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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나는 워커다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0.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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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워커다.

  내가 사람일 때는 워커가, 음, 뭐랄까…… 대세였다. 사람들은 워커를 무서워했다. 피해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워커가 되어버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최고다. 사람으로 남아있어야만 대접을 받는다. 아울러 워커를 무서워 해야 할 이유도 많이 희석되었다. 워커는 공포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그냥,

더러운 것?

정도의 느낌이다. 거지, 걸인, 노숙자, 홈리스와 위 아래를 가려야 하는 개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 사람들은 워커를 만나면 겁먹고 도망가기는 커녕 짜증을 낸다. 역겹고 불쾌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경찰을 부르거나 침을 뱉기도 한다. 침을 뱉고 경찰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처럼 짧은 단도를 들고 직접 워커들의 뇌를 찢어 발기려 돌진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 중 다행이다.

  나 원 참,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사람도 워커도, 운때가 맞아야 하는 법이다. 지금 워커가 되어버린 건 너무 실속 없는 일이다. 되지 않았으면 물론 가장 좋았을 것이나 설령 워커가 되더라도 속된 말로 '좀 먹어주던 시절'에 되었어야 했다. 한때는 워커의 그르렁 한 번에 사람들이 혼비백산 꽁지를 빼던 시절도 있었단 말이다. 그런 내용의 고민을 한의사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다행히 그는 여전히 사람이다). 친구는 내 처지가 꼭 ' 허준 버블' 타고 한의대 진학했다가 지금 반백수 다 된 자기 꼴 같다며 위로해주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물론 그런 위로도 연민도 아직 지가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것이겠으나,

어쨌거나 친구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것도 워커 주제에. 워커가 되면 대개 친구가 없어진다. 혼자가 된다. 그 친구들에게는 내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긴 워커가 생물학적으로는 죽은 사람이니, 끄덕끄덕, 그 심정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알고 보니, 생물학적 사망은 사회적 사망을 동반한다. 어렵게 깨달은 사실이다. 늦든 빠르든 그렇게 시작된다. 입장을 바꾸어 내가 아직 사람인데, 만약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워커가 되었다면, 음, 나 역시도 그를 죽은 사람으로 치고 기억 속에 묻어버렸을 것이다. 워커가 되어버린 이들이 멀쩡히 거리를 활보한다고 한들 믿지 않을 것이다 (사실 좀 무섭기도 하잖아). 연락을 끊고 연락처를 지워버렸을 것 같다. 막말로 소금이나 안 뿌렸음 다행이지. 안 그래?

 

*

 

  요즘 세상엔 워커 되기도 쉽지 않다. 실은 그렇다.

  워커(Walker), 좀비(Zombie), 로터(Rotter), 혹은 데드(Dead). 당신이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아무튼 그것들에게 물릴 확률은 현재 8181818 분의 1이다. 다시 말해서 어지간히 <재수>가 없지 않고서는 워커가 되지 않는단 뜻이다. 그러니까 <재수>말이다. 무슨 놈의 '좀비 아포칼립스'가 이런 식이냐고? 내 말이 그 말이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보라.  멀쩡한 사람이 다른 워커에게 물리고 감염되어야만 워커가 된다는 설정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들은 전염병이나 생체실험에 기인한 괴물이 아니다. 그냥 죽은 사람이 걷는 것일 뿐이다 (지들이 아직 살아있는 줄 알고!). 워커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수의 정상인들이 그들을 만난다면 어쩌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을테지. 하지만 반대로 정상인들이 여전히 대다수이고 워커가 소수에 불과하다면 꼭 당하리라는 법도 없다. 요컨대, 영화나 드라마나 비디오 게임은 일단 그들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이후를, 그들의 증식곡선이 탄력을 받거나 완전히 포화를 이루어버린 이후를 다루어 우리의 오해를 키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워커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처럼 사람을  마력 혹은 완력으로 압도하는 존재가 아니다. 프레데터나 에어리언처럼 혼자서 수십 명의 군인을 상대할 재간도 없다. 칼에 끄덕 없지도 않고 총을 피해가지도 못한다. 워커는 주술이나 환각 약물에 의해 유도되었던 아이티의 좀비와도 또 다르다. 사람 고기를 갈망하여 앞뒤 안 돌아보고 덤비는 좀비류란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나 비디오 게임에나 등장하는 것이다. 워커는 둔하고 단순하다. 굼뜨고 느리다. 사람 때보다 힘이 더 세어진다는 설도 있지만 양쪽 버전의 몸뚱이를 다 경험해 본 내가 보기엔 오히려 더 약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살아있을 때보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니 당연한 이치다.

  그런 이유로 워커 하나와 사람 하나가 붙었을 때 꼭 워커가 이기리란 보장도 없다. 우리는 워커가 사람을 공격해 감염시키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연상한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은, 요즘 애들 말로 케바케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다. 가령 어린이나 노인이나 임신부를 겁주는 건 가능하다. 일부 장애인을 대상으로는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장한 남성 상대하기는 사실 만만치가 않다. 같은 조건에서는 개인 차이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물살 밖에 없는 비실비실한 범생이한텐 이길 수도 있지만 근육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격투기 선수한테는 늘씬하게 얻어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냥 정상인들의 싸움과 다를 바 없다. 길이나 술집에서 시비 붙었을 경우 생각해보면 쉬울 것이다. 워커도 별 다를 게 없다. 무리지어 다니는 워커들이 위험하게 보인다고들 말하지면 그 또한 정상인들의 싸움에서 쪽수가 중요한 것과 원리상 별 차이가 없는 일이다. 고로,

워커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기가 어렵다. 일단 도미넌트한 존재가 되면 정상인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수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우리의 현실속으로 찾아와 거지, 걸인, 노숙자, 홈리스처럼 이제 엄연히 존재하는 그들에 대해서라면 확실히 그러함이 증명되었다. 그들은 바이러스나 생체실험, 혹은 방사능 피폭으로 일어난 모던 좀비와는 다르다. 주술이나 환각 약물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적 좀비와도 다르다. 그들에게는 공동묘지 올 라이즈 - 일동 기립의 과정이 없다. 때문에 거의 소수고 대개 외롭다. 느리고 굼뜬 몸으로 지속적으로 정상인들을 감염시켜 워커로 만드는 것도 쉽지가 않다. 물론 한두 번은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 성공할 수는 없기 마련이다. 본격적으로 정상인이 본격적으로 대처를 하게되면 실패의 확률도 증가하게 되고 종래에는 살아남는 워커와 죽임당하는 워커의 숫자가 비슷해지게 된다. 그렇게 일정 수준에서 제어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세상엔 워커 되기도 쉽지 않다. 어지간히 <재수>가 없지 않고서는.

