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조교 공손급의 조교병법 비긴즈
by 김영준 (James Kim)요즘 애들은 참 대단해. 어쩜 그렇게 겁이 없지? 우리 땐 말이야. 선배 앞에선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 그런데 요즘 애들은 선배 옆에서도 긴장을 안 해. 어떻게 함부로 키보드 따닥 거리는 소리를 낼 수 있지? 우리 땐 마우스 움직이는 소리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노력했어. 그러다 결국 논문도 두 편 썼지. <저소음 잡무환경을 위한 최단 동선 마우스 움직임법에 관하여>, 그리고 <저온 초산화 슈퍼두퍼 플라즈마 처리가 무마찰 마우스 패드 표면특성에 미치는 영향>이었을꺼야. 내 논문이면서도 제목이 너무 길어 외우지를 못해서, 정확히는 이력서를 확인해봐야 하겠지만은 아무튼 그런 비슷한 제목이었지. 그러니까,
요즘 애들말이야. 참 이상하단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일하는 선배들 옆에서 쩝쩝거리며 군것질을 할 수 있지? 밥 때마다 배고프다고 징징거릴 수 있지? 우리 땐 아무리 뱃가죽과 등가죽이 조우하는 일이 벌어지도라도 잡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심지어 허기져 쓰러지지 않으려고 실험실 구석에 숨어 포도당 링거액을 혈관에 직접 놓기도 했지. 선배가 먼저 밥 먹으러 가자고 하지 않는 이상, 감히 '밥' 소리도 꺼내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야. 또 어떻게 요즘 애들은 연구실에 일과 시간에 대놓고 홈쇼핑을 하지? 정말 미쳤나봐. 우리 땐 일과시간에 네이버 첫 페이지만 열었다가 들켜도 직살나게 욕을 먹었는데 말이야. 일과시간이 어떻게 되느냐고?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10시 반. 가끔은 더 길어지기도! 왜 그렇게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만 하는 걸까? 혹시 뭐 응급의학과에서 일하는 의사들처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어.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고, 그런 책임감 없이는 못할 일이고, 그렇기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이니까. 우린 그냥 조교 나부랑이. 생명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이유 없이 맨 땅에 헤딩하며, 현실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 될 가능성이 아주 작은 논문 몇 편을 위해 하루 버티어 하루 먹고 사는 하루살이 인생. 자부심은 바닥이고, 통장은 비어있고, 인생은 우울하고, 미래는 막막하고, 도대체 뭘 공부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
그 날이 기억나네. 연구실에 처음 들어갔던 날. 당시 나는 학부 3학년 생이었고 겨우 만 스물세 살. 뭐든지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여기던 나이였지. 멧돼지를 닮은 선배가 실험실과 측정실을 차례로 안내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무실에 도착하여 안쪽으로 한 걸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선배는 재빨리 문을 닫고 잠금쇠를 눌렀어. 딸깍, 하는 초현실적인 소리가 우주 저 멀리 퍼져나갔지. 아마 운명의 지침이 심각하게 틀어지는 소리였을 거야. 잠긴 문 앞에 버티고 선 멧돼지 선배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비열하게 웃어 보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그때 모든 걸 짐작했어야만 했어.
내가 들어간 실험실의 이름은 <케이준배합화학연구실>. 케이준 비밀 양념의 최적 배합비 및 이화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곳이었어. 케이준 양념이 뭐냐고? 캐나다 아카디아 지역에서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로 이주한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프랑스 고유의 요리법과 풍부한 뉴올리언즈의 식재료가 융합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요리법이지.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사람들을 '케이준'이라고 부르기에 그들의 요리법 또한 케이준이라고 불리게 된 거야. 특히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멕시코 요리와 인디언 요리의 요소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다른 어느 요리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게 된 것 또한 케이준 요리의 특징. 통상 케이준 스파이스라고 하면 마늘, 양파, 샐러리, 칠리, 후추, 겨자 등을 넣어 만든 매콤한 양념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야. 우리 실험실이 연구하는 것도 바로 그런 케이준 양념으로부터 "과학적으로" 최적의 맛을 찾아내는 것이고 말이야. 그래서 논문 제목도 거의 이런 식이었어.
