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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우리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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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지에서 일하며 되도록 음지를 지양하는 것과는 반대다. 이처럼 남들과 반대로 일하고 바라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청개구리여서도 아니요, 미운 일곱 살 이어서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일이라는 것의 성격이 본디 그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 그래, 이제 우리의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겠다. 우리는 삼삼시 삼삼동 삼삼 사거리하고도 삼삼역에서 삼삼대교를 향하는 방향의 왼편에 위치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삼삼 국민학교의 일원(一員)이다. 일원은 일원인데 그냥 일원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일원이다. 우리는 아주 조용하고도 은밀하게 삼삼 국민학교를 움직인다. 여기에는 위로 교장선생님에서부터 아래로 소사(小使)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어른들이 있지만 아무도 우리의 정체를 눈치채지는 못했다. 우리는 버스비와 지하철비 각종 국공립공원, 놀이동산, 유람선, 야구장, 여름방학 과제용 음악회 등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어른들과 명확히 차별화된다. 또한 학교를 다니면서 한편으로는 학교의 모든 것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 - 그들은 학교를 움직이지는 못하고 학교를 다닌다 - 과도 구분된다.

 

  우리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그 조건에는 선천적인 것이 포함된다. 타고 나야한다는 말이다. 뭘 타고나야 하느냐면 삼삼국민학교를 정각 세 시 방향에서 굽어보고 있는 삼삼산의 정기(正氣)다. 그 정기를 타고난 사람들끼리는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 당긴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가 있다는 거다. 특별한 나는 특별한 너를 알아보고 특별한 너는 특별한 나를 알아본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이던 우리들은 삼삼 국민학교의 등뼈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무섭고도 커다란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존재하는 우리의 조직은 아무도 모르게 삼삼 국민학교의 기틀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고무줄처럼 끈질기며 엿가락보다 끈끈하다. 우리 중 누군가가 졸업하면 새로운 누군가가 입학하여 그 자리를 메웠다. 이 또한 삼삼산의 정기가 힘차서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우리는 어디에나 있었다. 졸업식 때 송사(送辭)를 읽는 것도 우리 중 누군가였으며, 이에 답사(答辭)를 하고 떠나가는 것도 우리 중 누군가였다. 이때 운동장에 차렷자세로 꼿꼿이 서서 울고 짜는 언니오빠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아이들 또한 이내 자라서 우리가 될 우리들이었다. 우리는 바로 우리였고 정말 우리였으며 끝내 우리와 다름없었다. 여섯 학년에 걸쳐 골고루, 그러나 쥐도 모르고 새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퍼져있는 우리들의 세력은 이렇듯 무섭도록 단단했다. 

  

 