 

*


  날 물었던 워커는 여자였다. 때가 탄 하얀색 블라우스에 나풀거리는 보라색 플레어 스커트를 입은 아가씨였다. 얼굴이 백지처럼 차갑고 창백해 소름끼쳤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럭저럭 미인이었다 (물론 그래도 위안은 되지 않았다). 어딜 봐서도 워커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다가오지도, 얼굴 가죽이 반쯤 썩어 살점이 덜렁거리지도, 옷차림이나 꾸밈새가 낡고 추례하지도 않았다. 그냥 평범한 아가씨였다. 상상도 못한 일을 순식간에 당했기 때문에 그냥 멍할 뿐이었다. 백주 대낮에 만원 지하철 한 가운데서 워커에게 물린다는 건 어지간히 <재수>가 없지 않고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바닥에 주저 앉았다. 목덜미가 충치처럼 욱신거렸다. 10초도 되지 않아 전신 방호복을 갖춰 입은 경찰이 출동해 그녀를 두들겨 패고 조사를 시작했다. 날 물었던 이유를,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 먹고 살기 힘들어 잠깐 미쳤었나봐요.

  나도 잠깐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워커에게 물릴 확률은 8181818 분의 1이다. 물린다고 다 워커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워커에게 물려 워커가 될 가능성은 로또 당첨 확률보다도 낮다. 훨씬 낮다. 서러워 눈물이 났다. 워커가 정상인을 물면 사회 정화 차원에서 석궁을 이용한 현장 즉결 심판을 받게 하는 조례가 몇 해전 통과되었다. 요즘 워커들이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가급적 정상인을 물지 않으려고 애쓰는 가장 큰 이유다. 안타깝게도 피해자를 구제할 신통한 방법이 없음에도 경찰은 현장 즉결 심판을 참관하도록 배려해준다. 아이고,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것 참 대단히 위로가 되네요. 거의 로보캅 수준으로 온 몸을 감싼 경찰 둘에게 우악스럽게 끌려와 그녀는 내게 사과를 했다. 멍이 든 눈두덩이로 상당히 탁해보이는 눈물을 흘리며.
-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경찰은 그녀를 기둥에 묶었다. 안대를 씌워주었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었다. 경련 때문에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하게 보였고 시퍼렇게 부어오른 두 눈과 기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사과를 받았다고 기분이 풀릴리야 없건만 나는 순간 그녀가 안쓰럽단 생각이 들었다). 구경꾼들이 야유를 보냈다. 이윽고 화살이 조준되었고 날아갔다. 보라색 플레어 스커트가 바람에 날리듯 춤추었다. 화살은 그녀의 머리통을 맞추었다.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워커를 멈추기 위해 뇌를 셧-다운시켜야 한다는 믿음엔 과연 근거가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은가? 머리에 석궁을 맞으면 제 아무리 헤라클레스라도 더는 못 움직일 것이다. 어쨌든,

감상은 부질없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굳이 피의자 워커를 응징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데는 다른 속셈도 있다. 이제 막 워커로 변하기 시작한 피해자가 선량한 정상인들을 물겠단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하게끔 엄포를 놓기 위한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사실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인정할만했다. 그녀의 머리가 닿았던 자리는 꼭 부대찌개 냄비를 엎은 바닥 같았다. 그 처연한 그림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사람을 물어선 안되겠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이제 부대찌개는 다 먹었단 생각도 들었다. 경찰들은 내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내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나를 워커로 등록했다. 그랬다. 현재 모든 워커는 등록되어 관리된다. 특수범죄자나 성범죄자처럼. 날 물었던 그녀의 신상은 이제 목록에서 삭제될 것이다. 플러스 1, 그리고 마이너스 1. 결론적으로 총원에는 변동 없음. 이것이 바로 앞서 설명했던 워커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없는 이유다.    

 

*

 

  그 날 저녁 나는 로또를 샀다. 로또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요즘 세상에 워커에게 물릴 확률보다는 높다. 비교도 안 될만큼 높다. 그렇지만 나중에, 그러니까 그 주 토요일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죄다 꽝이었다. 만원어치를 샀는데 오백원짜리 하나도 당첨된 것이 없었다. 뭐, 이 딴 인생이 다 있나 싶어 전봇대를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그리고는, 

여자 친구를 찾아갔다. 완전히 워커로 변해버리기 전에 털어놓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았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보고 싶어 찾아왔는데'로 시작해야 할까, '있잖아, 긴히 할 얘기가 있는데'로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밥은 먹었나?'로 시작해야 할까. 쭈빗쭈빗 망설이다 그녀 집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그녀가 나왔다. 뭔가 말을 시작하려고 그러는데,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녀가 딱 한 마디 던졌다. 
- 헐, 대박.
  그런 반응은 뭐랄까, 흡사 한의대 졸업을 앞두고 '허준 버블'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황급히 그녀 집 현관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이미 감염이 퍼지기 시작했는지 내가 보기에도 얼굴빛이 창백했다. 셀루미네이션 라이트닝 에센스를 페인트붓으로 펴바른 사람 아니면 중병에 걸린 환자처럼 보였다. 그녀도 한 눈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자기 앞에 어지간히도 <재수>가 없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뿐만 아니라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도 않았다. 마치 그동안 내가 워커임을 숨기고 자길 만나기라도 했다는 듯. 그녀의 표정은 꼭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시켰는데 막상 냄비가 나와보니 조랭이 떡이 절반이더라, 하는 표정이었다. 그때 그녀는 식당 아줌마의 멱살을 잡고 이렇게 말했더랬다. "이모님, 푸랑크 소세지라고 못 들어봤어요?"

  서러웠다. 한편으로는 짜증도 났다. 내 인생 마지막 여자가 연인의 불행앞에서 '헐, 대박' 따위의 가공할 표현력 밖에 못 갖추었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리고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누굴 원망하겠나. 청춘은 짧다는 생각에 그간 여자를 만나는데 있어 인격, 교양, 지성, 배려 같은 파라메터에 가중치를 두지 않았던 내가 미친 놈이고 죽일 놈이지.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알라신, 부디 한 번만 더 정상 사람으로 연애할 기회를 주시면, 인생은 값진 것임을 깨닫고 곱고 바르게 몸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 십 년 후에도 어려보이는 피부로 보답하겠나이다.
- 뭐야? 어쩌다 그 꼴이 났어?
  그녀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심지어 들어오란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 물렸어. 지하철에서. 워커에게.
- 요즘에도 그런 일이 있나?
- 있으니까…… (이렇게 되었겠지).
- 워커 놈은 어떻게 했어.
- 경찰들이 처리했지.
- 석궁으로?
- 석궁으로.
- 그런 일을 당한 건 유감인데 그 이상 해줄 말이 없네. 이 참에 겸사겸사.
- 겸사겸사?
- 말하자면 끝내잔 얘기지.
- 그게 그러니까…….
- 짐을 정리해줬으면 좋겠어.
  손님방에 들어가 서랍장 두 개를 탈탈 털어 비웠다. 양말에서부터 핸드폰 충전기, 영화표, 안경집, 지난 회차 로또, 예비군 통지서, 맨답 롱킵 젤(슈퍼 하드), 마데카솔, 고무줄, 케이블 타이, 심지어 몽키 스패너까지 나왔다. 하물며 먹다 남은 양갱 반쪽이 나온다한들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모두 쓸어 50리터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손목에서 루이 까토즈 메탈 커플시계(남성용)를 풀러 넣었다. 500일 기념으로 자기가 사줬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나갈 때까지 차고 있다간 현관에서 저 여자에게 압류당할 것이 분명했다. 옷장 왼쪽 칸에 걸어놓은 셔츠도 다 뺐다. 정장을 정리하다가 원 버튼을 발견했다. 내 정장은 다 투 버튼이다. 그러고보니 어쩐지 이상해. 내가 아는 셔츠와 양말이 아닌 것 같은, 낯선 아이들이 있었어. 순간,

