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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바라티 라제쉬 쿠마르

낙농콩단/Season 11-15 (2011-201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2. 8. 12.

본문


    아저씨의 연락은 느닷이 없었다. 나 역시 그의 연락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무심코 받은 전화 한 통에 별반 다를게 없던 평일 아침이 그토록 소란스러워지리라고는 감히 상상치 못하였다. "느이 할미 말이다. 느이 할미." 이렇게 운을 떼더니만 아저씨는 잠시 뜸을 들였다. 할머니에 대한 일이라면 대충 어떤 것일지 짐작은 갔다. 다만 그는 서둘러 말을 꺼내지도 않았고 내게 먼저 말을 꺼내주길 강요하지도 않았다. 머뭇거리는 까닭이란 할머니의 일 때문에 일단 전화는 했으되, 내게 한숨을 구할 수도 없고 질책을 내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 그는 어른이고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할머니와 더 가까운 사람은 나일 테지만 집안의 대소사에 책임이 있다면 나보단 아무래도 그에게 더 많은 비중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뭔가를 탓하려고 전화를 걸었던들, 막상 연결이 되고 내 목소리를 마주하게 되니 부끄럽기도 하고 착찹하기도 했을 것이다. 실은 거기까지도 미리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모르는 척 시침을 떼고 있었다. 조금 영악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곰을 만났을때 죽은 척 하라는 옛말처럼 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기 방어적 계책에 지나지 않는다. 곰을 때려잡을 용기도 힘도 없는 내게는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커다란 어려움을 만났을때 사람이라는 동물은 하나같이 영악해진다. 나 또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드디어 아저씨는 느릿느릿 운을 떼었다. "느이 할미가 또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목소리가. 며칠째 한 마디도 안 하고 방에 틀어 박혀 있다 안하나. 어찌 되었고간에 네가 좀 와줘야 쓰겄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삼개월 전이다. 처음에 나는 아저씨의 연락을 받자마자 서울에서 창원까지를 한 달음에 달려 갔다.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네이다 보니 한낱 감기가 불안하다고 한들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인데, 그런 마당에 하물며 갑자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니! 걱정을 하고 싶지가 않아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과장된 면이 있긴 했다. 목소리가 완전히 '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잘 안 나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괜스레 호들갑을 떠는 통에 숨도 못 쉬고 내려오지 않았느냐, 따져 묻고 싶었으나 목소리가 안 나오거나 잘 안나오거나 어쨌든 매한가지로 문제는 문제였으니 그만 두기로 했다.


  잘 안 나온다,


  목소리가. 할머니의 목소리는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괴수 영화의 그것처럼 으르렁거렸고 높낮이가 말을 처음 배우는 사람의 억양처럼 몹시 부자연스러워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음색이었다. 의사의 설명은 이랬다. "갑자기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그렇게 되신 것 같습니다. 워낙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옛말에 사람의 목소리란 본디 잘 바뀌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지문처럼 고유한 파형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바뀔 정도였다면 그 충격의 크기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충격?
  의사는 뭔가를 알고 말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의사였기 때문에 알지 않아도 뭔가를 알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


*


  충격. 하긴 그것은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가장 나쁜 종류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여든 노인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삼남매를 한꺼번에 잃는 것보다 더한 충격이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부럽지 않게 평화롭고 꽤 성공적이었던 할머니의 말년은 그 사건으로 인해 막판에 돌연 비극으로 바뀌었다. 할아버지는 젊어서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홀로 슬하의 삼남매를 키웠다. 형편이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잘 먹이고 잘 키우고 잘 공부시켜 남들이 부러워할 직장에 취직도 시키고 결혼까지 시켰다. 당신께서는 이제 해야할 임무를 다했고 더 이상은 저 세상에서 할아버지를 만나도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이라 여기셨는지, 시 외곽의 조용한 곳에 홀로 나와 사시며 찬찬히 주변을 정리하고 말년을 준비하셨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와 처음 신방을 차렸던 월세집이 있던 '꼭대기 동네'라고 했다. 동네 이름이 꼭대기일리는 없지만 우리 모두는 그 동네를 꼭대기라고 불렀다. 대체적으로 넓고 평평한 그 지역에서 야트막한 산 위에 자리 잡은 그 곳은 다른 어떤 동네보다 하늘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어느 날 당신이 가시게 되면 절대 요란피우지 말고 조용히 화장하여 할아버지가 계신 선산에 뿌려달라고 하셨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아들 딸들은 기겁을 하며 "어머니, 제발 그런 말씀 좀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정작 그들 중 가장 오랫동안 내일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다름아닌 할머니 당신이 될 줄이야 누구도 꿈엔들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문득 산다는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졌다. 서바이벌 게임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잠시도 방심할 수가 없는게 아닌가 싶었다. 언제 무슨 일이 갑자기 생길지 알 수 없는 것이고, 잘 버티다가도 불의의 역습에 처참하게 무너져 버리고, 그런 상처를 안고 또 내일을 맞아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야 하고……, 