<케이준 스파이스 숙성중 물리화학적 및 관능적 성질 변화에 관한 연구>
<한약재 추출물을 첨가한 케이준 잠발리야의 혀 끝에서 부서지는 마지막 맛에 관한 통계적 고찰>
<케이준 팝콘의 소비자 인식도 및 소비 행태에 관한 치명적 연구: 전국 개봉관을 중심으로>
<케이준 검보와 보통 스튜의 이화학적 특성차이에 관한 관능검사 및 통시적 연구>
기타 등등
참고로 '잠발라야'는 케이준 사람들이 말하는 일종의 볶음밥이야. '검보'는 그들이 말하는 일종의 스튜이고. 어쨌든 사람들은 우리 연구 내용을 보면 꼭 우리가 마치 먹고 즐기면서 세월이나 보내는 줄로 아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천만의 말씀. 세계를 진보시킬 첨단의 기술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첨단의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잖아? 마찬가지로 먹는 걸 연구하는 사람들이 꼭 잘 먹으리라는 법도 없지. '김밥나라'의 정체불명 야채김밥이나 '천리장성'의 불어 터진 자장면이 그 시절 우리의 주식이었어.
연구 주제 때문에 우리 연구실이 연구비 지원을 받는 곳은 뉴올리언즈 스타일의 패스트푸드업체 '파파이스'였어. 연간 거의 1억씩 받고 있었으니 '파파이스' 없이는 말 그대로 손가락이나 빨아야 하는 처지였지. 자연히 사장님(대학원생들은 교수님을 간혹 이렇게 불러)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파파이스' 관계자들과 만나서 단란한 곳에서 퍽이나 단란한 자리를 갖는 것이었지. 그래야 관계도 돈독하게 유지할 수 있고 돈줄도 끊어먹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이기 때문이라고. 그런 노력이 없이는 더 단란한 자리에서 더 단란한 대접을 하면서 치고 올라오는 다른 연구단에게 일과 펀딩을 빼앗길 수도 있다고. 겨우 스물세 살의 어린 나로서는 접대와 연구 용역의 그 오묘한 방정식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사장님의 아랫배는 인격과는 무관한 이유로 하루가 다르게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어. '파파이스' 관계자들과 뉴올리언즈 스타일로 매일 치킨을 뜯었으니 당연한 결과지. 물론 사장님은 '파파이스' 외의 다른 길을 뚫으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으셨다고 알고 있어. 그게 사장님에겐 두 번째로 중요한 일이었지. 우리 같은 대학원생을 지도하여 사회로 내보내려면 연구실을 더 크게 키워야 하셨을 테니. 그래서 사장님의 꿈은 '티지아이 프라이데이스'나 '베니건스,' '아웃백,' '토니로마스'와 같은 글로벌 대형 패밀리 레스토랑 업체를 뚫어 연구 지원을 받는 것이었어. 그러면 연간 3억에서 5억은 받아 굴릴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계셨지. 그래서 사장님은 그들 패밀리 레스토랑 관계자들과 만나서 단란한 곳에서 무척 단란한 자리를 갖는 일 또한 게을리하지 않으셨어. 역시 스물세 살의 나로서는 그 오묘한 방정식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사장님의 아랫배는 인격과는 무관한 이유로 부풀어 급기야 풍선처럼 터져나갈 지경에 이르고 있었어. "아마도 우리 사장님, 고도의 내장비만이실꺼야." 어느 선배는 이렇게 말했었어.
