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악몽의 통근버스
낙농콩단

139. 악몽의 통근버스

by 김영준 (James Kim)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건 본 일이 없다. 일리노이를 떠나온 이후로.

 

  한국에서 경험한 폭설 중 가장 대단했던 것은 다섯 살 때 겨울이었다. 거짓말 좀 보태 머리 높이 만큼의 눈이 쌓였다. 이후로는 그런 광경을 본 일이 없다. 뉴스에서 폭설이라 그래봐야 기껏 발목 부근까지 쌓이는 정도.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 도시에서는 눈도 빨리 녹는다. 열이 많아서다.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겨울도 많았다. 재작년이 그랬다. 뉴스에서는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의 결과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올해는 정말 이상하다. 폭설이라고 해도 좋을 눈이 하루 걸러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좀 내리는 정도가 아니다. 말 그대로 소설처럼 눈이 쌓이고 있다. 종아리를 넘어 무릎을 지나 허벅지를 찰랑이다 드디어 허리까지 파고들었다. 전후좌우로 열심히 몸을 흔들어가며 순백의 눈을 범해야만 겨우 앞으로 전진할 수 있을 정도다. 뉴스에서는, 이 또한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어릴 땐 눈이 내리면 마냥 좋았다. 많이 내리면 더욱 좋았다. 하지만 이젠 불편하다.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나보다. 이번 같은 폭설은 더 많은 걸 고민하게 만든다. 우산을 가져갈까? 말까? 코트를 입을까? 말까? 구두를 신을까? 말까? 정장이 젖지 않게 따로 챙겨가야 할까? 아닐까? 출근은 어떻게 해야할까? 또 퇴근은 어떻게 해야할까? 집 앞 내리막길이 미끄러울까? 설마 그럴까? 오늘 오기로 한 택배는 제대로 도착해줄까? 힘들까? 점심은 또 구내식당에서 먹어야 할까? 아님 뾰족한 수가 있을까? 그나저나, 이 눈은 언제까지 이렇게 내릴까?

 

  오후 한 시에 이미 저녁 여덟시 분위기가 난 하루였다. 퇴근시간이 되자 밖은 이미 한 밤중인양 캄캄했다. 통근버스를 꼭 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어제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은 결과다. 어젠 미적거리다 통근버스를 놓쳤다. 내 탓도 있지만 남들 탓도 있었다. 싸게 퇴근들 안하고 의자에 엉덩이를 찰싹 붙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 눈치를 보다 통근버스를 놓쳤다. 일곱시 반이 조금 넘어서야 빠져나왔는데 버스 정류장까지의 길이 구만리장천처럼 느껴졌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딜 간 건지 길에선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필경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을테지만 무섭게 내리는 눈이 그 흔적을 모두 지워버렸던 게 분명하다. 물론 연구소니 뭐니 하는 곳들이 일반 직장에 비해 외지고 조용한 곳에 위치한 탓도 있을 것이다. 이럴때면 떠들석한 도심 한 가운데서 일 하는 사람들이 최고로 부럽다니깐. 아무리 인간 많은 곳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가끔은 인간 많은 곳이 그리울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 관계 없고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라도 그나마 배경처럼 지나가 주는 게 때로는 위로가 된다.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댁들이 거기 있어줘서 그래도 다행입니다' 하는 식의 기분 말이다. 그러나 어제의 그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였다. 무릎 높이의 눈을 헤치며 어둠 속을 걸었다. 빛은 없거나 너무 멀어 아득했다. 그래서 더 추웠다. 눈보라에 휘감겨 걷다가 몇 번을 쓰러질 뻔 했다. 꼭 남극을 무대로 한 영화라도 찍는 느낌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다음에도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일단 버스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모니터가 불통 상태였다. 119번이고 133번이고 마을버스 1번이고 어디에 박혀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이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시간당 7센티미터에 육박했다고 한다. 

 

