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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 세팍타크로 서클 동아리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4.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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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세팍타크로에 살고 세팍타크로에 죽는다. 선배님께 경례!”

  3열로 서있던 열댓명의 남자 아이들이 멀대같이 큰 키에 다소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단상 위의 남자에게 일제히 우렁찬 경례를 올려 붙였다. “쎄팍.” 단상 위의 남자는 가볍고 경쾌하게 그 마른 손을 들어 경례를 받으며 짧고 절도있게 답한다. “타크로.” 단상 위의 남자는 무생대학교 ‘쎄팍타크로 서클 동아리', 쎄서동의 24기 회장 박유범 (Park, You Bum; 공연무술학과 03학번)이다. 

  쎄팍타크로 서클 동아리, 즉 쎄서동은 1990년 처음으로 무생대학교에 만들어졌다. 당시 동아리 협의회를 관장하던 주임 교수 J는 쎄팍타크로가 뭐하는 운동인지 몰라서 혹시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동구권에서 흘러 들어온 불순한 사상(혹은 사상가의 이름)이거나 뭔가 위험하고 뭔가 좋지 않은 뜻을 가진 막 나가는 '엑스 세대'들의 은어가 아닐까 염려하여 신청서를 반려시켰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쎄서동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쎄서동의 시조격인 김유석 (Kim, You Suck; 군특수가상현실학과 90학번)의 피 튀기는 노력 덕분이었는데, 그는 수시로 사상 검증을 위해 학장실에 호출당하면서도 쎄팍타크로가 그 '운동'이 아닌 진짜 '운동'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교내 최대 규모의 잔디밭 ‘자유광장’에서 후배들과 함께 알몸으로 쎄팍타크로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열정마저 보였다고 한다. 무생대 당국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에게 모조로 잡혀가 경찰서 유치장에 하루를 꼬박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지만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흡사 고대 그리스의 체육 제전을 연상케 하는 알몸 퍼포먼스를 7회 더 시도하고 나서야 그는 더 이상 옷을 벗지 않았다. 무생대에서 ‘쎄팍타크로 동아리’를 허가해 주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알고보니 스포츠의 일종임이 입증되어’라고 사유를 설명했지만 실상은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는 지역주민들의 청원 및 학교 창피해서 못 다니겠다는 학생들의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데모할만한 사안이 급격히 줄어 들어 대학가가 비교적 조용해질 무렵인 1990년대 중반, 쎄서동은 풍물패에 버금가는 불량 불온 동아리로 무생대 당국의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불시에 동아리방을 수색당한 적도 부지기수고 회원 전원이 강제로 학생과에 끌려가 896 문항짜리 인성 검사를 받아야 했던 시절마저 있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인성 검사의 근거는 896 문항에 대한 896 가지 답변의 내용이 아닌 인성검사 답안지를 얼마나 절취선에 따라 잘 뜯어내었는지가 관건이었다는데, 그 사실을 알고 모두가 땅을 치며 억울해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또한 일년에 한번씩 학교 당국에 불려가서 쎄팍타크로가 운동의 일종임을 설명해야 했고 동아리 공식 명칭에서 ‘서클’과 ‘동아리’가 동어 반복이 아니라 ‘쎄팍타크로 서클’까지가 종목의 이름이라는 사실도 설명해야만 했다. 쎄서동의 OB들 중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록 ‘쎄팍타크로’라는 단어에서 화염병과 최루탄의 아릿한 잔향을 느낀다. 그들은 왜 쎄팍타크로 동아리가 사상을 이유로 탄압을 받아야 했는지 아직까지도 이해를 하지 못한다. 억울해 하면서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아직까지도 그냥 꿍꿍 가슴 속에 쌓아두고 있단다. 그래서 그렇게 미친 듯이 술을 퍼마셨다는 설도 있다.

  그렇게 쎄서동은 18년을 버텼다. 그 사이 무생대 앞에 있는 보습학원을 다니다가 이유모를 최루탄 때문에 눈물 콧물을 찔찔 짰던 초등학생들이 어느새 무생대에 들어와 쎄서동에 들어와 바통과 전통을 함께 이어 받았다. (그 사이 무생대학교는 국제화 시대에 맞추어 교명을 선캄브리아 유니버시티(Precambrian University)로 바꾸고 약 45억6천만주년 기념관(가칭)을 지으려고 하다가 수포로 돌아갔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소용돌이의 와중에서도 이처럼 쎄서동이 강산이 두 번 가까이 바뀔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선후배간의 끈끈한 단결이었던 것이라 평가된다. 또한 그것은 엄격한 상하위계에 기반한 것이었다. 쎄서동의 근간을 이루는 한 가지 규율은 ‘뭉치지 않으면 죽고 흩어지지 않으면 산다’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간단한 말을 두고 왜 부정형으로 만들어서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다. 쎄서동의 시조이자 뿌리이자 전설이신 김유석 선배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다기에 모두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다. 

