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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Judy, 2019)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0.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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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터테이먼트 산업이 사람들의 재능과 영혼을 남김없이 먹어치운 다음에 비정하게 내팽개친다는 괴담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린 스타가 성인이 되면서 팬들에게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견줄만한 오싹한 진화 과정을 겪는 경우 역시 익숙한 것이다. 다만 다름 아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a) 캔자스의 시골 소녀 도로시 게일 (혹은 세인트루이스의 시골 소녀 에스더 스미스)이고; (b) 그녀가 바로 미국 영화 역사상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여성 스타인 주디 갈렌드이며; (c) 마지막 몇 년 동안의 모습이 흡사 아서 플렉과 그라지엘라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이 사례를 특별하게 보이게 만들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실 ‘주디’는 전기 영화로의 형식과 런던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소재로 다루는 선택 사이에서 묘한 부정합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인생 마지막 부분인 1960년대 중후반 시점으로 진행하면서 1930년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단 하나의 간헐적 (기억이 정확하다면 단 세 번의 짧은) 플래시백 시점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원작 연극의 구조를 그대로 영화로 옮겨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한다. 사실 연극과 달리 영화에서는 (순행이든 역행이든) 시간 여행에 애써 인색할 이유가 없는데, 굳이 이렇게 ‘오즈의 마법사(빅터 플레밍, 1939)’와 ‘토크 오브 더 타운’ 공연 사이의 거의 30여년에 이르는 시간이 흡사 진공 상태처럼 보이도록 만든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물론 전기 영화라고 반드시 다큐멘터리처럼 시간순 정보 나열을 해야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인물의 특정 시점을 취사 선택하여 조명하는 경우에도 (설령 가장 의외의 순간을 포착한다고 할지라도) 보통은 일생의 여정과 고유의 아우라가 압축되어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런 부분에서 의문부호가 남는다. 전성기, 최전성기, 정체기, 제 2의 전성기, 급격한 쇠락기로 이어지는 흐름, 그리고 영화시대와 TV시대, 휴식과 컴백, 사건과 사고, 결혼과 이혼 등 모든 분기점을 소거하고 열다섯 무렵의 그녀와 마흔다섯 무렵의 그녀를 단순한 원인과 결과를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할 것도 없이 MGM 영화사를 비롯한 당시 헐리우드 시스템이 아역 배우(혹은 여성 배우)를 다루는 방식은 끔찍한 것이었고 그 휴유증이 평생에 걸친 신체적, 정신적 붕괴와 수면 장애, 알콜 중독, 그리고 약물 중독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도로시 게일과 마지막 몇 년의 주디 갈렌드를 단순 대비시키는 접근은 그리 섬세해보이지 않는다.

  같은 해 개봉한 ‘조커(토트 필립스, 2019)’는, (왜 거듭 이 두 영화를 나란히 비교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주디 갈렌드의 1960년 앨범 ‘That’s Entertainment!’ 재킷사진 속 의상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조커’는 인과율로부터 탈주하려는 인물을 완성하기 위해 논리적 연쇄 반응을 공들여 설계한다. 반면에 ‘주디’는 결국 인과율에 종속하려는 인물을 완성하는데 논리적 연쇄 반응을 애써 해체하려고 노력한다. 이 역설은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속에 살았던 인물을 더욱 더 이해하기 힘든 인물처럼 그려내는 의아한 결과를 빚어낸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주디 갈렌드로 분한 르네 젤위거의 연기만큼은 그 모든 구조적 결함을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하다. 이 작품이 그냥 그런 밋밋한 전기 영화 중 하나로 남는 대신에 2019년을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로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면 그건 순전히 그녀의 눈부신 분전 덕분일 것이다.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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