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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2019)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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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의 묵은 향과 오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다른 결로 엮일 수 밖에 없다는 태생적 한계 정도를 제외하면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거의 흠이 없는 작품이다. 기이할 정도의 선의와 온기로 가득찬 인물들이 불편하지만 않는다면 (아시다시피 이는 많은 현대인들이 시달리는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모두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긴장이 늘어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기자기하면서도 부드럽고 섬세한 세공 덕분이다. 순간적으로 그레타 거윅의 전작들을 연상하게 하는 순간들에서 짐작이 가능하듯, 최근 그녀의 성취는 조금 더 온당한 조명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 한가지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퍼즐 조각처럼 꼭 맞아들어가는 캐스팅이다. 물론 어지간히 괜찮다 하는 작품들에는 다 이 진부한 표현이 따라붙는 것이 사실이지만, 뭔가 이 퍼즐 조각에는 기분 좋고 경쾌하게 맞아들어가는 편안한 만족감이 있다. 어려서부터 조숙한 말괄량이를 전공으로 작가 지망생을 부전공으로 삼아온 시얼샤 로넌은 둘째 조세핀 마치 역에 너무도 잘 어울리며 (팬심을 제하고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정말 사랑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모범생 이미지를 풍기는 엠마 왓슨 역시 캐스팅 자체가 일정 부분 첫째 마가렛 마치 역을 완성하는 카드처럼 보인다. (물론 평소 성 역할에 대한 그녀의 강경한 주장들을 감안하면 마치 멜 깁슨이 박해받는 예수를 그려내는 심정으로 그 역할에 과몰입했을 혐의를 지우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셋째 에이미 마치로 분한 플로렌스 퓨는… 말이 필요없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마치 자매에 있어 ‘미드소마’ 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셋째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반면 막내 엘리자베스 마치는 아직 경력이 많지 않은 일라이자 스캔런의 신선한 낙점 그 자체가 효과적이었던 듯 싶고, 옆집 총각 씨어도어 "로리" 로렌스의 경우 '21세기 의 방탕아' 혹은 '밀레니얼 개츠비'라는 티모시 살로메가 현재 구축한 이미지를 적절하게 잘 활용했던 것처럼 보인다.

  한편, 메릴 스트립은 다름 아닌 ‘메릴 스트립’이니 달리 사족이 필요없고 크리스 쿠퍼와 밥 오덴커크도 경력에 어울리는 굳건한 안정감을 보여주었다고 보면, 역시 이 작품에서 예상을 넘어서는 게임 플레이어는 역시 로라 던이다. 네 자매들의 어머니 메리 마치로 분한 그녀는 놀라우리만치 우아하고 편안하게 역할에 맞아 들어간다. 데뷔 초 톱스타로 향하는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의아하게도 오랜 부침을 반복했던 그녀는 또다른 투정 들어주기 연기를 관객들에게 (아니 구독자들에게?) 선물하는 ‘결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 2019)’에서도 보여지듯이 언제부턴가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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