*

  03학번 박유범은 그런 쎄서동의 역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동아리의 회장인만큼 잘 알아야 했기도 했으려니와 쎄서동이 탄생하고 이제까지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해 온 과정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쎄서동의 25년 역사에서 가장 관심을 보인 부분은 바로 선배와 후배사이의 관계다. 학교라는 공간은 세대교체에 소요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유독 짧은 편이다. 그 사이 선배는 어떻게 후배들을 다루었고 후배는 어떤 선배로 자라나 새로 들어온 후배들을 다루었는가, 바로 이것이 유범은 가장 흥미로워 하던 부분이었다. 나름대로 억울하다면 억울한 동아리의 탄생과정과 더 억울하고 억울한 핍박과 고초 속에 동아리의 명맥을 이어오며 그들은 선후배 위계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유범은 새내기의 부푼 꿈을 안고 동아리방을 들어서던 순간을 기억한다. 당시 그는 사실 여러 동아리 중 쎄서동에 들어갈지 마음을 확실히 굳히지 못한 상태였다. 그걸 알리가 없는 선배들은 오성호텔의 팔등신 접객원들보다 달콤한 말과 서비스로 유범을 유혹했다. 눈치 빠른 누군가 밖으로 달려나가 ‘스타벅스' 커피를 사다주었다. 순진했던 유범은 그걸 받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눈치 빠른 누군가 몇 학점 수강하는지를 물었다. "21학점입니다." 그들은 동아리방 뒷편의 낡은 금고(나중에 알고 보니 이중 내화처리된)를 열고 해당 과목의 10년치 족보를 던져 주었다. 유범은 그 호의를 차마 저버릴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또 누군가는 족발에 보쌈 세트를 주문했다. 신입생이 들어 온 기념이라 했다. 자기 때문에 주문한 족발에 보쌈을 두고 그냥 갈 수가 없었던 그는 배달이 올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고 왁자지껄 먹고 마시는 난장판이 벌어지고 나서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모두가 친절했고 따뜻했다. 권하는 술을 마다할 수가 없어 종이컵 채로 마셨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는데 다음 날 일어나보니 해가 중천에 떠있었더랬다. 매무새를 가다듬고 짐을 챙기려니 선배들이 앞을 막아섰다. "이제 공식적으로 우리 동아리에 들어온게 맞지?" 그들이 내민 입회지원서에는 지장이 선연히도 찍혀 있었다. 유범은 그걸 찍은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지문이 자신의 것인지도 몰랐다. 유심히 들여다보기는 했는데,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지문이 자기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그는 쎄서동의 24기가 되었다. 이름하여 '쎄팍타크로 서클 동아리' 말이다. 

  "내가 가지고 들어왔던 건 어디갔어요?" 유범은 선배들에게 물었다. "뭐 말이야?" "그것 말이에요. 한 보따리 가득 안고 들어왔던 거요." 유범은 '부푼 꿈'을 말하고 있었다. 동아리 방을 들어올때 안고 있었던. "하하하." 모두가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 유범도 얼결에 따라 웃었다. 쎄서동의 22기 회장 최돈호 (Choi, Don-Hoe; 커피바리스타과 00학번)가 얼굴에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이봐, 신입. 그딴 건 잠시 우리가 맡아두도록 하지." 눈치 바른 누군가가 달려가 동아리 방 문을 딸깍 잠궜다. 그 '딸깍'소리는 참 또렷히도 불안하게 들렸다. 유범은 순간적으로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뭐에요? 선배님 돌려주세요. 돌려주세요." 그러나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엎드려." "엎드리라뇨?" "해야지." "뭘해요?" "신고식" 쎄서동의 22기 군기반장 강건신(Gang, Gun Sin; 순결학과 00학번)이 라커룸을 열고 야구 방망이를 꺼내왔다. "이 방망이에는 말이야. 이승엽이 싸인도 있단 말이지……." 그들은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곤 한껏 폼을 잡아 방망이를 쌩쌩 휘둘렀다. 마치 대단한 홈런타자라도 되는 듯이. "뭐에요? 살려주세요." "넌 이미 입회지원서에 도장을 찍었잖아. 회장님도 승인을 했고. 그럼 넌 우리의 후배란 말이지……." 몇몇이 달려 들어 유범의 팔과 다리를 잡았다. "살려주세요, 선배님…… 살려주세요." "어이 신참, 너무 겁 먹지 말드라고. 누구나 한 번씩은 다 당하는 일잉께." 서울에 올라온지 3년이 되도록 서울 말씨가 입에 배지 않았다는 쎄서동의 14기 오락부장 유소민 (You, So Mean; 호텔조리학과 00학번 김치발효 전공)의 말이었다. 그들은 유범을 발가벗겨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머리가 땅으로 향해 있는 꼬락서니로 유범은 몸부림을 쳤다. 눈치 빠른 누군가가 커다란 대야를 가져와서 유범의 머리 아래 두고 콸콸콸 물을 부었다. 참 크고도 깊은 대야였다. 그때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아직도 유범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때의 트라우마는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

