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폴 가이 (The Fall Guy, 2024) B평
by 김영준 (James Kim)두 시간 동안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지만 도저히 긍정적인 부분은 발견할 수가 없다. 온갖 장르가 알차게 채워져 있는 것처럼 ‘새마을금고’식 마케팅을 하고 있으니 기꺼이 그대로 돌려드리자면, 로맨스는 예상보다 훨씬 싱겁고 코미디는 열에 아홉은 불발탄이다 (註1). 놀랍게도 액션이 가장 실망스러운데 다름 아닌 스턴트맨이 주인공이라는 설정이 주는 높은 기대치 때문이다. 너무 당연하다. 이론 물리학자나 터퍼웨어 세일즈맨이 주인공인데 고난도 액션 풀 패키지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턴트맨이 주인공이라니까 그야말로 역사에 한 획을 긋다 말고 에라 모르겠다 두들겨 패는 완전히 다른 레벨의 장면들을 기대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작품은 그런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채 평범한 액션 영화들과 크게 차이가 없는 수준에 머무른다. 마치 뷔페 식당처럼 한가득 다양하게 늘어놓았지만 아주 퀄리티 있는 만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과연 그렇다면 어디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단 말인가. 음… 실은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기는 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에밀리 블런트의 목소리 말이다. 그러니까 조금 다르다. 뭔가 다르다. 원래 약간 허스키하고, 악센트 때문에 더 심하게 느껴지고, 물론 그래서 매력적일 때도 있지만, 그래서 가끔 로맨스 영화에서 깨는 부분도 있었는데, 아 몰라… 이 작품에서는 갑자기 완전히 다른 목소리를 낸다. 평소보다 몇 음 위에 있는 듯한데 이게 맞는 설명인지 모르겠다. 뜻밖의 일이지만 이 톤에서 블런트의 악센트는 고급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런적이 없었는데 그녀의 대사마다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고 가벼운 어지럼증마저 느꼈다. 거의 보이스피싱을 당한 기분이다. 물론 배우니까 가능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는 그 가능성을 기꺼이 실현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로맨스물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노래를 해야 하는 역할에서도 말이다. ‘인투 더 우즈 (롭 마샬, 2014)’에서는 제빵사의 아내 목소리가 조금 허스키하면 안된다고 스티븐 손드하임도, 제임스 라핀도, 혹은 그 밖의 누구도 정한 적이 없으니 뭐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메리포핀스 리턴즈 (롭 마샬, 2018)’에서는 쥴리 앤드류스의 뒤를 잇기를 너무 쉽게 포기하였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위어라 오너 부르린커뷰 아나어듀벹튜어 칠뒤런. 던 슈포이릿 위듀투매니 큐애스튜언,” 註2). 그렇다면 몇 가지 가설이 있다. 먼저 영화사에서 아주 유서 깊은 방법 중 하나인 보이스 더블이 있겠다. 그게 아니라면 헨리 히긴스 교수에게 특훈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블런트 양,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시카리오’에서 처럼 말하면 안된다네, 註3) 그것도 아니라면 가능성은 딥 페이크만 남는데… 어머, 그건 너무 무서우니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어쨌든 그동안 그녀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처럼 러블리하고 여성스러운 분의 목소리를 두고 "마이클 부블레와 좋은 듀오를 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취지의 발언이었다) 농담을 만들었던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미즈 블런트와 그 안사람, 아니 부군이신 미스터 크라신스키에게도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2024년 06월)
(註1) 과거에 새마을금고는 텔레비전 광고에서 자신들 비즈니스를 다양한 영화 장르에 빗대어 표현했던 적이 있다.
(註2) "We're on a blink of an advanture, childern. Don't spoil it with too many questions."
(註3)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Pygmalion, 1913)'에 등장하는 음성학 교수. 이 희곡은 이후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 앨런 제이 레너와 프레더릭 로, 1956)'로 만들어졌고 1964년에 다시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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