*
그무렵 실험실에는 매콤한 케이준 양념의 향이 끊이질 않았어. 당연하지. 매일 케이준 양념을 배합하고 기름에 닭을 튀겼으니. 건물 안에선 지나가던 학부생들이 그 냄새에 이끌려 주위를 서성거렸고, 건물 밖에선 지나가던 동네 개들이 그 냄새에 혹해서 삼삼오오 모여들었지. 그 매콤 야릇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바보코리아 21' 때문에 삽질을 했고, 빌어먹을 '중앙일보 대학평가'로 또 다른 삽질을 했으며, 그 밖의 또 말도 안되는 이유로 무수한 삽질을 했어. 삽질과 삽질 사이에 사장님은 대형 패밀리 레스토랑의 연구 용역에 제출할 과제 제안서 작성을 지시하셨어. 제안서와 제안서 사이에 괜히 전 세계 케이준 연구의 권위자들을 모셔 치르는 학회며, 연구회며, 심포지움이라는 쓸데없는 행사가 계획되어 우리를 미치게 만들었었지. 행사와 행사 사이에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미팅과 랩 세미나가 끼어들었고 말이야. 공부하는 시간보다 회의자료 만드는 시간이 훨씬 길었던 것 같아. 삽질을 하며, 과제 제안서를 쓰며, 정수기를 나르고 행사 용역까지 뛰면서 우리는 수업을 듣고, 실험을 하고, 회의자료를 만들고, 발표자료를 만들었었어. 아무리 건강한 놈도 체력적 한계에 다다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 아무리 명랑한 놈도 까칠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였을까. 우리 연구실에서는 유독 멤버 간의 충돌이 잦았어. 비교적 평화롭기로 알려진 다른 실험실들과 비교해 보자면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이었지. 우리는 매일 일촉즉발 비상사태였어. 그리고 그 모든 난장의 중심에는 아까 말했던 그 멧돼지 닮은 선배가 있었어. 가방 끈 긴 사람들 다운 말로 표현하자면 그는 모든 반응의 촉매였지.
솔직히 멧돼지 닮은 선배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조심스러워. 나뿐만이 아니라 당시 <케이준배합화학연구실>(참고로 지금은 그 이름이 케이준으로 시작하여 연구실로 끝나 기는 하는데 무려 37자까지 길어졌다고)에 있었던 모든 친구들의 공통된 현상인 것 같아. 그의 이야기만 꺼내도 가슴이 뛰고 손발이 떨린다는 얘기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 우리는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혈압이 올라 그를 그냥 '금지어'라고 부르기로 약속했어. LG 트윈스 팬들이 이름만 언급해도 부정 탄다는 생각에 전 감독 중 한 사람을 (휴... 하마터면 그 이름을 입에 올릴 뻔했다) '금지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로 말이야. 신입생이 사무실에 한 걸음 들어가기 무섭게 문부터 걸어 잠군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그 선배는 무서운 사람이었어.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내 인생에서 그처럼 지독스러운 인간을 다시 만나는 일은 없았어.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 내가 학부 3학년 여름방학이었을 때 그는 내게 '중앙일보 대학평가'를 떠넘겼다. 자기는 명색이 석사 2학기 짬밥인데 그런 걸 할 순 없다는 이유였어.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야. 학부연구생에게 그런 일을 맡겨서는 안되거니와 사실 맡겨서 일이 제대로 될 가능성도 없어. 예를 들어 변태적으로 이름이 비슷한 <저널 오브 케이준 케미스트리>와 <케미칼 케이준 저널>이 같은 잡지인지 다른 잡지인지 겨우 학부생이 알 게 뭐란 말이야. 선배의 모토는 "모름지기 후배는 강하게 키워야 한다"라는 것이었어. 그래서 뭐 하나 가르쳐 준 적도 없었지. 그러니 내가 그 두 잡지에 게재된 논문 실적의 인용지수(해당 저널에 발표된 논문이 얼마나 많이 인용되는가에 대한 수치화된 지표)를 똑같이 표기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 내가 작성한 대학평가 연구실적 작성안을 변태처럼 샅샅이 살펴 그걸 또 잡아낸 금지어 선배는 내게 쓰레기통을 오버 쓰로우로 던졌어. 불 같이 화를 내며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심한 말들을 쏟아내었지.
