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030. 십년전 일기를 꺼내어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2. 10. 20.

본문

  어제 방청소를 하다가 아주 오래전 일기장을 발견했다. 얼마나 오래 전이냐면은 자그마치 십년 전, 그러니까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지금이야 미취학아동과 중학생의 경계에 위치하며 어린이날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연령대의 아이들이 드나드는 곳을 '초등학교'라고 부르지만, 일기장 뒷표지에 서툰 글씨로 적혀있는 주인의 프로필로 미루어 볼때 내가 다니던 당시까지는 그것을 '국민학교'라고 불렀음이 확실하다. 물론 국민학교인지 초등학교인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이름만 달랐지 그게 그거니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어째서 그때의 일기장이 제본된 형태로 아직까지도 남아있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바로 그 부분이 문제다. 아시다시피 예전 일기장 같은 것은 남겨두어서 좋을 것이 없다. (첫사랑에게 쓴 손편지처럼) 나중에 내가 다시 볼 일도 없거니와 남이 보면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제본’까지 되어 있는 까닭은 당시 교장 선생님의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 분은 일기야 말로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모든 것들의 집약체라는 지론을 갖고 계셨다. 그리고 일기장을 모아 제본하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두고 두고 간직할 수 있는 값진 선물이 된다는 확고하고도 이상한 신념도 갖고 계셨다. 그리고 그 수북한 먼지 속의 오래된 예언은 바로 어제 내가 방을 청소하던 중에 무려 하드커버 제본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예언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까닭이 있다. 여전히 나는 그 시절의 일기장이 ‘두고 두고 간직할 수 있다’는 주장과 ‘값지다’는 주장에는 죄송하지만 동의하지 못하겠다. (에밀리 디킨슨이나 안네 프랭크 아니고서는 그 나이 때 끄적거린 것들이 값지기까지 하긴 쉽지 않은 법이다.) 다만 어느 지루한 오후를 달랠 수 있는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되었음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오는 선물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선물이다. 왜 재미가 있느냐면 얼마나 교장선생님의 의지에 온 몸으로 맞서려고 노력을 했는지 남아있는 흔적들이 누렇게 색이 바란 재활용 공책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는 환경 문제로 금방이라도 지구 종말이 도래할 수 있을 거라는 경고가 쏟아지던 시절이었고 재활용이 가장 중요한 아젠더 중 하나였다.) 


  그래, 솔직하게 고백하자. 그때는 일기쓰기가 죽도록 싫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누가 억지로 시키면 하기가 싫어지는 법이다. 일기를 쓰는 습관을 길러주자는 의도는 좋았지만 그걸 강제하고 담임 선생님이 검사까지 하게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매일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무사히 넘어가는 것과 30 센티미터 자로 손바닥을 맞는 것 중에 선택을 해야만 했다. 얼마나 쓰기 싫었는지 양을 늘이기 위해 나는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소위 ‘줄 때우기’ 트릭을 사용했다. 어떤 상황이나 대상을 장황하게 나열하면서 억지로 줄 수를 늘리거나 그림이나 약도 등을 첨부하여 공간을 억지로 채워나간 것이다. 몇 가지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사례들을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 

1993년 8월 29일 월요일 (날씨 맑음)

제목 : 400원

(전략) 문방구에 갔다. 비닐 한 마와 실내화를 사러갔다. 비닐 한 마는 400원, 실내화는 2,300원이었다. 10,000원을 가지고 가서 2,700원 어치를 사서 7,300원을 받아야 하는데, 나와서 세어보니까 7,700원이었다. 생각해보니 거스름돈으로 400원을 더 받은 셈이다. 다시 돌아가서 문방구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비닐 한 마는 400원이고 실내화는 2,300원이니 총 2,700원이에요. 제가 10,000원 지폐를 냈으니 7,300원을 받아야 하는데, 아저씨가 저에게 7,700원을 주셨어요. 그러니까 400원을 더 제가 받은 것 같아요.” (후략) 


  자그마치 일곱 줄을 물건 값과 거스름돈의 계산에 할애했다. 그리고 계산이 틀렸다는 걸 또 다시 한 번 설명했다. 그것만으로 일기장 양식 기준 일곱 줄을 가볍게 잡아 먹었다. 하지만 매일 이렇게 금전출납부를 풀어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책이나 영화를 종종 활용했다.

