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물 위의 작은 배
낙농콩단

075. 물 위의 작은 배

by 김영준 (James Kim)

  배는 마을 위를 흘러갔다. 탈탈거리는 모터가 달린 작은 배다. 작은 배지만 엄연히 선수(船首)부가 있고 선미(船尾)부가 있으며 주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상부 갑판이 있다. 배의 측면에는 '(주)대한해운'이라는 글자가 노란색 페인트로, '돌핀 19호'라는 글자가 검은색 페인트로 각각 새겨져 있는데, 세월과 물살의 힘으로 조금 많이 벗겨져 나간 상태다. 열 명 남짓의 승객을 태운 돌핀 19호는 탈탈거리며 마을 위를 미끄러져 나간다. 사람만 전부해서 열이니 작은 배지만 그리 작은 배는 아니다. 그 중 기관실 너머 배의 뒤쪽 갑판에 세 명의 남자가 있다. 그들은 물을 내려다본다. 배로 인해 좌우로 갈려진 물살이 우유처럼 하얀 거품을 내며 보글거린다. 세 남자의 이름은 각각 광선유(廣宣流), 지대공(地對空), 공문도(孔紋導)라고 했다. 그들은 낡아서 탈탈거리는 모터 소리를 들으며 작은 배의 뒤쪽 갑판 위에 서 있다.

 

- 들었어? 
- 뭘? 
- 지금 그 소리 말이야. 

  둘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하나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를 들은 하나의 이름은 광선유(廣宣流). 조금 의아하기는 하지만 광선유가 이름이 맞다. 흔치않은 이름 탓에 어려서부터 어디서부터 성이고 어디서부터 이름이냐는 핀잔을 많이 받았는데, 광이 성이요 이름은 선유다. 덧붙이자면 문래 광씨의 43대손이었나 44대손이었나 했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석 자의 이름 때문에 겪게 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난을 겪었다. 이를테면 대박 증권회사에서 대리의 직급을 달고 있는 그가 고객이나 거래처 사람을 만나, "안녕하십니까?, 대박증권 대리 광선유라고 합니다" 라고 인사를 건네면, 상대는 으레 "성함이 광섬유라고요?" 라는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광섬유는 '유리의 굴절률 차이로 전반사를 일으켜 에너지를 전달하는 섬유다' 라고 고맙게도 고등학교 과학교재 맨 마지막 장에 친절히 설명되어 있다. 때문에 그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과학시간에 과학선생이 시원찮은 발음으로 광섬유, 광섬유가 시험에 출제될 거라고 옹알이하듯 반복했을 때 급우들이 슬금슬금 선유를 힐끔거렸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정말로 그 해 시험에 출제되었을 때, 그 중 몇몇은 앞자리에 앉은 선유의 뒷통수를 보고 답을 기억해내기도 하였다. 물론 이름에 얽힌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유라는 이름이 지적이고 부드럽고 여성적이라고 - 순전히 그런 이유로 - 이름에 반해서 따르던 여학생들이 한 무리였다. 그러나 모두 틀렸다. 광선유라는 이름은 본래 그의 할머니가 광선유포(廣宣流布), 즉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라는 뜻으로 지어준 것이었다. 지었다기보다는 포(布)라는 마지막 한 글자를 슬그머니 빼어 손자의 이름으로 삼았다는 게 더 맞겠다. 다행히 성은 애초부터 '광'씨였다. 광선은 널리 펼친다는 뜻이다. 그리고 유포는 천을 짜나간다는 뜻이다. 광선과 유포가 합쳐진 광선유포는 올바른 불법을 펼쳐 민중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다. 그럼 선유는 과연 뭇 중생들을 어루만졌던가. 어림없는 소리다. 여섯 살 때는 '교회 누나'라는 개념에 혹해 기독교로 개종(改宗)했고, 군 복무 중이던 스물세 살에 초코파이 때문에 천주교의 품으로 달려갔다. 제대 후 운명처럼 냉담자(冷淡者)가 되었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불법대신 증권을 펼쳤다. 그는 증권이 중생(衆生)을 이롭게 하리라고 주장하건만, 사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상에는 증권으로 이로워진 인간도 있는가 하면 해로워진 인간도 있으니까. 작은 배 위에서 선유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둘은 듣지 못했던 소리다. 그게 광선유라는 그의 특이한 이름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거야? 
- 자식이 비싼 밥 먹고 헛것을 듣나? 