- 야 이 등신아! 너 미쳤어? <저널 오브 케이준 케미스트리>의 인용지수는 1.234고 <케마칼 케이준 저널>의 인용지수는 1.257이란 말이야. 그 차이를 몰라? 이 자식들이 진짜 정신 못 차리네. 언제까지 숟가락으로 떠 먹여줘야 하는 건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래.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했을까? 꼭 그렇게까지? 아직 학부생인 어린 후배가 몰라서 그런 것이었는데. 얼굴 붉히지 않고 함께 바로 잡을 수도 있는 일인데.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참 쓰잘떼기 없는 일이야. 그깟 논문 쪼가리의 그깟 숫자, 1.234면 어떻고 1.257이면 어떻단 말이야. 그 0.023의 차이가 너와 나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냐는 말이야. 날아오는 쓰레기통은 간신히 피했지만 눈물이 핑 돌았어. 나도 집에 가면 귀한 몸인데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지.
금지어 선배는 사장님을 무척이나 싫어했어. 나아가 혐오했고 경멸하는 것도 같았어. 신기한 것은 그러면서도 하는 짓은 사장님과 똑같은 경우가 많았단 말이지. 금지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후배가 선배보다 늦게 출근하는 것이었어. 또한 금지어가 그만큼 싫어하는 것은 후배가 선배보다 빨리 퇴근하는 것이었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항상 금지어보다 20분 일찍 출근하여 괜히 흠 잡힐 곳 없도록 실험실을 정돈해 두었고, 항상 금지어가 퇴근하면 그가 어질러 놓은 실험실을 깨끗하게 치우고 20분 후에 퇴근했었어. 이건 뭐, 차라리 애를 하나 키우는 느낌이잖아. 문제는 그 애가 나보다 나이도 많고 나한테 욕도 하고, 미쳐 발광도 하는 상전 중의 개상전이라는 사실이겠지만. 입학 동기였지만 나이는 나보다 두 살 많았던 조교 양산박(梁山泊)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어.
- 내게 꿈이 있다면 언젠가 금지어의 윗사람이 되어보는 거다. 그날이 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당한 만큼 고스란히 갚아줄 생각이다.
또 다른 동기 조교 권두언(卷頭言)도 이런 얘기를 하고는 했어.
- 졸업한 다음에 금지어랑 외딴 길목에서 딱 한 번만 마주쳤으면 좋겠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내게 그런 감사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십 년 묵은 체중이 확 내려가도록 먼지 나게 패버릴 거다. 그래서 요즘 일요일마다 틈틈이 태국인 도장에 다니면서 무에타이도 배우고 있다.
물론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지만 그런 이유에서라도 다시 보고 싶진 않아. 복수고 뭐고, 그냥 평생 다시는 엮이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니까.
*
참,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 일본에서 관광 온 포닥, 그러니까 박사 후 연구원이 (종종 어떤 포닥은 일하러 오는 게 아니라 관광하러 오시는 경우가 있단 말이야.) 밥에 후리가케를 뿌려 먹는 거야. 그걸 보도니 금지어 선배는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지.
- 저거다. 꼴통들아. 저게 잘만하면 느네 졸업테마가 될 수도 있겠다.
