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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7. 후던잇: 고품격 수사극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6.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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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은, 그렇습니다. 눈이 두 개입니다. 코가 한 개고요 입도 한 개입니다. 팔이 두 개, 다리도 두 개. 제 생각이 맞다면 걸을 때마다 팔과 다리가 교차하여 움직일 겁니다. 피부색은 살색, 머리색은 까만색일 가능성이 큽니다.


  브라보, 라고 국장이 말했다. 브라보, 브라보, 그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는데 심지어 눈물마저 글썽거렸다. 정확해, 너무 정확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던 그는 자기 바로 아래인 KBI 부국장의 귀를 붙잡아 끌었다. "자네, 나랑 얘기 좀 하지." 부국장은 실실 웃으면서 귀를 잡힌 채 국장실로 끌려 들어갔다. 꽤나 아플듯한 자세며 무참한 세기로 인정사정없이 끌려고 있음에도 결코 웃음을 거두지는 않았다. 모두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쾅, 국장실 문이 닫혔다. "아마 부국장 된통 까일겁니다." "불쌍한 양반! 오늘 집에 가기는 글렀습니다.” “너무 불안해서 웃음을 거둘 수가 없네요.” 모두가 심각한 얘기를 하면서도 결코 심각한 표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역시! 그쯤 되니 비로소 대 KBI의 자랑스러운 요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KBI는 'Kwangchun Branch Office of Investigation'의 약자다. 소재와 규모를 막론하고 모든 기관명을 영문 약자로 바꿈으로서 신속한 국제화, 뽀대의 최대화, 언어의 경제화를 한 큐에 강구하자는 가열찬 정책에 의해 재작년 일괄적으로 바뀐 결과다. 뭔가 있어보이지만 사실 충남 광천의 수사관들이라는 얘기이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광천지구대'쯤 되는 것일테다. KBI의 누구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지만 광천지구대가 없어지고 거기서 일하던 경찰들을 재편성하여 만들어진 것이 오늘의 KBI이니 결국 그게 그거나 마찬가지지. 당국에서는 그 유명한 미연방수사국 FBI를 염두에 두고 이 기관을 모델링하였으며 명칭 또한 FBI를 연상케한단 점에서 무리하게 말을 맞추면서까지 아무런 고민없이 KBI로 낙점했다. 'Bureau'는 우리식 표현도 아니거니와 상식적으로 총원이 40명 남짓한 읍규모의 지구대가 'Bureau'라고 스스로를 칭하면 정말 우스운 일이 되겠으나 ‘못 먹어도 고’라는 모토 아래 KBI의 B는 우리끼리 비공식적으로는 Bureau, 공식적으로는 Branch Office로 통하고 있다. 초창기만해도 쑥쓰러워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KBI라니.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째 짝퉁 냄새가 진동을 하잖아”) 하지만 사람의 적응력이란 강시와 홍콩 할매를 합친 것보다 무서운 것이어서 처음에는 유치하기 그지없게 느껴졌던 KBI라는 명칭에 모두가 이내 아무런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게끔 되었다. 영화 ‘xXx(롭 코언, 2002)’나 ‘F.A.R.T: The Movie (레이 에서릿지, 2000)’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도쿄 기담집’과도 같은 원리다. 처음에는 완전 아무 생각이 없이 지은 이름처럼 느껴지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서 뭐 썩 나쁘지 않아 보이기 시작하고 더 시간이 지나면 끝내 꽤 괜찮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케이비아이, 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K가 'Korea'가 될 수도 있는 KBI라는 이름을 전국 최초로 선점했다는 점에서 대부분은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해 "KBI 특수요원 아무갭니다" 라는 말을 (응? 특수요원이라니? 물론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큰 소리로 외치고 다니기도 한다. 논두렁을 거닐던 농부들이 “글께,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에 다닌단 말이유?"라고 되묻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폼나는 인생이다. 