  쎄서동의 특이한 점 중에 하나는 무생대에서 유일하게 3학년이 회장으로 선출되는 동아리라는 사실이다. 이는 전설적인 김유석 선배가 정한 '쎄서동 강령'에 엄중하게 명시되어 있다. 

하나. 본 회 회장은 최소 4학기를 마친 무생대의 3학년 군필 학생으로 한다. 
하나. 본 회 회장 선출의 근거는 네 학기 성적 평균 평점을 6할, 회원 투표를 4할로 합산하는 것으로 정한다. 

  그 이유를 유범은 잘 알고 있다. 쎄서동의 25년 역사는 유난히 다사다난했다. 종종 그 존속 자체가 위태롭기도 했다. 그렇다면 학생과에 수시로 불려 들어가야 하는 회장은 자연히 남들 동아리보다 뭐든게 뛰어나야만 했다. 학번도 높아야 하고, 나이도 많아서 상대적으로 의젓한 모습도 보여야 하고, 여기에 성적마저 좋다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군대도 다녀와서 사회화 패치가 완료된 상태라고 보여주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러니까 쎄서동의 회장은 쎄서동이 불온하고 위험한 동아리가 아니라는 증거, 속된 말로 '얼굴 마담'이 되어주어야 했던 것이다. 보통 군을 마친 3학년이면 취업 준비를 위해 슬슬 동아리에선 다들 발을 뺄 시점이다. 그럼에도 쎄서동의 선배들은 ‘동아리 회장'이 무슨 일생일대의 숙명이나 되는 듯 기꺼이 받아들여 자신의 온 몸을 불살랐다. 유범이 알기로는 유범이야말로 원하지 않아 회장이 된 최초의 인물이다. 여기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24기에는 회원이 둘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학생은 유석미 (You Suck Mee, 안경광학과 03학번)라는 여학생인데 그녀는 회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 쎄서동 강령 중 다음의 회칙 때문이다. 

하나. 본 회의 회장은 생물학적 남성이 맡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나. 본 회의 회장은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기간 만료 이전의 여권, 병적 증명서를 갖춘 자가 맡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석미는 쎄서동 역사상 두 번째 여학생이다. 10년만의 일이라 모두가 감격스러워했다. (92년인가 93년엔가 여선배를 보쌈하듯 데려와 동아리에 강제 등록시켰던 사례가 첫번째라고 한다.) 당시의 열광적 반응은 석미의 스무살 생일에 우리가 선물한 롤링 페이퍼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내 살아 생전에 우리 동아리에 여자가 들어오는걸 보다니…….”
"드디어 시작이다. 꿈의 '여학우 5할 시대'를 위해 달리고 또 달리자.”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녀는 쎄서동의 홍일점이다. (스포일러 얼랏! 여학생들은 세팍타크로에 별로 관심이 없다.) 애초부터 그녀는 쎄서동에 큰 애착이 없었다. 사실 아무 관심이 없었다. 왜 굳이 가입을 하였는지도 의아하게 보였다. 한편 응큼한 선배들은 '여학우의 존재' 자체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그녀가 쎄서동을 위해 일을 하건 말건에는 관심이 없었다. 모든 귀찮은 일에서 그녀를 열외를 시켜주었다. 자연히 남은 일은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모두 유범에게 밀려왔다. '신참'으로 통하던 2003년 일년 내내 그는 쎄서동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깟 동아리가 뭐 대수라고. 물론 도망치려 했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동아리를 그만두고 학업(공연무술학)에 충실하고자 전화번호도 바꾸어 보았고, 휴학도 해보았고, 야밤을 틈타 도주도 해보았지만 쎄서동의 손길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군대라도 핑계를 대고 싶었는데 그는 잘난듯이 이미 군필이었다. (재수로 대학 입시를 다시 치기 전에 군대를 먼저 다녀왔으니 말이다.) 어떤 방법도 여의치 않았다. 그 여의치 않은 과정을 여기에 설명하는 것은 정말로 여의치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간단히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든 무생대학교 공연무술학과 3학년 박유범은 지금 쎄서동의 회장이다. 