  소리를 듣지 못한 다른 둘은 투덜거린다. 둘은 겉으로봐도 참 다르게 생겼다. 하나는 키가 크고 다른 하나는 작다. 하나는 인상이 말끔하고 다른 하나는 볼품없다. 키가 작고 모양새가 볼품없는 쪽의 이름이 지대공(地對空)이다. 대공 역시 이름에 대한 설움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위인이다. 군인이었던 대공의 아버지는 무심하게도 아들의 이름과 미사일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 그저 지상에서 공중으로, 그 단순한 방향성에 매력을 느꼈을 뿐이다. 아들의 속내를 알 리 없는 그는 후일 군인으로의 한평생을 마감하는 자신의 예편식에서 '자기가 자기 이름을 지었으면 단연 지대공이라 지었을 것, 그래서 지대공 대령님이 되었을 것, 그만큼 사랑스러운 이름을 아들에게 지어줄 수 있어 행복했다'는 요지의 기념비적 연설을 하게 된 바 있다. 광선유가 약간의 미묘한 혼동과 조금의 고민 끝에 놀리게 되는 이름이라면 지대공은 중간과정을 완전히 생각하고 단박에 놀리게 되는 이름이라는 차이가 있다. 간단히는 '미사일'에서부터 '적극방공(積極防空)', 그리고 '샘'까지 - SAM은 Surface-to-Air Missile의 약자다 - 학창 시절 내내 그에게는 달갑지 않은 별명들이 족쇄처럼 따라다녔다. 놀림은 놀리는 사람과 놀림을 받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성립한다. 당연히 놀림을 받는 사람은 놀림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놀림이라는 것은 놀림을 받는 당사자마저도 은근히 중독시켜 놓기 마련이다. 2002년 '아이 앰 샘'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였을 때 대공은 비로소 그걸 깨달았다. 그는 녹색극장 앞을 지나다 커다란 영화 홍보용 옥외 광고판을 보았다. 목을 45도 뒤로 젖혀놓고, '아버지가 딸을 안고 그네를 타는 그림'을 올려다보던 대공은 자기도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의 이름은 지대공(地對空), 미국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미사일을 SAM이라고 부른다. 

- 들었지? 방금 또 소리가 났어. 
- 모타 소리 말이야? 
- 아니, 그 소리말고. 

  선유는 갑판의 가장 끝에 있는 난간을 잡고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 본다. 대공과 문도도 그를 따라 똑같이 내려다 본다. 손바닥 만한 작은 배의 난간에 남자 셋이 미역 말리듯 대롱대롱 걸려있는 모습은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이 내려다 본 곳에는 물이 있었다. 수심이 꽤 깊어서 그런지 물은 한 가지로 짙은 색이었다. 오로지 배가 부서뜨리는 부분에서만 하얀색 거품이 일었다. 아무 소리도 안 나잖아. 키가 크고 훤칠한 쪽의 이름은 공문도(孔紋導). 셋 중 유일하게 이름 때문에 놀림받지 않았다. 공문도라는 이름은 놀리기 적합한가 싶지만, 역시 놀리기에 적합하지는 않은 그런 이름이었다. 특이한 이름인 것은 분명하지만 따지고 보면 불가능한 이름도 아니라는 게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주변에 훨씬 더 놀리기 좋은 이름을 - 광선유(廣宣流)와 지대공(地對空) - 가진 사람들이 있어 사람들은 굳이 공문도라는 이름을 놀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뉘앙스에 대해서는 간혹 언급하는 작자들이 있었다. 그건 순전히 공(孔)이라는 그의 성 때문이었는데, 그게 옛 중국 춘추시대의 공 선생님을 연상케 하는 게 아무래도 유교적인 냄새가 물씬물씬 풍긴다는 것이다. 바로 이 '공' 뒤에 삼팔도 아니고 덕칠도 아닌 '문'과 '도'가 이어진다. 사람들은 한글과 한자의 상관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쉽게 생긴 것을 떠올리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형상의 '문'자는 4획의 文이다. 물론 '도'에는 刀라는 종이에 붓을 두 번만 대면 그려낼 수 있는 단순함이 극치에 이른 한자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이미 앞에 孔과 文이 나왔으니 자연히 '도'는 道가 맞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공문도라는 이름 석 자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그 안에서 어떤 유교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문도는 유교, 혹은 유교 비슷한 것, 혹은 유교가 환기하는 모든 심상들과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우선 그의 직업, 전문 컨설턴트, 아니 진짜 직업, 전문 도굴 컨설턴트, 부터가 비(非) 유교적이고 반(反) 유교적이었다. 그는 유교의 상징과도 다름없는 망자의 봉분을 파헤쳐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으로 재화를 획득하는 일을 십수 년간 해왔고, 앞으로도 잡혀 들어가지 않는 이상 또다시 십수 년간 해 나갈 예정에 있었다. 도굴꾼의 이름이 공문도다, 그렇다고 문제될 것은 없지만 어째 곱씹어볼수록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도굴꾼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제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게 공문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 