용케도 남 얘기하듯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내게도 또한 커다란 충격이었다. 할머니의 삼남매란 내게 있어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그리고 고모라고 부르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겐 어머니가 없었다. 아마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에게 내가 전부이듯 내게도 아버지가 전부였다. 서울에 혼자 올라와 살던 나는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창원행 기차를 탔다. 서울역발 무궁화호 1501. 영원히 그 숫자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창원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놀러가는 사람, 일하러 가는 사람, 고향에 가는 사람,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 참으로 다양한 사연을 지닌 각색의 사람들 틈에서 나는 기차의 덜컹거림을 온 몸으로 견디어야 했다. 기차는 참 느렸고 무거웠다. 나는 도착할 때까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가지 않은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빠져나간 고향 집은 황량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원인은 동체 결함으로 인한 비행기 사고라 했다. 승객 이백칠십명을 태운 거대한 새가,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가, 어디쯤인지 모를 태평양의 검푸른 바다 한 가운데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슬프라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듯 비행기도 추락하라고 만들어진 존재는 아니다. 바다로 추락하는 경우의 지침과 대책이 분명히 마련되어 있을텐데도 어찌된 일인지 생존자는 열댓명에 불과했다. 이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열댓명 중에는 내가 아는 얼굴의 사람이 없었다.  이 또한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와 고모가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는지조차 나는 모르고 있었다. 어디에서 어디로 가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왜 갔는지, 그 이유를 묻거나 생각할 경황조차 없었다. 단지 내 앞에는 폐허가 있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하루 전에는, 한 시간 전에는, 일 분 전에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못했다. 그저 불행이란 녀석은 서서히 다가와 어느 순간에 철컥, 마치 쥐덫처럼 우리를 낚아채는 것이다. 스물 다섯이라는 나이에 고아라는 말은 너무 징그러워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어릴 적 동화책 속에서나 보았던 고아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뭘 해야 될지는 몰랐지만 일이 많았다. 내겐 어머니가 없었다. 작은 아버지에게 부인이 있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있었던 것도 같고 없엇던 것도 같은데 있다면 작은 아버지의 부인이나 고모의 남편 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왔을 것이다. 오지 않았으니 그들은 없거나 있어도 없는 사람이다. 세상 천지에 나와 핏줄로 연결된 사람은 할머니 한 사람만이 남았다. 먼 친척이라는 어떤 아저씨가 할머니를 모시고 올라와서 일을 도왔다. 모두가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아저씨라는 정확히 누군지 모르지만 모호한 호칭으로 불러야 하는 사람만이 달랑 남았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동정은 많이 받았으나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남의 동정이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묽게 녹아들어가는 것이다. 몇 개월만 지나면 그 들은 내가 누군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


  충격. 어쩌면 그때부터 할머니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길 것은 예상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비행기 사고자의 합동 분향소가 차려진 곳에서 할머니는 고래 고래 악을 쓰며 상을 뒤엎었다. 연세답지 않게 얼마나 정정한지 나 혼자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장정 여럿이 달려와 할머니를 붙잡았다. 밤새도록 앓는 소리를 내고 눈물도 없이 알아듣기 어려운 종류의 곡으로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와 고모의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하룻밤을 지새우던 할머니는 뜻밖에도 이튿날 아침부터 밥을 두 공기씩 자셨다. 또각또각 총각김치를 씹어내고 꿀꺽꿀꺽 육개장 국물을 떠넘기고 우적우적 부침개며 고기를 집어 드시는 그 식욕이 얼마나 왕성한지 지나던 사람들이 한두 번씩 쳐다보기 일쑤였다. 나는 남 보기가 부끄러웠으나 부끄러워 할 수조차 없었다. 밤이 되면 할머니는 또다시 고양이 소리를 내며 곡을 했다. 나조차 견디기 어려웠으니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받았던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럴때면 할머니는 전에 없던 표독스러운 소리로 날케롭게, "이놈들아, 니들이 내 새끼들 살려내 줄 수 있냐?"하며 쏘아 붙였다. 나도 더 이상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저씨도 모르겠다고 했다. 황망한 얼굴로 그런 할머니의 뒤에 서 있던 나는 뜻밖에도 그 곡소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돌아가신 가족들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혼자 남겨질 어린 나를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할머니 자신을 위해서였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이 그렇게 우는 것은 슬픈 감정이 꼭대기까지 치고 올라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어쩔 수 없을 때가 아니다. 슬퍼하되 막연할 때, 도대체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이고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때, 일단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소리내어 울어봄으로써 시간을 벌고 시간과 싸우는 것이다. 


  다만 할머니의 곡소리에 내가 거부감을 가졌던 까닭은 그것이 너무나 날카롭고 노련했기 때문이다. 마치 무대에 올라 연극을 하는 전문 배우의 그것처럼 인위적으로 가공된 느낌이었다. 내가 알기로 스물 둘에 청상이 된 이후로 할머니는 이런 류의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 경험적 습득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소리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능숙하다면 그런 행위 자체가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고 봐야하는 것일까? 두려웠다. 나는 당장이라도 할머니를 밖으로 끌어내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매서운 충동과 싸워야 했다.