서러웠다. 짜증이 치밀었다. 조용히 몽키스패너를 집었다. 저 기집애랑 깨질 땐 깨지더라도 귀책사유는 물어야지. 슬그머니 일어서려는 찰나에 방문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았다. 형광안전모와 보안경을 쓴 그녀가 두꺼운 보호장갑을 낀 손에 뭔갈 들고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전기톱이다. 스웨덴제 허스크바나 XP 372 모델. 이런 젠장. 70.7cc 배기량에 5.4마력이면 가정집에서 정원 다듬는 용도 아니다. 전문 벌목용이다. 뭔 놈의 여염집 처자가 집에 전문 벌목용 전기톱을 가지고 있담? 나는 푸랑크 소세지를 자르려다 조랭이 떡만 자르게 된 심정으로 다시 조용히 주저앉아 물건을 챙겼다. 괜시리 눈물이 났다. 워커를 공격하는데 전기톱을 쓰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처음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그녀와 자동차 극장에 갔던 지난 여름이 생각났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을 보며 그녀는 구토를 했다. 너무 잔인하고 너무 역겨워 견딜 수가 없다며 펑펑 눈물을 (만난지 얼마 안되던 때였다) 흘렸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역시 좀비 잡는데는 전기톱이 제 맛이제'라는 표정으로 저러고 있으니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어쨌거나,

인생은 타이밍이다. 진리다. 안 되는 놈은  안 되는 반면, 되는 놈은 이렇게 된다. 어떻게 이 궁상맞은 관계를 정리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에 전 남친이 워커가 되다니! 그녀 입장에선 꼭 로또 맞은 기분일 것이다. 50리터 들이 쓰레기 봉투를 어깨에 들쳐메고 현관으로 나왔다. 그녀는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남자도 다루기 쉽지 않을 6.1 킬로그램짜리 전기톱을 들고 있는 위용이 대단했다. 오일을 잘 먹여놓은 체인이 반짝 빛났다.
- 잘 있어.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등 뒤로 문이 쾅 닫혔다. 그 소리가 꼭 "세계 최고의 품질 스웨덴제 허스크바나 전기톱. 단돈 10만 9990원에 만나보세요" 라는 홈쇼핑 호스트의 과장된 목소리 같았다. 10000원이면 사지 않을 것을 9990원이면 덜컥 사버리는 사람들의 심리란 정말 묘하다. 같은 물건에 단지 십원 차이일 뿐인데. 같은 맥락에서 정상 사람이면 대접해주고 워커라면 경멸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정말 묘하다. 워커도 얼마 전까지는 그냥 보통 사람이었고 지금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데. 겨우 10원만큼의 차이 밖에 나지 않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워커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동작이 느리고 굼떠진 것인지, 50리터 들이 잡동사니를 어깨에 매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홍대입구에서 당산역까지 가는 길이 마치 허스크바나의 본사가 있는 스웨덴 가는 길처럼 멀게 느껴졌다. 어깨에 경련이 왔다. 분명 나는 괴상하게 걷고 있었다. 잔뜩 움츠러든 어깨를 좌우로 기우뚱 거리면서 천천히 무기력하게. 워커가 아니면서 그 따위로 걷는 건, 길에서 DMB 보는 애들 밖에 없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학생 어디 아파요?" 라면서 내게 접근했다가 얼굴 상태를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가 더욱 상처를 받았다. 앞으로는 정상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 수 밖에 없게 되었구나 싶어, 또 슬퍼졌다. 며칠 사이 참 자주도 나오는 눈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당장 주말이 지나면 더 달갑지 않고 더 서러운 일도 많아질 것이었다.

 

*


  오늘날 워커는 약 10 만명에 이른다. 전 국민의 0.2 퍼센트 정도다. 오백 명 중 한 명이 워커인 셈인데, 워커는 동등한 사회적 일원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말하지면 그냥 거기에 있다는 정도다. 마치 물건처럼. 많은 정상 사람들이 워커를 좋아하지 않는다. 워커와 한 공간 안에 있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워커는 대중교통을 제한적으로만 이용 가능하다. 시간과 공간이 정해져 있다. 워커 전용석이 있고 워커 전용칸이 있다. 워커는 식당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워커를 받을 수 있는 식당이 있고 워커를 받을 수 없는 식당이 있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의심받는 것도 워커다. 엇비슷한 용의자가 있으면 경찰은 다 때려치우고 워커부터 잡아 넣는 게 보통이다. 같은 혐의로 워커에게 구형되는 형량 역시 공평하지 않은데,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 비해 약 1.4배 정도 무거운 형벌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상인들이 얼마나 워커를 혐오하는지는 최근 발표된 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된다. <당신의 옆집으로 가급적 이사오지 않았으면 좋겠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입니까?>라는 질문에,
5위. 장애인
4위. 외국인 노동자
3위. 동성애자
2위. 미혼모
1위. 워커
라는 결과가 나왔다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3,800명 대상). 세상, 참, 많이 야박해졌다. 옛날에 우리나라는 이렇게 삭막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미혼모와 동성애자가 박빙으로 1위를 다투는 정도였는데 말이야.

 

*


  하기야 우리 영감님만 봐도 답이 나온다. 제 자식이 워커 아닌 무엇이 되더라도 보듬어줘야 하는 게 부모일텐데, 이건 뭐 날 보자마자 길길이 날뛴다. 누가 13년 구력 아니랄까봐 골프채부터 들고 뛰어 나온다. 드라이버 샷이 잘 맞으면 250 미터도 날아가는 힘과 테크닉을 겸비한 양반이라 재빨리 줄행랑을 쳤다. 마음은 그랬다. 몸이 사람 때처럼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다. 육십 먹은 노인이 너끈히 따라잡아 풀 스윙을 할 정도 밖에 도망치지 못했다. 따악. 모세 앞의 홍해처럼, 등이 둘로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자빠졌다. 별이 보였다.
- 너 이 놈의 자식, 누가 그 딴 식으로 살래?
  그런 말이 들렸던 것 같다. 확실치는 않다. 워커가 되고 청력도 좀 시원찮아졌기 때문이다. 영감님이 가장 싫어하는 게 빨갱이와 좀비다. 빨갱이이자 좀비면 최악의 조합이다. 
- 너 이 놈의 새끼, 2002년에 누구 찍었어? 2007년에 누구 찍었어?
  마치 벼르고 있었다는 듯 쏟아져 나오는 불호령에서 알 수 있듯, 영감님은 날 빨갱이로 간주하고 있다. 옛날부터 그랬던 마당에 워커까지 되었으니 고운 말 나올리가 없다. 어쨌든 나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누구는 되고 싶어 워커가 된 것도 아니고 말이야. 딴따라 되겠다고 떼쓰는 고딩도 아니고, 임신한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난 대딩도 아니고, 왜 저 난리 법석이시냐는 말이다. "저 양반도 속상해서 저러지" 라고 엄마는 날 달래보려고 하시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제일 억울하고 기가 막힌 것은 나 자신인데 말이다.