*

  박유범은 쎄서동의 문화를 좀 바꾸어 보고 싶었다. 상명하복식 문화는 동아리의 외형을 그럴듯 굳건하게 잡아 놓았고 따가운 논초리와 이유없는 외압 속에서 동아리를 존속시켰지만, 실상 그 속을 곪아 병들게 했다. 쎄서동에는 '홈 커밍데이'가 없다. 모임이라고는 자기들 기수끼리만 모이는 개인적인 것이 전부다. 한 기수와 다음 기수, 그리고 그 다음 기수가 사이가 이를 벅벅 가는 원수지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OB들 중에는 자기 바로 위 선배, 혹은 그 위 선배를 보기 싫어서 행사에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놈 얼굴을 보면 먼저 죽빵을 날릴 것 같아서……." 라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아무리 울며 겨자먹기로 떠밀려 회장이 되었지만 박유범은 이 모순을 고치고 싶었다. 그는 자기 아래로 쎄서동에 들어 온 후배들이 자길 미워하고 평생 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물론 그 또한 22기나 23기 자식들을 생각하면 절로 울분이 터져 나왔다. 주먹이 바르르 떨렸고 길에서라도 한 번 만나기라도 한다면 등짝에 식칼을 꽂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문의 기억은 시도 때도 없이 명멸하는 환상으로 유범의 정신을 피폐하게 했다. 오죽했으면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상담을 받기도 했을까. 그렇지만 죄 없는 후배들에게 당한 대로 되갚아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야 아무리 시간이 지난들 세상은 똑같이 돌아갈 것이 아닌가. 선배는 후배를 고문하고 시간이 흘러 선배가 된 후배는 새로 들어온 후배를 고문하고. 후배는 졸업한 선배의 상판에 죽빵을 날리고 싶어하고 새로 들어온 후배는 졸업한 선배의 상판에 죽빵을 날리고 싶어하는 자기 바로 위 선배의 상판에 죽빵을 날리고 싶어하고……. 그 해망적은 순환이야 말로 이 사회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바꾸자! 또 바꾸자! 그리고 또 바꾸자!' 바로 그것이 회장 박유범이 지향하는 2005년 쎄서동의 캐치프레이즈였다. 

*

  '유범이형, 잠깐 동방에 와 봐요. 누가 왔는데.' 도서관에서 '공연무술학의 공학적 이해'라는 666 페이지 전공서적 잡고 씨름하던 박유범은 문자 메세지를 하나 받았다. 그의 후배 역세권(Yeok, Se-Kwon; 장례지도컨설팅학과 04학번)가 보낸 것이었다. '선배님'이라는 딱딱한 호칭 대신에 '형'이라고 부르게 한 것은 유범이 회장이 되면서 이룬 업적 중 하나였다. 그는 '선배님'이라는 말이 선후배 사이를 지나치게 경직시킨다고 믿었다. 물론 '잠깐 와 봐요'나 '누가 왔는데' 따위의 말을 쓰라고 가르친 적은 없었다. 단지 벽이 허물어지면 보다 허물없이 친형제처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 뿐인데 이만큼 허물없어질 줄이야 유범 또한 몰랐다. 하하, 정말로 허물이 오징어 껍데기만큼도 없어진 것이다. '외출증'을 적어 열람실 자리 위에 올려두고 그는 급히 동방으로 내려갔다. 쎄서동의 동방은 60개에 이르는 무생대학교의 동아리들이 모두 차지하고 남은 학생회관 지하실로, 자랑은 아니지만 왼쪽은 영선실이고 오른쪽은 인쇄실이다. 이 또한 쎄서동의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세월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동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권이 손을 흔들었다. 
- 형! 여기요!
사실 동방은 손을 흔들고 자실만큼 넓진 않았고 같이 반갑게 손을 흔들 기분도 아니었지만 유범도 나름대로는 후배의 장단을 맞춰주고자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 누가 왔어요.
  세권의 옆에는 지난 18년간 쎄서동에 경기용 매트와 특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쎄팍타크로 용 볼을 공급해주는 무생상사의 백사장님이 서 있다. 그러지 않아도 오실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 유범씨, 오랜만이에요.
한사장님이 유범의 손을 반갑게 잡고 흔든다. 
- 잘 지내셨어요?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 어쩐 일이긴, 지나가다 들렸지.