  또다시 아침이 되기가 무섭게 할머니는 아귀처럼 밥을 자셨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그 자리의 누구도 그만큼 왕성하게 먹지는 못했다. 그때서야 얄궂게도 뭔가가 할머니를 지탱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그저 큰 병에나 걸려 자식 놈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조용히 살다 갔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던 노인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당신이 떠나거든 절대로 매장하여 봉분을 만들지 말고 화장하여 할아버지 무덤가에 뿌려달라던 노인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그 빈 자리에는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욕과 열망이 무섭게 파고 들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눈빛이 무서웠다. 내게 어머니의 기억을 지워버리려 엄하게 꾸짖어대던 아주 오래전의 바로 그 눈이 다시 살아나 고양이처럼 빛을 내었다. 삶과 죽음은 항상 교차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죽음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삶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불러 일으킨다. 사람이란 언제 덫에 걸려 거꾸러질지도 모르는 존재다. 동시에 그런 존재임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삶의 집착은 강해진다. 몹시 두려웠던 나머지 나는 할머니를 멀리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이제 내게 남은 핏줄은 할머니 뿐이지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아침 다르고 저녁이 다른 할머니의 광기는 며칠간 계속되었다. 하기야 그러고보면 그런 악다구니를 쓰고 나서 목소리쯤 안 나온다고 해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깟 목소리쯤은. 오히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다는 사실을 나는 다행으로 여겼다. 사고 후 몇 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할머니가 정말로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꼭대기에 오른 슬픔을 아침에 떠오르는 해나 밤이면 모습을 드러내는 달의 맑은 단면에 비춰보는 순간, 정말로 슬픔의 본질을 마주하던 순간, 그때부터 우리는 소리내어 울 수도 없다. 창원행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나는 그랬다. 한 번의 환승을 거친 세 시간 반의 기차여행을 끝냈을 때, 그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고 오줌이 마렵고 까무룩 잠마저 들 수 있다는, 저주스러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이미 슬픔을 소리로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 버린 채였다. 


*


  바라티. 내 새로운 파트너의 이름이었다. 지난 달부터 그와 나는 함께 일을 맡게 되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는 인도사람이었다. 인도에서 태어나 인도에서 삼십하고도 이년을 살아온 인도경찰이었다. 왜, 인도경찰과 한 팀이 되어야 하는거죠? 나의 질문에 반장은 어깨를 으쓱 들어올리더니만 낸들 알겠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그러한들 그 연유를 알리가 없는 것이다. 훨씬 윗선의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일테니까. 우리는 때로 그냥 그렇게 정해진 일을 맞이한다.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결정을 이유를 묻지 않고 받아 들인다. 


  그렇게하여 우리는 한국에 밀입국하였다는 국제 마약 범죄자를 쫓기 시작했다. 한국 경찰과 인도 경찰이 팀을 이루어 스리랑카 국적의 밀수범을 쫓는다 - 마치 영화같은 일이다. 참 살다보니 별 일도 다 생기노라고 생각했다. 바라티는 꺼무죽죽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흰자위는 유독 두드러져 보였다. 굵은 콧수염으로 얼굴의 삼분의 일을 덮고 있었는데 머리처럼 그것마저 곱슬거려 참 텁텁한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어디 잠복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그림이 확 튀잖아. 그것도 제대로. 우리나이로 서른 둘이라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형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런데 영어로 형, 을 뭐라고 하지? 브라더? 동료들의 말은 한결 같았다. 그들은 인도 경찰과 한 팀이 된다는 상황의 묘함에 적잖은 재미를 느끼면서도 정작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굉장히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의사 소통조차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대학때는 토익 팔백을 받았던 몸이다. 비록 외국 한 번 나가볼 기회가 없었지만 한국에 사는 한국 경찰에게 영어란 그저 기본만 되어주면, 그러니까 이따금 경찰서를 찾아오는 외국인이나 교포들과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만 가능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일이 내 인생에 끼어들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국사람의 영어도 그리 잘난 편은 아니겠지만 인도사람의 영어 또한 만만치는 않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또한 세월이 오래되고 각지의 방언과 뒤섞여 자기네 식으로 읽고 발음한다. 대체적으로 무척 빠르고 몹시 부정확하다. 말이 빨라서 발음이 부정확해 지는 것인지 발음이 부정확하여 말이 빠르게 들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도영어를 듣다가 미국영어를 들으면 귀가 탁, 하고 트인 느낌이 든다는 사실이다. 한 동료는 인도영어만 마스터하면 웬만한 영어는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라며 농담을 건넸다. 친구중에 수입 오퍼상을 하는 놈은 인도영어도 만만치는 않지만 모든 발음을 자기네식으로 바꿔버리는 일본영어에 비할 바는 결코 아니라며 코웃음을 친다. 빈번하게 외국에 드나드는 녀석의 말이니 아마 그게 맞을 것이라 믿는다. 