이기적이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금지어 선배의 입에서 우릴 생각해 주는 말이 나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지. 선배는 사장님한테는 우선 이야기하지 말고 몰래 실험을 진행해 보자고 했지. 꽤나 기분이 좋은지 히죽거리며 케이준 양념과 후리가케를 잘 섞어 보라고 했었어. 그러다가 일단 성공하면 자기가 사장님한테 쇼부를 쳐서 논문까지 나갈 수 있게 밀어주겠다고도 했었지. 순진했던 우리는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고 말이야 (믿은 놈이 바보지. 그렇지?). 깨가루 알갱이 하나 하나까지 확인해 가며 밤을 새워 섞어보고 먹어보고, 먹어보고 섞어보고를 반복했었어. 스파이시한 양념을 얼마나 맛보았는지 혀 끝이 얼얼할 지경이었지만 아쉽게도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는 못했어. 이제와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야. 본래 케이준 요리와 궁합도 맞지 않는 후리가케를 섞어서 도대체 무슨 새로운 맛을 찾아낼 수 있었겠어. 그런 이상한 맛을 좋아할 사람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친일파인 포닥 아저씨 밖에 없었을 거야. (내가 말했던가? 그 포닥 아저씨는 일본을 너무 사랑하여 대학과 대학원까지 일본에서 나왔지만 사실 한국인이야.
그리고 문제의 그날이 왔지. 어느 날엔가 사장님이 뭐라도 좋으니 학회에 낼 수 있는 꿍쳐 둔 미발표 연구가 없느냐고 물어왔을 때, 금지어는 자랑스럽게 그걸 들먹였던 거야. 좋은 의도에선지 나쁜 의도에선지 아직도 분간이 가지 않지만, 주어를 생략한 채로 말이야.
- 실은 <후리가케 기반의 동서융합 드 노보(de novo) 케이준 치킨 샐러드 제조법>이라고 초록을 마련해 둔 것이 있습니다.
그 말에 사장님은 얼굴에 화색이 돌아 이렇게 말씀하셨어.
- 그래? 뭔 멍멍이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져와 봐.
뜻밖의 상황 전개에 우리도 덩달아 잠시나마 설레었었지. 하지만 초록을 한 번 흩어본 사장님은 역정만 내셨어.
- 비싼 재료비 들여가면서 그게 뭔 놈의 멍텅구리 연구냐.
그리고 사장님은 금지어를 지목하여 이렇게 물으셨어.
- 금지어군, 자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
금지어 선배는, 아아, 그 인간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어. 정말 토시하나 아직까지 잊어버리지도 않아.
-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후배들이 아직 뭘 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금지어 선배가 세상에서 제일로 싫어하는 것은, 그러니까 사장님보다 더 싫어하는 것은, 다름 아닌 후배 때문에 사장님한테 욕을 먹는 것이었어. 자기도 먹고 살기 벅찬 세상에 후배까지 거둬 먹일 수는 없다는 게 금지어 선배의 지론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장님들은 학생 하나 하나를 관리하기보다는 한 놈만 찍어 책임을 지우고 관리하는 쪽을 선호하기 마련이기에, 당시 랩장이었던 금지어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를 책임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고. 바로 그것이 그의 히스테리가 폭풍 작렬할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이었던 것 같아. 금지어 선배는 명언도 많이 남겼지. "낙오자는 버린다"가 우리들이 뽑은 금지어 어록의 명언 5위야. 그 의미인즉슨 니들이 따라오지 못해도 챙겨주지 않겠다는 거지. 그리고 4위는 "인생은 다이다이다"인데, 니들 인생은 니들이 알아서 하라는 얘기지. 말이 나온 김에 그 어록을 조금 더 소개해 보자면 3위 "능력이 없으면 맨 땅에 헤딩이라도 해라", 2위 "선배 X구멍 빨아가며 배운 기술이다", 그리고 대망의 1위 "축제는 끝났다"가 있어. 3위는 실적이 안 나오는 후배들 갈구는 데 쓰는 레파토리고, 2위는 자기가 석사 신입생 때 얼마나 더럽고 치사하게 일을 배웠는지를 과시하는 표현이며, 1위는 아쉽게 순위권엔 들지 못한 그 명언 "긴장 좀 타자"와 일맥 상통하는 얘기지. 매일 같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그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뼈골이 빠졌던 우리에게는, 변태 같은 비위에 맞춰주느라 갖은 노력을 다해야 했던 우리에게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는 표현이었어. 축제는 끝났다니! 빌어먹을, 도대체 우리가 언제 축제였다는 말인지!