  내가 짐을 싸는 동안에도 영감님은 골프 가방 들쳐 메고 눈을 번뜩이며 대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제 아무리 타이거 우즈라도 전립선이 저려 옴싹달싹 못할 무시무시한 얼굴로 마치 '어디 한 번 허튼 수작 부려봐라'하고 계시니 이거 원 서럽고 부담스러워 가방을 쌀 수가 없다. 평생 흙 밖에 모르고 살았단 자칭 농무지렁이께서 140만원짜리 테일러메이드 골프채 풀 세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는데, 몇 번 아이언으로 때려야 각도와 비거리가 맞을까 고뇌하는 저 섬뜩한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서럽기 그지 없다.

 

*


  가족에게 버림받은 자가 남에게 무슨 자비를 기대하겠는가. 회사엔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 원래 좋지 않은 소문이 빨리 퍼지는 법이다. 회사 동료들은 나를 외면했다. 못 본 척했다. 남직원들은 고개를 돌렸고 여직원들은,
- 헐, 대박.
이라고 소곤거렸다. 도대체 저 표현(유행어인지 뭔지 모르겠다만)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어 어디서 어떻게 전파되었길래 전국 모든 사람들이 마치 녹음이라도 해두었던 것처럼 똑같이 뱉어내는지, 원. 만약에 한 번만 더, 누군가 나의 불행 앞에서 "헐, 대박" 따위의 반응을 보인다면 나는, 미간에 석궁맞을 걸 괘념치 않고 그 인간들을 왈칵 물어버릴 의향도 있다. 진심이다.

  기다렸다는듯 과장은 자리를 빼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영업은 좀 곤란하지 않겠어? 라는 말이 표정에 드러나 있었다. 아무래도, 영업은, 좀 곤란하기야 하겠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먼 산만 바라보았다.

  통상적으로 워커의 노동력은 정상인의 노동력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되지 못한다. 기준급도 다르고 성과급도 다르다. 근무 시간도 다르고 근무 조건도 다르다. 결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부터 제한되어 있다. 빠릿빠릿하지 못해 제조업이나 건설업 쪽에 자리를 구하기는 어렵다. 서비스 직종은 더욱 곤란하다. 창백하고 섬뜩한 안색으로 정상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 가능한 서비스 직종이라면 콜센터 정도일텐데 그나마도 혀가 덜 굳어 말을 빨리 할 수 있는 워커에게나 가능한 옵션이다.

  워커도 일은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렇다. 사람 고기는 소설, 영화, 드라마, 비디오 게임에서처럼 공짜가 아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실컷 물고 뜯으세요!). 농담이다. 사실 워커가 되면 사람 고기를 갈망하게 된다는 주장부터가 근거 없는 소리다. 식욕이 돋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가끔 배가 고플 때면 (소설, 영화, 드라마, 비디오 게임 등의 영향으로 인해) '한 번 먹어볼까?'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꼭 그것만을 갈망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워커도 먹고 살아야 한단 것이다. 뭔가를 먹으려면 정상인들과 마찬가지로 일을 해야 하고 똑같이 돈을 벌어야 한다. 일단 워커가 되면 에너지 저장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푸성귀만로는 버텨내기 힘들다 (흔히 사람들이 고기 안 먹고는 힘을 못 쓴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이런 게 참, 사회 문제다. 워커는 정상 사람들에 비해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반면 식비는 더 들어간다. 워커가 정상인만큼의 힘을 내어 일을 하려면 훨씬 더 효율 좋은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그런 음식은 그렇지 않은 음식보다 아무래도 비싸다. 고로, 일을 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진다는 매혹적인 결론이 나온다. 워킹 푸어다.

 

*


  심각한 표정의 과장에게, 인수인계 같은 건 필요 없나요? 라고 물었다. 됐어. 니가 없어도 니 자리는 남아있는 거니까, 라고 그는 답했다. 정상 사람이던 시절 나는 내가 뭔가를 꾸준히 이뤄가고 있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니 결국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라는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엉덩이를 밀어넣고 있던 자리가 중요한 거였다. 인수할 가치도 인계할 가치도 없었다.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이었다. 또, 지겹게도,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되었다. 과장이 제일 싫어하는 게 '약한 남자'니 말이다. 과장은 사무라이 정신을 사랑하는 남자다. 취미도 카타나(일본도) 수집이다. 다다미 방에 살며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맑은 차를 마시며 심신을 단련한다는 소문도 들었다. 과장의 꿈은 세상의 모든 불결한 것들을 자신의 카타나로 베어버리는 것이다. 거지, 걸인, 노숙자, 홈리스, 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미혼모, 워커, 기타 등등. 나는 과장의 카타나가 수박을 자르는 광경을 본 일이 있었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마다 순진하고 뽀얀 속살의 탐스러운 과육이 저며지고 뭉개지며 달고 검붉은 즙이 튀어 올랐다. 평면 텔레비젼의 텔레비젼 광고 화면 같았다. 거짓말처럼 매끈하게 반으로 쪼개진 수박은 바닥에 떨어지며 박살이 나서 나뒹굴었다. 마치 홍콩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저 인간은,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그리고 저 인간은,

이따금, 때때로, 종종, 자주, 매일, 내게 이상한 요구를 했었다. 남자와 남자 사이니 망정이지 한 쪽의 성별이 달랐으면 공중파 아홉시 뉴스 처음 세 꼭지 안에 나오고도 남을 그런 요구 말이다. 대개 장소는 회사 앞 사우나였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근무시간의 회사 앞 사우나였다. 표면상의 이유는 '남자들만의 시간'이었지만 실제 이유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의 '남자들만의 시간'이었다. 내가 곤란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일 때마다 과장은, 짜샤 내가 너 아들 같아서 챙겨주는 거야, 라며 구렁이 월담하듯 내 몸으로 더듬어 넘어 들어왔다. 과장의 아들은 세 살이었다. 나는 서른 살이었다. 도대체 어디가 '아들 같아서'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거역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표면상의 요구는 서로 때를 밀어주자는 거였지만 실제 반응은 그냥 등의 때를 밀어주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 그러니까 그의 조랭이 떡이 의연히도 자라나 푸랑크 소세지가 되는 광경을 지켜보아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변태이길래 등을 밀어주는데 몸 반대쪽에서 신호가 오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죽도록 싫었다. 때 잘민다는 칭찬이 전혀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게 또 소문이 퍼져 차장이 부르고, 부장이 부르고, 기왕이면 사장이나 회장이 불렀으면 좋겠는데 그런 행운은 또 내 팔자에는 '해당 사항 없음'이고.