*


  바라티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인도에서는 나름대로 유능한 경찰이었을테니 여기까지 파견된 것이겠지만, 여기는 인도가 아니라 한국이었다. 지하철을 탈 줄도 몰랐고 보고서를 작성할 줄도 몰랐다. 그와 파트너가 됨으로 인해 나는 예전에 하던 일의 두 배를 혼자서 해내어야 했다. 그는 내게 모든 걸 물어왔다. 심지어 내가 비번인 날에도 내게 전화를 했다. "할로, 할로?"로 시작되는 그의 전화를 받을때마다 나는 내가 지쳐가고 있음을 확신했다. 또한 그는 고집이 세었다. '인도 고집'이라는 농이 괜히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내게 몸소 보여 주었다. 예전보다 세 배는 더 힘들어졌다. 나로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꺼번에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와 고모를 잃었고 창원에는 시한 폭탄처럼 위태위태한 할머니가 있다. 집안은 폭풍이 지나갔거나 앞으로 폭풍이 닥쳐 올 것만 같은 음산한 분위기였다. 처리해야 할 일 또한 한둘이 아니었다. 행정적 상속 문제를 매듭지어야 했고 사무적 뒷정리를 도맡아야 했다. 보상금을 받아내려는 유족회에도 참석했다. 보상이라니, 도대체 뭘로 어떻게 보상받는단 말인가. 그래도 남은 사람이 먹고 살 궁리를 해야한다는 사실이 쓰리고 아팠다. 그런게 세상이란 걸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변명인지는 모르겠다. 할머니의 아귀같은 식성과 생(生)에 대한 집착을 목격한 이후로부터였을까. 가능하면 나는 할머니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 물론 핏줄이라는게 그렇게 쉽게 마음먹는다고 끊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한들 직장을 버리고 창원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어려운 일을 당해 사면초가에 빠졌다한들 남에게는 그저 남의 일이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자기가 그 처지에 놓여보기 전까지는 남의 일을 남의 일로만 여긴다. 안되었다는 동정은 그저 동정이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창원로 내려간다고 한들 가엾게 여겨지거나 이후에 다시 일을 가지도록 뒤를 봐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만 둘 수는 없다. 대신에 나는 틈나는대로 월급의 일부를 떼어내 아저씨에게 보냈다. 할머니 병원비에라도 보태달라는 것이었다. 아저씨도 노인이라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아주 사소한 일가지 내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하루에 한 번, 덜하면 이틀에 한 번씩은 꼭 전화가 왔다. 그때마다 나는 할머니를 병원에 데려가보기를 권하거나 정 안되겠으면 한약이라도 한 재 달여드리기를 권했다. 그러겠노라고 전화를 끊은 그가 정말 내 말대로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거울을 보면 내 뒤에 한 가득 쌓여져 있는 짐이 마치 보이지 않는 듯 느껴졌다. 그것은 너무도 무겁고 무거워 때로는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웠다. 그런 내게 바라티는, 인도 경찰 바라티 라제쉬 쿠마르는 함께 하기에 너무나 어려운 짐이였다. 뭘 바라는 겐지 알 수 없는 '바라티'라는 이름은 소리내어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고, 때로는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


  파트너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경찰 일이라서 더 그런 것인가 싶은데,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우리는 스리랑크 국적의 국제 마약 범죄자를 쫓는다. 영화같은 일이다. 작은 자동차 안에 잠복한다. 잠복은 하루가 걸릴 때도 있고 일주일이 꼬박 걸릴 때도 있다. 범인이 나타나거나 더 이상 기다려봐야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다. 그 침묵을 나는 바라티와 함께 견뎌야 했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 또한 영어로 대화하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물었다.- 헝그리?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난히 하얗게 보이는 눈자위나 시커멓게 코 아래를 덮고 있는 수염이 전에 없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경찰서에 있을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좁은 자동차 안에 나란히 앉아 있으니까 내가 그의 나라에 온 것인지 그가 나의 나라에 온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눈짓으로 꼼짝말라는 시늉을 했다. 그도 알아 들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앞 뒤를 꼼곰히 살피고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갔다. 컵라면 두개를 사서 더운 물을 부어 차로 가지고 왔다. 
  그는 뚜껑을 열고 유심히 들여다보더니만 물었다. 
- 누들?
  그래 누들이다. 나는 모른다. 그가 라면을 아는지 혹은 인도 사람들이 라면을 아는지, 그가 라면을 먹는지 혹은 인도 사람들이 라면을 먹는지. 만약 모른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것마저도 모르겠다.
- 그래, 누들.
- 오, 아이 씨.