1993년 9월 1일 목요일 (날씨 맑음)

제목: 시드니 셀던

오늘은 시드니 셀던의 소설을 읽었다. 주인공은 정말 착하고 정직하고 정말 사람 좋은 사람다. 주일미사에 한번도 빠져본 적이 없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다. 십계명을 한번도 어기지 않고 사는 것이 소박한 그의 소박한 목표다. 그렇지만 그에게 벌어지는 일은 언제나 엉망진창이다. 나쁜 일이 연속해서 일어난다. 고민끝에 신부님을 찾아가 의논을 드린다. 신부님은 이 모든게 다 신의 뜻이니 참으라고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의도하지 않게 십계명 중 하나를 어긴다. 그런데 그의 앞에 행운이 찾아온다. 행운이 계속된다. 백만장자가 된다. 그는 신부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행운이 따르는 것이 혹시 계명을 어겼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신부님은 그 질문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가 계명을 어겼다는 사실을 비난한다. 그는 그길로 짐을 싸서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평생 성당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계명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후 그의 인생에 이렇다할 불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후략)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거의 다시 요약하다시피 했지만 이 정도면 그 나이 때의 일기로 용인이 될 수 있는 수준이다. (마지막에 잘못된 교훈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적어도 개인적인 관점에서 요약을 했으니까. 다음은 조금 더 노골적인 사례다.

1993년 11월 6일 일요일 (날씨 흐림)

제목: 구니스

오늘은 영화 ‘구니스’를 보았다. 1985년 개봉한 미국 영화다. 리처드 도너가 감독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크리스 콜럼버스가 각본을 썼다. 내용은 이렇다. 아이들이 보물 지도 한 장을 발견하고 해저 동굴에 숨어 들어가서 모험을 시작한다. 비디오 케이스 앞 면에는 포스터가 있다. 주인공 아이들이 해골과 보물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있다. 좌우로 상단에 워너브라더스와 SKC의 마크가 위치하고 있다. 뒷면에는 설명이 있다. 

‘콜롬비아 강 하구의 이스트리아라는 작은 마을. 이 작은 마을의 사고뭉치 5명의 소년은 어느날 다락방에서 낡은 보물지도를 발견한다. 그들은 보물을 찾게되리라는 희망과 함께 지도를 따라 동네 외딴 곳의 허름한 건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지하로 통하는 비밀통로를 발견하지만, 그곳에는 며칠 전 감옥에서 탈옥한 죄수가 숨어 있는 곳. 죄수들은 자신이 노출될까 두려워 소년들을 잡으려고 하고 이를 피하러 아이들은 지하동굴로 내려간다. 그러나 갖가지 온갖 장애물과 함정이 그들을 기다리는데… 1985년 국내개봉되어 크게 성공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이다.’

그러나 그 아래에 감독은 리차드 도너라고 적혀있다. 그리고도 아래 다시 큰 글씨로 ‘올 여름 휴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구니스”와 함께’라는 홍보 문구가 들어가 있다. 감독이 리차드 도너인지 스티븐 스필버그인지 조금 혼란스러웠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비디오 케이스 뒷면의 설명과 홍보 문구를 모두 옮겨 적었다. 이 방법으로 거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꼭 빽빽하게 채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여백의 미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1993년 8월 30일 화요일 (날씨 맑음)

제목 : 교과서 

오늘은 교과서를 받았다. 산수책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1단원 정수 
2단원 분수와 소수의 혼합계산 
3단원 연비 
4단원 도형의 닮음 
5단원 입체도형 
6단원 도수분포표와 그래프 
7단원 경우의 수 
8단원 수판셈 
9단원 여러가지 문제 
사회책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후략)


  후략된 부분에는 사회책의 모든 단원이 나열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단원 이름 하나마다 줄을 바꾸었다는 노골적인 의도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다양한 과목들의 동시 학습을 강요하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다음에 자연책이나 국어책등등이 등장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날 일기는 장장 네 페이지를 한 번에 잡아먹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다. 비슷한 줄 바꾸기 신공은 며칠 후 한 번 더 기가 막힌 형태로 등장한다.

1993년 9월 7일 화요일 (날씨 비)

제목 : 특별활동 

오늘 특별활동시간에는 컴퓨터 선생님에게 GW-BASIC을 배웠다. 