  통근버스에 올랐다. 그래도 그나마 통근버스가 이 판국에서 가장 안전하게 퇴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이거다. 사람들은 대개 비슷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 내가 계산하지 못한 것은 모두가 통근버스만 노리고 있으리란 사실이었다. 남들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리 없다. 평소엔 쪽팔리다고 통근버스를 마다하던 사람들도 오늘만큼은 기꺼이 그 쪽팔림을 무릅쓸 것이다. 통근버스는 원 내에서 세 군데 멈춘다. 차고 근처의 스타워즈 연구센터 앞 제 1정류소, 연못 근처의 스타트렉 연구센터 앞 제 2정류소, 정문 근처의 배틀스타 갈락티카 연구센터 앞 제 3정류소. 나 또한 평소 통근버스를 애용하던 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으나 기억을 더듬어보면 각 정류소마다 서너 명씩 올라타 정문을 빠져나갈 무렵엔 겨우 열 명 남짓한 탑승객이 있었던 것이 보통이었지 싶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제 1정류소에서 약 일흔여섯 명이 탔다. 제 2정류소에서 약 여든아홈 명이 더해졌다. 결정적으로 제 3 정류소에서는 약 백열일곱명이 밀려들어왔다. 중형버스 한 대에 사람 약 282명을 태울 수 있느냐. 논란의 여지야 있겠으나 감히 말하면 가능한 일이다. 다만 인간으로의 존엄, 혹은 그와 비슷한 문제들에 대해 보장할 수 없을 뿐이다. 약 282명의 숨소리를 걸고 맹세하건데 이건 결코 과장된 일이 아니다. 요즘 대형마트에서 파는 '통큰치킨'이라는 것이 화제라는데,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 버스는 '통근버스'라기보단 '통큰버스'라고 불려야 마땅할 것이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샌드위치 안에 끼인 한 장의 치즈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답답해. 무거워. 축축해. 아마 셋 다 정답일 것이다.

 

  정문을 빠져나가며 버스는 우회전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멈춰버렸다. 끝없는 자동차의 행렬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본 것이 아니어서 그 행렬이 얼마나 장대한지 설명할 길은 없다. 직접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시각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넥타이와 누군가의 서류가방과 누군가의 휴대전화 화면 (오! 저것이 말로만 듣던 터치폰!)과 누군가의 엉덩이가 전부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람이 국수처럼 엉킬 수 있단 생각은 해 본 일이 없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바닥엔 물이 흥건했고 머리 위로는 뿌옇게 안개가 일었다. 아마도 그 참혹한 그 순간을 견디게 해 준 것은 어제의 기억과 교훈이었을 것이다. 살면서 괴롭고 지난한 순간을 참아내고자 스스로 거는 만능의 주문 - "더 나쁜 상황이었을 수도 있잖아?' 그렇다. 어제에 비하자면 이렇게 국수처럼 엉켜가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인지 모른다. 어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가까스로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언급한대로 위치정보 모니터는 불통 상태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폭설로 어젯밤 교통시스템의 일부가 마비되었다는 것이다. 발을 동동구르며 예정을 알 수 없는 버스가 나타나주기만을 기다렸다. 버스 비슷한 것이 저 멀리 어둠을 뚫고 나타나면 환호했다가 그것이 버스가 아님을 알면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긴장하여 뭔가를 기다려 본 일이 있었나? 첫 데이트 때도 이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버스는 37분만에 도착했다. 이미 그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젖었다 얼었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감각이 사라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37분. 아무리 교통이 순탄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해도 시내버스가 37분만에 나타난 건 좀 너무한 일이었다. 37분만에 가득 승객을 태어 나타난 건, 더 너무한 일이었다. 아무리 발 디딜 틈이 없기로소니 그냥 떠나버린 건 더 너무한 일이었다. 참 더럽게도 야속했다. 그래서 다시 하염없이 기다리다보니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느낌이었다. 추워도 추운지 모르겠고, 배고파도 배고픈지 모르겠고, 외로워도 외로운지 모르겠고, 그렇게 28분을 더 기다렸다. 다행히 그 다음 버스에는 발 디딜 틈이 조금이나마 있었지만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버스는 제 운명을 따라 달렸고 나는 앞문 계단에서 손잡이 하나에 간신히 매달렸다. 칼날같은 눈보라를 온 몸으로 맞았고 몇몇 승객들은 날 원망의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너 땜에 문이 안 닫힌다는 식으로. 그런 것에 비하면,

 

샌드위치처럼 끼이고 국수처럼 말려 가는 것은 그래도 견딜만한 일인 것이다. 또 혹시 누가 알겠는가. 백만년 후 인류는 이런 형태로 진화하게 될런지. 그건 그렇고 익스큐즈 미. 똑같이 끼어가는 신세에 밀지 좀 말아주실래요?

 

*

 

  길이 꽉 막혔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퇴근시간에 길이 안 막힌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고, 백년만의 폭설로 온 도시의 교통 시스템이 메롱상태인데 퇴근시간에 길이 잘 빠진다면 뭔가 이상한 일이다.  아직도 버스는 그 자리에 있다.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인다. 볼 수는 없지만 감으로 알 수 있다. 그래도 지난 오분간 10cm쯤 움직인 것 같다고, 내 엉덩이에 손을 올려놓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손을 치우게 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일단 내 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고 어디에 끼었는지 움직일 수도 없으며 둘째로 그 남자의 얼굴이 어디에 붙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얼굴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화를 낼 수도 없다. 이것 참 묘한 일이다. 버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생각. 생각을 하자. 그러나 도리가 없다. 선택지는 오직 두 가지다. 1번 아니면 2번. 국으로 조용히 있거나, 그게 싫으면 내리거나. 그냥 내릴 수는 없다. 내리면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더 나쁠지 모른다. 어젠 그래도 퇴근시간은 지나서였다. 지금은 여섯시 십분이다. 거북이만도 못하게 기어가는 지금의 꼴을 보라지! 길은 자가용들로 더 붐빌테고 버스는 더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찰거다. 항상 그렇지만 걸어가는 건 옵션이 아니다. 정말 산책하기 좋은 날씨에도 걸어다니기엔 벅찬 거리다.