  그러고보면 워커가 되어 나쁜 미래만 남은 건 아니다. 적어도 이제 그런 치욕스러운 일은 겪지 않을테니까.

  구내 매점에서 라면 박스를 얻어왔다. 삼양라면이다. 역시, 라면은 삼양라면이지. 짐을 한 가득 안고 엘레베이터 앞에 섰다. 꿈을 한 가득 안고 그 자리에 섰던 시절이 눈 앞을 스쳐갔다. 워커가 되고나서 며칠 째 짐정리만 하는 중이다. 여자친구 집, 고향 집, 이번엔 회사……. 이건 뭐, 이삿짐 센터 직원도 아니고 말이야.
- 근데, 어디부터 썩냐?
라고 과장이 따라와 물었다. 그래도 옛 정이 있어 엘레베이터까지 배웅 나왔다는 사람이 건넨 말 치고는 참말로 너무 따뜻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눈물을 참으려고 꼭 6번 아이언처럼 생긴 과장의 물건을 생각했다. 그걸 참아야했던 이유였던 쥐꼬리만한 월급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여기서 썩어 문드러졌던 내 청춘의 3년 6개월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 죽은 쥐는, 꼬리부터 썩는데요.
- 정말이냐?
- 몰라요. 누가 그러던데요.

 

*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전 여자친구는 내 인생에서 완전히 퇴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며칠 전 새벽 두 시에 갑자기 뜬급없이 전화를 걸어 내게 '거기'도 썩는지 물어봤다. 완전히 술에 떡이 된 목소리였다. '거기'가 어디냐고 되묻자, 그녀는 '거기'가 '거기'지 어디겠느냐고 미친 여자처럼 키득거렸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재차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야 했다. 그러자 그녀는 대뜸 버럭, 인간아! '거기'가 니 거시기지 어디냐! 그걸 꼭 남우세스럽게 내 입으로 일일이 설명해야겠냐!, 라며 기차화통을 삶아먹은듯 소리를 질렀다. 귀가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이어서 수화기 너머로, 그녀 친구들로 추정되는 어린 여자애들의 방정맞은 웃음 소리가 꺄르르, 애뜻하게도 넘어 들어와 잘 벼려진 카타나로 잘 익은 수박을 썰듯 내 영혼을 썰어버렸다. 조랭이 떡과 푸랑크 소세지 사이만큼의 침묵이 흐른 후, 나는 5번 아이언과 6번 아이언의 로프팅 차이만큼의 각도로, 조용히 전화기를 내려 놓았다. 다시 한 번, 내 인생의 마지막 여자가 배려심 빵점짜리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치를 떨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워커가 되고부터 나는 얼굴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사실 얼굴빛이 화사하게 생기 넘치지 못하다는 것은 워커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그래서 정상 사람일 때는 신경도 안 쓰던 스킨, 로션, 토너, 크림, 에센스도 고르게 되고, 밤마다 모이스춰 라이징 어쩌고 하는 마스크 팩도 붙여보고, 심지어 정말 심각하게 색조 화장까지 해야하나 고민도 했다. 그러다 깨닫게 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임수정은 거짓말쟁이다 (물론 아름다운, 거짓말쟁이다). 둘째, 오늘날 이 시대에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비록 '사람은 정상이고 워커는 비정상이다', 라고 시대는 말하고 있지만 맨 얼굴을 숨기고 가면을 전시해야 하는 원리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라고 나을 것도 없고 워커라고 다를 것도 없다. 사람이 곧 워커고 모든 워커가 한때는 사람이었다.

  그러고보니 난 단 한 번도 내가 워커가 되리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워커가 된 사람들은 그럴만한 행동을 했거나 응당 그럴만한 업보를 쌓았을 거라 여겼었다. 하지만 일은 백주 대낮에 벌어졌다. 8181818분의 가능성을 뒤짚고. 충분히 인과율을 의심할만한 대목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가끔씩 나는 문제의 그 날 나를 물어 버렸던 그 여자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그녀는 워커가 될만한 잘못을 저질렀던 걸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여기에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없다. 일은 그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그러니 신은 (만약 그런 몹쓸 게 존재한다면) 그리 합리적인 양반은 아닐 것이다.

*


  한때 워커가 대세였다는 시절의 이야기는, 내겐 마치 전설처럼 들린다. 워커 열 명, 스무 명이 떼를 지어 다니면 겁 먹은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는 주장도, 어딘가 과장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거짓말 같다.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워커 혐오 범죄의 사례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전혀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밤길 중고생들을 봐도 그렇다. 워커가 되기 전에도 중고생은 충분히 무서운 존재였는데 워커가 되고 나니 두려움이 한층 배가되었다. 그래도 정상 사람일때는 돈만 뺐기고 쪽 좀 팔리고 끝났는데.
- 돈 있냐?
라며 어린 불한당들은 내게 랜턴을 비추었다. 눈이 부셨다.
- 어쭈, 이 자식 워커네?
라며 도망가기는 커녕, 하이파이브. 그것 참 듣는 워커 기분 상하게. 보통은 워커라는 이유로 다른 정상 사람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게 반갑지 않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다르다. 좀 다르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니들이 어른은 안 무서워해도 워커는 무서워해야지 않겠냐. 걸어다니는 시체다. 니들을 물어 뜯을 수도 있다. 제발 좀 무서워하란 말이다. 한껏 내리 깔은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
- 원하는 게 뭐냐?
  애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좀 웃기게 들렸나? 그럼 조금 진지하게.
- 돈은, 얼마든지 가져가라
  애들이 배를 잡고 굴렀다. 이것도 아닌가? 그럼 조금 엄하게.
- 어린 노무 자식들이 싸게싸게 집에 들어가야지.