10 CLS 
20 LET A$="우리" 
30 LET B$="나라" 
40 LET C$="좋은" 
50 LET D$="6학년" 
60 LET E$="2반" 
70 LET F$="4번" 
80 LET G$="아무개" 
90 PRINT A$ ; 
100 PRINT B$ ; 
110 PRINT C$ ; 
120 PRINT B$ ; 
130 PRINT D$ ; 
140 PRINT E$ ; 
150 PRINT F$ ; 
160 PRINT G$ ; 
170 END RUN 

원래 이렇게 해야하는데 뒤에 세미콜론(;)을 빼먹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좋은나라 6학년2반4번아무개]라고 나와야 되는데 세로로 길게 나와 버려서 완전히 망쳐버렸다.


  GW-BASIC을 배운 김에, 뀡 먹고 알도 먹고 도랑친 김에 가재까지 잡아버리자는 도둑놈 심보로 채운 이 한 페이지의 일기는 12년이 지나 돌아보는 내게 인생과 철학에 대한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끔 해주었다. 이렇듯 일기쓰기의 가장 큰 과제는 언제나 소재거리를 찾는 일이다. 오늘이나 어제나 내일이나 어차피 비슷비슷한 하루인데 (특히 학창시절에는 더더욱 그러하고) 매일매일 펠리컨이 물어다주지 않는 한 항상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구해내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일로부터 소재를 캐치하는 기술을 계발하기 시작했다.

1993년 11월 8일 화요일 (날씨 맑음)

제목 : 해돋이와 해넘이

             10월 5일   11월 8일    차이
 해돋이  6시 30분  7시 03분  33분
 해넘이  18시 10분  17시 27분  

10월 5일 11월 8일 차이 해돋이 6시 30분 7시 03분 33분 해넘이 18시 10분 17시 27분 43분 오늘 해가 돋는 시간은 7시 3분, 그리고 해가 넘어가는 시간은 17시 27분이었다. 즉 낮의 길이가 10시간 24분, 밤의 길이가 13시간 36분이었다. 지난 10월 5일에 기록해 놓은 것에 따르면 그때의 낮의 길이는 11시간 40분, 밤의 길이는 12시간 20분이었다. 그 결과 76분의 차이가 생겼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급기야 해돋이와 해넘이를 써먹었다. 더 궁지로 몰렸다면 만조와 간조까지 들먹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풍속, 풍향, 파고도 설명했을 것이다. 그만큼 소재의 빈곤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러니 뭐라도 특별한 사건이 있으면 써먹지 않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가령 개학식이나 방학식, 반장선거, 교직원의 이취임등등. 실제로 그 해 반장선거가 있었던 날에는 일기를 이렇게 썼다. 

1993년 9월 1일 목요일 일기 

제목 : 반장선거

오늘은 1993학년도 제2학기 반장선거를 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이름(남)  득표율               이름(여)  득표율
김유석  3 (7.9%)              유석미  9 (22.5%)
박유범  6 (15.8%)             동덕희  1 (2.5%)
방유만  3 (7.9%)               국지색  0 (0.0%)
최돈호  5 (13.2%)              가릉빈  8 (20.0%)
강건신  1 (2.6%)                명경지  5 (12.5%)
역세권  7 (18.4%)              진달래 (당)  11 (27.5%)
초대졸 (당)  13 (34.2%)     개나리  6 (15.0%)
 
기권/무효  5  기권/무효  3
총계  53  총계  53


  별 볼일 없는 반장선거의 득표결과를 쓸데없이 퍼센테이지까지 계산함으로써 공간을 채우려고 발악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계 따위의 분야에 유난히 집착을 보인다는 사실 역시 발견할 수가 있겠다. 


*


  당시 나의 일기는 항상 이런 식이었고 그런 줄 채우기 트릭의 향연속에 2년동안 자그마치 열여섯권의 재생공책을 축냈다. (과연 재생공책이지만 이렇게 낭비를 했던 것이 그 시절의 모토에 맞는 친환경적 행동였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교장 선생님의 바람대로 그때의 일기쓰기가 바른 생활의 길잡이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었는지 역시 여전히 의문 부호가 남는다. 

(2002년 10월)

반응형

'낙농콩단 > Season 1-5 (2000-2005)' 카테고리의 다른 글

033. 채식주의자  (0) 2003.01.12
032. 떡볶이 공수 대작전  (0) 2002.12.15
029. 못말리는 미스터 에이치  (0) 2002.09.22
027. 축농소년 이야기  (0) 2002.07.28
026. 블루스 네버 페이드 어웨이  (0) 2002.06.30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