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조조 래빗 (Jojo Rabbit, 2019)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0. 4. 10.

본문

  조조 래빗은 결점이 많은 영화다. 플롯에는 구멍이 많고 논리적 비약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가끔 우연에 의존하는데다가 몇몇 장면은 세련미마저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훌륭한 블랙코미디로의 완성되었음을 부정하긴 또 어렵다. 분명 이상한 일이다. 

  이 작품은 언뜻  KO 펀치급의 기발한 설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사실 그렇지 않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면 이 착한 거짓말 소재를 변용한 영화만 한 트럭이다. 저 멀리 ‘제이콥의 거짓말 (프랑크 바이어, 1975)’부터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토 베니니, 1997),’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제이콥의 거짓말 (피터 카소비츠, 1999),’  통일 독일을 무대로 지연 시점에서 유사한 소재를 구현한 ‘굿바이 레닌 (볼프강 베커, 2003),’ 그리고 비교적 최근작인 ‘책도둑 (브라이언 퍼시벌, 2014)'까지. 사실 너무 익숙해서 더는 약효를 장담할 수 없는 설정이다. 앞서 열거한 몇몇 작품들처럼 설정이 5할을 먹고 들어가서 솔리드한 스타트만 끊어주면 결말까지 탄력을 싣고 질주할만큼 강력하지도 않다. 실제로 이 작품은 오히려 초반 스타트를 크게 망치고 나서 뒤쳐졌던 주자의 기적적 대역전극에 더 가까워 보인다. 중반까지 우왕좌왕 걱실거리며 앞으로 진행해 나가는 과정은 지켜보기에 조바심이 날 정도로 불안정하지만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순간까지 인내심 있게 완급을 조절한 그 뚝심만큼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흥미롭게도 전술한 결점들은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설정과 맞물려 묘하게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뭔가 조금 어설프고, 뭔가 조금 허술하고, 뭔가 조금 모자라게 전개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인데, 이 갭은 비극적 현실의 중화와 아이의 성장이 만나는 접점에 이르러 비로소 해소되어 (아니나 다를까) 꽤나 매력적인 효과를 야기한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할 때 어쩌면 이름있는 성인 배우들의 역할은 이 효과가 자연스럽게 나타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타샤 로마노프나 쿠사나기 모토코로 분하지 않은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는 언제나 훌륭하고 언제부턴가 위악적 연기에 있어선 비교 불가의 존재로 올라선 샘 록웰의 매력 역시 대단하다.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의 (부담스러울 정도의) 살신성인 또한 민감한 소재의 무게감을 덜어주는데 한 몫을 한다. 그 사이 (부단한 시행 착오 끝에) 마침내 서서히 마법이 시작된다. 천방지축 나치 워너비 꼬마가 벽장 속 (뿔 달린) 유대인 소녀를 경계하다가, 감시하다가, 끝내 교감하게 되는 이 깜찍한 PG-13 버전 ‘타인의 삶’에는 더 이상 어떤 부연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좌충우돌 레이스 끝에 찾아온 짜릿한 러너스 하이의 순간이다.

(2020년 4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