  녀석들은 노스페이스 백팩을 열고 콜트 일렉트릭 기타를 꺼냈다. 홈쇼핑에서 비슷한 걸 본 것 같아 그런지 눈에 익었다. X 시리즈다. 날카롭게 굴곡진 선명한 바디가 인상적이었다. 녀석들은 그걸, 나를 겨냥하여 휘둘렀다. 아무리 저가형 모델이라지만, 고가형 같은 만족을 주는 저가형 모델이라지만, 못해도 19만 9990원은 하겠다, 이 놈들아. 19만 9990원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강한 출력의 험버커 픽업을 자랑한다는 모델답게 역시,

허리가 반으로 쪼개지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도 이런 애들까진 좀 낫다. 조금 더 나이 많고, 조금 더 머리 굵고, 조금 더 세상을 향한 적의로 가득찬 고등학생을 만나면 훨씬 안 좋은 상황도 가능하다. 대개 그런 애들은 콜트 X2보다는 좋은 기타를 쓰는데,
- 우리의 음악을 해방의 무기로!
- 영혼의 힘으로 압제에 저항하라!
- 약자들을 위해!
따위의 말을 돌아가면서 내뱉으며 남의 소중한 등허리를 가격하는 것이다. 계속 맞다보면 4번 척추(L4)과 5번 척추(L5) 사이가 홍해처럼 갈라지는 느낌마저 든다. 나는 나름대로 "니들 공부는 안하냐"라던가, "아저씨 같은 사람이 바로 니들 말하는 약자란다"라던가, "어차피 종착역은 펜더나 깁슨이라더라" 따위의 말로 녀석들을 설득해보고자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학창 시절 식으로 표현하자면 '가만 있으면 한 대 맞을 걸 괜히 까불다 두 대 맞는 꼴'이었다.

  워커 혐오 범죄는 날이 갈수록 극성을 부렸다. 작년에는 재작년 대비 19.9%가 증가했고, 올해는 작년 대비 14.3%가 증가했다. 그 가운데 무서운 중고생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31.2%에서 48.8%로 무섭게 증가했다. 끔찍한 일이지만, 개중에는 비디오 게임을 흉내내어 각목, 쇠파이프, 삽, 낫, 나이프, 달군 후라이팬, 화분, 금전 등록기, 야구방망이, 헤지 클리퍼스, 잔디 깎이 기계, 굴착기 등을 들고 거리로 나가 닥치는대로 워커를 학살하는 놀이도 있었다. 경찰은 워커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그들의 가장 심각한 고민이라고는 워커들의 '죽음'을 두고 '사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것 뿐이었다.

  등이 아팠다. 싸구려 기타로 맞아 더 아픈 것 같았다. 4번 척추(L4)과 5번 척추(L5) 사이가 갈라지는 느낌이 정말 느낌만은 아니었지 싶었다. 한의사 친구 놈을 찾아갔다. 한의사 친구 놈은 최근 점점 더 초췌해져 가는 느낌이었다. 워커된 사람은 나인데 오히려 놈이 더 창백하게 말라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람은 안 날리고 파리만 날리는 그의 한의원이 문제였다. 남들은 개업도 못해서 난리인데 그래도 개업은 했으니 다행은 아닌가 싶지만, 장인이 주는 스트레스가 말도 못하다고 했다. 오죽 괴로웠으면 이번엔 날 보자마자 다짜고짜,
- 나 좀 물어주라.
라고 했다. 나는 물끄러미 놈의 눈을 바라보았다. 짜식이 눈동자 안이 텅 비어있는 게 이미 워커가 다름없기는 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졸지에 워커로 전락하여 고생하는 친구 앞에서 할 소린 아니다.
- 왜?
- 나도 워커나 되게.
- 왜?
- 그럼 워커들이라도 우리 병원에 올 거다.
- 그래서?
- 지금은 사람도 안 오고 워커도 안 온다. 최악이다.
-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 안 될 건 없다고 본다.
  내가 놈을 물면 놈은 워커가 되겠지만 나는 현장 즉결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마에 석궁을 맞겠지. 플러스 1, 마이너스 1. 결국은 그런 식이지.
- 싫다. 헛소리 말고 내 허리나 고쳐라.
  놈은 인체의 등과 척추 구조를 잘 모르겠다며 네이버 검색창에 '척추 번호 5번'이라고 적고 엔터 키를 눌렀다 (으이그, 이 돌팔이 같은 놈!). 하지만 모니터에 출력된 것은 5번 척추에 대한 드라마 명대사라니 뭐라나 하는 쓰잘떼기 없는 블로그 포스트와 뉴스들이었다. 정확한 '5번 척추'에 대한 정보가 검색되지 않음에 따른 실망감은 차치하더라도 어떻게 '척추 번호 5번'이 드라마 명대사가 될 수 있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짜증이 났다. 사람들 머리에 똥과 구더기를 밀어넣는 저 딴 한심한 드라마를 만들고 보는 사람들은 '정상'소릴 듣는데, 왜 나는 똥과 구더기가 들끓는다는 이유로 '비정상'인가. 에이,

망할 놈의 세상. 워커가 되고부터 내가 너무 예민해진 것인지 몰라도 요즘엔 거슬리는 일들이 너무 많다. 텔레비젼을 틀어도 순 꼴불견 뿐이다. 이를테면, 언제부턴가 생겨난 이상한 풍습 - 가수가 노래할 때 방청석의 관객이 질질질 눈물 쏟는 것. 감성의 문제는 아니요 교감의 차원도 아니다. 역치도 없는 반응이다. 누가 노래만 부르면 울기 시작하니, 저건 그냥 습관이다. 짜증이 치밀어 올라 보다 못해서 밥 먹다 말고 숟가락 집어 던지며, '재수없게 질질 짜고 난리야.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방청을 나중에 하던가!' 라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 서럽고 눈물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지들이 그깟 노래 좀 들으면서 울고 난리란 말인가.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다. 허리는 아프고,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피부 관리하기도 너무 힘들고, 전 여자친구는 '미친 전 여자친구'로 변해가고.

 

*

  '미친 전 여자친구'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속 깊은 이성친구'의 장 자끄 상뻬도 내 사연을 듣고나면 크게 깨닫는 바 있어 인생이 그리 동화같지만은 않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인생이란, 어는 날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워커에게 물려 워커가 되는, 어지간히도 <재수> 없는 일로 가득 찬 것이란 말이다. 전 여자친구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며칠 전부터 갑자기 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워커가 되었다는 이유로 날 차버리 것도 저였고, 술에 떡이 되어 전화해서 ("거기도 썩냐?") 성희롱을 일삼은 것도 저였다. 왜 이제와서 내게 뭘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그러고보니 열쇠를 돌려받지 않았었다) 침대에 모로 누워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보면 소름이 오싹돋았다. 그녀가 날 위협하려고 6.1 킬로그램짜리 스웨덴제 허스크바나 XP 372 전기톱을 들고 나타났을 때보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더 무섭기도 했다. 복색을 갖춰 입었다고 하기도, 갖춰 입지 않았다고 하기도, 애매한 차림으로 그녀는 입에 물고 있던 한 송이 빨간 장미꽃을 퇴애, 가래 뱉듯 뱉으며 이렇게 말했다.
- 물어봐.
- 뭐라고?
  기가 막혔다. 문자 그대로.
- 물어보라고.
- 뭘 물어봐? 참, 이건 물어봐야겠다.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 아니, 내 목을 물어보라고.
- 니 목이 왜? 아무렇지도 않은데?
- 아니 저 인간이 뇌가 굳어가나. 니 입으로 내 목을 물어보라고.
- 왜?
- 너도 피가 고플 거 아냐. 내가 보시하겠다는데.
  또, 어디서 <트와일라잇> 같은 거 보고 와서 이 지랄이다. 황급히 목욕 타월을 가져다, 강한 출력의 험버커 픽업을 자랑하는 그녀의 몸부터 우선 가려주었다. 피차 가까이서 접촉해서 좋을 게 없단 생각에 벽장에서 파대를 꺼내왔다. 고향 집에서 시골 논의 참새 쫓을 때 쓰던 것이다. 훠이훠이. 휘둘러서 그녀를 내보내려고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난 연약한 워커였고 그녀는 건장한 정상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참새 쫓는 파대와 스웨덴제 전문 벌목용 전기톱 사이의 싸움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그 과정에서 70.7cc 배기량에 5.4마력에 이르는 그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한 쪽 팔이 떨어져 나갈 뻔 했다. 정말이다. 그녀를 내보내고, 옷을 던져주고, 구두를 던져주고, 핸드백을 던져주고,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걸어 잠그고, 걸어 잠그고, 다시 걸어 잠그고, 또 걸어 잠그다보니, 아니나 다를가 또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랭이 떡만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분명히 이건 몸의 어딘가 고장이 났다는 신호다. 온 마음을 다해 미친 그녀와, 날 물었던 워커 여자와, 스테파니 메이어를 저주했다.