참, 또 갑자기 몇 가지 생각나는 것들이 있어. (아무래도 상담치료라도 받아야 할까 봐.) 그러니까 <케이준잠발라야신기술원천사업>의 과제 제안서를 쓰던 시절이었어. 며칠간 반복된 강행군으로 지칠대로 지친 우리 동기들이 제안서를 쓰면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이자 금지어는 마치 국가 안보라도 심각히 위협받고 있다는 듯 난리법석을 떨었지.
- 지금 장난하냐? 니들만 피곤하고 나는 괜찮고? 이것들이 미쳤네. 와, 군기가 완전히 빠졌네. 당장 운동장으로 집합!
그때 시각이 새벽 두 시하고도 삼십분. 우리는 금지어의 구령에 맞추어 새벽 두시 삼십 분에 운동장을 돌았어. 어엿한 성인인 대학원생들에게 얼차려로 운동장을 돌게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모르겠어. 도대체 학교에 공부를 하러 다니는 건지, 군에 입대를 한 건지 모를 이상하고 야릇한 기분. (하긴 금지어가 군대 시절에 논산에서 교관을 했더란 사실을 감안하면 그런 기분이 드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정신력을 강조하는 이 바닥 마인드라는 것이 거시기해. 며칠 전 한 IT 업체에서 "연구개발은 숫자가 아니라 혼의 싸움"이라는 말을 해서 화제가 되었다지? 거의 "공이 한 가운데로 들어와도 혼이 실리지 않으면 스트라이크로 판정을 안합니다"에 필적할 망언인데 그런 멍멍이 소리들에 희열을 느끼는 변태들이 꼭 있지.
아! 또 다른 기억도 있어. <혀에서살살녹는케이준팝콘구현을위한전자레인지를이용한표면특성연구> 과제가 구멍 나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야. 원래 그건 한국인이지만 일본인이나 다름없는 포닥 아저씨가 책임지기로 한 일이었는데, 서울 관광이 끝나기가 무섭게, 글쎄 이 아저씨가 배를 째고 배를 타고 일본으로 날라버렸지 뭐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 위에서 내팽겨 친 모든 일이 학생 나부랑이들에게 쏠리는 것이 대학원의 이치. 문제의 그 과제 또한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와 금지어에게 '책임 타자'의 책무가 지워졌어. 자기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아 날뛰는 금지어가 남이 싸질러 놓은 일을 순순히 맡을 리가 있을까? 금지어는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항했지만, 해당 과제를 위해 큰 마음먹고 1억 3천짜리 전자레인지까지 장만했던 사장님 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항을 제압해야 할 입장이었기에 만만치 않은 격전이 벌어졌어. 물론 승부는 뻔했지만 말이야. 사장님한테 개기다가 처참하게 깨지고 나온 금지어는 하필 죄 없는 나를 공학동 뒷마당 약품창고로 끌고 갔어. 자정 이후에 공복 아닌 그렘린 같은 표정을 하고 하고 담배를 피워 물더니만,
- 넌 도대체 선배가 당하는 동안 뭐 했냐?
라고 따져 물었어. 그리고는,
- 졸업 준비를 해야 할 사람에게 이런 걸 시키는 게 빌어먹을 도대체가 말이 되는 짓이냐. 올해 졸업 안 하는 니들이 알아서 과제를 막아내든, 먹어내든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당장 교수한테 가서 니가 안고 쓰러지겠다고 말해라
고도 했어. 또 흥분을 이기지 못해 펄펄 뛰면서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야.