 

  사실 나의 퇴근 경로는 겨우 3.5 킬로미터에 불과하다. 버스로는 여섯 정거장이고 만약 이 도시에 지하철이 있다면 잘해야 한 정거장 못해도 두 정거장에 불과할 거리다. 그런데 퇴근에 보통 한 시간이 걸린다. 유난한 날이 아니라 그냥 보통 일상적인 날에 그렇다는 뜻이다. 괴덕대교 사거리를 통과해야한다는 부분이 문제의 근원이다. 까놓고 말해 이 도시의 이쪽 지역은 심각하게 잘못 디자인되어 있다. 도시의 젖줄, 위생천은 도시의 북쪽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괴덕대교는 바로 그 위생천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몇 안되는 통로다. 천의 북쪽은 시 외곽 연구단지로 기업과 연구소가 일종의 섬처럼 떨어져 있는 곳이고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은 거의 위생천 남쪽에 위치한다. 당연 출근시간에는 남에서 북으로 위생천을 건너는 사람들이 많고 퇴근시간에는 북에서 남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괴덕대교가 좌우 3 킬로미터 사이의 유일한 다리라는 사실이다. 말인 즉 괴덕대교를 건너지 않고 퇴근하고자 한다면 위생천 가장자리를 따라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3 킬로미터 이상 달려 방통대교 혹은 눈높이대교를 통해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서울처럼 자잘하고 복잡하게 우회할 길도 많고 대중교통까지 잘 되어 있는 도시에서라면 글쎄, 아마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지방 도시에서는 그게 큰 문제가 맞다. 한적하다는 것이 이럴 때는 장점이 아닌 치명적인 결점이 된다. 인근 동쪽 지역에서 버스는 세 대가 전부고 그 중 괴덕대교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두 대 뿐이다. 인근 서북쪽 지역 역시 버스 세 대가 전부고 그 중 괴덕대교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두 대 뿐이다. 그나마 20분에 한 번씩 지나갈까 말까다. 지하철이 있어 위생천 북쪽 지역을 커버한다면 어느 정도 이 체증 현상이 해소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꿈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다들 그래서 자가용을 몰고 다니려고 하고, 그래서 이 일대의 교통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과연 출퇴근 시간 이 일대의 교통대란은 말로 표현이 어려울 정도다. 괴덕대교는 이름만 대교지 사실 대교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이지만, 괴덕대교의 교통 대란은 대란이 분명하다.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괴덕대교의 통행량은 하루 6만대로 추산되는데, 그 중 30% 이상이 18시부터 19시 사이에 몰린다. 위에서 내려다 본 적은 없지만 주차장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나는 걸어도 한 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를 버스로 한 시간이 넘게 걸려 다니고 있다. 겨우 여섯 정거장을 말이다. 평소에도 과연 버스가 앞으로 가기는 하는 것인지 의심해야 하는 순간이 적지 않다. 보통 서울에서 퇴근길 상습정체구간이라는 곳, 많이도 겪어봤지만 이렇게까지 답답하지는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택할 수 있는 옵션도 여러가지였고 말이다. 그러나 괴덕대교 통과를 위해 할 수 있는 결정은 단 두 가지 뿐이다. 버스에 조용히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거나, 그게 싫으면 내려서 걷거나.

- 아저씨, 내려줘요. 차라리 걸어서 가는 게 빠르겠네.

- 맞아요. 나도 내려줘요.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또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 누군가들을 내려주기 위해 버스가 멈췄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미 아까부터 버스는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샐틈 없던 촉수들의 틈 사이로 뭔가 공극이 생기고, 최소한 몸을 틀어볼 여유는 생긴 것으로 보아 누군가 빠져 나가긴 했던 것 같다. 몸을 움직여 좌석쪽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의 머리와 머리 사이로 창문이 보인다. 더 몸을 움직여 창문쪽으로 붙었다. 자꾸 밀친다고 욕을 먹었다. 누가 욕을 했는지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창문에 손이 닿았다. 당연히 차가웠다. 창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뽀얀 김이 창문에 서렸다. 우유색이었다. 밖이 보이지 않았다. 창문의 김을 닦아내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났다. 비로소 안개가 걷히고 밖이 보였다. 그래봐야 눈보라로 뒤덮여 여전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기는 했다. 다시 김이 서렸다. 점점 더 짙어져 닦아내지 않았던 주위와 보조를 맞추었다. 정말 우유색이었다. 버스는 여전히 움직일 줄을 몰랐다. 축축한 바닥에서는 사우나처럼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찬 바람이 어디론가 들어오고 있었다. 더우면서도 추웠다. 발은 시리는데 등허리는 땀으로 축축했다.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처졌다. 