  그래라고 한들 그가 알아들었을리가 없지만 그는 열심히 포크를 놀리기 시작했다. 젓가락 질에 서투른 그는 언제나 포크를 가지고 다녔다. 의외로 바라티가 라면을 잘 먹어주는 것에 안심한 나도 컵라면 뚜껑을 벗겼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내다. 그간 잘 있었냐?" 아저씨였다. 곡 이런 순간에만 전화를 건다. "예, 잘 있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얘기로 전화를 걸었을까. "느이 할미 말이다." 느이 할미. 이렇게 운을 떼더니만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또 할머니의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저기, 아저씨. 사실 제가 지금 일하는 중입니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제가 좀 이따가 연락을 드리면 안될까요?" 아저씨는 잠시 망설이는 듯 했다. "그래라. 그럼. 느이 할미가 자꾸만 목소리가 안나온다캐서."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예, 그럴께요.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신호가 끊겼다. 전화기를 반으로 접었다. 나는 아저씨가 자꾸만 전화를 하는 이유를, 정확히는 할머니가 자꾸만 전화를 재촉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저 하나 남은 핏줄인 내가 자기를 보러 창원까지 달려와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목소리는 정말로 문제가 생겼거나 혹은 생각만큼 문제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나를 창원집으로 불러 들일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였다. 하지만 나는 창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를 볼때마다 상중(喪中)의 그 아귀같은 식성하며 악다구니가 자꾸만 떠오르는 탓이었다. 할머니 또한 그걸 눈치챘기 때문에 직접 전화를 하지 않고 아저씨를 통하려고 하는 것이다.


- 와이? 두 유 해브 애니 프라블럼?
  컵라면을 입에 넣다말고 바라티가 물었다. 어쩐지 쓴웃음이 났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할머니. 할머니의 목소리가 되어 말을 전달하고만 있는 아저씨. 한국말을 모르는 바라티. 그리고 나. 내가 바라티에게 이 상황을 설명한다고 한들 그는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가슴에 돌이 꽉 들어찬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는 충동 또한 지난 몇 개월간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는 내게는 그럴만한 상대가 없었다. 파트너. 둘이 짝이 되는 경우에 같은 편을 뜻하는 말이다. 파트너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나는 내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 받을 수 있었을까? 파트너 바라티. 인도 사람 바라티. 내가 그에게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와 고모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사연을 이야기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할머니가 고향에서 나를 애타게 불러 찾는다는 이야기를 한들 그는 내게 위안을 줄 수 있을까? 그에게 그런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마 할 수 없을 것이다. 바라티 앞에서는 나 또한 할머니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 바라티…….
- 으흥?
  그의 눈은 똑바로 나를 향하고 있었다. 
- 바라티, 슬프다. 나는…….
- 왓?
  그는 당연히 자신의 이름만을 알아들었을 뿐, 나는 슬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 바라티, 나는 슬프다고.
- 왓? 아이 캔트 언더스탠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유난히 까맸고 그 나머지 흰자위는 간밤에 내린 눈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


  잠복은 지루했다. 나는 경찰이 이렇게 지루함을 견디어야 하는 인내의 직업인지 미처 몰랐다. 나는 혼자다. 세상에서 철저하게 혼자다. 내게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할머니가 있고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의 아저씨가 있지만 나는 혼자다. 차 안에서도 나는 혼자다. 내 옆에는 사람이 있지만 그는 인도인이다. 우리는 공기를 나누고 함께 숨을 쉬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함께 웃을 수도 없고 함께 슬퍼할 것도 없다. 어렵다. 그래서 나는 혼자다. 말을 걸어보려는 몇 번의 용기는 피부색깔만큼이나 다른 장벽 앞에 스르르 허물어졌다. 아마 그 또한 어려웠을 것이다. 어렵게 침묵을 견디어야 했을 것이다.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나는 인도라는 나라를 상상했다. 인도. 어떤 곳일까. 어쩐지 오렌지 빛 태양이 거리를 비출 것도 같고 어쩐지 황토빛 대지가 그 빛을 받아 넘실거리고 있을 것도 같다. 그들의 피부색이 그러하듯 여기보다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는 세상이 아닐까, 그런 뜬금없는 생각마저 했다. 추적추적 콧수염을 기른 남자들과 얇은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 이마에 빨간 점을 붙인 여자들, 맨 손과 맨 발로 흙바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떳떳하게 길거리를 활보하는 코끼리. 한번도 인도에 가본 일이 없다. 인도의 모습을 텔레비젼에서 본 적은 있을까. 아마 있겠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인도라고 마냥 느리고 느리기만한 세상일까.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냥 그런 모습일거라고 생각을 해볼 뿐이다. 그런 세상의 한복판을 걷는 바라티를 상상해본다. 바라티 라제쉬 쿠마르. 거기서 그는 어떤 일을 했을까. 무단 횡단하는 코끼리를 잡아 수갑을 채우고 흙바닥에 아무렇게내 내려놓은 둥글넙적한 빵의 위생상태를 점검하고, 보자기를 뒤집어쓰지 않은 여자들에게 딱지를 끊었을까. 가만 보자기를 쓰는게 인도 여자들이었나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 지구본을 돌려야 나오는 중동의 여자들이었나. 그들 모두였나. 그건 걸 떠나서 그에게도 슬픔이 있었을까. 오렌지 빛으로 가득한 느린 세상 아래서도 어렵고 고단한 일이 있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와 함께 추락해버린 가족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할머니, 내 어깨에 쌓아올려진 무겁고 거친 짐들, 흔적도 없이 녹아버릴 동정들. 또래 아이들에게는 없고 내게는 있는 것. 하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 또한 언제 어느 순간에 갑자기 맞닥뜨리게 될지 알 수 없는 것. 세상 참 재미없고 하루와 그 다음의 하루가 모래를 씹는 것처럼 텁텁하고 찝찝해지는 것.