*

  광천읍은 충청남도 홍성군의 남부에 위치했으며 35.07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인구는 약 일만이천명이다. 남동부에는 오서산, 북서부에는 지기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사이로 상정천이 흐르는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진 동네다. 말인즉슨 범죄라는 것이 일어날 가능성이 ‘그닥’ 높지 않으며 수사관이니 특수요원이니 하는 것들이 ‘굳이’ 필요한 동네는 아니라는 뜻이다. 웬 고도로 미친 놈이 도시에서 기어들어오자 않는 이상 적당한 수의 경찰관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화란 온 몸으로 발광을 해도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추세이고 중앙정부에서 거저 내려온 막대한 지원금이란 미치지 않고서야 결코 마다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광천지구대'라는 팻말은 쓰레기통에 처박혔고 그 대신 'KBI'라고 새겨진 동판이 지구대 앞마당에 세워졌다. 무궁화 두 개의 지구대장님은 하룻밤 사이에 KBI의 국장님이 되었다 (물론 우리끼리 비공식적으로 그렇게 부른다는 얘기다.) 윗선에서 국장님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무도 모른다. 40여명 남짓의 지구대원들 역시 각자 스스로를 KBI의 수사관 혹은 KBI 특수요원으로 칭했다 (역시 비공식적으로 우리끼리 하는 얘기다.) 인원도 보강되었다. 범죄학을 전공한 사년제 대학 졸업자 이상의 용모 단정한 우수 인재들이 속속 KBI로 유입되었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새우젓 좋은 마을이라는게 한 가지 이유, 그리고 KBI라는 거창한 이름에 비해 업무 강도가 그리 세지는 않다는 것이 우수 인재들의 마음을 동하게 한 다른 한 가지 이유였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강제 전출로 오긴 했지만. 무려 사년제 대학 이상의, 무려 용모 단정한, 무려 우수 인재들은 스스로를 "광천 지구대원이유" 라고 소개하기가 대단히 쑥스러웠기에 스스로를 "KBI 스페셜 에이전트유" 라고 소개하는 편을 확실히 선호했다. 우리끼리의 얘기지만 동네 주민들에게 나눠줄 명함에도 그렇게 박아넣었다. KBI의 규정은 내부의 공식 업무에선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사용하는 현대 서울말을, 대민 봉사시에는 현지 사투리를 사용하기를 강제하고 있다. 때문에 특수요원들 중 광천 출신이 아닌 몇몇은 외국어를 공부하듯 몰입하여 사투리를 익혀야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불과 몇 달만에 대부분이 5대째 광천에서 벽에 변칠할 때까지 느릿느릿 살아온 네이티브 방유만(Bang, You Man)경사와 충청도 사투리 광천 버전으로 능숙히 이야기를 나눌정도로 빠른 학습성과를 보였다. 이를 목격한 인근 주민들은 "사년제 대학 이상의 용모 단정한 우수 인재들은 역시 다르구나" 하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이라면 인구 일만이천명 남짓의 광천에선 수사관이며 특수요원이 필요할 일이랄게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40명도 사실은 과포화다. 물론 수사관이니 특수요원은 그냥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고 엄밀하게는 여전히 지구대원이나 다름없으니 지구대원이 필요할 일은 여전히 발생하는 지구대에서 지구대원이 해야할 본연의 일을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지구대원이라기에 그들은 지나치게 많은 교육을 받았고, 일단 이름을 KBI라는 이름을 달고보니 지구대원으로 해야하는 잡스런 일들이 더없이 하찮게만 느껴져, 자연히 지구대의 업무에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고성방가, 음주소란, 노상방뇨, 무전취식, 오물방치, 업무방해, 장난전화가 벌어질 수 있는 대부분의 범죄인 광천에서, 그나마 초등생 금품갈취와 경운기 무단절도가 가장 악독한 범죄인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광천에서, 고등의 전문교육을 받은 KBI 스페셜 에이전트들, 이거, 자존심 상하지. 한낱 광천 지구대원들이라면 모를까. 명색이 자그마치 '그냥 에이전트'도 아니고 '스페셜 에이전트'인데. 흐르는 바람의 결에 코트자락을 맡기며 멋지게 뛰어가도 탈탈거리는 경운기를 세우고 귀먹은 노인네들에게 뱃지를 내밀며 "케이비아이 스페셜 에이전트유" 라고 말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모냥이 빠진다. "개밥 머시기가 뭐 어쨌다규? 시방 뭐라고 그랬시유" 라는 반응에 목에 핏대를 올리며 "영감님, 나, 말이유, 케이, 비, 아이, 특수, 요원이란, 말이유" 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야 한다면, 이거 참말로 빠진 모냥이 질근질근 밟혀서 진흙탕에 처박히는 꼴이다. 

  국장이 '프로의 자세'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그래서였다. 고급 인력이면 고급 인력답게 일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리하여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전공하고 심심해서 법의학까지 마스터했단 친구가 고성방가, 음주소란, 노상방뇨, 무전취식, 오물방치, 업무방해, 장난전화 사건에 투입되는 희대의 낭비가 벌어졌고, 경찰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했단 친구가 인근 초등학생들의 분쟁을 제압하기 위해 특수훈련의 아릿했던 경험과 추억을 십분 활용해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분명 우스운 일이지만 웃지는 마시라. 아무리 자존심 상해도 먹고 산다는 건 숭고한 일이니까. 