 

*

  워커들에게 비밀 모임이 있다. 얼마전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다. 이런 모임을 부르는 여러가지 명칭이 있지만 가장 널리 통용되는 것은 전경련이다. 전국 경계인 연합회. 강북 서부지역의 전경련 멤버들은 매월 첫째주, 셋째주 금요일 자정에 마포 먹자 골목 안에 있는 '산유화 숯불갈비'에서 모인다. 고기도 먹고, 인생의 애로사항도 논하고, 고기도 먹는, 뭐 그런 자리다. 매일 푸랑크 소세지만 먹다가 맛보는 숯불갈비의 맛이란 눈물이 나도록 기가 막혔다. 워커가 된 이후로 처음 느끼는 소속감 또한 더없이 달콤했다. 멤버들은 가끔 함께 문화생활도 즐긴다.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나 TV 쇼 캐릭터라면 역시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애니 워커다. 그들은 가끔 독서 클럽도 연다. 지난 주의 책은 이영도의 <퓨처 워커>였다. 두 시간 동안 혹평이 쏟아졌다. 다음 주의 책은 바바라 G. 워커의 <흑설공주 이야기>다. 멤버들 중에는 은근한 음악 매니아들도 많아, 심야의 리스닝 룸을 빌려 음악 감상회를 여는 일도 있었다. 에릭 클랩튼, 제프 백, 지미 페이지, 크리스 워커, 스캇 워커, 조 루이스 워커, 워커바우츠(The Walkabouts), 더 워커 브라더스(The Walker Brothers) 등이 주 레파토리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듣는 척 맞장구를 쳐주다 밑천이 딸리면 나는,
- 어차피 종착역은 펜더나 깁슨이라던데요.
따위의 말로 소속감을 재확인 받았다.

  나를 전경련 정모에 대려가 준 친구는 워커는 '머리 속에 부는 바람'이라는 친구로 상담 모임에서 스폰서로 만났다. 그는 정상인이었을 때의 자기 이름을 버리고 <늑대와 춤을>의 추장 이름을 따와 자기 인생 2막의 새로운 이름으로 삼았다. 워커가 된 것을 자기 인생 2막으로 표현하는 무한 긍정의 마인드에서 짐작 가능한 것처럼 그는 유용하고 쏠쏠한 삶의 노하우를 많이 깨친 워커였다. 심야에 장보기 좋은 곳, 심야에 산책하기 좋은 곳, 워커들을 위한 호신술 학원, 낮시간에 해봄직한 쏠쏠한 부업들, 피부 관리 노하우, 기타 등등. 그는 내게도 이전 삶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갖기를 권했다.
- 너처럼 인디언 스타일로? 주먹쥐고 일어서? 발로 차는 새?
- 꼭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변화를 주라는 뜻이야.
- '잘못은 별내면에 있어'로 할래. 어때?
- 나쁘지 않네.

  그에게 얼마전 중고생들에게 얻어맞고, 돈도 빼앗기고, 머리까지 날아갈 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듯 태연자약하게 대꾸했다.
- 워커를 멸시하는 건 사회적으로 건강한 반응이기는 해.
- 어째서?
- 어느 사회일 수록 호구가 하나씩은 있어야 평화로울 수 있는 법이거든.

  나는 그 말에 상당히 정확한 통찰력이 담겨 있음을 몇 달 후에나 깨닫게 되었다.


*


  정상 사람들에 비해 10원이 모자란, 우리 9990원짜리 워커 인생들이 몰려다니는 광경은 많은 경우에 환영받지 못했다. 그래서 낮시간보단 밤시간을 선호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아시다시피 한국의 밤문화라는 것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발달한 감이 있어서. 워커도 아니면서, 워커와 다름없는 상태로, 아니 워커보다 더한 꼴로, 심야에 몰려다니는 정상 사람들이 너무 많아 괴롭다. 워커는 뱀파이어가 아니다. 밤에만 돌아다녀야 할 생물학적 이유가 없다. 낮에 돌아다닐 수 있음에도 정상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따지고 보면 사회적 이유로 밤을 선호하는 것 뿐이다. 그러니 부디, 낮이든 밤이든, 하나는 우리에게 넘겨주시라. 아무리 경계로 내몰렸을 지언정 이 사회의 어엿한 일원이란 말이다. 워커들을 괴롭게 하는 건 역시,
- 그러게 누가 워커 되래?
와 같은 정상인들의 무심한 반응이다. 평소에 똑바로 살았으면 워커가 되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듯이. 

  우리 강북 서부지부 전경련 정모도 환영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워커들이 모여 숯불갈비를 뜨는 광경이 정상인들 보기에 썩 달갑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시사프로그램에 나온 동네 주민의 인터뷰 내용은 그런 현실을 적확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날 저는 술을 사러 동네 슈퍼에 내려가던 중이었습니다. 새벽 한 시쯤 되었을 거예요. 후미진 골목을 종종 걸음으로 내려가다 무심코 동네 갈비집 안을 들여다 보았는데, 하얀 얼굴의 워커들이 미친듯이 붉은 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겁니다. 살을 수십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 발겨 불판에 굽더라고요. 가게 밖까지 지글지글 살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어요. 고기 색을 보아하니 꼴에 간장 양념에 재운 것 같았는데 그 점은 확실하지 않았고요. 아무튼 그들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쉬지 않고 살점을 찢어 올렸어요. 뼈째로 들어서 그 무시무시한 이빨로 물어 뜯더란 말입니다. 누가봐도 고기 좀 씹어 본 놈들이란 확신이 강하게 들만큼 동물적인 본능이 느껴졌어요. 물컹 연기가 피어오르는 자리마다 침이 질질 흘러내렸고요. 다 먹은 뼈를 동치미 그릇에 던져 놓던데 단테가 묘사했던 지옥의 3층이 그리 끔찍할까요? (근데 단테도 4층은 F로 표시했나요?) 다음 날 가게 주인에게 항의를 했죠. "