  언제부턴가 나는 경찰 일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꼭 바라티와 한 팀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시간도 다르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는 이 머나먼 타국에 와서 일해야 하는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아무 것도 모르는 그가 간혹 가족 관계를 묻는다던가 아버지가 뭐하시느냐 어머니는 또 뭐하시느냐고 묻는다고 하여 내가 그를 탓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실을 구구절절 늘어놓을 생각도 아니었다. 웃지도 못할 일이지만 나는 그런 복잡한 일들을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실력이 못 되었다. 그 또한 내 부족한 영어를 제대로 받아줄 실력이 못되었다. 둘 중의 하나는 적어도 어느 정도 능숙하게 말을 구사할 줄 알아야 대화가 되는 것이다.


  경찰 일에 대한 회의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지금 내가 바로 어렵고 고단한 사람인데 누가 누구를 도와야 한다는 말인가. 세상에는 어려운 사람도 많고 나쁜 사람도 많고 그래서 경찰이라는 직업이 필요한 것이지만 경찰 또한 로보트가 아니라 사람이다. 내가 힘들고 아프면면 세계의 안녕과 인류의 평화도 무의미하다. 내 알바 아니올시다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그 무렵부터 몸도 몹시 좋지 않아졌다. 명치 있는 부분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으며 몇 달 사이에 군살하나 없던 몸에 슬그머니 배가 나왔다. 음식을 먹으면 신물이 올라왔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속이 찌릿하게 쓰라렸다. 의사는 만성 위염이라며 교과서에나 나올 온갖 좋은 생활 습관들을 내게 적어주었다. 일찍 자고 일직 일어나며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와 운동을 하고 자극적인 음식은 되도록 피하며……. 엿새째 잠복 중인 경찰에게는 하나의 해당 사항도 없는 무의미한 말이었다. 몸이 아파서 며칠간 조퇴를 거듭하기도 했지만 쉬면 쉬는대로 나아지는 기색이 보이다가도 다시 며칠간 잠복을 하고 징징거리는 아저씨나 악다구니를 쓰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나면 그 사이에 또 손쓸 수 없이 도저 며칠을 끙끙거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꿈은 좋았던 적이 없었다. 괴상하고 망측한 이미지들이 빨래처럼 구겨진 형태로 잠복하고 있다가 밤마다 나를 덮쳤다. 그렇게 몇 개월을 살다보니 정식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했다. 밤마다 나는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어리석고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지진이 나서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고단함에서 내가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몰랐다.


  며칠 전 일이다. 저녁 내내 뒤척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끙끙대던 나는 바람을 쐬고 소화제도 살 겸 밖으로 나갔다. 골목을 돌아 공원을 통과해서 상가에 가는데 구석진 벤치 하나에 웬 노인이 등을 보이고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뽀글뽀글한 머리 모양이 꼭 할머니를 닮았으나 너무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구부정한 등짝하며 작게 움츠러든 어깨의 모양이 꼭 창원에서 나를 찾아대는 할머니를 닮았다. 몇 번이고 뒤돌아 보았다. 언젠가 악다구니를 쓰던 할머니를 닮았고 언젠가 아귀처럼 음식을 퍼먹던 할머니를 닮았다. 슈퍼에 다녀오는 길에도 나는 노인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몇 번이고 돌아 보았다. 하지만 가까이 가 볼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너무 슬퍼보였기 때문이다. 바삐 걸었다. 누구에게도 쫓기지 않았으나 쫓기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밀림같은 아파트 숲이 답답하여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사탕가루처럼 부서지는 별을 볼 수 있길 희망하였다. 하지만 거기엔 어김없이 교회 첨탑의 십자가가 있을 뿐이다. 이 나라에서는 그렇다. 낮은 곳에서 올려다볼 때 으례 하나둘씩은 발견할 수 있는게 십자가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도 으례 하나둘씩은 눈에 띄는 것이 십자가다. 십자가는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바로 저 자리에서 반짝거린다. 그 너그러운 빛은 주위의 별이 보이지 않을만큼 밝다. 할머니의 뒷모습마냥 나도 모르게 눈길이 끌려 몇 번이고 쳐다보고는 하지만 용기를 내어 가까이 가보지는 못한다. 내게는 너무 높았다. 내게는 너무 멀었다. 높고도 멀어 어쩐지 눈물이 났다.


*


  바라티는 고시원에 산다. 서에서 지원금이 나왔다지만 그리 풍족하지 않았던 관계로 그는 근방에서 가장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는 집을 원했다. 여기서 집을 구하려면 마땅히 한국 말을 할 줄 알아야 했기에 역시 그런 일 또한 나의 몫이었다. 그는 월세나 전세로 쓸 수 있는 다른 꽤 괜찮은 집들을 한사코 거부하고 그냥 고시텔이라는 곳에 들어가 살겠다고 했다. 값이 싸기 때문이었을까. '고시텔'이라고 멋들어지게 붙였을지언정 결국은 고시원이었다. 그는 '고시'가 뭔지도 몰랐고 '고시원'이 뭘 하는 곳인지 몰랐다. 나도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내 영어는 너무도 짧고 부족했다.


