소위 ‘욕설금지법’의 진의(眞意)를 캐물었다. 그들은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자신들을 짓뭉개려는 정치적 의도가 없었는지를 궁금해했다. 아름답도록 화장실의 가물거리는 조명 아래서 나는 열과 성의를 다해서 ‘욕설금지법’이 만들어 낼 건전하고 아름다운 학급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들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은 벌컥 성을 내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욕을 했으니 네가 원하는 대로 돈을 내겠다"라고 엄숙하게 말하며 천원짜리 두 장을 던지고 나가 버렸다. 역시나 머리가 나쁜 그들은 내 주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다시피 나는 돈을 내고 욕을 하자고 한 적이 없었다. 


  이윽고 일주일이 지나서 다음 학급회의 시간이 돌아왔다. ‘정의는 멀고 주먹은 가까워서 행복한 학생들의 건강하고도 조직적인 모임’의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지난 주에 있었던 다시 한 번 나의 발의를 규탄(糾彈)하고,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안건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체육시간의 80퍼센트는 반드시 축구를 하도록 하는 ‘십분지팔축구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막강한 세력과 알이 굵은 주먹을 가지고 있던 그 집단에게 그 압도적 가결(可決)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한 학급의 60%가 남학생이니 가결되지 않으면 그 편이 더 이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후로 그들은 그 법을 바탕으로 체육시간마다 담임선생님에게 교과 대신 축구로 대체하기를 요구했다. 분명 이상하지 않은가? 좋은 취지의 제안은 다섯 표를 얻는데 그쳤다. 아무 의미가 없는 제안은 가뿐히 오십 표를 넘게 얻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여기에 대해 나에게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으셨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 사건으로 얻게된 깨달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이지 못한 구성원들이 민주적 시스템에 의해 도출한 결론이 항상 사회를 진보시키는 쪽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만약 그때 진작 깨닫지 못했으면 상급학년으로 진학하면서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겠는가. 눈치 없이 물성 모르고 ‘실내격투금지법,' ‘급식당번분쟁조정법,' ‘해우소흡연금지법,’ ‘복도좌측통행법,' ‘양아치 도편추방법,’ ‘주번직무집행법,’ 그리고 ‘지속가능한 커텐표백위생안전법’등을 지속적으로 발의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화장실로 소환당해서 껄렁거리는 녀석들 앞에서 매번 진의를 밝혀야 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한두 번쯤은 오지게 얻어 맞았을런지도 모르겠다. 


*


  아무튼 갑자기 이렇게 먼지 쌓인 옛날 이야기를 끌어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그렇게 민주주의의 맹점을 몸소 체험란 사람이니, 굳이 미용실에까지 와서 자칭 '중도우파 미용사'에게 그런 설교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귀를 다치지 않고 단정하게 머리를 자른 다음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 이봐요, 아주머니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200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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