  유범은 이재에 밝은 백사장이 심심해서 들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생들이 자기 또래 친구도 아니고 심심해서 놀러오겠는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 실은 일전에 샀던 경기용 매트 말이예요. 그게 결제가 안됐어. 유범씨도 알고 있었어요?
- 예? 그럴리가요.
  유범은 펄쩍 뛰었다. 그가 아는 한 쎄서동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역사상 미결제 사태 따위는 없었다.
- 세권아, 유만이 못 봤어?
  방유만 (Bang, You Man; 자동차튜닝학과 04학번)은 올해 쎄서동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 못 봤는데요.
  유범은 백사장에게 의자를 갖다 드렸다. 
- 사장님, 제가 알아 볼께요. 잠시만 앉아 계세요.
- 천천히 해요, 천천히.
전혀 천천히 하라는 표정이 아닌 얼굴로 백사장은 천천히 알아보라고 사람 좋게 웃었다. 

  유범은 곧바로 다른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응, 나 유범이 형인데…….
- 아, 형. 미안해요. 제가 지금 여자친구랑 극장에 와서……. 어? 영화 시작한다. 형, 제가 나중에 다시 걸을께요.
  딸깍, 하는 소리와 함게 전화가 끊겼다. 뭔가 말할 틈조차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유범은 25기장 초대졸 (Cho, Deajole; 보건허브과 04학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응, 대졸아. 나 유범이 형인데.
- 예, 형 웬일이에요?
- 매트말이야. 무생상사. 그거 아직 결제 안됐니?
- 아? 그랬어요. 전 몰랐는데…….
  25기장인 니가 모르면 누가 알겠냐, 자식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 몰랐어? 지금 백사장님이 오셔서…….
- 그래요? 그럼 그거 형이 좀 처리해 주세요.
- 내가?
- 예, 저 내일 시험이잖아요. 
  이거 웃을 수도 없고 울을 수도 없고. 
- 그래, 알겠다.
- 예, 그럼 형, 수고.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휴. 힘들다. 유범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부를 들고 백사장님과 계산을 맞췄다. 동아리 통장을 04학번 유만이 놈이 가지고 있어서 먼저 사비로 결제를 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유범은 진심으로 후배들이 자길 우습게 보고 있는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요 며칠간 계속 생각해오던 문제였다. 같이 모여 사는 공동체 생활인데 좋은게 좋은게 아닌가, 또한 후일 다시 만났을 때 서로 죽빵을 날리고픈 선후배 관계는 지양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아래 그는 쎄서동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는 후배들과 같이 일을 했고 좋은 일과 궂은 일을 함께 분담했다. 그런데 이게 그 결과다. 데이트중이니 전화를 끊으래고 시험공부해야 하니 니가 하랜다. 이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놈들의 태도다. 유범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냉수를 연거푸 들이켰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애꿎은 정수기를 발로 뻥 걷어찼다. 아차차. 07학번 후배들이 겁 먹은 표정으로 구석에 숨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실수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선배가 보여야 할 모습이 있고 보여선 안되는 모습이 있는데……. 내가 이러면 00학번 개 놈의 새끼들이랑 다를게 뭐야. 

  유범은 멋쩍게 동아리방을 빠져나왔다. 실상 도망치듯 나왔다. 요즘 들어 자신이 점점 더 이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억울했다. 유범은 그저 좋은 동아리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불미스러운 쎄서동의 25년 역사와 그 핍박속에 변태적으로 자라난 정신병에 가까운 후배 갈구기를 청산하고 싶었을 뿐이다. 모두가 당한 그대로 갚는다면 백년이 흘러도 세상은 그대로일테다. 누군가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나 힘들다. 유범은 생각했다. '얼마나 힘든지 그 애들은 알까. 어떻게 당했는지 얼마나 설웠는지 너희들만큼은 모르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너무 모른다. 너무 긴장하지 않는다. 지금의 평화로움이 거저 얻어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다. 그건 거저가 아니다. 유범 스스로의 권위와 권한을 어느 정도 포기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마음속에 뭉쳐있는 응어리를 되파내어 화풀이의 굿판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모두 알아주길 바라지는 않았으나 조금은 이해하길 바랬다. 부조리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마지막 단계가 과거의 부조리에 속해있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청산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상 수많은 혁명가들이 이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하늘 저 멀리로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지나가면 긴 꼬리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며 유범은 주머니를 뒤져 약을 꺼냈다. 얼마 전 신경정신과 의사가 화를 참을 수 없을 때면 먹으라고 주었던 약이다. 입 안에 털어 넣고 꿀꺽 삼켰다. 그리곤 외쳤다. 

  아! 신난다! 나는 인류를 진화시키기 위해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는구나!

(200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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