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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 (Air, 2023)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3.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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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 에플렉의 신작 '에어'를 두고 초반부 30분 동안 취향에 맞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신념을 가진 우직하고 고집스러운 인물들, 오래된 가치들이 아직 유효하던 시절, 불가능한 미션과 짜릿한 성공 스토리, 그리고 무엇보다 한 트럭의 클래식 록 플레이리스트까지.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30분 동안 자리를 고쳐 앉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다음 30분 동안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30분은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많은 요소들을 갖추었는데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맷 데이먼과 제이슨 베이트먼을 내세우고도. 


  여러가지 실책이 눈에 띄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지나치게 평탄한 전개다. 사실 이 한바탕 소동의 결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설령 정확히 몰라도 짐작을 할 수는 있다. 심지어 마이클 조던의 현역 시절을 접하지 못한 세대에서도 나이키의 ‘에어 조던’만큼은 알기 마련이다. 보통은 이렇게 모두가 아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더라도 긴장감을 극대화하려고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데 이 작품에는 별로 그런 부분이 없다. 혹은 시도는 하였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후자라면 그 원인은 당시 특수한 상황에 대해 온전하게 전달했느냐의 지점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당시 업계 3위였다는 나이키의 극적인 역전 계약 성사가 어느 정도 어려운 일인지부터 실은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註1). 조던과의 계약에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걸었던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의 안목과 비전 역시 마찬가지다. 조던이 그해 1984년 드래프트 1 라운드 세 번째 픽으로 시카고 불스가 데려간 선수였다는 점에서 이 선택이 어느 정도의 대담함을 담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이 남자가 세븐일레븐 점원만큼도 농구를 모르는 여느 스포츠웨어 회사 직원들과는 다르게 고교 농구계에 오랫동안 기여해왔던 인물이고 어린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불스의 스카우터가 아니라 나이키 마케팅 팀 직원이지 않은가. 그와 롭 스트라우서(제이슨 베이트먼)와 나이키 마케팅 팀의 작업은 그 해 전체 드래프트에서 1 라운더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1 라운더 24명에서 (특히 상위 지명된 선수들의 목록을 놓고) 자기 회사와 라이센스를 맺을 선수를 고르는 것이었다. NBA 무대에 아직 데뷔하기 전인 루키에게 큰 도박을 걸었다는 점은 이해하겠지만 조던과의 계약을 놓고 당시 업계 1위 컨버스, 업계 2위 아디다스와 경쟁하여야 했다는 내용만 보더라도 그 선택 자체가 아주 과감하고 독보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註2). 


  이 작품이 일종의 ‘페이크-무브’를 쓰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에어'는 스포츠 영화라기 보다는 기업 비즈니스에 대한 영화에 훨씬 가깝다. ‘코치 카터 (토마스 카터, 2005)’가 아니고 ’42 (브라이언 헬걸런드, 2013)’도 아니며 ’머니볼 (베넷 밀러, 2011)’이나 ‘드래프트 데이 (아이반 라이트먼, 2014)’와도 다르다. 오히려 (정말 미안하지만) ‘파운더 (존 리 핸콕, 2017)’에 오히려 더 가까워 보인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교훈이란 한정된 자원을 여러 어중간한 상품에 분산 투자하지 말라는 것이다. 혹은 조직의 의사 결정에 있어 사공을 많이 두지 말라는 것이다. 마치 비즈니스 스쿨의 마케팅 케이스 스터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 뿐이다. 하지만 그 상품의 자리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의 (심지어 어린 황제의 용안은 교묘하게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註3) 아우라가 들어감으로써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의 빛나는 미래를 마치 훤하게 내다보는 듯한 열정적이고 감동적인 대사들이 순전한 비즈니스적 결정을 마치 스포츠맨십의 일부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하지만 여기엔 스포츠가 빠져있다. 진짜 영감을 줄만한 이야기들이 빠져있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2023년 05월)


(註1) 나이키와 다슬러 왕국(아디다스와 푸마) 사이 전쟁사는 반 세기가 넘도록 엎치락 뒤치락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후발주자인 나이키가 언더 독 위치에 있었지만 1970년대 중반 대등한 플레이어로 올라섰다. 그동안 나이키가 몇 번의 암흑기를 겪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중에 하나가 (회계연도) 1984년의 위기였다고 하지만, 영화가 묘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타사 대비 압도적 열세에 놓였었는지 숫자만으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두 회사의 격차가 일정 범위 이상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사실 2010년대 초반이며 오늘날에 이르러는 사실상 나이키의 독주체제에 접어들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한 점유율 차이를 보이고 있다.
(註2)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의 주인공 소니 바카로는 후일 아디다스로 이직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다시 리복으로 이직했다고). 한편 극 중 제이슨 베이트먼이 연기한 마케팅 디렉터 롭 스트라우서와 '에어 조던 1'과 각종 로고를 디자인한 피터 무어 역시 3년 후 1987년에 나이키를 떠났고 결국 아디다스로 이직했다고 한다. ‘에어 조던’을 만들고 나이키를 재창조시킨 사람들이 모두 후일 경쟁사로 옮기게 된 셈인데, 나이키의 공동 설립자이자 회장인 필 나이트의 회고록에도 관련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註3) 어린 조던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결정은 조던측과 의견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하였는데 에플렉은 이에 대하여 창작적인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즉,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자 위대한 선수인 마이클 조던이 낯선 얼굴로 등장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런 결정을 하였다고 한다.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여러 번 등장한다. 특히 10분에 육박하는 나이키 미팅 씬 동안 멀쩡히 그 회의장에 앉아있는 어린 조던의 얼굴을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계속 피해가는 것은 다소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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