- 같이 죽자! (응? 내가 왜?)
화학의 'C'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불나면 일백퍼센트 폭발할 것을 확신할 수 있을, 폐약품 한가득 쌓아놓은 곳에서 그 따위 소리를 들으니 모골이 송연했지. 아무튼 왜 뺨은 사장님한테 맞아놓고 아무 상관없는 나를 닦달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알 수가 없었어.
*
금지어 선배의 만행이란 물론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기도 했지만 단순히 양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금지어가 우리들에게 입힌 엄청난 정신적 데미지를 생각하면 말이야. 사람들이 '학교는 그래도 사회에 비하면 비닐하우스'라고 하는데 그 비닐하우스 안에 미친개가 하나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단 말이야. 우리 모두 바쁘고 힘들지. 모두가 고통스러우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꾹꾹 참을 뿐이아니겠어. 그런데 금지어는 그 가운데에서도 결국은 같은 처지일 동지들에게 심각한 내상을 입혔지. 한마디로 '동업자 정신'이 없다는 거지. 사장님에게 입은 상처는 어떤 면에선 전형적인 한국형 사제관계의 일부이니 뭐 시간이 지나면 차츰 아물지 않겠어? 하지만 주당 평균 80시간 이상을 같이 보내는 선후배/동기 사이에서 입은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 금지어 선배는 항상 스스로의 만행에 '실험실의 기강을 잡기 위해서'라는 미명을 가져다 붙였지만 그 진정성을 무슨 근거로 증명하겠어. 나는 아직도 문득 금지어가 내게 가했던 언어 폭력의 기억에 몸서리를 치는데 말이야. 조교 권두언도 졸업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
- 가끔 자다가 금지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럼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해져 꼬박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게 된다. 아직도 나에게 금지어는 악몽과 동의어다.
조교 양산박 역시 이런 말을 하고 있어.
- 내내 잘 지내다가도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어쩌다 파파이스 앞을 지나가다 케이준 양념 냄새만 맡아도 눈물이 나고 피가 거꾸로 솟는다. 아마도 이런 게 바로 트라우마라는 것이 아닌가 한다.
*
내가 졸업하고도 세월이 많이 흘렀어. 그 사이 <케이준배합화학연구실>은 사장님이 뉴올리언즈에 벤처를 차리면서 <케이준융합뉴올리언즈연구실>이 되었고, 사장님이 '순창고추장 전문인력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시 <케이준융합뉴올리언즈순창고추장연구실>이 되었다고 해. 이후에 농림수산부 과제에 지원하면서 다시 <케이준융합뉴올리언즈순창고추장잠발라야연구실>이 되었으며, 기어코 패밀리 레스토랑 '티지아이프라이데이즈'와 과제 협약을 체결하면서 <케이준융합뉴올리언즈순창고추장잠발라야티지아이프라이데이요식산학협동연구실>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한 시절을 같이 보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고 모르는 얼굴들로 그 자리가 채워졌지. 가끔 <케이준융합뉴올리언즈순창고추장잠발라야티지아이프라이데이요식산학협동연구실>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보면 내가 아는 연구실이 아니라 다른 연구실이 아닌가 낯설 정도야. 어쩌면 당시의 난장법석이 그저 짧고 무의미한 한 조각 꿈은 아니었을까? 나의 이십 대에 분명하게 존재했으나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인 것처럼 말이야.
(2010년 12월)
'낙농콩단 > Season 6-10 (2006-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5. 21세기 기사도 (0) | 2010.11.07 |
---|---|
134. 사장님은 야구광 (0) | 2010.10.10 |
133. 9시 10분 서울행 은하철도 149열차 13호차 (0) | 2010.09.12 |
132. 배드 네고시에이터 (0) | 2010.08.15 |
131. 동대표고 똥대표고 (4) | 2010.07.18 |
블로그의 정보
낙농콩단
김영준 (James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