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없는 남자의 열한 가지 문제점
낙농콩단

여자친구 없는 남자의 열한 가지 문제점

by 김영준 (James Kim)

  근래 '여자친구 없는 남자들의 열한 가지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온라인 세상에 회자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오지랖 넓은 친구 녀석이 메신저에서 "여기 네 이야기가 있다"라며 보내주는 통에 알게 되었다. 현재 그 괘씸한 녀석과의 절교를 심각하게 고려중인데, 어쨌든 그렇게 뻔하게 끼워 맞춘 일반론에는 요만큼도 관심을 표할 생각도 없다. 차라리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열한 가지 비밀양념을 파헤치는 쪽이 훨씬 더 가치 있고 생산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여자친구가 없다’라는 결과에서부터 역으로 되짚어 '어떤 부정적 유형의 남자들'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전형적인 논리적 오류의 결과다.

 

  조목조목 한번 살펴보자. 그 글에서 지적하는 특정 부류 남자들의 열한가지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① 자신의 문제를 모른다. ② 소심한 게 문제. ③ 말을 못한다. ④ 눈을 봐라. ⑤ 여자친구 생기면 잘해주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⑥ 여자라는 마음을 비워라. ⑦ 남자가 돼라. ⑧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지 마라. ⑨ 너무 진지하지 마라. ⑩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지하라. ⑪ 이따위 말들에 얽매이지 마라. 여기에는 '문제점의 나열'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명령조의 문장'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데, 내가 보기에 이 열한 가지는 서로서로 겹치며 때로는 서로 상충한다. 이를테면 ①번과 ②번을 보라. 전자는 질문이고 후자는 답니다. 다시 ②번과 ③번과 ④번을 보라. 여자 앞에서 제대로 말을 못하고, 눈도 못 마주치는 이유는 소심하기 때문이다. 또한 ⑥번과 ⑩번을 보라. 상대가 여자라는 마음을 비우고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지하라는 것은 앞과 뒤가 맞지 않는다. 여기에 이상한 제언이 하나 더해진다. ⑦번, 남자가 돼라. 남자가 아닌 남자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장난이고 뜬구름 잡기다. 열한 가지씩 나열할 이유도 없다. 이 멍멍이 소리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한 줄이면 충분할 것이다.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연애의 충분조건은 소심하지 않을 것이며 연애의 필요조건은 타이밍이다."

 

  제시된 글의 열한가지 항목의 사이사이엔 물론 부연 설명이 있지만, 표현이 워낙 조악하고 문법이 무법천지인 관계로 굳이 옮겨오지는 않겠다. 몇몇 눈에 거슬리는 부분만 추려보겠다. 가령 중간에 등장하는 '여자친구를 가지고 싶으면'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물론 정말 그런 뜻으로 쓴 것이 아님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나 마땅히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해야 하는 시대에 양성을 동등하지 않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소유하는 종속적 관계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지나치게 경솔한 처사가 아니겠는가. 맞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나는 위에서 소개한 '여자친구 없는 남자들의 열한 가지 문제점'이라는 글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어쩌면 뭐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수 있는 글이나,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힘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글이다.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다. 너무 진지하다. 허나 거창하고 진지함에 비해 실용적이지 못하다. 이런 글이 인구에 회자되며 화제를 뿌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 단언하건대 이런 장난질에 속아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는 그런 일반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례가 많다. 열한가지 문제점이 문제가 아닌 유형의 사람도 여자친구가 없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한편 반대로 열한 가지 문제점을 모두 가지고도 여자친구가 끊이지 않는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남자가 보기에 정말 괜찮은 친구가 유난히 여자친구가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정말 남자가 보기에 정말 최악인 말종이 잘도 여자친구를 사귀기도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구체적인 사례들을 모두 접어 놓더라도, 많은 경우에 그저 운(運)과 때(時)와 연(緣)이 맞아떨어지지 않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나아가 문제의 글에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문제의 글이 여자친구가 없는 남자들을 마치 죄인이나 정신질환자로 취급하는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심한 자에게는 결코 여자가 없다'나 '이거 중증이다'와 같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들이 그렇다. 무슨 연애가 지원할 수 있는 최소 자격 요건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곳곳에 드러나는 이런 묘한 뉘앙스들은 정말 심하게 거슬린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여자친구가 없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들여 정신병동에 꼭꼭 가두어 놓으라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딴 섬에 유배시키라고 주장할 기세이니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없는 것은 죄도 아니고, 정신질환도 아니다. 누가 문제점을 지적해 주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여기서 맞는 말은 유감스럽게도 단 하나밖에 없다. 마지막 열한 번째, "이 따위 말들에 얽매이지 마라." 그래서 나는 만약 주변에 누군가가 저런 글을 읽고서 "맞아, 이런 것이 문제였어"하고 자조하고 있다면, 주저 없이 한 대 때려줄 생각이다. 모름지기 저런 글에만 휘둘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장 여자친구가 없다한들 걱정할 일이 하나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2001년 09월)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낙농콩단

김영준 (James Kim)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