  바라티는 고시원이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고시원에 산다. 이따금 그는 나를 고시원으로 끌고 들어갔다. 한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고시원이라는 곳은. 그가 처음 방을 구했을 적에도 나는 그곳에 들어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고시원이라는 곳의 주인이라는 사람들은 타인의 출입을 썩 내켜하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대학때 고시원에 살던 여자 아이와 만나며 알게 되었다. 역시나 철 지난 안경의 촌스러운 총무가 외부인이 틀림없을 나를 노려보았다. 뭐라 항의를 하려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쩝 입맛을 다시더니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로서는 말이 통하는 내게 해야할 것인지 말이 통하지 않는 바라티에게 직접 해야 할 것인지 도통 감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꺼림찍 해진 나는 계단을 내려가려는 바라티를 붙잡아 세웠다.
- 바라티, 아임 낫 어 멤버 오브 디스 고시원.
  누누이 강조하지만 대학때 토익을 팔백 맞았다는 나의 영어 실력이란 고작 이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 댓츠 오케이. 돈트 케어 어바웃 잇.
  그의 영어 실력 또한 과히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바라티가 처음에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자기 방이었다. 생전 고시원이라는 곳을 가본 일이 없었지만 텔레비젼에서는 종종 보았기 때문에 고시원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그곳은 상상했던 것보다, 혹은 텔레비젼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기상천외한 곳이었다. 동시에 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는 가느다란 복도를 중심으로 깨알같은 방들이 좌우로 마주보고 배열되어 있었고, 그런만큼 당연히 볕이 들지 않아 어둡고 축축했다. 바라티의 방은 일층에서도 코너를 돌아 맨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문을 열었을때 드러난 것은 내 방의 삼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사람 하나 간신히 누울 공간과 그 공간을 포함한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방 바닥은 이불과 옷가지들로 질퍽거렸고 바라티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알 수 없던 이국인의 내음이 웅성거렸다. 생각보다 굉장히 진하고 역하게 쌓여있어 들어서는 순간 숨이 탁 막혀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바라티 역시 자신의 방이 손님을 맞기에 적합치 않음을 알고 있었는지 서둘러 외투를 벗어 책상에 걸쳐 놓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나는 어디로? 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는데 그러자 그는 따라와 보면 알아, 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화 한 마디도 없이 의사 소통이 되는 것을 보니 우리도 이제 어느 정도는 제대로 된 팀을 이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라티가 다시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지하 일층이었다. 그는 나를 앞서서 성큼 성큼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뒤따라 가며 어쩐지 모를 감정이 들어 쓰게 웃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이런 일을 겪어보게 되라라고 (이런 일이라하면 인도인과 함께 그가 묵고 있는 고시원에 찾아가 방을 구경하고 다시 그를 따라 고시원의 지하로 내려가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 아랑곳 하지 않고 바라티는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문을 열어보였다. 다름 아닌 주방이었다. 남성 전용 주방이라는 문패에 남녀가 유별하여 밥까지 따로 먹게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바라티는 아주 익숙한 모습으로 전기 밥솥을 열어 밥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했고 대형 냉장고를 열어 음식용 밀폐 용기를 꺼내었다. 황갈색 빛깔의 액체 내용물이 딱딱하게 응고되어 푸딩처럼 출렁거렸다.
- 두 유 노우 왓 이즈 디스? 
  바라티의 질문은 내가 너에게 인도 음식을 맛보여주려고 하는데 너는 이게 뭔지 알고 있느냐, 뭐 이정도의 의미였을 것이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카레 아닌가. 카레. 그걸 모를리가. 다만 나는 알고 있다고 대답하면 그가 무안해 하지 않을런지를 고민했고, 카레라고 해야 맞을지 커리라고 해야 맞을지를 몰라 망설였다. 
- 커리?
- 오우, 굿.
  의외로 바라티는 내가 커리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듯 했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싱크대로 가더니 밥공기 두 개를 물로 씻기 시작했다. 내가 거들려고 하자만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 싯 다운, 플리즈. 싯 다운.
  어쩔 도리가 없어 다시 자리에 앉았고 바라티가 하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보았다. 그는 밥솥을 열었고 주걱을 들어 밥솥 안의 밥을 차곡차곡 갈아 엎었다. 해 둔지 오래된 보온 상태의 밥답지 않게 밥솥 안의 밥은 굉장히 질어 물기가 이글거렸다. 누군가 뜸을 제대로 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열었을지도 모르고 고시원 주인 몰래 서툰 솜씨로 밥을 해먹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우스운 것이다. 그는 대접같은 공기에 밥을 가득 담았고 카레가 들어있는 음식용 밀폐용기를 전자레인지 집어 넣었다. 1분. 땡 소리가 났다. 한국 사람들은 물에 데워 먹는 3분 카레를 즐겨 먹는다는 것을 그는 알까. 아니야. 어쩌면 인도에도 3분 카레 따위가 있을지 몰라. 땡. 그는 전자레인지를 열고 용기를 꺼냈다. 뚜껑을 떼어내자 뭉클하게 김이 피어올랐다. 다름아닌 카레였으나 여기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바라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여주었더라면 카레가 아닌 줄 알았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 흐음…….
  바라티는 수저로 카레를 듬뿍 퍼서 밥위에 끼얹었다. 자기 밥에 한 숟가락, 그리고 내 밥에 한 숟가락. 다시 자기 밥에 한 숟가락. 어느 정도 양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리저리 밥의 모양새와 남은 양을 견주어 보더니만,
- 오케이. 오케이.
하면서 누가 뭐라지도 않았는데 남은 카레를 양쪽 밥그릇 위에 팍팍 쏟아내는 것이었다. 얼마나 아까웠는지 바닥까지 빡빡 긁어내었고 그것도 모자라 수저를 입에 넣고 쪽쪽 빨아대었다. 카레 라이스. 두 그릇의 카레 라이스가 어찌 되었던 지금 내 앞에 있는데 하나는 바라티의 것이고 하나는 나의 것이다. 바라티는 내 앞으로 한 그릇을 쭈욱 밀어 주었다.
- 이트 잇. 이트 잇.
  그의 영어가 썩 훌륭하지 않고 나의 눈치가 어둡다한들 먹어보라는 뜻이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황갈색 액체에 뒤덮인 당근과 감자와 양파와 보로콜리와 쌀밥을 보았다. 카레, 내가 알고 그가 아는대로 바로 카레 라이스.
- 해브 잇. 해브 잇.


