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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70대 담론: 70대가 문제다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0.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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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직후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엄청 못생기고 엄청 흉측합니다. 심하게 쭈글쭈글한 게 꼭 말라 비틀어진 대봉시처럼 보입니다. 아름답나요? 아니죠. 추하죠. 인간은 반-성장을 통해 비로소 아름다워집니다. 시간이 흐르면 구부정한 허리가 전봇대처럼 곧게 펴지고, 자글자글하던 주름이 고무장갑이라도 낀 듯 팽팽해지고, 물렁거리던 잇몸이 탄탄해집니다. 그렇게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통상 25세 무렵에서부터 15세 무렵까지 십여 년에 있어 절정에 달합니다. 아! 청춘!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기란 말입니까. 이 시기를 지나버린 다음의 인간은 점점 작아지고 어려지고 보잘것 없어집니다. 그렇게 자연의 이치에 따라 소멸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노스사우던 대학교 양주 캠퍼스 커피바리스타학과 교수 벤자민 버튼입니다. 오늘 <한국수산물학회 개념양식분과 학술대회>의 뜻깊은 자리에 연사로 나서게 되어 영광입니다. 초청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부족하나마 ‘70대 담론에 관한 연구: 70대 개아들론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70대 담론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70대 담론이란 한 마디로 “70대가 문제다”라는 것으로 요약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70대가 문제라는 주장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70대가 문제인 이유는 한 마디로 “다름 아닌 70대이기 때문이다”라고 답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일단 70대라는 시기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누구나 99세를 얄짤없이 꽉 채워 태어납니다. 그리고 1년과 한 살씩을 바꾸어 나갑니다. 유한하다는 얘기죠. 첫 생일(돌)에는 98세가 됩니다. 열번째 생일에는 88세가 됩니다. 그리고 열아홉 번째 생일에는 드디어 79세가 됩니다. 문제는 이때 연인에게 장미 일흔아홉 송이를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떳떳하게 술과 담배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드디어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투표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때부터는 최대 79년간 투표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 79세일까요? 79의 독음이 ‘친구’와 닮아서? 아님 소수여서? 행운의 수여서? 원자번호 79번이 금(Au)이어서? 삼숭동 양주 GS 자이에서 남방동 양주역을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79번이어서? 다 틀렸습니다. 79세부터는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충분히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막 투표권을 가지게 된 이들을 바라보는 기존 사회 구성원들의 시각은 뿌듯함이 절반이고 걱정스러움이 절반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투표 이외에는 시민 권력이 정치 권력을 견제할 방법이 완전히 없어지다시피 한 2192년의 흑점 대폭발 이후에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졌지요. 한 마디로 앞으로 최대 79년 동안 최대 19회의 대선과 최대 19회의 총선에 참여할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해주느냐에 희망을 거는 ‘어른(즉, 더 살아본 젊은 놈들이 되겠습니다)'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그 '어떤 역할'이라는 것이 자기네 어른 세대의 욕망에 따라 70대가 행동해 주길 바란 것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결국 그런 기대가 무너진 것이 70대 담론이 불거진 발단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70대 담론은 항상 있어왔던 것입니다. 10년 전에도 있었고, 20년 전에도 있었고, 3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소시 원년에도 있었습니다. 다만 근래에 유독 부각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2190년 대선 및 2192년 총선에서 반(反) 당뇨 대안진영이 당뇨진영에게 에랄랄라 떡실신 당한 원인으로 70대가 지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패배를 탓할 곳을 찾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오래 살아 보수적이고 고집스러운 유아 및 영아 세대는 매년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반면에 새로 투표권을 얻는 79세들은 매년 늘어난다. 그럼 젊고 건강하고 진보적인 70대들의 의지가 제대로 반영된다면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당뇨진영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져야 맞는 것이 아닌가. 한데 결과는 당뇨 진영의 압승이다. 고로 반 당뇨진영의 초토화다. 시대가 거꾸로 가고 있다. 인간이란 무릇 진화하는 동물인데 어떻게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결론은 70대, 이 머리에 피도 돌아가지 않는 늙어빠진 자식들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증거를 찾으려다보니 오! 70대 투표율이 가관이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10대, 20대들이 친당뇨 성향을 띠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젊음이 있고, 평생을 걸쳐 모은 재화들이 있거든요. 설령 보수 프레임을 선점하고 있는 당뇨진영의 ‘액상과당’이나 ‘결정과당’이 그렇게 상식적인 집단이 아닐지언정, 10대와 20대가 수수방관하는 걸 문제 삼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70대. 자기 나이만큼이나 많은 세월을 더 살아야 할 이 세대들이, 연연해야 할 젊음도 재화도 없는 이 세대들이 너무 쉽게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아무 근거 없이 친(親) 당뇨적 성향에 물들어버렸다는 건, ‘더 살아본 사람들’로서는 아무래도 혀를 차고 한탄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요. 다음은 청와-은마아파트 주인을 결정한 2190년 대선의 세대별 등록 유권자 수 및 투표율을 나타낸 표입니다. 한눈에 70대 담론이 발생하고 성장하고 분화하게 된 연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Figure 1. 2190년 대선의 세대별 투표율