 

*

  버스는 여전히 제자리다. 도대체 차가 얼마나 막히는지 알 수 없었다. 밖에 얼마나 눈이 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래서 집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역시 알 수 없었다. 어른이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지만,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은 여전히 알 수 없을 뿐이다. 통근버스에 올라탄지 어느새…… 한시간 십오분. 그러나 아직 괴덕대교까지 가지도 못했지 싶다. 아니, 정문을 빠져나와 한 300 미터쯤 왔다면 다행일 것이다. 약간은 요의도 느껴졌다. 순환이 되지 않아 공기가 무척 탁했다. 여기 저기서 언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이제 슬슬 모두 한계치에 이르지 않았나 싶었다. 본디 인간이란, 이 넓은 지구에 흩어져 살면서도 매일 같이 헐뜯고 싸우는 동물이다. 이 작은 버스에 가득 들어차 있으면서 모두가 안녕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내 생각엔 승객을 4분의 1쯤으로 줄여야 할 것 같았다. 가령 뭐 제비뽑기를 해서 버스에서 내릴 사람을 정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러지 않고서는 괴덕대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 모두 미치고 말 것이다.

- 거기 싸움 좀 말려봐요!

- 기사 아저씨는 방송 좀 해보세요.

- 거기 앞쪽에 계신 분들, 기사 아저씨한테 얘기 좀 해봐요.

 

  한 번 시작된 난리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바닥난 인내심이 촉매가 되어 혼란을 부추겼다. 이제까지 용케들 참아왔던 것처럼 이제부터는 용케도 참지 못할 시간이다. 터진 둑을 메울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사건이 터져나왔다. 버스 앞 쪽에 있던 누군가의 지적으로 시작된 일이다.

- 저기, 여러분. 잠시만요. 전 '사일런 감별 연구소'의 아무개라고 하는데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잠시 정숙하시고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 뭔데요?

  다들 웅성거렸다. 복잡하게 몸이 엉킨 채로.

- 그게 말입니다. 기사 아저씨가 없네요.

- 옆의 버스에요? 유령선, 아니 유령버스인 겁니까?

  몇몇 사람들이 사실 확인을 위해 창문쪽으로 몰린 탓에 몸과 몸의 마찰이 빚어졌다.

- 아니요. 그게 아니라, 우리 버스 말입니다. 우리 버스에 지금 기사 아저씨가 없다고요.

  뭔 소리야? 말도 안 돼. 저 마다 한 마디씩 웅얼거렸다. 그 말이 진짜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까치발을 들어도 운전석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너무 단단히 다른 이들의 몸에 엉켜있었던 탓에 까치발을 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다만 앞쪽 승객들 몇몇이 질러대는 히스테릭한 소리에 그 말이 아주 허황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어쨌든 기사 아저씨가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 소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을테니까. 

 

  혼란에 빠진 군중은 이제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졌다.

- 이제야 알겠어. 그래서 아까부터 버스가 내내 제 자리에 있었던 거야.

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그리고,

- 말도 안돼.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겠어.

라며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들. 나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후자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실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약간의 언쟁과 약간의 몸싸움을 거치다 서로 너무 단단히 엉켜버려 이제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와 엉켜 거대한 하나의 괴물이 되는 끔찍한 환상이 눈 앞을 아른거렸다. 그 괴물은 중형버스 한 대 크게에 약 이백팔십개의 머리와 천 개가 넘는 촉수를 가졌겠지! 이래서야 이 버스가 시내에 도착하고, 집에 도착한다고 하여 무사히 내릴 수 있으리란 확신도 들지 않았다. 거봐. 아무리 생각해도 중형버스 하나에 282명을 태우는 건 무리라니까.

- 잠깐만요.

  아깐 그 남자였다. 차량 내 마이크를 잡고 기사의 부재를 폭로하여 모두를 혼란에 몰아넣은 장본인 말이다.

- 기사 아저씨 자리에 뭐가 있네요. 쪽지에요. 그리고 뭔가 적혀있는데…

- 뭐라고 써있나요?

- 이렇게 적혀있네요. "안녕히 가세요. 과학기술의 도시 괴덕입니다."

 

(201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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