  바라티가 재촉했다. 나는 그것이 썩 먹음직스럽지 않다고 여겼으나 그렇다고 바라티의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비비고 또 비볐다. 윤기 있는 쌀알의 곡면을 타고 질퍽한 카레가 흘렀다. 인도식 카레는 우리가 먹는 카레와는 조금 달랐다. 우선 거의 물기가 없었다. 마치 우리가 샘표 간장에 참기름 두어방울 넣고 밥을 비빌때와 비슷한 꼴이었다. 그럼 그 밥덩이 중간 중간에 큼지막한 당근과 감자와 양파와 브로콜리가 틀어 박힌다. 냄새 역시 약간의 향신료가 들어갔는지 시큼하고 씁쓸하게 코를 찔렀다. 솔직히 과히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꾸역꾸역 먹었다. 바라티의 성의를 무시할 수가 없어서. 내 눈치를 살피던 그가 맛없냐고 묻기에 그렇지 않다고 답하며 짐짓 열심히 먹는 척했다. 그가 브로콜리를 먹으라고 권하기에 브로콜리도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입 안에서 밥은 모래 알갱이를 씹는 것처럼 겉돌았다. 반면 그는 맛있어 견딜수가 없다는 표정을 하고 열심히 숟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숙인 그의 고개 아래로 드문드문 보이는 콧수염이 참으로 낯설어 나는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빛이 반만 들어오는 반지하의 2평짜리 고시원 식당에는 돌고래가 물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파란색 그림의 액자가 붙어 있었고 한쪽에는 싱크대가 다른 한족에는 냉장고와 전기밥솥이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4인용 탁자가 있다. 반지하의 쪽창에서 파문을 일으키는 날카로운 햇살을 바라본다. 지금 여기에 앉아서 나와 바라티는 인도식 카레라이스로 늦은 점심을 때운다. 나는 다시 바라티를 보았다.


  그는 인도 사람이다.


  여기는 인도인가 한국인가? 어쩌면 여기가 인도이고 그의 나라에 내가 찾아온 것일 수도 있는게 아닐까? 인도 사람인 그의 이름은 바라티, 바라티 라제쉬 쿠마르. 그럼 내 이름은? 나는 누구지?  일주일에 두어번씩 아저씨 아저씨의 전화를 받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할머니를 가진 나는 누구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와 고모를 비행기 사고로 한 번에 잃은 나는 누구지? 경찰이 되어 나쁜 사람을 잡겠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서한 나는 누구지? 스리랑카 밀수범을 잡기위해 인도 사람과 짝을 이루어 검은 차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나는? 어디까지가 현실이며 어디까지가 현실이 아니지?
- 바라티.
- …….
- 바라티?
- 왓? 쏘리. 쏘리.
  그는 먹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듯 했다. 콧수염에 누런 카레를 덕지덕지 붙이고 나를 쳐다보는 그의 유난히 하얗고 빛나는 눈에 대고 나는 물었다. 도저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바라티, 후 엠 아이?, 두유 노우 댓?
  바라티는 화장지를 끊어 입을 조용히 닦고나서 대답했다.
- 아이 돈트 노우 후 유 아.
  얼음을 삼킨 것처럼 아찔하고 아찔한, 너무도 정확하고 또렷한 대답이었다.

 

 

(201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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