  국장의 새로운 지침 아래 내게도 아주 난감한 사건이 배당되었다. 광천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미해결 연쇄 사건, 이라면 흡사 듣기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케이스 같지만 그 내용의 면면이 좀 더럽고 치사해서 가슴이 두근거리긴 커녕 속이 다 울렁거렸다. 지난 2년간 광천에서 가장 지독하고 심각한 범죄로 기록된 이 건은 다름아닌 무단 노상배변 사건이었다. 말인즉슨 어떤 놈이 문명인답지 못하게 아무데나 배설물을 찌끄림으로써 문명인들이 모여사는 문명사회를 파괴하고 문명인들의 눈쌀을 지푸리게 했다는 얘기가 되시겠다. 한두번도 아니고 무려 일흔두번. 유감스럽게도 작은 게 아니라 큰 거. 1번 말고 2번. KBI 산하의 과학감식반은 채집된 일흔두건의 배설물이 모두 어김없이 한 사람의 항문에서 배설된 것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오! 나날히 발전하는 위대한 과학기술이여!) 그 더러운 놈이 연쇄범이요 상습범이라는 얘기다. 국장은 다소 상기된 얼굴로 이런 심각한 범죄는 마땅히 KBI의 손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일장연설을 했다. 아무데나 변을 봄으로써 광천의 역사와 문명을 파괴하는 행위는 아무래도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고, 사안의 심각성과 난이도를 고루 고려해볼 때 아무래도 유학파인 내가 이 중에선 가장 적임자이라며 힘차게 나를 안아 주었다. 특히 아랍에미리트 유학시절 범죄심리학을 전공하며 그 유명한 사이코패스 전문가 닥터 애널라함센의 밑에서 사사를 받은 귀하신 몸인 만큼, 나의 두 어깨에 광천의 미래를 걸려있다는 부담으로 범벅한 격려도 빼놓지 않았다. 그닥 깨끗하지도 별로 유쾌하지도 않은 순간이었지만 어쨌거나 일은 일이니. 

  과학감식반의 협조로 증거물 1호(2006년 09월 13일, 광천오거리 농협 뒷골목)에서부터 증거물 72호(2008년 08월 06일, 신대마을회관에서 북서쪽으로 100미터 지점)까지를 꼼꼼히 확인하고 현장을 답사했을 때, 국장은 이 지저분한 미확인범의 예상되는 외적 특징을 위로는 무궁화 둘에서부터 아래로는 입사귀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사관들 앞에서 브리핑해주길 바란다는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젠장맞을 일이. 그처럼 어렵고 고단하게 배운 공부를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써먹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그리하여 모두가 모인 KBI 중앙 콘트롤 룸에서 나는 연쇄배변범의 프로파일을 발표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렇게.

- 범인은, 그렇습니다. 눈이 두 개입니다. 코가 한 개고요 입도 한 개입니다. 팔이 두 개, 다리도 두 개. 제 생각이 맞다면 걸을 때마다 팔과 다리가 교차하여 움직일 겁니다. 피부색은 황갈색, 머리색은 까만색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증거물들이 부드럽고 굵은데다가 때깔마저 황금색인 것이 아주 건강한 놈이라 사료됩니다. 