  당신은 아마 수면에 드러나 있는 것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삼삼 국민학교를 대표하는 어떤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줄로만 생각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 회장 약 일 명과 부회장 약 이 명 그리고 각 학급의 반장으로 구성된 삼삼 어린이회? 그건 단지 선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구성한 우리들의 전시용 꼭두각시다. 삼삼 육성회? 그건 학부모의 힘을 빌어 선생들의 입을 틀어막고 손을 묶어놓기 위한 우리의 자금줄이다. 삼삼 녹색 어머니회? 그건 우리가 선생들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해 구성한 어용 집단이다. 그 모든 조직들을 마리오네트 인형 흔들듯 조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다. 우리는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의논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삼삼사거리에 위치한 중국집 '백리장성'의 꼭대기 층 5층 귀빈 룸 '신조협려'가 우리가 모임을 가지는 아지트다. '백리장성'의 왕 사장은 우리의 연락통이다. 삼삼 국민학교 선생들의 회식이 대개 '백리장성'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왕 사장은 삼삼 국민학교의 모든 일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실질적인 삼삼 국민학교의 지배자는 우리들이지만 그걸 모르는 선생들은 회식을 핑계 삼아 그렇게 '백리장성'에 틀어박혀 자기들 나름대로 분주히 일을 꾸미곤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꾸며지는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우리의 귀에 들어오게 되어있고, 결과적으로 성사 여부마저 우리가 판단한다. 그게 우리 손바닥 안에 있을 줄 머리가 이미 굳어버린 어른들은 꿈에라도 상상하지 못한다. 어른들의 상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머리가 굳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대부분의 일을 예측한다. 그런데 백에 하나, 천에 하나 미꾸라지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왕 사장이 필요한 것이다. 말인즉슨, 왕 사장은 우리들의 일이 조금 더 미끈하게 굴러가도록 돕는 일종의 윤활유적인 역할을 한다. 그가 있음으로 하여 국어선생의 어학연수, 산수선생의 파산(破産), 자연선생의 밀렵(密獵), 윤리선생의 불륜(不倫), 체육선생의 지병(持病), 교련선생의 월북(越北)처럼 예측불가성 사안들이 우리의 귀에 들어오게 된다. 선생들의 회식 장소는 4층의 '용등사해(龍騰四海)'으로 정해져 있는데, 그들은 그곳이 '백리장성'에서 가장 좋은 방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진짜 귀빈 룸은 우리들만 들어갈 수 있는 5층의 '신조협려'다. 4층에서 선생들이 회식을 할 때 우리도 같이 회식을 한다. 회식날 4층에는 자동으로 탕수육과 라죠기와 유산슬이 덤으로 나간다. 그때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못 배운 집 자식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삼삼동에서 교육계라는 성스런 업종에 종사하느라 뼈 빠지게 고생하는 자기들'을 위해 왕 사장이 훈훈한 배려를 베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히 값을 치르지 않는다. 그러나 착각이다. 같은 시각 5층의 우리들에게는 탕수육과 라조기와 유산슬이 '포함된' 특제 코스요리가 나온다. 우리를 접대하기 위해 만든 요리의 나머지, 여분, 서여(緖餘), 꼬다리, 끄트머리, 양념국물 등이 얼렁뚱땅 모여 '요리'가 되어 4층에 덤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실제 삼삼 국민학교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삼삼의 등뼈다. 우리가 없으면 당장 삼삼 국민학교는 무너진다. 새하얀 먼지를 뽀얗게 피워올리며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 대개 선생들은 모든 것을 자기들이 결정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교감 선생은 그 모든 결정을 자기가 관리했다고 생각하며, 교장 선생은 교감 선생을 자기가 관리했다고 생각한다. 삼삼 국민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순진하고 평범한 학생들도 당연히 그런 줄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모든 것은 우리들이 결정하여 이미 그리 되도록 손을 썼을 뿐이다. 가령 예를 들어보자. 학교 앞 문방구점, 정확히는 문방구와 쌀집에 전파사까지 겸하고 있는 김 씨 아저씨는 영리하게도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다. 아무도 몰라도 알만한 사람은 아는 게 바로 우리의 존재다. 삼삼 사거리에서 장사를 하려면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해서는 안된다. 학교 앞 슈퍼마켓 월남치마 아줌마도 우리의 존재를 안다. 단축수업과 슈퍼의 일일매상은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월남치마 아줌마는 단축수업 일수의 결정권을 가진 우리에게 주기적으로 다과(茶菓)를 상납한다. 내친김에 김 씨 아저씨 얘기를 해보자. 문방구와 쌀집에 전파사까지 겸하고 있는 그는 학기 초가 되면 그는 은밀히 우리들에게 연락을 취해온다. 다름 아닌 준비물 때문이다. 국민학교는 준비물이라는 잡스러운 물체들로 더덕더덕 덧붙여진 전위적 오브제다. 매일같이 준비물이랍시고 사야 할 것들이 생긴다. 그래서 학교 앞 문방구는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라는 거다. 김 씨 아저씨와 우리가 회합(會合)을 가져 결정하는 사안은 그 해 준비물로 뭐가 팔리게 만드냐 하는 것이다. 아저씨에게는 소망이 있다. 쌀집에 전파사까지 겸하고 있는 마당에 문구류, 혹은 그에 준하는 것들이 재고로 쌓이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우리는 그 소망을 들어줄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아니고서는 삼삼 국민학교의 누구도 그의 바람을 들어줄 수가 없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작년엔 말이야, 트라이앵글이 너무 많이 남았어. 캐스터네츠와 똑같은 개수를 들여왔는데 왜 트라이앵글만 남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김 씨 아저씨의 푸념에 우리는 무심하게 대답한다. "캐스터네츠가 아니라 트라이앵글이니까요." 