  한 눈에 봐도 70대가 문제임을 알겠습니다. 34.20%. 10대~20대의 평균 투표율보다 무려 13.45%나 떨어지니 말입니다. 표싸움의 향방이 어디에서 갈렸는지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내용입니다. 다음 슬라이드의 그래프는 70대의 정당별 지지율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70대가 당뇨진영인 ‘액상과당’과 ‘결정과당’을 지지하는 비중은 무려 60%에 육박합니다. 50대에 비해 무려 8.63% 이상 높습니다. 70대의 당뇨진영의 집권 보수당 ‘액상과당' 지지율은 47.35%. 60대에 비해 무려 2.22%나 높습니다. 반면 대안진영의 중도계열 ‘올리고당'의 70대 지지율은 26.93%. 50대에 비해 무려 8.95%나 낮은 수치입니다. 진보계열의 ‘무가당’의 지지율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40대에 비해 무려 6.53%나 떨어집니다. 이상의 치밀한 분석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70대가 심각하게 당뇨화, 보수화되었다는 것.

Figure 2. 2190년 대선 당시 세대별 정당지지율.

(전국 성인 남녀 938명, 표본오차:N/A)

 

  2192년 총선의 결과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반 당뇨 대안진영'의 에랄랄라 떡실신. 이때 70대 투표율이 겨우 9.2%에 불과하다는 설이 유포되기 시작했습니다. 70대 열 명 중 한 명만 투표하러 갔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사실과는 살짝 다르기는 했지만 (70대 투표율 33.8%, 전 세대 평균 투표율 38.1%) 그게 무슨 큰 상관이 있겠습니까. 9.2%나 33.8%나, 겨우 24.6%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숫자야 어쨌든, 투표 안 하고 놀러 간 70대가 있다는 게 중요하죠. 70대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기성세대의 70대에 대한 의구심은 마른 들판의 들불처럼 타그닥 타그닥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성토가 이어지기 시작을 한 겁니다.


  정말 70대는 정말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우리 늙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누리며 자라고 있는데도 행복한 걸 모른다. 못 배웠다는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대학까지 보내줬다. 그걸로는 부족하다기에 없는 형편에 영어학원에도 보내줬다. 그러고도 외국 살다 온 놈들에게 밀린다기에 어학연수도 보내줬다. 대졸자가 너무 많아 경쟁이 안된다기에 대학원도 보내줬다. 그런데도 인간 구실을 못한다. 이십 몇 년을 살아놓고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표현하지 못하는 애들이 수두룩하다. 꿈이 없어 보인다. 매가리가 없다. 우리가 그 나이 땐 맨 몸에 지팡이 하나 들고도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경소(敬少) 우대권 한 장이면 못 갈 곳이 없었다. 우리는 대학 때 공부 한 날보다 안 한 날이 훨씬 많았고, 영어학원도, 어학연수도, 대학원도 못 가봤지만 열정이 있었고 패기가 있었다. 지금 70대들은 누릴 대로 실컷 다 누려놓고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무기력한 피해망상에만 사로잡혀있다. 사상 초유의 경쟁 인플레 탓만 하고 노력을 안 한다. 한심해 죽겠다. 


  급기야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이런 내용의 전자메일마저 무작위로 살포되었습니다. (다들 한두 번 받아보신 경험이 있을 겁니다.)

