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원 (Red One, 2024) B평
by 김영준 (James Kim)J. K. 시몬스가 컨베이어 벨트 사이를 돌아다니며 배송 작업자의 전환 배치를 지시하는 장면의 소름끼치는 기시감만 제외하면 (어쩐지 얼마 전 MGM을 인수한 ‘에브리띵 스토어’의 물류센터가 연상되지 않는가 - 일과 시간에 감히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카발라메!) ‘레드 원’의 초반 스타트는 의외로 나쁘지 않다. 산타 할아버지가 VIP이고 (그래서 코드네임이 ‘레드 원’이 되겠다) 고로 일종의 시크릿 서비스를 대동하고 다닌다는 아이디어는 꽤 마음에 든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산타의 워크샵을 마치 분초를 다투는 작전이 벌어지는 공간처럼 묘사하는 설정도 괜찮다. 500년 이상 산타를 보필해 온 충직한 오른팔과 산타의 존재를 평생 믿지 않았던 남자가 팀을 이루어 희대의 산타 납치사건을 해결하고 크리스마스를 구하러 나선다는 내용 전개도 납득할만하다. 홀리데이 무비로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이후 급격하게 기대를 배신하기 시작하는데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문제라기도 머쓱하다.
우선 두 남자 컬럼 드리프트(드웨인 존슨)과 잭 오말리(크리스 에반스)를 보고 있노라면 올해의 촌철살인이라 할만한 코치 월즈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이 사람들 이상해요.”) 산타 할아버지의 '치프 오브 스태프(Chief of staff)' 겸 '디렉터 오브 시크릿 서비스(Director of secret service)'로 분한 존슨은 늘 그랬듯 이 '노스폴 해즈 폴른(Nothpole Has Fallen)' 상황에서도 액션 히어로에 어울리기는 하지만,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동안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의 총합과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에반스가 연기하는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평생 믿지 않았던 -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일반인 남자 오말리는 해커/바운티 헌터라는 설정부터 잘못 되었다. 가뜩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스토리에서 더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만 가져오기 때문이다. 과거 어린 오말리는 물론 못된 아이(Naughty boy)였다. 하지만 못된 아이와 국제적인 범죄에 관여하는 해커/바운터 헌터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 특히 드리프트가 이미 충분히 판타지 세계의 인물이므로 오말리는 그냥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가치에 사로잡힌 상상력이 없는 남자 정도여도 충분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에반스는 라이언 레이놀즈 스타일의 악의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코믹 롤에서 늘 김 빠진 사이다 같은 느낌을 주는데 왜 거듭 이런 역할을 고르는 건지 의문이다.)
결국 언뜻 괜찮아보이는 시놉시스 위에 불필요한 덧칠에 덧칠을 거듭한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여기에는 한동안 극장가를 휩쓸었던 슈퍼히어로 영화의 요소들이 차고 넘치게 들어와 있다. 하지만 액션 장면은 패스트하지도 퓨리어스하지도 않고 2억 달러가 넘는다는 제작비가 무색하도록 전반적인 특수 효과 역시 거의 B급 SF 영화 수준이다 (문득 참여한 제작사 중 한 곳의 이름이 떠오른다 - 빅 인디 픽쳐스). 비디오 게임 수준의 도구나 무기들의 등장 역시 작품의 내용이나 전반적인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특이하게는 마치 ‘맨 인 블랙 (배리 소넨필드, 1997; 2002; 2012)’ 프랜차이즈를 연상하게 하는 비밀 기관 설정이 들어와 있는데 이 또한 심각하게 잘못된 선택처럼 보인다. 이 기관이 신화적 세계와 인간 세계의 조화와 균형을 관장한다고 주장하는데, 산타클로스 납치 사건이라는 아주 강력하고 직관적인 소재를 장착한 홀리데이 무비가 굳이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상황을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괜히 사족을 붙여 배가 산으로 가는 이야기들만 거듭 더하는 선택은 산만함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이 작품이 그린치, 스크루지, 스크루지 맥덕, 로봇 산타, 우기부기, 그리고 한스 그루버와 동일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일부러 이러기도 쉽지 않을 듯 하다.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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