 

  김씨 아저씨는 그 무심함에서 상황을 무르익혀야 함을 알아챈다. 왼손으로 오른 팔꿈치를 받치고 우리들의 컵에 우유를 따른다. 종업원이 가져온 계산서도 슬그머니 뒤집어 자기 쪽 책상 아래로 숨긴다. 그건 식대에 구애받지 말고 마음껏 먹으라는 선언(宣言)이며, 적어도 우리가 삼삼동에서 쌀과 전자기기와 문방구에 관한 한 어려움이 생겼을 때 언제라도 몸을 사리지 않겠다는 증표(證票)다. 신세 지고는 못 사는 게 우리다. 그래서 우리들이 움직인다. 새 학기 음악 수업에서 트라이앵글은 필수 준비물이 된다. 그 세세히 속사정은 여기서 밝히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너무도 무섭고 두렵고 지저분해 당신도 굳이 알고 싶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하여튼 결과적으로 바야흐로 '1인 1 트라이앵글'의 시대가 온다. 선생들은 거의 매 시간마다 트라이앵글 지참여부를 검사하여 미 지참자를 벌한다. 애들이 떠들면 선생은 교탁을 내리치는 대신 트라이앵글을 깽깽거린다. 음악시간에는 '오 솔레미오'를 트라이앵글로 연주하는 것으로 실기평가를 치른다. 아시다시피 '오 솔레미오'를 트라이앵글로 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우리는 트라이앵글의 지하 거래가 학생들 사이에 만연할 것임을 예측한다. 이제 팔에 트라이앵글을 걸고 껌을 4분의 2박자로 씹으면서 착한 아이들의 트라이앵글을 갈취하는 나쁜 미꾸라지들이 생길 것이다. 이제 지우개가 아닌 트라이앵글 따먹기가 크게 유행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편인 김 씨 아저씨를 끼고 트라이앵글을 팔아먹는다. 또한 우리는 이 틈에 평가(平價)가 절하(切下)된 지우개를 모아들였다가 트라이앵글 천하가 - 길어야 한 달이다 - 끝났을 때 팔아먹을 수도 있다. 그게 우리들이다. 



 

  우리들이 아니면서 우리들을 알아챈 존재는 이제까지 딱 한 명 있었다. 그는 여덟살짜리 꼬마로 금년에 막 삼삼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놀랍게도 녀석은 우리들의 존재를 알아채고, 우리들을 찾아와서, 우리들의 일원이 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들이 아니면서 우리들을 존재를 알아채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녀석이 우리들을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녀석이 우리들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은 우리들을 서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아니면서 우리들을 알아챈 것이 범상치 않기는 하나, 그렇다고 녀석을 우리들에 끼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놓고 우리들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결국은 우리들은 우리들이고 우리가 아닌 평범한 그들은 우리가 아닌 평범한 그들로 남아야 이 세상의 조화와 균형이 맞는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녀석을 그냥 돌려보내야 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우리들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삼삼 국민학교의 평화와 안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일이다. 우리들은 녀석을 달래고 어르고 다그치고 윽박질렀다. 처음에는 여덟 살짜리답지 않게 담대(膽大)하고 의연(依然)하게 대처하던 녀석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음날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의 전학 절차가 어떻게 그리도 신속하게 진행되었는지는 이미 다들 짐작하셨으리라 믿는다. 그게 바로 우리들의 힘이다.


(200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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