"여기 항상 당신을 20대로 유지시켜주는 비밀이 있읍니다. 이제 여러분의몸은 70대가 아니라 20대입니다. 활기,힘,샘솟는기운,모든것이 당신을 자신있게 만듭니다. 낮에도 자신없고 밤에는 자신없는 70대가튼 시절은 지났읍니다. (알버타에서). 석유의도시 알버타 활력의도시알버타. 저는 활력이 없었읍니다,여친도 없었지요,밤에힘이없었으니까요. 본제품을 만난후 자신이 붙었읍니다. 이제 힘,시간,오름 모든것이 오케이 입니다,내여친 완전 만족입니다."


*


  뒤이어 2192년 흑점 대폭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상서롭지 못한 기운이 가득한 시기이니 정부는 신녀(神女)의 자문을 받아 모든 종류의 시위 및 집회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때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반(反) 샤머니즘 시위를 벌이게 되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한 마디로 "국민의 안위를 가지고 신탁이나 도박은 제발 좀 하지 말자," 뭐 그런 이야기로 요약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날의 광장이 40대, 50대, 60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이 자리에서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의외의 사건, 즉 예상치 못한 80대(2173~2182년생) 학생들의 봉기에 이들 세대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한 예로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중년 남성의 다음과 같은 인터뷰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우리에겐 감동 그 자체였다. 한 번 생각해보라. 어느 순간 전경들과 밀고 당기며 악전고투하는 우리의 눈에 교복 입은 80대들이 눈에 띈 것이다. 보조 보행기를 끌고 쭈빗거리며 그들은 촛불을 들고 우리 곁에 나와 섰다. 원활하지 못한 신진대사에서 기인했을 것이 분명한 시큼털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른 행주 같은 그들의 쭈글쭈글한 손을 잡았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얼마나 기특하냐는 말이다. 물대포 한방이면 광화문에서 송파 나들목까지라도 날아갈 법한 저 얼마 살아보지도 않은, 늙고 조그만 80대들까지도 틀니를 오물거리며 광장에 나섰으니!”

 

  이 고백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교복이 환기하는 80대의 정체성이 강렬하게 기성세대의 뇌리에 박혔다는 것이 물론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이런 기억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수면으로 끌어 올렸다는 것입니다. “종일 학교에 갇혀 입시에 매달리는 80대들보다 훨 더 시간 많고, 훨 더 자유롭고, 훨 거동이 용이하고, 훨 더 기운 있고, 훨 더 허리도 덜 굽었고, 심지어 투표권까지 가진 70대들은 모두 다 어디에 있지?” 이런 생각이 투표율 통계와 화학반응을 일으키자, 순간 70대 개아들론은 기정 사실이 됩니다. 70대는 생각이 없고, 70대는 개념이 없고, 70대는 책임감 없고, 70대는 나약하고, 70대는 자기만 알고, 70대는 한심하고, 70대는 놀기 좋아하고, 70대는 무계획에 즉흥적이고, 70대는 부모 등골 빼먹는 애들이고, 70대는 페이스북에 자랑하기 위해 등산에 골프를 깨작거리는 허파에 바람찬 애들이고, 70대는 사상 초유의 스펙 경쟁을 거쳤으면서도 정작 업무 현장에서는 써먹을 구석이 없는 애들이고, 70대는 '원 푸드 다이어트'를 한다고 꼴값을 떨면서도 후식으로 '스타벅스 프라푸치노 모카'를 마시는 애들이고, 70대는 비데 없이는 화장실도 안 가는 까탈스러운 애들이고, 70대는 사이클로 이후 최악의 외계 종족이고, 70대는 단일 나선으로 구성된 DNA를 가지고 있고, 한 마디로 70대는 애당초 글러먹은 애들이라는 겁니다. 다음 슬라이드에 증거가 있습니다. 60대 이하의 남녀 5,138명을 상대로 한 갤럽의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2190년 대선 및 2192년 총선에서 반 당뇨진영이 에랄랄라 떡실신 당한 원인이 어느 세대에 있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무려 83.1%가 70대를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하였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이제 다들 느끼셨으리라 봅니다.