- 이상하다. 잘 못 들었나? 
  싱거운 놈, 미친 놈, 대공과 문도는 친구를 각기 타박한다. 
- 너 때문에 밑을 내려다봤더니 괜히 속만 울렁거리잖아. 

  배는 여전히 물을 헤치고 나간다. 사실 그 물은 짠물이 아니라 민물이다. 17년 전인가 19년 전인가 댐을 만든다고 '저어기'서부터 반대 편 '저어어기'까지 막아놓고 물을 채웠다. 이북에서 댐을 터뜨리면 남한이 물바다가 되는데, 그걸 막으려면 평화의 댐도 있어야 하고, 여기저기에도 댐이 많아야 한다고 그랬다. 댐이 있으면 홍수 조절 능력도 좋아져 물난리가 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누가 그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가 벗겨진 당시 대통령 아저씨도 그랬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다. 선유와 대공과 문도는 그때 여기서 살았다. 물이 채워지기 전의 이야기다. 어느 날 학교를 갔다가 돌아오는데 텔레비전에서 수몰지구가 어쩌구 저쩌구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낯선 사람들이 몰려오고, 누군가 항의하고, 누군가 얻어맞고, 누군가 돈봉투를 받고, 마을이 장날처럼 북적북적하더니 하나둘씩 이삿짐을 꾸렸다. 선유네와 대공네와 문도네도 그때 각각 용달차에 짐을 실었다. 구슬과 딱지와 새총을 여기에 두고 그들은 탈탈거리며 떠났다. 그게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된 일이다. 모든 걸 가지고 갈 수 있어도 가져갈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조상님들을 모신 선산이다. 선유의 할아버지도, 대공의 할머니도 아직 여기에 계신다. 물이 닿지는 않으나 더 이상은 걸어서는 갈 수 없는 저 우뚝한 섬의 등성이에. 예전에 저곳은 섬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명절에만 한 번씩 배를 빌려야만 갈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섬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왜 산이 섬이 되어야 했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제 와서 여길 다시 찾아온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지도 생각해 본다. 이어서 그때 왜 조상님들 산소를 이장하지 않고 그냥 저기에 두었을지 고민해 보기도 한다. 그 답을 내기란 그리 쉽지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달리기 시합을 하던 그 슈퍼 앞 골목길은 여기쯤에 있을까. 저기쯤에 있을까. 난간에 배를 대고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면 뭔가 보일 것만 같았다. 뭔가 들릴 것도 같았다. 눈에 힘을 주고 귀를 바삭 세워 밑을 내려다본다. 다 큰 남자 셋이 미역줄기처럼 대롱대롱 난간에 걸쳐 열심히 밑을 내려다보고 있다. 작은 배는 여전히 물살을 헤치며 땅 위의 섬으로 다가간다. 

 

(2006년 04월)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낙농콩단

김영준 (James Kim)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