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폴리 아 되 (Joker: Folie à Deux, 2024) B평
by 김영준 (James Kim)‘조커 (토드 필립스, 2019)’는 분명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조커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낱낱이 해체하고 집요하게 분석하여 아서 플렉이라는 새로운 인카네이션에 불어넣은 토드 필립스와 스콧 실버의 성취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까다로운 캐릭터를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살려낸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도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마음속 한 구석에 남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러니까 ‘과연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비단 잔인한 묘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계태엽 오렌지 (스탠리 큐브릭, 1971)’과 ‘아포칼립스 나우 (프랜시스 코폴라, 1979),’ 그리고 ’내추럴 본 킬러 (올리버 스톤, 1994)’등은 두고두고 회자될 폭력적 장면을 다수 포함하고 있지만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다. 시각적 자극이 야기하는 불편함이 나름의 의도와 목적으로 취해진 방법의 일부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커‘의 경우를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개봉 당시 전 세계적인 흥행과 대중적 호응을 불러 일으킨 것은 사실이니 분명 어떤 식으로든 현실 사회에 공명을 일으키는 힘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초 무엇을 전달하기를 의도하였고 종래에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였냐는 부분은 여전히 의문을 남긴다. 정말로 차별과 불평등으로 가득찬 정의롭지 않은 세계에 대한 우화를 의도했을 뿐일까? 당시 소셜 미디어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메세지를 받아들였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빌런이 빌런이 된 배경 이야기에도 나름 공감하거나 동정할만한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확실한 중심을 잡지 않는 것은 조금 곤란한 접근일 수 있다. 가령 조커, 펭귄, 리들리, 캣우먼, 베인, 투페이스 하비, 스케어크로우, 매드 해터, 미스터 프리즈 등 각자 다 사연이 있고 매력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들은 안타고니스트이고, 이들의 배경 이야기는 배트맨 세계의 서브 플롯으로 그러니까 어둠의 기사, 고담의 수호자, 세계 최고의 탐정이라는 강력한 상징이 중심을 잡는 구성 위에 존재했다. 그동안 찬사를 받았던 ‘배트맨 (팀 버튼, 1989)’에서 잭 네이피어/조커(잭 니콜슨)나 ‘다크나이트 (크리스토퍼 놀란, 2008)’의 조커(히스 레져)조차 그러하였다. 하지만 이 새로운 조커/아서 플렉은 온전히 독립된 이야기로 심지어 메이져 영화사의 장편 영화에서 마치 안티-히어로에 가깝게 다루어졌다. 이제는 선악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어 놓는 이야기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지만 그래도 조금은 지나친 부분이 있었다.
그럼 면에서 5년만의 시퀄인 ‘조커: 폴리 아 되(토드 필립스, 2024)’ 앞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아마 모호한 메세지를 바로 잡는 것도 당연히 그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기회와 위기를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야심이 다소 과했던 것 같다. 머레이 프랭클린 사건으로 아캄 주립병원에 구금된 플렉이 재판을 받는 과정과 할린 “리” 퀸젤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는 병적인 파 드 되(pas de deux)를 나란히 가져가는 것이 이 작품의 주된 플롯인데, 분명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시 한 번의 ‘조커 라이징’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말하자면 전작에서 이미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깨어났는데 이번에 또다시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깨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니 흡사 같은 이야기를 두 번째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결국 (folie à deux 라는 부제 그대로) 조커와 할리 퀸의 상호 시너지가 신선도의 열쇠일 텐데 유감스럽게도 생각만큼 강력하지 않다. 플렉의 정신질환을 다루는 측면에서 전작이 많은 비판을 받았음을 감안하면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망상, 충동, 분노의 상호 전이 및 공명을 일으키는 내용은 여전히 상당한 위험을 잠재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만 플렉의 침체된 나날들을 다루기에 아무래도 전작에 비해 끌어당기는 힘이 약하고 할리 퀸 역시 이 감쇠분을 보상하기에 턱없이 모자란다. 결국 전작에 긍정적이었던 관객과 부정적이었던 관객 모두에게 의문을 남길만한 어정쩡한 결과만 남긴다.
두번째 문제는 (문제의) 쥬크박스 뮤지컬이라는 포맷일 것이다. 나름 회심의 카드이고 꽤 괜찮은 접근이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전술한 숙제들, 그러니까 반복적 구성, 신선도 문제, 신체적/심리적으로 연약해져 있는 플렉의 상태, 두 빌런 사이의 교감을 통해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상황 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 방법이 노래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환경에서 절망의 수렁에 빠져있는 플렉의 심리를 대변하면서도 이 작품의 지나치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적절히 희석할 수 있다면 꽤 멋지지 않겠는가. 또한 노래로 정신적 문제의 발현과 진행도 조금 덜 직접적으로 완곡하게 묘사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나아가 조커와 할리퀸 사이의 주파수를 맞추어가는 과정을 우아하게 암시하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개봉 전 공개된 트레일러들은. 맙소사, 뭔가 되긴 되겠다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거의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10월 4일을 기다렸는데 예상과 다르게 뮤지컬 포맷이 잘 맞지 않아 내심 놀랐다. 기대만큼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닉스의 연기는 물론 여전히 인상적이지만 대부분의 심리 상태를 노래로 표현하는 전략이 항상 효과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편 레이디 가가는 '스타 이즈 본 (브래들리 쿠퍼, 2018)' 등에서 이미 배우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에 (마고 로비가 아닌) 그녀가 할리퀸을 연기한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쥬크박스 뮤지컬 포맷을 차용하면서 스타 가수를 활용하는 방식이 미비했음은 지적받을만 하다 (일부 립싱크가 어긋나는 장면은 그대로 두었는지 의문이다). 그녀는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특유의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만 다른 장면들에서는 극을 리드할 정도로 압도적이지는 못하다. 다만 두 노배우 브랜던 글리슨과 캐서린 키너의 인상적인 서포트만큼은 이 작품 전반의 전략적 실패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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