 

Figure 3. 반 당뇨진영이 에랄랄라 떡실신 당한 책임 소재를 묻는 설문 결과 

(60대 이하 성인 남녀 5,138명, 표본오차:N/A)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당국의 감시를 피해 <한국수산물학회 개념양식분과 학술대회>로 위장한 바로 이 자리에서, 감히 70대 담론의 유일한 돌파구로 ‘세대축출’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세대축출’이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한 날 한 시에 들고 일어나 모든 70대를 추방하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흉인 334만 명만 딱 제거해내면 됩니다. 그럼 당뇨진영은 무려 180만 표 이상을 잃게 될 것으로 추정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겠지만, 앞으로 70년 이상 동안 당뇨진영에 두고 두고 투표할 싹수 노란 종자들을 뿌리부터 쳐낸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입니다. 제가 제안하고자 하는 70대 축출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늘날 모든 인류의 몸에는 RFID 태그가 임플란트 되어 있지 않습니까. 여기 보시는 것이 연령 판독이 가능한 RFID 카드 리더기입니다. 방법은 3분 짜장보다도 간단합니다. 334만 3129명을 찾아내 몸에서 태그를 적출해 내는 겁니다. 그러면 순식간에 이들 334만 명은 등록되지 않은 시민이 됩니다. 눈에는 보이지만 리더기에는 읽히지 않으니 일종의 투명인간인 셈이랄까요? (아! 기술 문명이라는 이름의 코미디여!)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들의 투표권 역시 소멸됩다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니까요. 70대들의 주민등록, 운전면허, 의료보험, 기타 시민으로의 권리 또한 사라지겠지만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고요. 관심도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80대에 기대를 걸겠습니다. 흑점 대폭발 당시 광장에서 확인했듯 80대는 의욕도 있고 패기도 있고 정신머리도 똑바로 박힌 친구들입니다. 몇몇 똘똘한 애들 만나서 제가 얘기를 해봤는데 오히려 우리보다 나아요. 70대를 적출하고 대신 얘들 80대를 잘 키워가지고 10년 안에 70대를 대체하도록 만드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지금까지 경청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좌장님이 급히 화장실에 가신 관계로 제가 마저 진행까지 하겠습니다. 시간이 한 5분 정도 있는 것 같은데 두 분만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


  한 40대 남성, 손을 들고 질문한다.
- 발표 잘 들었습니다. 교수님. 전 크게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제 아들이 지금 70대인데요. 지난 총선 때 정당투표를 ‘액상과당’에 했답니다. 결국 제 숨통 조이는 꼴인줄도 모르고 말이지요. 정말 미치고 팔짝 뛰고 에랄랄라 속이 터질 노릇이긴 한데 그렇다고 잘 가르치고 인도해 볼 생각을 해야지 무조건 얘들을 축출하자, 적출하자, 추방하자, 지워버리자, 뭐 이런 접근법은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70대라는 게 치즈케이크 썰듯 딱 떨어지는 개념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 말은, 어느 날 갑자기 크립톤 행성에서 우르르 날아온 애들은 아니잖아요. 저랑 마찬가지로 이중 누군가에겐 70대 아들, 딸이 있을 것이고, 70대 형제, 자매가 있을 것이며, 70대 동료, 후배가 있을 겁니다. 발표자께서 내리신 결론에는 이런 부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두 번째 질문은 '70대 개아들론'에 따르면 70대 아들을 둔 저 같은 사람은 '개'가 되는 건가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벤자민 버튼 교수는 학회 발표에 잔뼈가 굵은 노련한 남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학회 질의응답의 스탠다드라고 해도 좋을 고도의 답변술을 구사한다.


- 예,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지금 70대가 2164년생부터 2173년생까지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토록 70대 담론이 불거졌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청와-은마아파트는 다시 재개발을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는데, 흑점 대폭발로 에랄랄라 떡실신 당한 활력의 도시 알버타에서 70대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미분 가능하면 연속인데 스타벅스 프라푸치노에는 시럽을 세 번이나 펌핑을 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RFID 관련 기술의 발전을 통해 수출 효과 및 내수경기 진작을 기대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70대  담론에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만…… 질문이 뭐였죠? 

 

(2010년 06월)


# Inspired by F. Scott Fitzg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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