*

  모름지기 수사관은 웃기도 잘 웃어야한단 국장의 지론은 아주 오래 전 아픈 기억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KBI가 아직은 광천의 한 파출소였고 국장이 일개 경장이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다. 그는 광천 역사상 명명백백한 최초이자 광천 역사상 마지막일 가능성이 큰 국교생 중심의 폭력조직 '토굴새우젓파'를 고등학교 선배이자 파트너인 박유범(Park, You Bum) 경사와 전담하는 중이었다. 평균 연령 12세의 '토굴새우젓파(이하 토새파)'는 지역 특산물인 새우젓은 물론이고 낙지젓, 꼴뚜기젓, 조개젓, 명란젓, 창란젓, 어리굴젓, 청어알젓, 토하젓, 개불젓, 심지어 각종 짱아찌까지 무력으로 판권을 독점함으로써 지역 경제를 야금야금 좀먹는 중이었다. 광천에서 태어나고 광천에서 자란 국장은 당시만해도 갓 서른을 넘긴 혈기왕성한 청년으로 머리에 피도 안마른 토새파 잔챙이들의 전횡을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여기엔 그의 홀어머니가 새우젓 장사를 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가 없었는데 아무튼 당시 그는 공공연히 "토새파 놈팽이들 내 손에 잡히믄 거죽을 뱃겨 젓갈을 담겨부릴거유" 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그는 꼭 백일에 걸친 잠복근무 끝에 파트너 박유범 경사와 결정적인 증거를 잡고 밀매 현장을 급습했다. 토새파 지도부가 중간고사로 정신없던 틈을 노린 통렬한 습격이었다.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범죄소탕작전으로 기록된 이른바 '토굴대전'이다. 이때 토새파는 정리되고 젓갈들은 자유를 찾았으며 광천의 자유시장경제는 건강하게 수호되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옥의 티가 하나 있었다. 깜깜한 토굴에서의 혼란했던 작전의 와중에 그의 파트너 박유범 경사가 발을 헛디뎌 젓갈통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그만 순직한 것이다. 얼마나 경황이 없었던지 당시 누구도 박 경사가 사라진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이후 국장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경위에서 경사로, 다시 경사에서 경위로, 그리고 끝내 경위에서 경감으로, KBI가 재편되자 비공식적으로나마 국장의 지위까지 얻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입버릇처럼 "오늘날 나의 성공은 박 선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좋고 잘 웃었던 그를 기리기 위해 "모름지기 수사관은 웃기도 잘 웃어야한다"는 지론을 설파하고 있다. <웃자, 웃자, 웃자> KBI 본관 정문에 걸려있는 현판이다. 그걸 쓰려고 무려 목욕까지 재계했다는 국장이다. 그래서 KBI 요원들은 누구나 잘 웃는다. 하급자도 잘 웃고 상급자도 잘 웃고, 기뻐도 잘 웃고 슬퍼도 잘 웃고, 기분이 좋아도 잘 웃고 기분이 나빠도 잘 웃고. 

  내가 연쇄배변범의 프로파일을 발표했을 때 국장은 웃었다. 하회탈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부국장의 귓볼을 후려잡아 자기 방으로 끌고 들어가면서 다시 웃었다. 질질 끌려가던 부국장도 웃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두가 웃었다. 웃자, 웃자, 웃자. 사실 국장은 불만스러웠단다. 그 딴 브리핑은 개나 소나 하겠네, 라고 생각했단다. 사실 부국장은 짜증났단다. 내 나이가 몇 갠데 고딩이 학주한테 끌려가듯 족을 치냐, 라고 궁시렁댔단다. 그걸 지켜보는 모두의 마음은 당연 불편했단다. 그럼에도 그들은 웃고, 웃고, 또 웃었다. 참 대단한 양반들이다. 국장의 꼭지를 돌게하고 부국장의 귓볼을 늘어나게 만든 장본인이면서도 나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웃었다. 이 정도면 완벽한 프로파일이지. 더 뭘 바래.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 말하자면 사실상 우리 KBI는 지금 '똥싼 놈'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흔두개의 봉투에 채집된 변만 보고 그 이상 뭘 알아내길 바라는 건지. 

*

  "놈이 다시 일을 저질렀습니다." 내 밑으로 배속된 KBI 신입요원 강건신(Gang, Gun Sin)이 호떡집에 불난 표정으로 다급히 뛰어들어오며 알렸다. "놈이 맞는거야?" 나의 스승님 닥터 애널라함센께서는 항상 범인에게 어떤 감정적인 면도 부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때문에 범인을 지칭하는 용어 또한 철저히 판단이 배제된 것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가령 이런 상황에서 ‘잭 더 푸퍼' 혹은 ‘제프리 다눠,’ 혹은 ‘테드 변디’ 과 같은 희화화된 이름을 미확인범에게 붙이는 것은 금물이다. ‘첫 싸기만 일흔두번째', '인비저블 애널리스트', '쉬트 더 그레이티스트'와 같은 과장의 수사 역시 금물이다. 되레 미확인범의 우쭐함을 돋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연쇄범죄의 수사는 철저한 심리전이다. 우리가 마음의 한 구석을 그들에게 점령당하면 더 이상 객관적으로 사건을 대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나는 모든 KBI의 요원들을 모아놓고 ‘놈’을 그냥 ‘놈’이라고만 부르라고 지시했다. 웃지도 말고 감탄하지도 말라고 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요원님께서 직접 현장을 보셔야겠습니다." "왜?" "이번 현장은 지난 일흔 두번과는 조금 다르거든요." 훌륭한 수사관들에게는 직감이라는게 있다. 듣는 순간 측두엽에 번갯불이 번쩍하고 지나가는 짜릿한 순간이, 보는 순간 후두엽이 꿈에도 그리던 내 님을 만난 날마냥 후들들 벌렁거리는 순간이 있다. 실마리가 잡힐 것 같단 예감이다. "어떻게 다른데?" 강건신 요원은 조금 망설이며 멋적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말씀드리기가 거시기하네유, 아니 거시기합니다." 광천 토박이 출신의 그는 공식업무를 수행하는 중에 저도 모르게 사투리가 튀어나왔단 사실에 놀라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범죄자도 예외는 아니다. 치밀하고 지독한 범죄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범인의 실수는 단서가 된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하나. 그걸 놈들만큼 치밀하고 놈들보다 지독하게 물고 늘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미확인범의 실체에 근접할 수가 있게 된다. 일흔하고도 두번의 완벽에 가까운 범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언제고 놈이 실수를 하고 말거란 확신이 있었다. 드디어 그 순간이 온 것이다. 사실 놈은 너무 완벽했다. 완벽한 모양으로 고요하게 잠든 한무더기의 변을 가지고 놈을 잡을 수는 없었다. 인근에서 똥오줌을 못가리기로 유명한 동네 꼬마들을 잡아다가 족을 쳐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오리는 무중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녀석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길 바라는 것. 그러다가 아주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 

