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온 (Carry-On, 2024) B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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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온 (Carry-On, 2024) B평

by 김영준 (James Kim)

  도대체 연방항공청에 무슨 원한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감독은 ‘논스톱 (자움 콜렛-세라, 2000)’에 이어 다시 한 번 비행기 테러를 소재로 삼는다. 다만 이번에는 이륙 전의 상황, 그리니까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에서(LAX라면 이름만 들어도 벌써 피곤하다) 테러리스트가 수화물을 기내에 반입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시큐리티 스크리닝을 통과시키라는 낯선 목소리로부터 협박을 받는 TSA 보안 검색대 직원이 주인공이 된다. 그리 새롭지도 않고 신선하게 들리지도 않는 소재이지만 뜻밖에 스타트가 깔끔하고 중반까지도 준수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상황을 모르는 다수 대중에게 둘러싸여 단 한 사람의 목소리에 지배당한다는 측면에서 과거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스릴러를 구현했던 ‘폰 부스 (조엘 슈머허, 2000)’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그 사이 이루어진 기술의 발전은 협박을 하는 이와 협박을 당하는 이의 운신을 (랜드라인에 묶여있는 것 이상으로) 보다 자유롭게 만든다. 대부분의 무대가 검색대이고 주인공 이단 코팩(테런 에저튼)이 그 공간에서 직무 수행에 묶여 있기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완급 조절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다. 너무 성급히 가속하여 폭주의 악순환으로 들어가는 대신에 정적인 장면과 동적인 장면이 (말하자면 근무 시간과 휴게 시간으로?) 교차하며 어쩌다 보니 완급 조절에 성공하는 기적이 벌어지는 것이다.

 

  커리어 대부분을 견습사원, 수습사원, 사회 초년생, 범죄 초년생, 사업 초년생으로 보내며 여전히 취직 준비 중처럼 보이는 에저튼이 주인공인 보안 검색대 직원으로 분한다. 난생 처음 검색대에 투입될 기회를 얻은 운수 좋은 날, 테러리스트들이 쳐놓은 덫으로부터 여자친구를 위험에서 구해내는 동시에 문제의 수화물 반입도 막아야 하는 역할이다. 조금 투박해도 잘못된 일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청년 역할에 에저튼이 꽤 잘 어울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이 작품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명의 여행객(정말 캐릭터에 정해진 이름이 없는 것 같다)을 연기한 제이슨 베이트먼이다. 어쩌면 그런 악역에 가장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마이클 브루스에서부터 닉 헨드릭스를 거쳐 마티 버드에 이르기까지 주로 억울하게 보이는 남자를 연기하였던) 그는 자신이 연기해 온 안정지향적 인물들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예상치 못한 효과를 낸다. 무선 이어버드을 통해 주인공의 귀에 시종 침착하게 속삭이는 그는 마치 과거와 현재의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미래마저 내다보는 절대자처럼 여유롭지만 확신으로만 가득 차서 악랄한 말을 내뱉는 유형의 악당과는 또 거리가 멀다. 아마도 전형적인 설정 속에서도 그렇지 않은 부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인다. 철저히 계획적이지만 동시에 사무적이고, 철저하게 잔인하지만 동시에 인간적으로 호소하기도 한다. 본인이 테러의 주체도 아니고 메니페스토를 설파할 생각도 없고, 단지 일종의 용병으로 의뢰받은 일이 돌아가게 만들 의지 밖에 없다는 점에서 중심을 잘 잡았다. 이 악역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플롯 상의 몇몇 구멍이 드러나지도 않을 정도다 (이를테면 이런 근본적 질문이 있을 수 있겠다. 보안 검색대 직원 한 명만 눈을 감아주면 어떤 기내 수화물도 시큐리티 스크리닝을 통과할 수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이 작품의 많은 장점들이 마지막까지 유효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전개를 가속하기 위해 초중반부의 잘 잡은 밸런스를 흐뜨러뜨릴 수밖에 없음은 어쩌면 액션 스릴러 장르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으나, 핵심 설정상 전제를 배신하거나 장고 끝에 기어이 악수를 두는 부분은 아쉽다. ‘논스톱’과 같은 경우에는 이미 일찌감치 어그러졌어도 마지막에 던질 수 있는 예측 가능하지만 확실한 카드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다른 남은 카드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김 빠진 결말로 이어지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202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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