  위와 같은 증언은 사실 악의적으로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워커들은 동작이 굼뜨고 느리기 때문에 먹기도 느리게 먹는다. 위협적으로 느껴질만한 여지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산유화 숯불갈비의 유리창 너머로 우리의 식사를 지켜보고 있는 정상인들의 눈초리는 공포와 의심으로 가득하다.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트린 이들도 있고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마치 공포영화를 보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다. 특히 지나가던 여중생들은 (도대체 그 시간에, 여중생들이, 마포 먹자 골목에서, 뭘 하는 중이었느냔 말이다)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 헐, 대박.
이라고 말하고는 낄낄거리며 사라졌다 (그 문제의 표현에 대해선, 이제 너무 지친 나머지 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 그러길래, 돼지갈비를 너무 많이 시켰다니깐. 열세 명이 왔으면 정확하게 13 인분만 시켰어야 하는데. 
  갈비를 뜯다 머쓱해진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어이, 남 먹는 거 그만 쳐다보고 가던 길 가시지!
  전직 군인이었던 '이겨놓고 싸우자'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가게 밖 관객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 사장님들! 여기 극장 아닙니다! 더 보고 싶으면 돈을 내세요!
  물수건을 던져 놓으며 '빼는 것이 플러스다'도 거들었다.
 
  분위기가 험악했다. 기어코 몇 분 후, 그러니까 채 다시 불판을 갈아야 할 시간이 되기도 전에 기어코 사단이 났다. 취객 몇몇이 화를 참지 못하고 워커 공격을 선동하고 나선 것이다. 접이식 의자가 날아오더니만 유리창이 깨졌다. 홈쇼핑에서 본 적이 있는데, 상판 너비 32 센티미터 정도에 펴면 높이가 45 센티미터 정도 되고 접으면 길이가 72센티미터 정도 되는, 그런 접이식 의자였다. 어떻게, 그런 걸 가방에, 넣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접혀진 상태의 접이식 의자는 72 센티미터 길이의 훌륭한 무기였다. 정신이 번쩍 든 우리 멤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피했다. 나도 얼른 구석으로 도망가 숨었다. 정상인들은 (그들은 정상이고 사람이지만 취했음을 기억하자) 접이식 의자를 들고 보이는 족족 워커들을 때려 눕혔다. 난장판이었다. '이겨놓고 싸우자'가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강북 동북 지부 멤버들에게 연락을 취해보겠다고 했다. 강남 서부와 강남 동부 쪽에도 알려보기는 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강남 놈들이 과연 우리를 도와줄까 몰라' 하는 말도 덧붙였다. 접이식 의자에 맞서 워커들은 불판과 집게를 들고 맞섰다. 당장은 손에 잡히는 게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인데, 하필 그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놓은 기자들이 있어 <사람고기를 갈망하여 사람을 공격하는 좀비 무리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무슨무슨 데일리' 혹은 '데일리 어쩌고'하는 인터넷 신문에 좋은 먹이감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거야 나중 일이고,

싸움은 전혀 대등하지가 않았다. 정도는 다르지만 약간씩 썩어가고 있는 워커들이 약했던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워커들이 안고 싸워야 하는 핸디캡의 문제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정상 사람이 워커를 죽이면 정당방위  혹은 과실치사지만 워커가 정상 사람을 죽이면 1급 살인이라는 현실. 그건 반칙이었다. 부대찌개를 시켰는데 절반이 조랭이 떡인 것처럼 반칙이었다. 그래서야 워커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제대로 맞설 수가 없었다. 여기에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취객의 편을 들면서 일방적인 학살 게임이 연출되었다. 경찰은 워커를 제압한다는 목적으로 물대포를 쏘았다. 가을 낙엽처럼 날아가는 워커들이 보였다. 강력한 수압에 가뜩이나 아슬아슬하던 워커들의 팔과 다리가 분리되어 날아갔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정상일까? 혹은 무엇이 비정상일까? 그러는 사이에 '머리 속에 부는 바람'도 날아갔다. 세찬 물살이 그의 몸과 머리를 분리시켰다. 공중으로 붕 떴다가 바닥에 털썩 떨어진 그의 몸뚱이는 다시 움직이지 않았고 머리는 바람 속으로 날아갔다. 워커가 되고도 용케 5년이나 살아 남았던 놈인데 소갈비도 나이고 겨우 돼지갈비 먹으러 왔다가 이렇게 가는구나.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고 너도 참 어지간히도 <재수> 없는 놈이다. 8181818 분의 1. 정상 사람이 워커에게 물려 워커가 될 확률. 속으로 되뇌었다. 팔백십팔만천팔백십팔, 팔백십팔만천팔백십팔, 팔백십팔만천팔백십팔……. 갑자기,

눈물이 계속나왔다. 멈추지도 않았다. 화장이 번질까봐 걱정되어 집게 손가락으로 눈 밑을 살짝 훔쳤다. 어디서 또 본 건 있어가지고 빨리 날아가라고 손을 흔들어 부채질을 했다. 그럼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뭔가가 번졌다. 거뭇거뭇하게 흘러내렸다. 미치겠네. 이건 또 무슨 조화람. 마스카라는 칠한 적도 없는데. 어쩌면 눈두덩이의 썩은 살이 흘러내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이상한 일이다. 워커의 눈물이라는 것은. 모든 워커들이 나처럼 눈물이 많지는 않았다. 살아있는 시체, 걸어다니는 시체에서 이렇게 많은 눈물이 나올 수야 없는 것이다.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가수들이 노래하는 프로그램에 방청객으로 나간 것이 아니고서는.

  어울리지 않는 정적이 찾아왔다. 싸움을 멈추고 모두가 나를 바라보았다. 워커들도, 취객들도, 주민들도, 경찰들도. 뭐 저런 게 다 있느냐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저마다 손에 잡히는 것을 들고. 물론 쪽은 팔렸지만 영업의 생명은 서비스 정신이기에 생긋 웃으며,
- 아세요? 뉴질랜드에선 골드키위를 껍질 째 먹는대요. 촉촉함을 더해주고, 껍질 속 쿼세트린이 피부 속부터 밝혀주니까.  
라고 말해버렸다. 모두가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워커들도, 취객들도, 주민들도, 경찰들도. 뭐 저런 게 다 있느냐는 표정으로. 너는 우리와 다르다는 표정으로. 저마다 손에 잡히는 것을 들고. 그것은 각목이었고, 쇠파이프였으며, 삽과 낫과 나이프이자, 고기 불판에 접이식 의자였다. 또한 콜트 일렉트릭 기타 X 시리즈인 동시에 140만원짜리 테일러메이드 드라이버 샷이었으며  스웨덴제 허스크바나 XP 372 모델이기도 했다.

어머, 어쩜 좋아.

이제 나는 전설이야.

(201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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