  "어떻습니까?" 먼저 현장에 도착해있던 KBI 특수요원 김유석(Kim, You Suck)에게 물었다. "지독해. 아주 지독한 놈이야." "뭐가 어떤데요?" '넘지 마시오'라고 쓰여진 노란색 리본을 넘어 현장에 가까이 다가갔다. 나도 모르게 순간 멈칫했다. "액상이로군요.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뒤에 바싹붙어 쫓아오던 신입요원 강건신의 말이었다. 과연 현장은 연갈색의 묽은 변으로 푸짐하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와! 이게 정말 한 사람의 뱃속에서 나온 걸까요?" 그 호들갑에 나는 화가 났다. 불필요한 과장은 피하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호들갑 떨지말고 어서가서 과학감식반이나 데려와." "이미 불렀습니다. 몇 분 안에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대의 경운기가 저 멀리에서부터 뿌연 먼지 구름을 일으켰다. 강건신 요원은 잽사게 수첩을 살폈다. "저 분이 바로 광천 과학감식반의 반장이신 동덕희(Dong, Duck-Hee)어른이라십니다.” 

  과연 경운기에서 내린 노인은 백발이 성성했고 백발보다 더 하얀 수염이 두 자에 이르렀다. 흡사 어둑한 골목길 불량 청소년처럼 쪼그려앉아 경운기 뒷편에서 꽁초를 뻐끔거리는 모습이 범상치가 않아보였다. "뭐여? 뭔 일이 난겨?" 동반장은 동네 마실 나가는 가벼운 차림새로 경운기에서 뛰어내렸다. “동반장님, 아니 덕키, 그때 그 놈입니다. 연쇄배변범." 동반장은 코를 감사쥐었다. "이그, 더러븐 놈." 나는 이 사건이 내게로 넘겨진 이후 그를 만난 것이 처음이었기에 인사를 하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동반장은 말릴 새도 없이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 '증거물'을 집게 손가락으로 휘저었다. "속이 많이 거시기했나벼. 요 전까징 싸질러 논거신 참 건강했는디." 강요원이 못 볼 꼴이라도 본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이래서 신참은 안된다니까. "그래서 덕키, 어떻습니까? 같은 놈이 확실합니까?" 동반장은, 이번에도 차마 말릴 새도 없이, '현장'의 '증거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입에 넣어 맛을 보았다. "음, 맞어유. 그때 그 맛이어유. 틀림없이 같은 놈이구먼유." 대담함에 놀랐지만 애써 태연을 가장하고 "덕키, 그래도 실험실에 보내봐야 하는게 아닙니까?" 라고 물었다. 그는 그냥 씨익 웃어 보인다. "내 혀가 더 정확혀유" KBI 본부로 돌아가는 길에 신참 강요원이 묻는다. "그 노친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는 증거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는 동반장의 기행, 아니 괴행에 속이 울렁거려 결국 한바탕 구토까지 쏟아내고 난 참이었다. 나 역시 이해가 안되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야 없지 않은가. 명색이 아랍에미리트 유학까지 다녀온 KBI의 스페셜 에이전트가. 에라, 모르겠다. 신참의 아물지 않은 머리를 쥐어 박으며 이렇게 말했다. 

- 짜샤, 인생이란 결국 변을 프로파일 하는거야.

(200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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