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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레이니 데이 인 뉴욕 (A Rainy Day in New York, 2019)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0.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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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그동안 긴가민가 해왔지만 이제는 정말로 근본적인 변화의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다. 인공지능에 의해서 우디 앨런 영화를 (쉿! 적어도 마케팅 과정에서 아무래도 그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계속 만들어 가는 방법 말이다. 뭐, 이제 현실적으로 연세를 생각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자기 이름이 곧 강력한 브랜드였던 사람이 바로 그 이름에 타르가 칠해져 회복이 어렵게 되었으니 다른 뾰족한 수가 없기도 하다. 이 작품 역시 (아마존과의 지루한 법정 공방을 포함하여) 배급 문제로 개봉에 난항을 겪은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뚝딱 한 편을 만들어내는 비용-효율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두 편 연속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점도 고민을 해봐야 한다. 돈주머니를 장착한 영화 시장의 ‘언더독’ 아마존 스튜디오와 경량한 소품을 다작하는 ‘빅 네임’인 그가 손을 잡은 것은 사실 ‘윈-윈’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도 서로 안 좋게 끝났다. 이제 남아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마침 좋은 소식은 그의 작품들이 원래 머신 러닝에 용이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부분이다. 첫째, 일단 학습 자료가 많다. 매년 한 편 꼴로 발표하는 다작 감독답게 장편 영화로만 무려 52편의 완전체 자료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단편 영화 한 편, TV용 영화 한 편, 여섯 편의 연극, 두 편의 뮤지컬, 다섯 권의 책, TV 시리즈 하나, 무수한 스탠드업 공연과 코미디 클립, 그리고 뉴요커 등의 잡지에 게재된 단편, 에세이, 칼럼까지 데이터 베이스가 갖춰져 있다. 재즈 에이지의 플레이 리스트와 게티 이미지/셔터 스톡의 도시 명소 사진만 섞어 넣어도 썩 그럴 듯한 모양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둘째, 꽤 눈에 잘 띄는 패턴과 인장이 있다. 한정된 세계관 안에서, 정해진 재료를 갖고, 일정 공식 위에서 반복 조립 및 조합을 거듭하는 경향 때문이다. 사실 이 점은 조금 아이러니하다. 한때 많은 영화계 인사들이 그를 가장 독창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영화 감독이라고 일컬었던 점을 복기하자면 말이다. 

  물론 그래도 쉽지는 않다. ‘시네도키, 뉴욕 (찰리 카우프만, 2008)’이나 ‘이터널 션사인 오브 더 스팟리스 마인드 (미셀 공드리, 2004),’ 혹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소피아 코폴라, 2003),’ 아니면 ‘오징어와 고래 (노아 바움백, 2005)’처럼 ‘우디 앨런 스타일’이라는 표현이 따라 붙는 작품들의 경우에서 보듯, 우리는 이미 우디 앨런 스타일의 영화라는 것의 공통 구성 요소를 대강 추려볼 수가 있지만 상기 언급한 네 사람 중 누구도 우디 앨런은 아니며 그를 대체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이 작품 ‘어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의미가 각별하다. 그야말로 특이점 도래를 앞당기려고 아주 작정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레이셔널 맨 (우디 앨런, 2015)’, ‘카페 소사이어티 (우디 앨런, 2016),’ 그리고 ’원더휠 (우디 앨런, 2017)’까지는 설명할 수 없는 비장의 비밀 레서피가 있었다. 분명 기본적으로는 한 번 이상 등장한 기존의 재료를 뒤섞었음에도 마지막 1%의 흉내낼 수 없는 요소가 독창적 아우라를 발산했기에 도저히 토를 달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다르다. 완벽한 재조합의 결과물이다. 부유층 자제의 이유없는 반항과 까닭없는 적의, 예민한 창작자의 땡깡에 가까운 자기 학대, 서로 다르게 감쇠하는 사랑이 빚어내는 증오와 집착의 파노라마, 지긋지긋하지만 그 염증마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대도시의 매력, 뭐 이런 큼직한 시그니처 테마들만이 아니라, 가볍게 잠깐 지니가는 에피소드들마저도 (가령 연인 혹은 배우자의 웃음 소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고민이라는 이야기처럼) 최소 몇 번씩은 반복된 것이다. 정말로 이 작품은 심각할 정도로 어디선가 한 번 이상 보았던 자기 복제 사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90년대생 배우들이 영락없는 우디 앨런의 인물을 연기한다는 점이 그나마 흥미롭기는 하지만 또 한편 역으로 생각해보면 살짝 무섭기도 하다. 마치 살아있는 가수와 작고한 가수가 함께 부르는 듀엣곡이나 백퍼센트 컴퓨터 그래픽스만으로 제작한 실사 영화 같은 느낌 때문이다. 과연 그렇다면 이제는 정말로 인공 지능의 힘을 빌려 우디 앨런 영화를 (쉿! 마케팅 과정에서는 'WA 2.0'이나 '헤이우드 테크놀로지스,' 혹은 '앨런 스튜어트 쾨니히스버그' 뭐 그런 이름을 쓰는 것이 좋겠다) 계속 만들어 가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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